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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 유튜브 방송 화제 탈북 핵학자 김대호의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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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81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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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유튜브 방송 화제 탈북 핵학자 김대호의 폭로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김대호(60) NK우주과학원 원장은 미·북 제네바합의 1년 전인 1994년 1월 북한을 탈출해 중국 베이징으로 갔다. 영변핵물리대학에서 핵공학을 전공한 그는 29세의 나이에 평산우라늄공장 부직장장(부사장)에 임명될 정도로 북한 원자력계의 엘리트였다. 전병호 군수공업담당 비서(핵개발 전담)와 박성봉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수시 로 불려다녔다. 북한 핵기지에 어떤 ‘괴물’이 숨어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는 북한 핵시설 위성사진을 정밀 판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로도 평가받았다.
   
   당시 그의 탈출에 화들짝 놀란 북한 김일성 주석은 중국 정부에 그를 체포해달라는 의뢰를 했고, 국가안전보위부 체포조를 베이징에 급파했다. 중국 공안은 동북3성에 그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지만 다행히 그는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에 망명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당시 베이징에서 그를 심문하다 특급 핵 관련 정보에 놀란 한국의 김영삼 정부는 해군 함정을 보내 그를 서울로 데려왔다. 3만5000명의 탈북자 가운데 한국 해군 함정의 도움을 받으며 탈북한 인물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한국에 온 후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 실상을 낱낱이 폭로하려 했다. 특히 그 무렵 미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경제봉쇄 조치로 북한의 핵개발이 사실상 동결상태를 넘어 포기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증언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는 그의 언론 공개를 막았다. 그의 신분을 평산우라늄공장 폐수처리작업반장으로 위장하면서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넘어온 탈북자로 둔갑시켰다. 오히려 김영삼 정부는 핵개발에 전혀 관여한 바 없는 강성산 북한 총리의 사위 강명도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 연구실장(대좌)을 내세워 북핵 위기를 고조시켰다. 1994년 탈북한 강명도는 당시 “북한이 핵무기를 이미 5개나 보유하고 올해 안에 10개가 목표”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소통령’으로 불리던 대통령 차남 김현철씨가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하는 사건이 터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등 위기에 몰려 있을 때였다.
   
   
   “미국의 북핵 정보는 수박 겉핥기 수준”
   
   만약 김대호 원장이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의 핵개발이 지리멸렬 상태라는 증언을 했다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됐을까. 아마 클린턴 행정부는 김 원장의 정보를 토대로 1994년 제네바합의에 나서지 않고 경수로도 지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대북 경제제재를 더욱 강화해 북한을 무릎 꿇렸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핵개발의 길로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핵실험을 꾸준히 이어가며 사실상 핵보유국의 반열에 올랐다.
   
   김대호 원장은 1995년 NK우주과학원 설립 이후 지난 25년간 우주를 연구하는 순수과학자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우주의 기원과 진화과정 연구에 몰두해 ‘질량-중력-밀도-온도메커니즘의 우주공식’을 발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의 정보와 경험을 되살려 미국의 잘못된 북핵 전략을 지적하고 북한 핵과 관련한 새로운 정보와 분석 내용을 알리고 있다. 특히 NK지식인연대가 운영하는 유튜브에 출연해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0월 18일 김흥광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 영등포 NK지식인연대 사무실에서 유튜브 촬영을 마친 김 원장을 만났다.
   
   - 최근 유튜브를 통해 미국의 핵 관련 정보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심각한 이야기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회담이 결렬된 이후 어느 날 미국 정보국의 북핵 관련 발표를 보고 ‘이거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핵 정보는 대단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북한 핵시설을 첩보위성으로만 감시하기 때문에 핵시설의 지붕만 찍는 수박 겉핥기 수준이다. 지붕 아래의 진실은 모른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북한 지도부가 잘못된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절대로 핵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것이다.”
   
   특히 김 원장은 1999년 5월 미국이 평안북도 동창군의 빈 터널에 속아 3억달러어치의 식량(60만t)을 북한에 준 것을 아쉬워했다. 최근에도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평산우라늄공장의 우라늄 슬러지를 우라늄광석이라고 발표한 것을 보고 기가 막혔다고 했다.
   
