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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84호] 2019.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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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나는 체인지메이커다]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60억 쏜 아쇼카 한국의 이혜영 대표

▲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아쇼카한국 이혜영 대표.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1월 19일 카카오발(發) 뉴스가 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2021년까지 비영리단체 ‘아쇼카한국’에 주식 2만주를 기부한다는 내용이었다. 카카오 주식 2만주는 이날 종가(15만6500원)를 기준으로 하면 30억원이 넘는 규모이다. 김범수 의장은 2016년에도 ‘아쇼카한국’에 본인 소유의 카카오 지분 3만주를 기부했다. 당시 주가로 30여억원이었다. 총 60억원이 넘는 통 큰 기부를 이끌어낸 사람은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이다.
   
   김범수 의장과 이혜영 대표를 묶은 키워드는 ‘교육 혁신’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하고, 이를 위한 교육 플랫폼 ‘미래를 여는 시간’을 만들었다. 이혜영 대표가 판을 벌이고, 김범수 의장이 ‘판돈’을 댄 것이다. 그 덕분에 ‘미래를 여는 시간’은 지난 3년 동안 새로운 교육 생태계를 만들었다. 교육혁신가들을 불러모으고, 미래 교육을 위한 솔루션을 고민하고, 혁신가들끼리 협업이 일어나면서 그 생태계는 계속 확장 중이다.
   
   
▲ 아기가 교사인 ‘공감의 뿌리’ 교육. 교육혁신 플랫폼인 ‘미래를 여는 시간’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시범운영된 데 이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미래를 여는 시간’ 교실을 바꾼다
   
   ‘미래를 여는 시간’이 바꾸고 있는 교실의 한 풍경이다. 서울교대부속초등학교 1학년은 올해 초 특별한 교사를 모셨다. 교사는 다름 아닌 돌도 안 된 아기였다. 수업은 초록색 매트에 ‘세상에서 가장 어린 선생님’을 모시고 학생들이 빙 둘러앉아 진행된다. 아기 교사를 지켜본 학생들에게 질문이 던져진다.
   
   “아기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학생들은 한 학년 동안 매주 아기의 성장을 지켜보고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면서 공감능력을 키웠다. 아기와 같은 약자에 대한 배려도 배웠다. 아기를 선생님으로 모시는 특별한 수업은 캐나다의 메리 고든이 만든 ‘공감의 뿌리(Roots of Empathy)’라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한 명 한 명의 아기가 세상을 바꾼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교육의 패러다임을 뒤집은 ‘공감의 뿌리’는 아이들의 공격 성향이나 학교폭력을 90%나 줄여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캐나다와 노르웨이 등 세계 14개국의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활용되고 있다.
   
   ‘미래를 여는 시간’은 ‘공감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을 올해 초 6개 초등학교와 유치원 1곳에서 시범 운영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이다. 이를 위해 ‘공감의 뿌리’ 국제본부에서 멘토를 초청해 강사를 양성하기도 했다. ‘미래를 여는 시간’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여러 기관과 혁신가들이 함께해 확대 도입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미래를 여는 시간’은 11월 28일 교육혁신 포럼에 메리 고든을 초청해 ‘사람을 살리는 교육’을 주제로 공감 교육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미래를 여는 시간’은 이런 포럼을 그동안 8차례 진행하고 다양한 어젠다를 제시했다. 3년 성과는 다큐로 제작됐다. 미니 다큐 10편으로 구성된 ‘TEN-미래 교육의 10가지 단서’라는 제목의 다큐는 10가지의 교육 사례를 통해 다양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다큐 ‘TEN’은 전국 시도 교육청 등에서 상영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김범수 의장의 추가 펀딩이 막 확정된 후 이혜영 아쇼카한국 대표를 만났다. 이 대표는 큰 숙제를 푼 표정이었다. 이제 ‘미래를 여는 시간’은 2단계로 나갈 수 있게 됐다.
   
   아쇼카는 사회적 난제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들을 찾아 지원하는 글로벌 비영리 조직이다. 사회적 기업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빌 드레이튼이 1981년 설립한 아쇼카는 전 세계에서 3600여명의 체인지메이커들을 발굴했다. 이들을 아쇼카 펠로라고 부른다. 아쇼카 펠로 중에서 노벨평화상도 여러 명 나왔다. 펠로로 선정되면 3년 동안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조건 없이 생활비가 지원된다.
   
