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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금강산 카드’서 드러난 ‘저팔계 외교’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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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81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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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금강산 카드’서 드러난 ‘저팔계 외교’ 전략

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 지난 10월 23일 김정은이 해금강호텔 앞에서 당 간부들에게 금강산 시설 철거를 지시하고 있다. photo 노동신문
“북한에 대한 외국인의 직접투자(FDI) 규모는 누계 기준 40억달러에 달할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중국이 북한에 10억달러, 한국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에 10억달러와 15억달러를 투자하는 사업, 그리고 러시아가 북한 라선시와 자국 하산시를 잇는 철도 사업과 일부 국가들의 소규모 사업 등등이다. 이런 규모는 한국은행이 추정한 북한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290억달러의 13%에 해당한다. 김정은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25개의 경제특구를 지정했지만 외국인 투자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출판사가 발간한 ‘아시안 퍼스펙티브’ 2019년 여름호에 러시아 출신인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등 3명이 공동으로 게재한 외국의 대북 투자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들은 외국의 대북 투자가 미미한 이유로 핵과 미사일 시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북한 정권의 비현실적인 기대치를 꼽았다. 특히 저자들은 북한 정권이 외국 주체와 맺은 투자 계약을 이행할 의지가 별로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북한 정권이 외국 자본을 믿지 못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적대적으로 대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지난 10월 23일 금강산 관광지구를 시찰하면서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해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함으로써 남북 경협의 상징인 금강산 관광사업이 사실상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은 김정은의 명령에 따라 금강산 국제관광국이라는 새로운 조직의 명의로 보낸 통지문에서 “금강산지구에 국제관광문화지구를 새로 건설할 것”이라면서 “합의되는 날짜에 금강산지구에 들어와 남쪽 당국과 민간기업이 설치한 시설을 철거해가기 바란다”고 밝혔다. 북한 정권은 합의라는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철거절차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셈이다. 게다가 북한 정권은 한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금강산을 국제관광문화지구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특히 김정은은 한국 자본과 기업들에 대한 거부감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김정은은 10월 25일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장을 방문해 “이것이 우리식, 조선식 건설”이라면서 “적당히 건물을 지어놓고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한 자본주의 기업들의 건축과 근로인민 대중의 요구와 지향을 구현한 사회주의 건축의 본질적 차이를 종합적으로,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며 한국 자본과 기업이 개발한 금강산 관광사업을 폄훼했다.
   
   
   일방적인 금강산 시설 철거 지시
   
   금강산 관광사업은 1998년 10월 현대그룹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가 합의서를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금강산 해로관광은 1998년 11월부터, 육로관광은 2003년 9월부터 각각 실시됐다.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은 2007년 6월 내금강 관광까지 진행됐지만, 2008년 7월 한국 관광객인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전면 중단됐다. 당시 합의서에 따르면 현대아산은 금강산 해금강-원산지역 관광지구 토지이용에 대한 50년 사업권 대가로 9억4200만달러를 북측에 주기로 했다. 이 가운데 현대아산이 10년간 금강산 관광을 진행하며 지불한 금액은 5597억원이다. 이와 별도로 현대아산이 시설 등에 투자한 금액은 모두 2268억원이다. 지금까지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사업에 총 7670억원을 투입했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 정권에 박왕자씨 피격 사건 진상 규명 및 사과, 재발방지책 마련,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 확보 등을 요구해왔지만 북한 정권은 이를 거부하고 묵살해왔다. 북한 정권은 2010년 4월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지구 내 주요 부동산 시설을 동결 및 몰수 조치하고 남측 직원을 추방했다. 북한 정권은 또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 독점권 효력을 취소하고 금강산 국제관광특구법을 채택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이 금강산 관광시설을 일방적으로 철거하겠다는 통보는 무엇보다 한국 기업의 재산권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조치일 뿐만 아니라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와 맺은 약속을 자신의 입맛에 따라 깨뜨리겠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 경제의 최대 문제는 제재 해제가 아니라 국가 신용인데, 북한 내 한국 자산을 존중하지 않는 일방적 행태는 가뜩이나 나쁜 신용을 더 악화시켜 경제발전의 발목만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운 교수는 “금강산 관광시설에 대한 김정은의 철거 지시는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형국”이라면서 “북한 정권의 일방적인 재산권 침해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용을 악화시켜 경제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브라운 교수는 “김정은이 자력갱생에 총력을 기울이더라도 외국 자본의 투자가 없으면 북한 경제는 발전할 수 없다”면서 “국제 신용을 일방적으로 깨뜨리는 북한 정권에 외국 자본이 투자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로이 스탠거론 한미경제연구소 선임 국장은 “이번 결정은 국제사회에도 북한이 투자하기에 안전한 곳이 아니며 국제투자를 촉진하는 데 필요한 재산권 보호와 같은 필요한 개혁 조치를 거부한다는 강력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신용보험업체의 하나인 아트라디우스(Atradius)는 올해 국가별 위험지도(Country Risk Map)에서 북한을 투자와 사업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로 꼽았다. 북한 경제 전문가들은 정치적 목적 때문에 사업 기회를 잃는 북한 정권의 고질적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되는 것 같다면서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의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 2월 27일 트럼프와 김정은이 2차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만찬하면서 담소하고 있다. photo 백악관

