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석탄들이 쌓여 있는 중국 톈진 외곽의 한 열발전소. ⓒphoto 바이두
시커먼 석탄들이 쌓여 있는 중국 톈진 외곽의 한 열발전소. ⓒphoto 바이두

푸른 하늘이 잿빛으로 바뀌는 계절이 다가왔다. 중국 북방에서 중앙난방을 개시하면서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 지수가 급격히 치솟는 날이 늘고 있다. 중국의 남북 경계선인 화이허(淮河)강과 친링(秦嶺)산맥을 기준으로 대략 북위 33도 이북 지역에서는 매년 11월 15일을 전후로 대략 이듬해 3월 15일까지 4개월간 중앙난방을 공급한다. 대규모 열발전소에서 난방열을 만들어 광범위한 지역에 공급하는 우리의 지역난방과 유사한 개념이다. 영상 5도 이하의 날씨가 연중 90일 이상 지속되는 곳들을 대상으로 난방열이 공급되는데 이 4개월 동안은 열발전소에서 대규모로 석탄을 때기 때문에 상당량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발생한다.

중국의 대도시들은 기후 상황에 따라 자체적으로 중앙난방 개시일을 정하는데, 올해 이미 일부 대도시에서는 중앙난방을 개시한 상태다. 일찌감치 겨울 추위가 찾아오는 신장(新疆)위구르족자치구와 네이멍구몽골족자치구가 지난 10월 15일부터 내년 4월 15일까지 중앙난방 공급을 개시한 것을 필두로, 지린성 창춘(長春)과 헤이룽장성 하얼빈도 지난 10월 20일부터 중앙난방 공급을 시작했다. 북위 44도에 위치한 창춘은 내년 4월 6일까지, 그보다 더 북쪽인 북위 45도에 위치한 하얼빈은 내년 4월 20일까지 중앙난방 공급이 예정돼 있다. 한국과 가까운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하나인 톈진(天津) 역시 지난 11월 1일 0시를 기해 중앙난방 공급을 시작했다. 톈진의 중앙난방은 내년 3월 31일까지 예정돼 있다.

11월 15일 북방 전역 난방 가동

중국 북방에서 중앙난방 공급을 시작한 것과 동시에 서울을 비롯한 한국 수도권의 미세먼지 지수도 위험수위에 다가서고 있다. 신장과 네이멍구에서 중앙난방을 공급한 지 딱 일주일 뒤인 지난 10월 21일 오전 6시 수도권에서 고농도 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가 발령됐으나 다행히 같은 날 오후 5시30분 해제됐다.

지난 10월 31일에도 서울과 인천의 초미세먼지(PM2.5) 지수는 각각 46㎍, 42㎍까지 치솟았다. 환경당국은 초미세먼지 농도 0~15㎍는 좋음, 16~35㎍는 보통, 36~75㎍는 나쁨, 76㎍ 이상은 ‘매우나쁨’으로 구분한다.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가 50㎍를 초과하고, 다음날도 50㎍를 넘을 것으로 예보되면, 서울을 비롯한 각 지자체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를 발령해 차량운행을 제한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초미세먼지 권고기준은 25㎍ 이하다.

중국 북방 전역이 중앙난방을 가동하는 11월 15일 이후부터는 서울 및 수도권에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중국 북방 주요 대도시의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의 초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해보면 11월이면 어김없이 한반도를 덮치는 미세먼지와 중앙난방과의 연관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최근 2년간(2017년 11월~2018년 3월, 2018년 11월~2019년 3월) 중국의 수도권에 해당하는 ‘징진지(京津冀·베이징, 톈진, 허베이)’ 권역과 동북 3성(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권역의 초미세먼지 지수를 확인해 보자.<표 참조>

한국과 가장 가깝고 지난 11월 1일부터 중앙난방 공급을 시작한 톈진의 경우 최근 2년간 월별 초미세먼지 지수가 모두 한국 기준으로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동되는 50㎍를 넘어섰다. 베이징과 톈진을 감싸고 있는 허베이성(河北省)의 이 기간 미세먼지 지수는 공포 그 자체다. 특히 허베이성 성도인 스자좡(石家庄)의 최근 2년간 초미세먼지 지수는 이 기간 100㎍를 예사로 넘어섰다. 예컨대 2018년 1월에는 수치가 112㎍, 2018년 11월에는 100㎍, 2019년 1월에는 145㎍, 2월에는 124㎍를 찍었다. 중앙난방이 공급되는 기간 중 월평균 초미세먼지 지수가 100㎍ 이상을 찍은 달이 무려 4달이나 되는 것이다. 초미세먼지가 50㎍ 이상만 돼도 숨이 컥컥 막히고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급증하는데, 100㎍ 이상이면 사실상 코앞에서 자동차 배기가스를 들이마시는 수준이다.