   
▲ 아쇼카한국 1호 펠로인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2017년 ‘몽골 올레’를 개장한 것을 기념해 펠로들과 아쇼카한국 직원들이 함께 몽골을 찾았다.

   사람에 투자한다
   
   아쇼카한국은 2013년 설립됐다. 이혜영 대표는 이때부터 시작해 7년 만에 아쇼카한국을 전 세계 40여개 지부(92개국 담당) 중 ‘톱4’의 규모로 키우고 13명의 펠로를 탄생시켰다. 올해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김종기 푸른나무재단(청예단) 이사장을 비롯해 제주 올레길을 만든 서명숙 이사장, 국민 마음 치유사 정혜신 박사, 인류 문맹 퇴치 해결사로 나선 이수인 에누마 대표 등이다.
   
   아쇼카의 활동은 펠로 선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쇼카 펠로들은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엔진들이다. 엔진을 찾아내고, 엔진들을 연결해 협업을 이뤄내고, 협업 모델을 사회로 확산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13명의 한국 펠로 중에는 특히 교육혁신가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협업 모델이 바로 ‘미래를 여는 시간’입니다. ‘미래를 여는 시간’은 말하자면 아쇼카한국의 서브 브랜드인 셈입니다.” 그의 설명이다.
   
   사람에 투자하는 아쇼카의 펠로 검증은 아주 까다롭다. 추천받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국지부 인터뷰-본사 파견 베테랑 인터뷰-국내 혁신가 3명 인터뷰’를 차례로 거치고, 만장일치 찬성을 하면 글로벌 이사회에 서류를 보낸다. 최종적으로 이사회 승인까지 5단계를 통과해야 펠로가 된다. 추천까지 2~3년씩 활동을 지켜보기도 한다. 때문에 지부가 있는 곳에서만 펠로를 선정한다. 이렇게 매년 100~120명의 펠로가 탄생한다.
   
   아쇼카 한국지부 대표에 지원하고 이 대표도 혹독한 검증을 거쳤다. 이 대표는 “4개월 동안 7번의 심층 인터뷰를 통과했다”고 했다. 마지막 인터뷰는 설립자인 빌 드레이튼과 진행됐다. 당시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시작된 인터뷰가 끝나고 아쇼카 한국지부가 출범할 때 그는 만삭의 몸이었다. 출범식과 출산이 겹칠까봐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아쇼카를 만나기 오래전부터 아쇼카는 그의 삶에 잠깐씩 발을 걸쳤다. 인연의 뿌리는 홍콩에서 시작됐다. 은행원인 아버지를 따라 그는 홍콩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가 처음으로 경험한 바깥세상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학부를 마친 후 세계화 바람 타고 뜨기 시작한 국제대학원에 들어갔다. 졸업을 앞두고 홍콩의 추억 때문에 홍콩 아시아인권위원회에 인턴을 지원했다. 그곳에서 만난 인권운동가들을 보면서 NGO의 세계에 눈을 떴다. 졸업 후 NGO에 지원하게 된 동기였다.
   
   “대학원 동기들이 유엔이나 다국적 기업, 해외 로스쿨 등을 지원할 때 저는 북한 인권 운동을 하는 NGO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도쿄에서 열린 북한 인권 관련 첫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북한 인권 결의안이 유엔에서 최초로 채택되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환호성이 터지는 가운데 북한 외교관들이 퇴장하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유엔 상정은 시작에 불과한데 한국에 돌아오니 마치 목표가 다 이뤄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실질적으로 북한 인권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 말입니다.”
   
   한계를 느끼고 다른 길을 생각하고 있을 때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에서 제의가 왔다. 중국 남자들에게 팔려간 북한 여성들의 인권 실태에 대한 조사보고서 의뢰였다. 2004년 11월 그는 단둥행 배를 탔다. NGO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재일교포 대학생 한 명과 함께였다. “공안에 잡히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일도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으니 다들 말렸습니다. 달랑 선교사 연락처 하나 들고 목숨 걸고 들어갔어요. 분위기만 보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2주가 걸렸습니다. 단둥에서 압록강 따라 옌볜을 거쳐 지린성, 헤이룽장성 구석구석을 돌고 결국 하얼빈까지 갔습니다. 팔려간 탈북 여성들이 중국 곳곳에 그만큼 많았습니다.”
   
