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허인회
일러스트 허인회

88만원세대, N포세대, 흙수저. 청년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를 추려보면 몇 가지 단어들이 도출된다. 포기, 절망, 불행. 청년 세대의 삶은 마냥 암울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행정연구원의 ‘사회 통합 실태조사’는 조금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와 30대의 행복감을 10점 만점 점수로 따지면 각각 6.6점과 6.7점으로, 전체 평균 6.5점보다 높게 나타났다. 삶에 대한 만족도도 다른 세대보다 높았다. 삶에 만족한다는 20~30대는 각각 61.9%와 65.7%로 평균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보였다.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는 조사는 매우 많다. 안전보건공단의 ‘제5차 근로환경조사’를 보면 20대와 30대의 심리 상태는 다른 어떤 세대보다 안정적이었다. 응답자들에게 ‘지난 2주간의 감정 상태’를 물어봤더니 20대와 30대에서는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 ‘차분하고 편안했다’는 응답자가 다른 세대에 비해서 많았다. 이 조사에서는 정신 건강에 대한 위험도도 점검했다. 그 결과 정신 건강이 위험한 수준의 청년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적었다. 20대의 31.3%만이 위험한 수준의 정신 건강을 보인 반면, 50대는 43.1%가 위험한 수준이었다.

다른 세대보다 청년 세대가 행복하다는 조사 결과들은 다소 의외로 여겨질 법하다. 보통 청년 세대를 묘사할 때는 ‘힘겨운 삶’ ‘경쟁에서 살아남기’ 같은 표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진학했지만 생존하는 것조차 어렵고, 다시 취업난에 시달리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청년 세대를 떠올리면 으레 그려지는 모습이다.

경기도의 한 공공기관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29살 이진형씨와 그 친구들의 삶은 조금 다르다. 이진형씨는 경기도 수원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인근 4년제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2년간의 구직 활동 끝에 올해 초 취업에 성공했다. 그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 3명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취업에 성공해 사회인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자소서 쓰고 면접 보던 취준생 시절이 힘들기는 했는데 마냥 우울한 것만은 아니었어요. 친구들끼리 어울려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평범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취업 준비를 하면서도 ‘꼭 이곳에 가야겠다’는 목표를 가진 적은 없었다고 한다.

“어디든 나를 받아주기만 하면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걸로 만족하려고 했지요. 뭔가 대단한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독립하고, 제 생활을 꾸려나가고, 그렇게 소소하게 사는 것이 목표지요.”

그의 친구들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진형씨의 친구 장인균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사회인이 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10년 동안 돈 벌고 쓰고, 놀다가 다시 일하기를 반복했네요. 재작년에 차를 샀으니 이제 집을 사고 싶어요. 작고 낡은 집이라도 제 이름으로 된 집을 사는 게 목표예요. 결혼은 아마, 못 하겠지요?”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진형씨와 장인균씨의 삶은 ‘적당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최종렬 교수가 저서와 논문 ‘복학왕의 사회학’에서 설명하는 적당주의에서 적당함이란 ‘대충 한다’는 뜻이 아니다. ‘몰입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설명한다. 권력과 자본,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공’을 향해서 경쟁을 뚫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몰입주의는 서울, 그것도 명문대 출신 청년들에게서 많이 보이는 삶의 태도다. 대신 지역에 남은 지방대생에게서는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돈독히 하고 소소한 개인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적당주의가 자주 보인다.

단념이 아닌 수용, 삶의 목표를 바꾼다

이 적당주의는 ‘포기’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청년 세대를 N포세대라고 통틀어 부르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세 가지(연애·결혼·출산)를 포기한 삼포세대나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취업·내집마련)를 언급할 때 보통 청년들이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전제를 깐다. 그러나 아무리 N포세대 청년이라고 하더라도 세 가지, 다섯 가지 모두 포기해버리는 청년은 없다. 대부분은 전략적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대신 다른 것을 포기하는 태도를 취한다. 연애는 하더라도 결혼은 하지 않는 청년, 결혼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신혼부부, 취업을 했지만 내 집 마련은 포기한 채로 적당히 소비하며 사는 청년 같은 모습이다.