   ‘투자 못 할 나라’ 인식 자충수
   
   김정은이 이번 금강산 카드를 꺼내든 것은 미국 정부에 제재 해제를 강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만만해 보이는 한국을 향해 행동을 보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미국 정부의 눈치를 보지 말고 경협에 나서든지, 그게 아니면 금강산 관광시설을 철거하든지 양자택일을 요구한 것이다. 임재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대열에서 한국을 이탈시키려는 압력”이라면서 “미국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누차 강조했지만 한국이 움직이지 않자 독자적으로 가겠다는 압박”이라고 지적했다.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김정은이 한·미 관계를 이간질하고, 한국이 북한과 관계개선과 미국과 관계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김정은의 철거 지시는 금강산 관광사업의 보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결의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는 동시에 북한이 제시한 입찰에 응하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은 문 대통령이 북한에 경제적 이익을 주는 남북 경협을 현실적으로 재개할 수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면서 “문 대통령이 남북 경협을 원한다고 해도 미국 정부가 이에 대한 대북 제재 면제 승인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김정은의 이번 금강산 카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직접 겨냥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 현지 지도에 미국과의 핵 협상 실무책임자인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을 데리고 갔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일종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조건이 마련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우선 정상화하기로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북한의 수석 대변인’이라는 말을 들어온 문 대통령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등 대북 제재 완화 조치를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거부해왔다. 때문에 김정은으로선 금강산 관광시설 철거 지시를 내림으로써 문 대통령을 통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 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모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다시 말해 김정은은 최 제1부상을 통해 제재에 대한 미국의 셈법을 바꿔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 국제관계국장은 “최 제1부상이 김정은을 수행한 것은 미·북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는 것에 대한 북한의 좌절감을 보여준다”면서 “제재 완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으라는 의미의 압박”이라고 분석했다.
   
   
   금강산에 최선희 데리고 간 의미
   
   실제로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김정은의 금강산 현지 지도 다음 날인 10월 24일 담화를 발표했다. 김계관은 “며칠 전 내가 국무위원장 동지를 만나 뵙고 조·미 관계 문제를 비롯하여 대외 사업에서 제기되는 현안들을 보고했을 때 국무위원장 동지께서는 자신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관계가 각별하다고 말씀하셨다”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과의 친분관계를 강조했다. 김계관은 이어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며 “우리는 미국이 어떻게 이번 연말을 지혜롭게 넘기는가를 보고 싶다”고 밝혔다. 김계관의 입을 빌렸지만 사실상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추파(?)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다. 김계관은 “나는 이런 친분관계에 기초해 조·미 사이에 가로놓인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관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전진시킬 동력이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계관은 미국 정부의 실무 협상 대표들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김계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식견과 의사와는 달리 미국 정부의 대조선 정책 작성자들이 아직도 냉전식 사고와 이데올로기적 편견에 사로잡혀 우리를 덮어놓고 적대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담화는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을 이른바 ‘갈라치기’하려는 것으로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원하는 것을 얻어내겠다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북한 정권은 대미·대남 협상 전면에서 사라졌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까지 등장시켜 연내 미·북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했다. 김영철 부위원장은 지난 10월 27일 아·태평화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담화에서 “최근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과 아량을 오판하면서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더욱 발광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며 “미국이 수뇌들 간의 개인적 친분관계를 내세워 시간 끌기를 하면서 올 연말을 무난히 넘겨보려고 생각한다면 어리석은 망상”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철은 “조·미 관계에서는 그 어떤 실제적인 진전이 이룩된 것이 없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불과 불이 오갈 수 있는 교전관계가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경고까지 했다. 북한 정권의 의도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연말까지 대북 정책 셈법을 바꾸라고 압박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금강산 카드와 김계관·김영철의 담화 등을 볼 때 북한 정권의 의도는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거래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은 “김정은이 금강산 관광지구 방문을 통해 보내는 신호는 미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임 기간에 합의 가능성이 높고, 한국은 대북 정책과 관련해 미국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미국 민주주의재단 선임연구원도 “북한의 술책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독대를 통한 제재 완화 등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도 “담화에는 실무협상 등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지적했다. 수 킴 미국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관도 “북한이 제시한 연말 시한까지 불과 2개월 남은 상황에서 실무협상보다는 정상회담을 통해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담화”라고 풀이했다.
   
   
   김정일이 설파한 저팔계 외교
   
   그런데 김계관 등의 담화는 북한 정권 특유의 ‘저팔계 외교’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저팔계 외교는 김정일이 1990년대 외교관들에게 “중국 고전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저팔계처럼 자기 잇속만 챙길 수 있다면 적에게도 추파를 던질 줄 아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외교방식”이라고 지시한 데서 유래됐다. 저팔계처럼 솔직한 척, 어리석은 척, 화난 척, 미련한 척, 미친 척 등 어떤 표정을 동원하든 상관없이 핵을 비롯해 북한 정권에 필요한 이익을 지키고 얻어내는 전술을 말한다. 김정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온갖 교언영색과 아부 등 칭송하는 말과 ‘아름다운 편지’ 등 친서를 보내는 것은 저팔계 외교 전술의 일환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한 김덕홍 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은 회고록에서 김정일의 저팔계 외교 전술 지시에 따라 강석주 외무성 제1부부장이 1994년 제네바 협상에서 미국을 속였다고 밝혔다. 실제로 북한 정권은 제네바합의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핵 개발을 계속했다. 당시 강석주와 함께 저팔계 외교 전술을 펼쳤던 김계관은 6자회담 북한 수석대표와 외무성 제1부상을 지냈고, 리수용 당 중앙위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 최 제1부상의 직속 상사였다. 김정은에게 외교정책과 관련해 자주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계관이 담화에서 “의지가 있으면 길은 열리기 마련”이라고 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년 대선에서 재선하려면 김정은과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하원의 탄핵조사 청문회에서 갈수록 불리한 증언들이 잇달아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3차 미·북 정상회담이라는 ‘외교 쇼’를 벌일 수 있을까. 시리아 북동부 미군 철군 결정과 같이 대북 제재 완화 등 무리수를 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미국 조야의 비판만 받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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