   - 1992년부터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이 북핵 시설을 뒤지기 시작하면서 제1차 북핵 위기가 발발했다. 그때 탈북을 결심했는데 당시 북한의 핵개발 상황은 어땠나. “미국의 경제봉쇄로 북한의 핵개발은 동결상태를 넘어 재기불능에 가까웠다. 1986년 가동한 5㎿ 흑연로 하나만 겨우 돌아갔다. 우라늄 생산과 핵연료봉 생산은 연쇄공정이다. 1984년 북한은 평산에 100t 규모의 우라늄공장을 짓기 시작했고, 같은해 영변 분광지구에도 100t 규모의 핵연료봉공장(일명 ‘8월기업소’)을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북한 최대의 우라늄공장(황해북도 평산-남천화학공장)은 잦은 설비고장으로 1년 반 동안 100t 정도의 우라늄만 생산하다가 1992년 1월 완전히 생산을 멈췄다.”
   
   - 우라늄 생산을 하지 못하면 핵연료봉 생산공정도 멈추나. “그렇다. 연쇄적이다. 우라늄 생산공정이 완전히 동결되다 보니 핵연료봉 생산공정도 자연히 문을 닫았다. 북한이 제네바회담을 앞두고 우라늄(핵)연료봉으로 미국을 압박했는데, 사실 2년 전에 이미 우라늄(핵)연료봉 생산이 완전 동결된 상태였다. 1985년경에 착공한 50MW(영변) 원자로와 200MW(태천) 원자로 건설도 완전히 중단되었다. 평안북도 대관군 일대에서 지하핵시설을 건설하던 3공병국 산하 49여단 부대들도 농사를 짓는 상황이었다.”
   
   - 우라늄 생산을 하지 못한 것이 미국의 경제봉쇄 여파로 여겨지는데 북한이 우라늄 생산에 필요한 어떤 원료들을 구하기 어려웠나. “영변 분광지구에도 연간 10t 정도의 우라늄 생산공장이 있었는데, 이곳은 소금을 사용하는 염법 추출방식을 썼다. 우리 평산공장은 황산(유산)을 사용하는 산법 추출방식이었다. 황산을 담는 스테인리스용기는 일본에서, 옥탄가 높은 항공유와 탄산소다는 중국에서 수입했으나, 경제봉쇄로 710호 자금(핵개발 자금)이 바닥나 수입이 막혔다. 휘발유와 디젤, 타이어를 중국에서 수입하지 못하게 되자 광석을 실어나르는 트럭들이 멈춰 섰다.”
   
   
▲ 1994년 탈북 후 중국 다롄항에서 해군함정을 타고 대한민국으로 입국했을 당시 모습. photo 김대호

   “제네바 핵합의는 北 사기극에 놀아난 것”
   
   -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핵개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했더라면 굳이 제네바 핵합의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이 나의 주장이다. 1994년 서울에 와보니 한국과 미국의 북한 핵 정보는 놀라울 정도로 빈약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북한의 핵 관련 정보들은 북한 지도부가 미국과의 제네바협상에서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정보였다. 내가 북핵은 동결됐다고 말하는 순간, 북한의 핵협상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상황이었다. 클린턴 행정부가 훗날 자신들의 제네바 핵합의로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켰다고 자화자찬할 때 참담한 심정이었다. 북한의 사기극에 놀아난 것이다.”
   
   - 핵개발 빈사상태의 북한이 1993년 3월 12일 NPT를 탈퇴하며 오히려 강수를 둔 까닭은 무엇일까. “핵사찰을 차단함으로써 전반적으로 동결된 핵개발 실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제네바회담을 통해 국제사회로부터의 대규모 지원을 얻어내려 했던 것이다. 물론 핵을 포기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당시 러시아는 페레스트로이카, 중국은 흑묘백묘론(黑猫白描論)으로 북한을 돌볼 여력이 없었고 클린턴 행정부는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겠다고 했다. 평산우라늄공장도 북폭에 대비해 행정조직을 군사조직으로 바꿔 평산공장의 초급 당 비서는 대대장, 나는 참모장을 했다. 김일성이 방북한 카터 대통령에게 김영삼을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을 정도다.”
   
