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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82호] 2019.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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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82년생 김지영’ 한·중·일 여성을 하나로 모으다

▲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한국판, 중국판, 일본판 표지.(왼쪽부터)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만큼 한국 사회에 영향을 끼친 작품이 많지 않다. 2016년 출간 이후 누적 판매 부수가 120만부를 넘긴 베스트셀러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2016년 5월 벌어진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을 계기로 힘을 얻은 한국의 페미니즘, 그에 반대하듯 벌어진 젠더 갈등 흐름을 가장 잘 대표하는 상징이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다.
   
   ‘김지영’의 영향력은 서점을 넘어 극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 10월 23일 개봉 2주 만에 관객 250만명을 돌파했다. 이와 함께 ‘김지영’을 중심으로 다시금 문화계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단지 한국만이 아니다. 일본과 중국, 동아시아에서 ‘김지영’은 하나의 상징이 됐다. 일본에서는 지난해 12월 번역 출간됐는데 출간과 동시에 증쇄가 결정될 정도로 호응을 얻었다. 일본에서 ‘82년생 김지영’을 번역 출간한 출판사 지쿠마쇼보(筑摩書房)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10만부가 넘게 팔리면서 그 사이 여러 차례 일본 서점의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한국 문학이 좀처럼 흥행하기 어려운 일본 서점계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일본에서도 이에 대한 분석 기사가 여럿 나왔다. 공영방송인 NHK에서는 ‘김지영과 여성들: 한국 소설에서의 질문’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도 방영했다. 더러는 ‘김지영’의 흥행을 K팝에서 시작한 한·일 간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해석해버리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이 책이 일본에서도 여성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중국에서는 지난 9월 번역 출간됐다. 한국의 출판사 민음사에 따르면 보통 중국에서 5000~8000부를 초판으로 찍어내는데,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은 초판 물량으로만 3만부가 예약됐다. 곧바로 증쇄가 결정됐고 중국의 온라인 서점 ‘당당왕(当当网)’에서는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랐다. ‘김지영’이 동아시아 3국 중에서는 여성 인권이 가장 높은 편이라고 알려진 중국에서도 일본이나 한국과 다름없는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중·일은 지리적인 이유로 자주 한데 묶여 이야기되곤 하지만 뚜렷하게 다른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성(性) 평등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장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미투(#MeToo)운동이 각국에서 전개됐던 과정만 보더라도 차이가 난다. 한국에서는 미투운동이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일어났다. 정치·경제·문화·체육·교육계에서 피해자 여성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폭로하면서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좀 다르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장면.

   무엇이 이들을 한 권의 책으로 이끌었나
   
   일본의 미투는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가 2017년 5월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시작되고 끝맺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토는 기자회견에서 2015년 당시 TBS 방송국 워싱턴지국장이었던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에 의해 입은 성폭력 피해를 고발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의 2017년 12월 29일 기사에 따르면 ‘다른 사회에서는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을 것이지만, 일본에서는 조그마한 관심을 얻을 뿐이었다’. 오히려 이토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야마구치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중국의 미투도 달랐다. 중국에서의 미투는 비정부기구(NGO)나 교육계 등 한정된 영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그마저도 피해자들은 실명을 공개하기를 꺼렸고 이들을 공개적으로 응원한 유명인은 없었다. 피해가 폭로되자마자 중국 정부가 개입해 신속하게 처벌하면서 사건이 마무리됐고, 곧이어 정부는 중국의 소셜미디어 등에서 미투와 관련된 검색어를 차단했다.
   
   이렇게 다른 동아시아 3국 여성들의 목소리가 ‘82년생 김지영’ 한 권에 집결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무엇이 이들을 한 권의 책으로 이끌었을까.
   
   보통 중국은 여성 인권이 높은 국가라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발 빠른 호응을, 중국어판 발간에 뒤이어 나온 영화에 대한 호기심, 그간 한류문화로 인해 높아진 한국 사회에 대한 흥미 정도로 축소해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중국 여성 인권의 실상은 좀 다르다. 1950년대 중반 마오쩌둥이 “여성이 하늘의 반을 받든다(妇女要顶半辺天)”고 말하며 여성에게 작업복을 입히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적극 장려했던 것은 인권적인 의미의 양성평등(Gender Equality)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노동력 확보를 위한 경제적 필요에 의해 강제적으로 진행된 것이었다. 봉건적인 성차별은 사라졌지만 남성 위주의 사회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수십 년간 지속되어온 ‘한 아이 정책’도 문제였다. 산아제한 정책은 사회주의적 여성 해방이라는 외형 아래 성차별 문제를 시한폭탄처럼 숨겨버렸다. 한 아이 정책에서 예외로 둘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경우는, 농촌 가구에 한해 첫아이가 딸일 때만 가능했다. 노골적인 남아 선호 분위기에 여성은 남자 아이를 낳기 위한 출산의 도구로만 취급되어왔다.
   