가을, 겨울 북서풍이 불어오는 통로에 있는 중국 동북 3성 주요 대도시의 초미세먼지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동북 3성 최대 공업도시인 랴오닝성의 성도 선양(沈陽)은 2017년 11월(40㎍)과 2018년 12월(47㎍)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월별 초미세먼지 수치가 모두 50㎍ 이상을 찍었다.

동북 3성의 대도시 가운데 겨울철 가장 추운 하얼빈의 경우, 이 기간 중 초미세먼지가 50㎍ 이하를 기록한 달이 2018년 11월이 유일했다. 2017년 11월에는 초미세먼지 지수가 121㎍, 같은해 12월에는 101㎍, 올해 2월에도 106㎍를 기록하는 등 중앙난방 공급과 함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오히려 비정상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非)난방 남방 대도시와 차이 확연

11월 15일을 전후한 중국 북방의 중앙난방 공급이 미세먼지의 주된 원인임은 이 기간 중앙난방을 공급하지 않는 중국 남방의 주요 대도시와 비교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남북 경계선인 화이허와 친링산맥 이남은 법적으로 중앙난방 공급이 안 된다. 난방은 개별가구에 설치한 보일러나 전기난로, 온풍기 등 전열기 등을 통해 해결한다.

중국 최대 경제도시인 상하이의 경우, 최근 2년간 초미세먼지 수치가 50㎍를 넘어선 것은 2017년 12월 54㎍와 2018년 1월 57㎍, 2019년 3월 51㎍ 세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 상하이는 징진지 권역의 주요 대도시나 동북 3성 주요 대도시에 비해 인구도 훨씬 많고 1인당 자동차 보급률도 훨씬 높은 곳이다. 상하이의 자동차 보유대수는 359만대로 중국 주요 도시 가운데 4번째로 많다.

이 같은 현상은 남부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베이징, 상하이와 함께 경제가 가장 발전한 ‘1선도시’를 형성하는 광저우(廣州)의 경우 같은 기간 중 초미세먼지 수치가 50㎍를 넘어선 것은 2017년 12월 51㎍와 2018년 1월 58㎍ 두 차례밖에 안 된다.

역시 1선도시로 광저우보다 더 남쪽에 있는 선전의 경우, 같은 기간 중 초미세먼지 수치가 50㎍를 넘어선 달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선전의 경우 북방에서 중앙난방을 공급하는 기간 중 초미세먼지가 20㎍ 이하를 기록한 달(2019년 2월)도 있었다. 겨울철 초미세먼지가 20㎍ 이하를 기록한 대도시는 선전이 유일했다. 광저우와 선전 역시 중국 북방의 주요 도시보다 인구도 많고 자동차도 많다. ‘세계의 공장’이란 말처럼 공업시설도 월등히 많지만, 연중 덥고 온화한 날씨로 겨울철 난방 자체가 아예 필요 없는 곳들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울과 수도권을 덮치는 미세먼지의 원인은 대부분 중국 북방의 중앙난방 때문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울을 비롯한 인천, 경기 등 수도권은 상하이나 광저우, 선전에 비해 중국 북방과 훨씬 더 가깝다. 또 겨울철 계절풍인 북서풍의 영향을 직접 받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상하이나 광저우, 선전에서도 보기 드문 초미세먼지가 서울과 수도권 상공을 덮칠 이유가 없다.

결국 초미세먼지 수치가 50㎍ 이상을 기록할 때 발령되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로,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을 제한하고, 공공기관 주차장을 폐쇄하고,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제 2부제를 해본들 큰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개선된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지수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11월 15일부터 이듬해 3월 15일까지 중앙난방 공급이 예정돼 있는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수치다. 상주인구만 2100만명에 이르는 베이징의 자동차 보급대수는 564만대로 중국 도시 가운데 가장 많다. 하지만 중앙난방이 공급되는 기간 중 초미세먼지는 톈진이나 스자좡 등 징진지 권역에 위치한 다른 대도시에 비해 양호하게 관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역시 최근 2년간의 수치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실제로 중앙난방이 공급되는 기간 중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수치는 2017년 11월부터 2018년 1월까지는 모두 50㎍ 이하를 기록했다. 2018년 12월 역시 38㎍로 50㎍ 이하를 찍었다. 비교대상으로 삼은 전체 10개월 가운데, 초미세먼지 수치가 50㎍ 이상인 달이 6개월로 그 이하인 달(4개월)보다는 더 많지만, 같은 기간 초미세먼지가 모두 50㎍ 이상을 기록한 톈진이나 스자좡에 비해 월등히 양호한 수치다.

