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리풀공원 산책길에 오르는 사람들. ⓒphoto 양승식 조선일보 기자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서리풀공원 산책길에 오르는 사람들. ⓒphoto 양승식 조선일보 기자

이른바 ‘도시공원 일몰제’의 시행으로 서울 여의도공원 면적(22만㎡)의 1600배에 달하는 전국 도시공원 부지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정부, 지자체가 도시관리 계획상 공원용지로 지정했다가 20년 넘도록 공원을 조성하지 않거나, 매입 보상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지를 용도에서 해지하는 제도다. 1999년 헌법재판소가 ‘개인 소유 땅을 개발이 불가하도록 묶어놓고 장기간 집행하지 않으면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놓으면서 시행됐다. 공원용지로서 효력을 잃은 부지는 여타 용도로 개발이 가능해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공원용지로 지정된 부지 면적은 926.6㎢. 이 중 2020년 7월 1일 도시공원 일몰제 시행으로 공원용지에서 해제되는 부지는 363.6㎢에 달한다. 공원부지 개소 수로 따지면 총 1766개가 사라지는 셈이다. 일몰 대상 부지 중엔 이미 시민들이 공원으로 이용하는 곳도 적지 않다. 지자체가 공원조성 실시계획 인가를 받아 공원을 조성했지만, 일부 토지 실소유자에 대한 매입 보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아서다. 서울시에선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뒤에 자리한 서리풀공원이 대표적인 실효 대상 공원이다. 인천 문학도시자연공원, 광주 중외공원, 부산 동백공원 등도 같은 처지에 놓였다.

공원 관리·운영을 책임지는 지자체 입장에선 시민들이 애용하는 공원이 사라지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순 없는 상황이다. 부족한 녹지 비중, 난개발 우려, 정부의 ‘지속가능한 국토환경 조성 정책’ 기조 등을 감안하면 지자체들의 움직임은 더 바빠질 수밖에 없다. 공원부지 실효를 막기 위해서는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해당 부지를 매입해 공원용지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그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이 문제다. 각 지자체들이 일몰 대상 부지를 자체적으로 집계,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서울·인천·경기 수도권 총 토지 매입비에만 33조원이 든다. 서울시 16조5600억원, 경기도 14조원, 인천 2조5000억여원 등이다.

여타 지자체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보니 불만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도가 2020년 예산으로 27조원을 편성했는데, 일몰 대상 총 토지 매입비는 이의 절반 수준에 달한다. 비용이 커 순차적으로 집행할 계획이지만 해당 부지를 모두 관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라고 말했다. 경남도청 관계자는 “시군 단체장 협의를 거쳐 정부에 재정 지원 등을 요구했지만 실질적으로 이뤄진 건 없다. 지방 사무라는 이유로 그 부담을 모두 지자체에 전가한다. 하지만 지자체 예산은 중앙정부와 비교해 굉장히 적어 이에 대응하기란 어렵다”고 푸념했다.

일몰제 해결 위해 2조7000억 지방채 발행

전국 지자체들은 일단 지방채 발행을 통해 일몰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분위기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와 내년 지자체가 일몰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행을 계획하고 있는 총 지방채 규모는 2조7000억여원이다. 올해 1조2653억원, 내년에 1조4380억원을 발행한다는 것이다. 가장 큰 규모로 지방채를 발행하는 곳은 서울시다. 서울시는 올해 8600억원, 내년 4300억원으로 총 1조2900억원 규모의 지방채를 발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지방채 발행을 통한 토지 보상비 마련 외에도, 일몰 대상 부지를 도시자원공원구역 등으로 다시 묶어 모든 부지를 공원으로 유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서리풀공원 또한 일관된 기조로 함께 운영, 관리해 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서울시를 제외한 여타 지자체들은 비용 부담 등으로 이미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거나 개발 압력이 높은 부지만 우선적으로 매입해 공원을 조성·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전국 일몰 대상 부지 363.6㎢ 중 공원 조성을 목표하는 부지는 217㎢에 그친다. 나머지 146.6㎢는 그대로 방치되는 셈인데, 서울시 면적 4분의 1에 달하는 면적이다.