그러니까 청년들의 ‘포기’란 단념(斷念)이 아니라 수용(受容)에 가까운 말이다. 이순미 한림대 사회학과 연구교수의 연구를 해석해보면 잘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이순미 교수는 논문 ‘지방 중소도시 청년들의 다차원적 빈곤과 행복의 역설’을 쓰면서 청년 빈곤율이 비교적 높은 한 지방도시 청년들의 행복도를 조사해봤다. 조사대상이 된 청년 중 빈곤하면서 불행한 청년은 전체의 26.1%였는데 빈곤하지만 행복하게 사는 청년의 비율이 40.9%로 훨씬 높았다. 이 청년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사회적인 것이나 지역에 대한 관심을 덜 가지는 대신 가족과 친구 같은 주변 인물에 대한 애착이 높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는 이런 청년들의 태도가 “주어진 상황을 체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빈곤한 상황이 사실은 사회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바꾸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주변 삶에 애착을 가짐으로써 삶을 인정하고 만족도를 높이려는 일종의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사회·경제적으로 힘들다고 하는 청년들이 사실은 왜 더 행복하다고 느끼는가에 대한 답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청년들은 다른 세대가 염려하는 것처럼 절망하면서 무엇인가를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용하면서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려고 한다. 기성세대가 했던 방식대로는 아니다.

제5차 근로환경조사를 보면 청년들은 다른 세대에 비해 자신의 근로 환경에 꽤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20대는 80.4%, 30대는 81.6%가 “근로 환경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전체 평균 76.9%가 “그렇다”고 답한 것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중요하다거나 일에 몰두하는 것은 아니다. 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 20대와 30대는 51.5%, 48.1%로 과반을 넘나드는 수였다.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는 업무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응답도 다른 세대에 비해 훨씬 높아 다섯 중 셋 이상이 “그렇다”고 답했다.

청년들은 일과 근로에서 삶의 목적을 찾지 않는다.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를 보면 삶의 성공을 무엇으로 평가하느냐는 질문이 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삶의 주관적 만족감’을 꼽은 청년이 42.1%로 가장 많았다. 꿈이나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이 성공의 조건이라는 응답은 12.3%에 불과했고 사회적 지위나 권력, 주위의 평판이나 명성 같은 외부적 요인을 성공의 기준으로 꼽은 청년은 적었다. 이순미 교수도 이 점을 지적한다. 빈곤하지만 행복한 청년들은 “더 나은 미래라는 목표를 버리는 대신 지금 현재의 사생활과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한다.

‘소확행’과 ‘욜로’의 최고 목표는 해외여행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정해진 계층을 벗어날 수 없다고 믿는 사람이 더 많다. 청년들도 예외가 아니라서 때로는 더 강하게 ‘노력해도 계층은 상승될 수 없다’고 믿는 편이다. 이순미 교수에 따르면 청년 빈곤은 아동 빈곤과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아동 빈곤은 부모의 경제력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데 청년이 빈곤해지느냐의 여부도 그렇게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사다리’가 무너졌다고도 하고 계급사회가 되었다고도 하는 한국 사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안다.

그래서 청년들은 일과 노력의 가치를 점차 줄여나간다.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서 일(34.5%)보다 여가(40.6%)를 중시하고, 이상(14.0%)보다 현실(68.0%)을 중시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이유다. 어릴 적에야 꿈과 희망, 성공하는 삶에 대해 교육받았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깨우쳐갈수록 청년들은 삶의 목표를 수정한다. 노력하고 경쟁하는 대신 수용하고 안정감을 찾으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나’다. 최종렬 교수는 빈곤하지만 행복한, 적당주의를 실천하는 청년들이 도리어 ‘사치스러운 삶’을 산다고 설명했다. 단 여기에서 말하는 사치란 과시적인 것이 아니다. 남들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감각·경험 같은 것을 충분히 즐기는 일이다. 최 교수의 설명이다.

“어차피 타자들 사이에서 인정을 추구해봐야 인정받기가 힘들다. 그럴 바에야 나만의 감각적·쾌락적 경험을 추구하겠다는 태도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추구하느냐다. 최종렬 교수 역시 청년들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으면 답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떤 청년들은 소비를 통해 답을 찾으려고 한다.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는 뜻의 ‘소확행’,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뜻의 영어 문장 ‘You Only Live Once’를 줄인 말 ‘욜로(YOLO)’ 같은 신조어가 동시다발적으로 유행한 이유다. 소확행과 욜로 같은 삶의 태도를 추구하는 청년들이 특히 몰두하는 소비 분야가 있다. 여행이다.