   - 1992년 북한이 제출한 핵물질 보고에 의거해 1992년 5월 11일부터 15일까지 한스 블릭스 IAEA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했었다. 이때 한스 블릭스 총장 일행은 영변에 들러 평산의 우라늄공장을 돌아봤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때 나도 현장에 있었다. 한스 블릭스 총장이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북한이 이미 핵 동결상태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때 우리 공장은 우라늄 생산을 못하고 대신 우라늄광석에 1.4% 포함된 바나듐을 정련하고 있었다. 이걸 일본으로 수출해 핵개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수출업무를 맡았다. 핵사찰 날짜가 임박해지자 바나듐 생산 흔적을 없애려고 노동자들이 시커먼 우라늄 가루를 들것에 담아 우라늄침출직장 담벽에 붙여놓고 가마니로 덮어버렸다. 한스 블릭스 총장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김영삼 정부는 왜 굴러들어온 보물을 차버렸을까. 그리고 안기부는 왜 북한의 최고급 핵기밀을 미국과 공유하지 않았을까. “조사 과정에서 안기부 간부가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까지도 미국의 북핵 정보는 너무도 빈약하다. 이것은 한·미의 북핵 정보가 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1994년 5월 7일 안기부에 의해 철저히 조작된 기자회견에서 내 신분과 정보를 감춘 채 안기부의 각본대로 인터뷰를 했다. 미국에는 내 신분이 비밀에 부쳐졌다. 내가 폐수처리작업반장이라는데, 미국이 나를 만날 이유가 있겠는가.”
   
   
   “1987년 농축우라늄 찌꺼기를 눈으로 보다”
   
   -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많은 외부 관찰자들의 예상을 뒤엎고 너무 빨리 진척됐다. 특히 우라늄 농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이 많은 것 같다. “1987년 김일성은 ‘북조선 핵개발에서 가장 큰 성과는 우라늄 농축주기를 주체화한 것’이라고 했다. 1987년 김일성의 우라늄 농축 성공 교시가 있고 나서 농축우라늄 찌꺼기가 생산공장에서 나오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아주 걸쭉한 강냉이죽 같았다. 평산 지역은 우라늄에 석탄이 들어 있어 검은색을 띤다. 우라늄 농축 2년 후인 1989년 초 김일성과 김정일이 영변 핵단지의 방사화학실험실(일명 ‘12월기업소’)을 방문해 플루토늄 추출 성공을 치하했다. 공로자들에게 리모컨이 달린 도시바텔레비전을 선물했다. 제1차 핵 위기 이전에 북한은 이미 우라늄과 플루토늄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 2000년 이후 파키스탄의 칸 박사가 북한에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와 관련 기술을 제공하고 이걸 북한의 미사일 기술과 교환했다는 것이 그동안 정설이었는데 김 박사의 얘기는 다르다. “서방세계가 그만큼 북한 핵 관련 정보에 깜깜이라는 방증이다.”
   
   - 1990년 IAEA는 북한이 플루토늄 8㎏을 추출했다고 했는데, 김 원장은 12㎏이라고 주장해왔다. “내가 직접 관여했기 때문에 정확하게 안다. 1987년 플루토늄 추출실험을 시작해 1989~1991년 세 차례에 걸쳐 플루토늄 12㎏(26.4lb)을 생산했다. 추출과정에서 북한 과학자 3명이 맹독성 가스에 중독돼 평양 봉화진료소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식물인간이 됐다. 핵개발 자금 확보를 위한 외화벌이사업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나는 전병호 비서와 박성봉 부부장의 지시로 1993년 소련에서 플루토늄 추출에 필요한 붉은수은(산화수소) 4㎏(2㎏ 포장 3만달러), 핵분열을 돕는 베르늄(베릴륨)을 밀수해 들여오는 데도 관여했다. 김정일이 이 물질들을 무조건 확보하고 이걸 외국에 넘기는 자는 민족반역자로 처형하라고 할 정도로 신경을 썼다.”
   
   - 1990년대 이전에 이미 핵물질(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다 확보했다면 왜 바로 핵실험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고도의 정밀기술이 필요했다. 핵폭탄을 만들려면 유압식 펌프는 만들 정도의 정밀기계기술이 있어야 한다. 북한은 1991년 10월에 함경북도 무수단리에 핵미사일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사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일본 도쿄가 가까운 함북 길주군 무수단리에 제47여단의 1개 대대를 투입해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 3년 후 그곳에서 미사일이 날아가니까 일본 언론들이 나를 찾아 인터뷰를 했다.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 핵실험장 지하시설 건설도 내가 처음으로 언론에 공개했다.”
   