일부 지자체는 이 과정에서 민간 사업자의 자금도 끌어들이고 있다. 경북도청 관계자는 “실효될 부지의 70%는 공원으로 조성하고 나머지 30%는 주거·상업시설을 짓도록 하는 조건으로 민간 사업자에게 개발을 맡기기로 했다. 모든 부지가 해지되는 것보단 낫다는 판단에서다. 개발 압력이 높은 안동, 구미, 경산이 현재 이런 방식으로 대응 중”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회 내 관심도 적지 않다.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등은 최근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해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들 개정안은 국가가 도시공원 설치 관리에 드는 비용의 100분의 50을 보조해 지자체 재정 부담을 덜어주거나, 사적 이용권이나 재산권의 침해 가능성이 적은 국공유지의 경우 실효를 10년 이상 유예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자유한국당 소속 박순자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은 “일몰제 대응 필요성은 다들 인지하고 있으나 아직 법안 심사 소위원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며 “여야 분위기가 냉랭하다 보니 이번 국회에서 통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총선이 치러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7월 일몰제 시행 후 공원 조성·유지를 위한 제도적 방안은 한동안 마련되기 힘들 것이란 평가다.

서리풀공원 전경. 도심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유일한 녹지다. ⓒphoto 서울시청
서리풀공원 전경. 도심 건물들 사이에 자리한 유일한 녹지다. ⓒphoto 서울시청

중앙정부가 지원해야 하나

국토부는 공원 조성의 필요성, 지자체 부담 등엔 공감하나 이와 관련한 지원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원 조성은 지자체 사무이며, 지금 지원에 나서면 공원 조성에 노력한 일부 지자체를 역차별하는 꼴이 된다. 향후 공원 조성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등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30년이 넘도록 공원부지를 그대로 놔둔 지자체가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는 지자체들의 지방채 이자를 지원하는 등의 간접 재정 지원에만 나서는 중이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 등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있다고 본다. 신재은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사실 지금의 도시공원 부지 상당 부분은 1970~1980년대 중앙정부가 지정,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와 함께 재정 지원 없이 그대로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한 것이다. 정부는 도시공원 일몰 책임을 회피하는 셈이다. 이를 함께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난 8월, 9월 평가지표를 만들어 공원일몰제 대응 우수 지자체를 선정·공고했는데, 이를 두고 ‘방관만 한다’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도시공원이 미세먼지 감소나 침수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중앙정부 개입의 당위성을 높여주는 근거가 된다. 산림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도시공원이 전국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를 각각 41%, 26% 줄여주고 도시 기온을 4.5도 낮춰주는 한편 침수피해 예방 효과 등도 가져왔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균형 잡힌 대안 강구가 필요하다고 평가한다. 서원석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당초 일몰제는 사유재산권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로 실시됐다. 공익을 고려한다면 공원을 유지해 이 부지를 다수가 누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개발 이익을 한 명이 아닌 다수가 나눠 가질 수 있게끔 말이다. 정부는 지자체 지원 등으로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지 해제로 공원이 아닌 주거·상업시설 등이 유치되면 인구과밀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도시 기능은 떨어지는데, 여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 1인당 공원면적 런던의 3분의 1도 안 돼

2010년 기준 국내 1인당 공원면적은 8.09㎡를 기록했는데, 세계보건기구(WHO)가 쾌적한 환경, 시민 건강을 위해 1인당 최소 공원면적으로 제시한 9.00㎡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서울과 해외 주요 도시의 공원면적 차이도 상당하다. 서울의 1인당 공원면적은 8.48㎡에 불과하지만, 프랑스 파리는 11.6㎡, 미국 뉴욕은 18.6㎡, 영국 런던은 26.9㎡, 독일 베를린은 27.9㎡에 이른다. 지리적 요인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국내 공원 유치와 조성 노력은 선진국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 학계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해 정부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지 않으면, 시민들의 쉼터인 도시공원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도시계획전문가 찰스 몽고메리(Charles Montgomery)는 공원과 관련한 각종 사례 연구를 통해 도심 속 공원이 인간의 질병 완화, 정서적 안정 등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평가했다. 그는 저서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여러 연구를 종합하면, 도시의 녹지를 선택적 사치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매일 녹지를 보거나 만질 수 없다면 시민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 거리가 중요하다. 모든 시민이 생활 속에서 녹지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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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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