   여성 차별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다.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된 이후 중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오히려 열악해지고 있다. 인적 구조조정 단계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여성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국에서는 다시금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라(婦女回家)’는 사회적 담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여성은 바깥일에 지친 남성을 달래주고 자녀를 키우며 가정을 돌보는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학에서 유교적 가치를 함양해 ‘현명하고 완벽한 여성’을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목을 개설할 정도다.
   
   
   갈수록 낮아지는 중국 여성 지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중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해마다 하락하고 있다. 한때는 여성의 90%가 직업을 가지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세계은행에 따르면 1990년에만 해도 73.2%였던 중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낮아져 2018년에는 61.3%로 떨어졌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과 일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2010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임금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진다. 중국의 채용 전문 플랫폼 보스즈핀(BOSS直聘)이 발표한 ‘2019 중국 직장 성별차이 보고서’를 보면 남성의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여성의 임금은 평균 78.3에 그쳤다. 처음 직장에 입사했을 때만 하더라도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는 9.8 정도밖에 나지 않지만 15년 차 이상이 되면 40을 넘어선다. 근속연수가 긴 여성도 줄어들 뿐더러 여성의 승진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문화적으로도 문제가 커지고 있다. 이응철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비혼율이 높아지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결혼이 삶의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결혼하지 않은 고학력 여성들을 ‘셩뉘(剩女)’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남을 잉(剩)’ 자는 말 그대로 ‘남는다’는 뜻을 가진 한자다. 한때 한국에서 ‘골드 미스’를 예민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묘사한 것처럼 ‘셩뉘’를 말할 때에도 결혼이라는 인생의 대업을 무시한 채 이기적으로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는다.
   
   중국의 비혼율이 높아지고 청년의 결혼 문제가 사회문제가 되는 것은 다분히 사회적인 이유 때문이다. 극심한 남아 선호사상에 따른 성비 불균형이 두드러진 이유이고 급격한 경제성장의 결실을 맛보지 못하는 청년층의 빈곤 문제가 숨겨진 이유다. 그러나 ‘셩뉘’에는 그런 비혼의 문제를 여성 개인에게 돌려버리는 차별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여성은 응당 결혼해 남성을 ‘내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중국 사회에서 도리어 증가하고 있다. 중국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126분인 데 반해 남성은 45분에 그쳤고, 육아시간 역시 여성은 하루 평균 53분을 사용하는데 남성은 17분만 쓴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중국 여성들의 반응을 일종의 한류로만 단정지을 수 없다. 온라인 서점 ‘당당왕’과 ‘아마존차이나’에 올라온 독자들의 반응을 읽어보자.
   
   “책에는 같은 감정을 느끼는 부분, 같은 상황이 너무 많았다.”
   
   “중국의 양성평등은 한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다소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너무 많은 ‘김지영’이 있으며, 이런 불평등을 매일같이 겪고 있는 평범한 여성들이 많다.”
   
   
   정치와 싸우는 일본 페미니즘
   
일본은 동아시아 3국 중 어느 나라보다 먼저 양성평등 문제를 인식하고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났던 국가지만 지금에 와서는 상황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사회문제로 부각되어, 성희롱를 뜻하는 영어단어 ‘sexual harrassment’의 줄임말 ‘세쿠하라(セクハラ)’가 일반 명사처럼 자리 잡아왔다. 그러나 막상 성희롱 문제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후생노동성이 2016년 발표한 ‘성희롱에 관한 실태조사’를 보면 ‘성희롱을 당한 적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34.7%에 달했다. 외모에 대한 언급이나 불필요한 신체접촉, 성적인 이야기로 불쾌감을 느꼈다는 응답이 많았는데 문제는 그에 대한 대응이다. 성희롱을 당했지만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63.4%나 됐다. 그나마 대응을 한 사람도 회사 동료에게 상담했다는 응답이 14.4%로 많았고 공식적인 항의 채널을 이용했다는 응답은 일부에 불과했다.
   