이는 베이징시 당국이 대량의 석탄을 태워 난방열을 생산하는 기존의 난방공급 방식을 천연가스와 전기 등으로 바꾸기 위해 전개한 소위 ‘람천(藍天) 보위전’이 효과를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베이징시 당국은 석탄난방을 천연가스로 바꾸는 ‘매개기(煤改氣)’, 석탄을 전기로 바꾸는 ‘매개전(煤改電)’ 등의 정책을 역점적으로 추진해왔다. 특히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서기와 천지닝(陳吉寧) 베이징시장(전 환경보호부장) 콤비는 중앙난방보다 더 열악한 개별 석탄보일러를 사용하는 노후불량주택들을 마을 단위로 밀어버리는 불도저식 개량도 불사했다.

최근 방한한 리간제(李干杰) 중국 생태환경부(환경보호부의 후신) 부장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과 만나 “2013년부터 지금까지 베이징의 초미세먼지 농도가 50% 가까이 줄었다”며 “많은 한국 분이 베이징에 가서 피부로 느끼셨을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여기에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중국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가 크다”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앞으로 양국은 보다 활발히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저감 노력을 강화했으면 한다”고 답하며 양국 간 공동 미세먼지 절감계획인 ‘청천(晴天) 계획’에 서명했다. ‘람천 보위전’이나 ‘청천 계획’이나 성패는 대규모로 석탄을 때는 중국 북방의 중앙난방에 달렸다. 맑은 하늘을 기대하며 중국 공무원들만 바라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중앙난방보다 무서운 개별난방

난로에 생석탄 통째로 집어넣어… 매연 거르는 장치도 없어

석탄으로 난방을 하는 중국의 한 농촌 가정. ⓒphoto 바이두
석탄으로 난방을 하는 중국의 한 농촌 가정. ⓒphoto 바이두

겨울철 중앙난방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의 농촌에서 쓰는 소형 개별난방이다. 소형 개별난방은 말 그대로 집 한가운데 석탄난로를 두고 여기에 생(生)석탄을 집어넣고 이를 태워 방안 온도를 높이는 난방법이다. 아궁이에 땔감을 넣는 대신 생석탄을 통째로 집어넣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시가스(천연가스)를 공급받을 방법이 없는 중국의 광범위한 농촌 지역에서는 이 같은 소형 개별난방을 여전히 선호한다.

이로 인해 겨울이면 도로에 석탄을 적재한 화물차들이 시커먼 분진을 뿌리고 다니고, 집 마당 한편에는 시커먼 석탄이 산처럼 쌓여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기자가 2012년 겨울, 산시성 푸핑에 있는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일가친척들이 모여사는 ‘시자좡(習家莊)’을 찾았을 때도 역시 같은 소형 개별난방을 이용하고 있었다. 마당 한편에 쌓아둔 시커먼 생석탄을 손도끼로 쪼갠 뒤 난로에 집어넣어 추위도 녹이고 찻물도 끓여서 마시는 식이다.

현재 중국의 미세먼지 대책은 북방의 중앙난방 원료를 석탄에서 천연가스(LNG) 등으로 바꾸는 것과 동시에 농촌의 소형 개별난방을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석탄을 원료로 쓰는 대형 열발전소의 경우 어느 정도 정제된 석탄을 쓰고,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가스를 어느 정도 걸러주는 장치를 갖추고 있다. 반면 개별 가구에 설치된 소형 석탄난로에서 쓰는 생석탄은 대개 태울 때 매연이 많이 나오는 조잡한 품질이 대부분이다. 매연을 거르는 장치도 없다.

베이징과 같이 인구가 밀집된 곳은 천연가스나 전기난방을 공급하기도 쉽지만, 도시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농촌의 경우 도시가스나 전기를 공급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든다. 때문에 단가가 싼 석탄을 이용한 난방법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중국에는 전 세계 석탄의 33.8%가 매장돼 있고, 석탄생산량은 수년째 세계 1위다. 그만큼 석탄을 구하기도, 쓰기도 쉽다.

중앙난방과 함께 소형 개별난방을 쓰는 데 따른 중국의 석탄소비량은 엄청나다. 미세먼지 문제가 한창 부각됐던 2012년 당시 베이징의 석탄소비량은 2300만t이었는데, 같은 기간 톈진의 석탄소비량은 7000만t, 허베이성은 2억7000만t에 달했다.

베이징의 경우 지난해 석탄소비량이 420만t으로 2012년에 비해 5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었다고 해도 다른 지역은 큰 변화가 없다. 톈진의 지난해 석탄소비량은 4200만t으로 여전히 베이징(420만t)의 10배에 달한다. 허베이성은 2012년 2억7000만t에서 2015년 2억9000만t으로 오히려 늘었는데 오는 2020년 2억6000만t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한국과 가까운 산둥성의 연간 석탄소비량은 3억8000만t으로 중국 전체의 10%에 달한다. 그나마 2015년 4억927만t에서 2000만t 가까이 줄어든 수치가 이 정도다. 산둥성 한 곳만 봐도 지난해 한국의 석탄소비량(8820만t)보다 4배 이상 많다. 하늘에 칸막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중국의 막대한 석탄 사용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한반도가 짊어지는 구조다.

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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