   그 후로 2년 동안 7번을 들어가 중국 농촌에 살고 있는 탈북 여성 100명을 만나고 70명의 기록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깊숙이 들어가 보니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다. 그들은 무기력한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팔려가긴 했지만 빚을 갚고,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바꾸고, 남자를 바꾸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외면한 채 정치적 이슈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재료로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니 탈북 여성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엄청 많았다. 단둥행을 함께 감행했던 대학생과 둘이서 단체를 만들었다. 2005년이었다. 그 대학생은 현재의 남편이다.
   
   단체의 이름은 ‘BASPIA(Blanket and Sponge Project In Asia)’. 실질적 도움을 위해서는 인권과 개발이 따로 가서는 안 되고, 둘을 조화시키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이 단체를 만든 이유였다. 젊은 남녀가 열정적으로 외치는 메시지는 비슷한 섹터에 있던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세미나를 열었는데 대박이었다.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 민간 구호단체 ‘빅4’에서 모두 참석했다. 그만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고정멤버도 생기고 뜻에 공감하는 회원도 늘었다. 영자신문에 그의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를 처음 인턴을 한 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던 홍콩 아시아인권위에 보냈더니 게시판에 붙여둔 모양입니다. 그곳에 들른 아쇼카 직원이 그 기사를 보고 격려의 메일을 보냈어요. 그때 아쇼카의 존재를 처음 알았어요.” 아쇼카에서 한국 지부를 설립하면서 대표를 찾고 있을 때 결국 그 인연이 이어졌다.
   
   
▲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교육혁신’을 위해 아쇼카한국에 60여억원 규모의 통 큰 기부를 했다. photo 아쇼카한국

   체인지메이커 팩토리를 위해!
   
   이 대표는 아쇼카와 일하면서 세계 곳곳의 혁신가들이 인류의 공동 자산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솔루션 이전에 그들의 삶 자체가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이들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고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는 “아쇼카가 다음 단계로 진화하기 위한 전환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지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 시대를 지나 클라우드로 업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한 것처럼 아쇼카도 40년 동안 현장에 들어가 혁신가들을 발굴해왔다면, 이제 그 본질을 바꿔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나 커머스 영역에서만 클라우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혁신 영역에서도 눈에 안 보이는 가치를 구체적인 서비스로 보여주고 물건으로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합니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새로운 방식’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쇼카 펠로뿐만 아니라 다양한 단체에서 선정한 사회혁신가가 5000명이 넘습니다. 흩어져 있는 이들을 긁어모아서 인류를 위한 공적자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공적자산화를 시켜놓으면 책,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가공할 수 있습니다. 그를 위한 팩토리가 필요합니다.”
   
   그가 생각한 팩토리 중 하나는 잡지다. 하나의 주제 아래 사회혁신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하는 잡지로 첫 주제는 ‘시푸드(seafood)’이다. 시푸드란 관점에서 관련 혁신가들을 한데 모아 보여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대서양 연어 보존에 평생을 바친 오리 비그푸손(2004년 아쇼카 아이슬란드 펠로), 동남아 어업현장의 노예노동과 분투하고 있는 태국의 솜퐁 사케우 부부(2013년 아쇼카 태국 펠로), 3D 해양농법으로 바다 생태계 보전을 위한 솔루션을 제시한 브렌 스미스(2015년 아쇼카 미국 펠로)와 같은 혁신가들이다. 잡지라는 바늘로 이들을 실을 꿰듯 엮어놓으면 누구든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할 수 있다. “누구는 잡지를 읽고 소비습관을 바꿀 수도 있고, 누구는 기부를 할 수도 있겠죠. 소비자의 눈높이가 달라지면 기업도 바뀝니다. 기업이 혁신가들과 협업을 제안할 수도 있죠. 자산을 활용해 물건이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고 영화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자산이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또 다른 그림은 ‘미래를 여는 시간 2.0’이다. 그는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43만명을 첫 대상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아쇼카의 콘텐츠를 쏟아부은 앱을 만들어 초등학교 1학년 학생부터 자유롭게 접속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10년만 계속하면 400만명의 어린이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구상한 그림의 완성을 위해 그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그는 아쇼카에 지원하고 빌 드레이튼과의 마지막 면접 때 들은 질문을 잊지 못한다.
   
   “당신이 다녔던 고등학교는 당신으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겼습니까?”
   
   그는 처음엔 영어를 잘못 이해했나 싶어 다시 물어봤다고 한다.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수업 따라가기에 급급했는데 10대에도 변화를 만들 수 있구나.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모두가 체인지메이커가 되는 세상’을 꿈꾸면서 이제 그 질문을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다.
   
   “당신으로 인해 세상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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