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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81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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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입시제도 개편 상관없다” 대치동에 갇힌 한국 교육

▲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photo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별로 상관없습니다.”
   
   요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인근 ‘대치동 학원가’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말 중 하나다. 지난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 연설을 통해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한 데 이어 25일 문 대통령이 주재한 교육개혁관계장관회의에서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난 뒤에도 대치동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차분한 분위기였다. 대치동과 서울 양천구 목동 일대에서 10년 넘게 강사로 활동해온 A씨의 말을 들어보자.
   
   “정책이 널뛰기한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어차피 뭘 해도 사교육으로 향하는 발길을 막을 수는 없다. 정시를 확대하면 수능 대비반이 늘어난다. 자사고 폐지되면 폐지되는 대로 자구책을 찾는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것이 교육 정책인데 근본적인 틀을 바꾸는 교육 개혁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대치동은 늘 그렇듯이 학생들로 북적일 것이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입시 대비반을 운영하는 학원을 찾아가봤다. B원장의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일괄 전환된다는 것이 2025년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얼마든지 말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 몇 주 사이에도 상담하러 오는 학부모들은 여전히 많은 편이다. 만약 자사고·외고가 일괄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영재 교육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지 않는다. 크게 변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정부에서 내놓은 두 가지 정책 방향이 사교육 업계에는 청신호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간 사교육이 교육 정책의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을 메우면서 성장해온 만큼 이번 정책들 역시 마찬가지의 역할을 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뭘 해도 사교육 발길 막을 수 없다”
   
   정시 확대와 자사고·외고·국제고 일괄 전환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구호를 달고 나온 정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 확대의 이유로 ‘교육 불평등’ 해소를 얘기했다. 자사고·외고·국제고 일괄 전환을 언급하면서는 ‘고교 서열화’ 문제 해결을 말했다. 불공정성과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목표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정책이 향하는 방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대학 입학 문제와 관련해 불거진 ‘학종 논란’에서 시작된 정시 확대 여론은, 불공정한 학종을 줄이는 것 자체로도 충분히 공정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정시가 오히려 ‘금수저’에게 유리한 전형이라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17~2019학년도 서울대 정시 전형 입학생 중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출신 학생이 가장 많았다. 한 번의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수능을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재력이 있는 ‘금수저’가 유리하다는 얘기다.
   
   반대의 주장에도 근거가 있다. 이현 우리교육연구소장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와 다른 상위권 대학 합격자를 보면 학종이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학생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3~2018학년도 서울대 수시 합격생 중 평균 62.7%가 이들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서강대나 성균관대 같은 다른 상위권 대학도 마찬가지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이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 결과다.
   
   이 배치되는 주장들을 따지고 보면 사실은 학종과 정시,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입시 전문가들은 지금 한국의 교육 상황에서는 정시든 학종이든 금수저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공교육의 틀 안에서 대학 입시를 충분히 준비할 수 없는 시스템의 한계에 있다. 단지 정시 비율을 늘리고 줄이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오히려 일관적이지 않은 교육 정책이 정보력과 불투명한 대입 전형에 대비할 수 있는 재력의 중요성을 강조시킬 뿐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장 지난 10월 21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시 확대보다 “학종 공정성을 제고하는 데 먼저 집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며칠 만에 정책의 방향성이 바뀌는 상황에서는 불확실성만 높아질 뿐이다. 자연히 교육 정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학원강사 A씨는 ‘손바닥 뒤집기’ 같은 교육 정책이 불공정함을 더욱 키웠다고 지적했다.
   
   “정시나 학종 어느 하나가 문제가 아니라 여론을 봐가며 움직이는 교육 당국이 문제다. 교육부를 믿지 못하니 학부모들은 사교육으로 움직이고 자연히 돈 많은 학부모 밑에서 어떤 정책이든 견딜 수 있는 학생이 살아남는 것이다.”
   
   
▲ 지난 10월 25일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개혁 관계 장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문재인 대통령. photo 뉴시스

   자사고 전환하면 평등해질까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괄 전환 정책 역시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 고등학교를 일반고로 전환시킨다고 해서 ‘고교 서열화’ 문제가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 먼저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원장을 지낸 김성열 경남대 교육학과 교수의 설명을 따라 자사고·외고·국제고와 같은 특수목적 고등학교의 설립 취지부터 이해해보자.
   