   - 1994년 북핵 초기에 탈북했기 때문에 최근의 동향엔 어둡지 않나. “그렇지만 북한 핵시설의 전체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6차례 핵실험을 거치면서 핵기술만 고도화한 것뿐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추적하려면 북핵 시설을 건설하고 있는 부대의 알리바이만 추적하면 된다. 영변핵시설을 전담하는 제43여단, 평산우라늄공장을 건설한 47여단, 지하 핵시설을 건설하는 제3공병구 핵개발부대 예하 제49여단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면 된다. 북한의 용악산지질탐사대, 구월산지질탐사대 등 2개의 지질탐사대의 움직임도 감시해야 한다.”
   
   
▲ 김대호 원장이 북한을 탈출할 때 이용한 기차표. 북한을 탈출한 날인 1994년 1월 9일자 소인이 찍혀 있다. photo 김대호

   “위성사진은 우라늄 슬러지”
   
   - 최근 미국의 전략연구소가 위성사진 분석을 통해 평산우라늄공장의 검은 물체더미를 우라늄광석을 쌓아놓은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그것이 맞나. “위성사진상 보이는 검은 물체는 우라늄을 추출하고 남은 슬러지다. 우라늄 생산공장 울타리 안에는 원광을 부려놓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평산우라늄공장은 평화광산, 예성광산, 월암리광산 등 3개 광산에서 채굴한 광석을 평산 화학공장의 파쇄장에 모아 물과 광석을 1 대 5의 고액비로 섞어 마광기(摩鑛機)에 300메시(mesh) 굵기로 파쇄(식용은 800메시)한다. 가끔 설비 고장으로 우라늄 탱크가 고장나면 30분 경과 후 우라늄액이 굳게 된다. 이것을 일꾼들이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퍼낸 것을 미국 연구소가 잘못 판단한 것이다.”
   
   - 북한은 평산 지역 우라늄 생산공정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 “북한도 방사능을 띤 오폐수 처리에 원칙이 있다. 원광에서 우라늄, 바나듐, 몰리브덴, 라듐을 추출한 나머지 물질들은 석회분말(150메시)을 액체상태로 만들어 우라늄액에 섞어 처리한다. 석회분말이 우라늄 알갱이를 끌어안고 바닥에 가라앉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물을 떠서 시료가 0.4감마가 나오면 방류할 수 있다. 그런데 평산우라늄공장에서는 그냥 석회유만 섞어서 남천강 건너에 있는 폐기물처리장으로 배출한다. 그런데 겨울철 설비고장으로 텅스텐관이 얼어붙으면 작업자들이 관을 잘라 강물에 우라늄 찌거기를 털어버리곤 한다. 하루는 전기작업반장이 물고기를 잡아 술 한잔한다며 강에 전기를 넣었다가 우라늄 폐기물로 가득 찬 고기의 뱃속을 보고 질겁을 했다. 그 뒤부터 우리는 그곳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
   
   - 그렇다면 우리 서해안도 북한 우라늄 생산공장의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것 아닌가. “폐기물에는 방사능뿐만 아니라 황산, 탄산에다 석유도 포함돼 있다. 평산공장의 우라늄 오폐수들은 예성강에서 강화도로 흘러간다. 결국 서해안으로 방사능 물질이 흘러갈 것이다. 정부에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강화도와 서해안 일대의 수질조사를 전면적으로 해야 할 것이다. 1994년 탈북했을 때 안기부에서 국민들이 불안할 수 있으니 이 이야기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했다.”
   
   - 만약 미국이 F-35A와 같은 폭격수단으로 영변시설을 외과수술 하듯 폭격하면 북한의 핵시설이 완전히 무력화될 수 있을까. “영변 폭격만으로,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 북핵을 제거할 수는 없다. 물론 영변은 5㎿ 흑연로 등 원자로와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12월기업소), 핵연료봉공장(8월기업소), 운전군 동삼리 우라늄공장(4월기업소) 등이 몰려 있는 핵개발의 심장부다. 하지만 북한은 현재 평북 대관군의 지하 핵시설에 모든 핵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 북한의 미래 핵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방안은 없을까. “북한의 우라늄 채광부터 정련, 핵연료봉 생산까지 파악해야 한다. 남북한이 합작해 전량의 연료봉을 남한의 원전에서 연소시키고, 생산한 전기를 북한에 공급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50㎿, 200㎿ 발전소를 비롯해 북한이 지하에 숨겨놓은 핵시설들은 무력화될 것이다. 북한이 성의를 보인다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기꺼이 북한의 재건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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