통계청의 사회조사를 보면 20~30대 청년들의 해외여행 경험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무엇보다 관광 목적의 해외여행이 늘었다. 2009년에만 하더라도 1년간 해외를 다녀온 20~30대는 15% 안팎에 불과했다. 40~50대에 비해 적거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관광으로 다녀왔다는 사람의 비중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그런데 2017년에는 변했다. 1년간 해외를 다녀온 20~30대가 33%가 넘었는데, 다른 연령대에 비해 눈에 띄게 많은 수치다. 특히 대다수가 관광을 목적으로 다녀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여행이 20~30대에게는 일상적인 여가활동이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외국의 욜로는 삶에 대한 태도와 문화적 접근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한국에서는 소비와 여행으로 설명된다”고 비판하는 전문가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들어가보면 여행은 단지 일시적인 소비활동이 아니다. ‘일’ 대신 삶의 만족감을 높이려는 청년들의 노력의 일환이다. 2019년에만 이탈리아, 조지아, 중앙아시아 몽골에 다녀온 31살 대학원생 박남주씨의 ‘해명’을 들어보자.

“여행을 가려면 돈을 모아야 해요. 저는 돈을 모으고 일정을 준비하는 것도 다 여행에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여행을 한두 번씩 다녀온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여행 스타일이 있거든요. 유적지나 관광명소를 최대한 많이 본다거나 맛있는 걸 많이 먹는다거나 무조건 쉰다거나. 그런 걸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 전체가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종 청년들의 여행 경험은 일시적인 것이고 ‘탕진잼(돈을 탕진하며 느끼는 재미)’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만 평가절하될 때가 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여행이 갖는 의미를 따져보면 다른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옳아 보인다. ‘우아한 가난’이다.

끊임없는 탐색과 경험, 다양한 학습 몰두

얼마 전 출간된 책 ‘라이프 트렌드 2020’에서는 밀레니얼세대를 설명하는 다음 키워드로 ‘우아한 가난’을 제시했다. 빈곤한 상황에서도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우아한 가난은 빈곤하지만 행복한 청년들의 삶을 설명하는 데 매우 적합하다.

우아한 가난의 태도란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행복하게 살자는 것이다. 노력, 일, 성공 같은 단어에서 벗어나 나, 즐거움, 만족 같은 가치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우아한 가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탐색’과 ‘경험’이다. 어떻게 하면 가난한데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청년들은 끊임없이 묻고 찾는다. 그 과정을 외형적으로만 본다면 소비하고 흘려보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청년들은 우아한 가난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탐색하고 체험한다.

최근 들어서 유독 청년들이 ‘학습’에 몰두하는 것도 우아한 가난과 관련이 있다. 요리, 공예, 글쓰기 등 취미활동 분야를 단기간에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 같은 형태의 학습이 늘어나고 있다. 아예 일대일로 전문가와 수강생을 연결해주는 ‘숨고’나, 온라인 과외를 콘셉트로 단기 강의를 제공하는 ‘클래스101’ 같은 플랫폼이 대표적이다. 이 플랫폼을 한번 경험한 청년들은 하나의 분야에 머무르지 않는다. ‘숨고’에서 수영 강사를 연결받아 일대일 수영 강습을 받았다가 ‘클래스101’에서 요리 수업을 들으며 직접 상차림을 꾸민다. 글씨를 조형적으로 쓰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다가 사진을 멋지게 찍는 방법을 배우고, 와인 동호회에 참석했다가 라틴댄스를 배우러 가는 청년들도 있다. 이들은 사실 계속 탐색 중이다. 꼭 이런 방식이 아닐 수도 있다. 게임을 하거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활동들이 때로 청년들에게 ‘일’보다 중요하게 보이는 이유가 있다.

기존에는 이 활동들을 여가(餘暇)활동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 활동들은 ‘일’을 하고 남는 것(餘)이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면 삶의 목적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청년들은 우아한 가난을 실현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대신 일은 부차적인 것으로 둔다.

왜 청년들은 빈곤한데도 행복하게 살까. 청년들의 삶을 단지 절망으로만 읽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이 우아한 가난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키워드

#포커스
김효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