   또 다른 문제는 위안부와 관련돼 있다. 흔히 ‘넷 우익’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극우집단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위안부 문제다. 넷 우익이 자주 모이는 사이트 ‘5ch(5ch.net)’에서 가장 자주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한국, 그리고 ‘페미’다. 이를 되짚어 말하면 위안부 문제를 떼어놓을 수 없는 일본의 페미니즘은 성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와 맞서 싸워야 한다.
   
   대표적인 여성 극우 인사로 꼽히는 일본의 정치인 스기타 미오(杉田水脈)의 발언 몇 가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줄곧 위안부가 거짓이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는데 지난 7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에도 출연해 “자칭 위안부라는 할머니들의 증언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2018년에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일본의 감춰진 수치’에서는 미투운동에 나선 이토 시오리를 두고 “이토의 거짓말로 야마구치가 피해자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일본의 월간지 ‘신쵸45(新潮45)’에 기고한 글을 통해 동성애자는 “생산성이 없다”며 그들을 위해 세금을 쓰지 말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말하자면 일본의 여성운동은 여성의 실제적인 삶과 지위를 향상하려고 애쓰기 이전에 정치적인 이념 논쟁을 뚫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 사이 일본의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여성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가 팽배해지기 시작했다. 일본의 TV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음담패설을 뜻하는 일본어 ‘시모네타(下ネタ)’가 일상적으로 나온다. 시모네타를 얼마나 잘하느냐를 두고 코미디언의 능력을 평가할 정도다. 자신의 유흥업소 경험담을 얘기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최근 일본에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JK 비즈니스’는 여자 고등학생을 뜻하는 단어(女子高生)에서 파생된 말이다. 미성년자 성매매가 이뤄지거나 유사 성행위를 하는 사업체가 도쿄에서만 한때 150곳이 훨씬 넘을 정도로 JK 비즈니스가 활성화돼 있다. 극단적 사례처럼 보이지만 갑자기 등장한 일은 아니다. 예전부터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강조해 표현하는 일은 매우 흔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문화적으로도 여성의 이미지가 왜곡돼 있지만 사회적 활동도 제한적이다. 지난해 도쿄대 의대에서 불거진 입시비리 사건이 대표적이다. 도쿄대 의대는 2011년부터 여성 지원자에게 감점을 주고 가산점을 없애는 등의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으로 여성 합격률을 제한해왔다. 이유는 “결혼과 출산 등으로 장기간 근무가 어렵기 때문에 여학생의 점수를 깎았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22일 즉위선포식을 가진 나루히토 일왕의 유일한 후계자 아이코 공주의 승계 문제는 이미 오래된 논란이다. 일왕의 지위를 여성이 이어받지 못하게 돼 있는 황실전범(皇室典範) 제1장 제1조 ‘황위는 황통에 속하는 남계(男系)의 남자가 계승한다’의 개정을 두고 여전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일본 사회다.
   
   일본의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 맞벌이 부부 중 남성이 가사노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76.7%에 달한다. ‘고용균등 기본조사’에 따르면 1년간 배우자가 출산한 경우 육아휴직을 쓴 남성은 6.16%에 불과했다. 내각부의 2018년 조사 결과를 보면 남성의 임금을 100으로 뒀을 때 여성의 임금은 73.3에 그쳤다. 도쿄상공리서치가 상장기업 349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기업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은 4.2%에 불과했다. 문화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일본의 페미니즘 문제는 꼬인 매듭을 풀기가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일본 독자들은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한국의 상황이 더 낫다고 여기기도 한다. 일본 온라인 서점 ‘아마존재팬’의 한 독자는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한국이 부럽다”고 감상을 남겼다. 전반적으로 중국 독자들보다 더 깊이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 책과 같은 위치나 영향력을 가진 소설은 일본에도 꼭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여성으로 태어나 가부장제를 살아온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을 읽고 공감하지 못하는 여성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82년생 김지영’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한·중·일 여성들에게 ‘바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동일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공교롭게도 OECD가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8(The Global Gender Gap Report 2018)’을 보면 한·중·일의 성차별 문제의 깊이는 비슷해 보인다. 성 격차가 적은 나라일수록 높은 순위를 받는 이 보고서에서 조사 대상이 된 전 세계 149개국 중 중국의 성 격차 지수는 103위, 일본은 110위, 한국은 115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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