   “교육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져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다양한 교육 요구에 맞는 기회 역시 제공돼야 한다. 특정 분야에 소질이 있는 학생을 위해 먼저 과학고가 생겼고 1992년에 외국어고등학교가 등장했다. 처음에 자립형사립고라고 이름 지었던 자사고는 사학(私學)의 이상적인 모습을 실현시키겠다는 목적하에 생긴 것이다. 재정적으로 자립해 건학이념에 맞게 특색 있는, 자율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는 학교였다. 그게 문민정부 때인 1995년 5·31 교육개혁안에 처음 등장했고 국민의 정부 때 시범적으로 실시되어 이명박 정부 때 자율형사립고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 같은 특수목적 고등학교는 다양한 교육 수요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고교 다양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진학보다 취업에 중점을 둔 마이스터고나 예술 특기의 학생들을 수용하기 위한 예술고와 마찬가지로 고교 평준화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시작된 제도였다.
   
   “다양화의 외피를 쓰고 서열화되어 있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서열화된 고등학교들을 일괄 전환한다고 해서 서열화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서열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김성열 교수의 말처럼 고교 서열화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될 부분이 아니다. 이재덕 한국교원대 교육학과 교수는 한국교육개발원 재직 당시 자사고의 설립 취지와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해 연구한 적이 있다. 정책상 고교 다양화를 목표로 했던 것과 달리 자사고에 진학한 학생과 학부모는 ‘성적 향상’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결과를 두고 교육계 일부에서는 “자사고가 당초 목적에 벗어나 운영되고 있다”며 폐지(일반고 전환)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이 연구를 진행한 이재덕 교수는 당장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보다 “교육과정의 다양화라는 당초 목표에 맞는 운영방침을 세울 수 있도록 개선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식과 실제가 다르다고 해서 폐지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방향을 우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또는 자사고의 ‘결과’가 성적 향상이나 명문대 진학으로 도출되었다고 해서 목적에 맞지 않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진학률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7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고등학교의 학업 목표는 대학 진학으로 인식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다. 이 상황에서 진학률이 높게 나타난다는 점만으로 자사고의 설립 방향에 대해 비판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가 보다 다양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연구도 있다. 최지은씨가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의 지도하에 연구한 바를 정리한 논문 ‘사회계층과 고교 유형이 대학 진학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이들 고등학교는 하위계층 학생들에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대학 입학생 1000여명의 출신 고교, 사회계층 등을 조사해봤을 때 부모의 소득이 높은 학생의 경우 특목고나 자사고, 일반고 어디를 가더라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 소득이 낮은 하위계층의 학생들은 일반고에 진학했을 때는 상위권 대학에 입학하기 어려웠지만, 특목고나 자사고에 진학했을 때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결과를 미루어보자면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했을 때 오히려 하위계층의 학생들이 더 좋은 기회를 얻을 것이라는 생각에도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교육 과정이 목적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 입학과정은 공정하고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할 수도 있다.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교육 정책이 필요
   
   다시 말하자면 한국 교육의 문제는 몇 가지 제도를 급하게 수정함으로써 해결되지 않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시 확대와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괄 전환 정책 방침에 비판의 목소리가 거센 이유는, 이 역시 지금까지 그랬듯 임시적인 처방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근본적인 지점에서 교육 정책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지금까지 한국 교육 정책은 이번 정시 확대 정책이 그랬듯이 정책 결정권자와 교육부 등 교육 행정기관의 의지대로 결정될 때가 잦았다. 그러다 보니 이념적 성향에 따라, 여론에 따라 교육 정책이 널뛰기해왔다. 공교롭게도 교육 정책들은 5년을 주기로 방향을 전환해왔는데 학종 역시 2015학년도에 도입된 제도다. 단기적인 땜질에 본체를 알아보기 힘들어진 교육 정책 말고 중장기적인 교육 정책이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해 추진 중인 것이 국가교육위원회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 행정당국과는 별개로 중장기적으로 교육 정책을 고민해나가는 독립적인 기구다. 그러나 이 기구는 정치권과 교육계 등 각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구성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성열 경남대 교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출범과 더불어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교육 행정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중앙정부 중심의 관료적인 교육 정책에서 벗어나 지방과 개별 학교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관여하는 힘이 커질 것이고, 자연히 교육 현장의 문제를 직접 반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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