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2차 회의. ⓒphoto 뉴시스
지난 10월 23일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열린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2차 회의. ⓒphoto 뉴시스

“그 돈(방위비 분담금)은 다시 한국 경제와 한국인에게 돌아가지 나에게 오지 않습니다.”

지난 11월 12일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은 평택 험프리스 주한미군 기지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측이 방위비 분담금을 올려야 한다고 압박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주한미군에 고용된 한국인 직원 9200명의 급여 중 약 75%가 방위비 분담금에서 나온다며 “한국 납세자의 돈으로 한국인의 급여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 항목 중 군수지원 비용에 대해서는 “주한미군의 군수 또는 새로운 시설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한국인에게 지급하는 돈”이라고도 했다. 그는 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최근 ‘한국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낼 능력이 있고 더 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도 동의한다”고 밝혔다.

50억달러면 올해의 5배

미국 측이 최근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내년도 방위비 분담금으로 올해 분담금(1조389억원)의 약 5배에 달하는 47억~50억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에이브럼스 사령관의 발언에는 미국 측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본심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측은 방위비 분담금이 고스란히 미국에 갖다 바치는 돈이 아니라 대부분은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니 많이 올려줘도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에이브럼스 사령관 외에도 여러 미국 측 인사들이 우리 측과의 협상에서 같은 주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이 최근 협상에서 제시한 분담금 액수가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고 있지만 대략 47억달러 이상 50억달러 미만 수준인 것으로 추정된다. 50억달러일 경우 약 5조7900억원으로 올해 분담금의 5배가 넘는 규모다. 인상 요구액이 상식을 벗어나는 엄청난 규모여서 그 인상 내역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괌 등에 배치된 미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 출동·유지비용은 물론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전력 유지비용, 호르무즈해협 등 중동, 아·태 지역에서의 미 작전비용까지 포함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제임스 드하트 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수석대표를 만났던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방위비를) 주한미군 주둔비용 외에 한반도 주변의 전력자산이나 기타 전력, 미사일, 정찰력 등 모든 것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이 말한 ‘한반도 주변의 전력자산’은 미군이 괌이나 오키나와 등 미군기지에 배치한 전력을 말한다. F-22 스텔스전투기와 RC-135 전략정찰기 등 미 공군 전력, 미 해병대 원정부대 등이 해당될 수 있다. 이들은 한반도 유사시 증원전력으로 한반도에 배치되는 전력들이다. B-52 등 전략폭격기, 핵추진 잠수함, 항공모함 등 이른바 전략자산도 미 증원전력의 핵심 요소다. 윤 위원장이 거론한 정찰력은 미국이 북한을 감시하는 정찰위성과 주한미군 기지에 배치돼 있는 U-2 정찰기 등 대북 감시전력,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미사일 방어전력 비용까지 포함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당국자 및 소식통들은 미국 측의 요구사항에 대해 부풀려 알려진 점이 많다면서도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미국 측의 계산법, 접근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미국이 종전에는 주한미군의 주둔과 직접 관련된 돈만 청구해온 반면 이제는 ‘주한미군 주둔+한국 방어(방위)와 직접 연관되는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방어와 직접 연관되는 비용’을 확대해석할 경우 한반도 위기 시 수시로 출동하는 미 항모전단과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 전개비용도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미국 측이 전략자산 전개비용이나 유사시 원전력 비용, 호르무즈해협 작전비용 등은 요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른 소식통들도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러면 전략자산 전개비용 등도 빠졌는데 어떻게 50억달러에 육박하는 액수가 나왔을까?

소식통들은 우선 주한미군 순환배치 부대 비용이 추가됐다고 전한다. 주한 미 지상군의 유일한 보병부대는 2사단 예하 1개 여단이다. 이 1개 여단이 종전엔 붙박이 부대였지만 여러 해 전부터 9개월마다 미 본토 부대가 교대로 배치되는 순환배치 형태로 바뀌었다. 전차 등 장비는 그대로 두고 병력만 왔다갔다 하는 형태다. 올해엔 신형 전차 등으로 장비가 업그레이드됐다. 이 부대의 훈련·이동 비용 등이 방위비 분담금에 포함됐다는 것이다. 미군은 주한 미 공군기지에 F-16 등 전투기 대대를 종종 순환배치하기도 한다. 매일 1차례 이상 떠 북한을 정찰하는 오산기지의 U-2 정찰기 등 정찰 비용, 경북 성주기지에 배치된 사드 포대와 주한미군 기지의 패트리엇 포대 비용 등도 적지 않은 액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실비 정산’ 방식 제안

미국의 새로운 계산법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것은 전체 방위비 분담금 액수와는 별개로 한반도 안보를 위해 제공하는 일부 자원의 금전적 대가를 건별로 한국에 청구해 받는 ‘실비 정산(reimburse expenses)’ 방식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점이다. 그동안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에 근거해 받아온 인건비·군사건설비·군수지원비 약 10억달러 외에 한반도 안보와 직결되는 군사 활동·유지비 등을 ‘플러스 알파(α)’로 한국에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측은 최근 협상에서 ‘치른 대가를 돌려받는다’는 뜻인 ‘리임버스(reimburse·보상)’ 개념을 한국 측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한국 방어를 위해 동맹으로서 많이 기여하고 있으니, 그중 일부를 한국이 금전으로 보상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 측은 순환배치 비용뿐 아니라 일부 한·미 연합훈련 비용,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군무원과 가족 지원 비용도 일부 분담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은 정말 내년에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달러에 가까운 돈을 다 받아내려는 것일까? 소식통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최근 미 합참의장이나 주한미군사령관 등 군 고위층까지 나서 방위비 분담금을 압박하고 있지만 이는 방위비 분담금에 초강경 입장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의식해 이뤄지는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한 소식통은 “미 협상팀도 한국 측이 내년에 그렇게 많은 돈을 한꺼번에 올려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최근 제시된 수치가 최종적인 게 아니라는 얘기를 비공식적으로 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미국 측에 현재와 같은 액수와 접근방식은 한국 국민과 국회를 설득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하면서 당당하게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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