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수사과정에서 얻은 고발인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로 대법원 전산망에 접속해 수천 건의 자료를 무단으로 조회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7년 3월 서울북부지방법원 집행관사무소에서 20여년간 근무한 전직 사무원 A씨는 같은 사무소 소속 전·현직 집행관과 사무원 10여명을 공금 및 직원 출장비 횡령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이들이 2015년부터 2년간 ‘부동산가처분 불능조서’를 허위로 작성해 수천만원에 이르는 집행 수수료를 편취했다는 것이 고발 내용이었다. 집행관은 법원, 검사 명령에 따라 재판 진행 전후로 필요한 서류·물품 송달, 벌금·과태료 부과, 몰수 물품 회수·매각 등의 사무를 처리하는 직원이다. 소속 지방법원장이 임명하며 임기는 4년이다. 집행관사무소는 필요에 따라 업무보조를 위해 사무원을 둘 수 있다. 집행관들은 가처분 집행 시 일정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A씨의 주장은 이들이 불능조서 작성으로 한 번에 완료한 부동산가처분을 두 차례 만에 완료한 것처럼 꾸며 집행여비 등을 지속해서 빼돌렸다는 것이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018년 1월 집행관사무소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고, 그해 6월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올 3월 이를 기소처리해 현재는 공판이 진행 중이다.

문제는 경찰이 서울북부지방법원 소속 집행관, 사무원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이던 중 직원 아이디·패스워드를 활용해 대법원 집행관 통합시스템에 수차례 접속해 필요 증거자료를 수집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점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경찰이 정보통신망법과 개인정보보호법 등을 위반한 셈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위반 가능성

서울북부지방법원 집행관사무소에서 20여년간 근무한 전직 사무원 A씨가 경찰에 제출한 집행관 비위 관련 자료.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뉴시스
서울북부지방법원 집행관사무소에서 20여년간 근무한 전직 사무원 A씨가 경찰에 제출한 집행관 비위 관련 자료.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뉴시스

당시 전·현직 집행관들은 경찰이 관련 증거자료 수집을 위해 외부에서 대법원 ‘집행관 통합시스템’에 수차례 접속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대법원 전산정보센터에서 관리하는 것으로, 집행관사무소에서 관할하는 모든 업무 내용과 개인정보 등을 담고 있다. 집행관, 사무원만이 각자 부여받은 아이디·패스워드를 활용해 접속할 수 있게 돼 있다.

압수수색 당시 경찰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총 3402건의 문건 목록을 A4용지 다섯 장에 정리해 사무소 직원에게 내보였다. 이 자료는 범죄일자, 사건번호, 건수, 장소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분류돼 있었는데, 모두 이 시스템을 통해서만 확인 가능한 내용이다. 확보한 문건엔 사선이, 확보하지 못한 문건엔 엑스가 쳐져 있었다. 전직 집행관 B씨는 “고발인 A씨의 아이디, 패스워드를 넘겨받은 경찰이 시스템에 불법 접속해 만든 자료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방대한 자료량, A씨의 업무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이를 A씨 혼자서 정리해 넘겼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A씨가 지난해 6월 면직처분을 받은 이후 9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한 부당대기발령 구제신청 이유서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1월경부터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와 공조하여 서울북부지방법원 집행관들의 내부비리 자료를 수집하여 제공하였습니다’라고 기재돼 있다. 집행관 직원들은 이를 두고 경찰이 A씨의 도움을 받아 시스템에 접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대법원 전산정보센터 내부 관계자 설명에 따르면, A씨의 아이디 사용 기록은 2017년 3월부터 6개월간 집행관사무소가 위치한 서울 도봉구 외에도 서울 중구 퇴계로와 용산구 한강대로, 경기 남양주 등에서도 나타났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IP 할당 지역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고 있다. 적게는 2~3회, 많으면 70여회까지 이들 지역에서 접속한 것으로 나온다”고 설명했다.

압수수색을 지켜봤던 집행관들은 "경찰은 압수수색 당시 집행관사무실 컴퓨터로 직접 시스템에 접속했으며, 당시 경찰관 8명 중 4명은 곧바로 직원 자리에 앉아 수백여 장의 문건을 출력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그 시간이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도 했다. 처음 이용하는 사람 입장에선 시스템 활용이 어려울 텐데, 이들은 능숙했다는 것이 전·현직 집행관들의 설명이다.

집행관사무소 직원들 사이에선 경찰의 이런 부적절 수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경찰이 자신들의 수사 적절성을 들여다볼 리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검찰의 경우 검경수사권 조정 논의 등으로 경찰 수사에 제동을 걸기 어려울 것이라 내다봤다. 서울북부지방법원 소속 집행관 C씨는 “사건 피의자들도 끼여 있다 보니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애매했다”고 설명했다.

개인정보보호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르면, 정당한 접근권한 없이 혹은 허용된 접근권한을 넘어 정보통신망에 침입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부정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취득·처리하는 행위 등도 불가하다. 집행관사무소 직원들은 경찰이 이를 위반하면서까지 수사를 벌였다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경찰이 영장주의를 위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의 C씨는 “영장은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서류에 대해서만 집행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시스템에 직접 접속해 자료를 뽑았다. 영장 범위를 넘어선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경찰 측 “사실무근”, 대법 “외부접속 가능”

일각에선 A씨가 제출한 자료가 불법 수집된 것인데, 경찰이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증거물로 채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행관사무소 CCTV 내용에 따르면, A씨는 휴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집행관 시스템에 접속, 타인이 처리한 부동산가처분 불능조서와 사건배정표 등을 수집해 간 것으로 나타났다. 접근권한이 없는 정보를 지속해서 빼낸 것이다.

전직 집행관 B씨의 법정대리인을 맡았던 최길수 법무법인 베이시스 변호사 말에 따르면, 검찰 측에서 “최근 검경 간 분위기가 험악해져 경찰의 불법 증거 수집 정황이 나온다 해도 검찰이 사건을 경찰로 다시 내려보내기가 쉽지 않으니 재판 가서 무죄 받고 나오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다고 한다. 현재 B씨는 A씨를 명예훼손, 무고, 절도 혐의 등으로 지난 5월 고발했으나 이에 대한 경찰 수사는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경찰 측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권한 없이 시스템에 들어가면 우리도 A씨도 다 죽는 건데 왜 그랬겠나. 외부에선 접속 자체가 불가하다. 자료 목록의 경우 내부에서 집행여비 지급 등을 위해 업무상 편의로 자체적으로 만든 자료였다. 이를 우리가 활용한 거다. 압수수색 당시엔 출력 자체를 안 했었다. 창고에 있는 자료만 일일이 복사해서 확보했다”고 말했다. A씨의 증거물 적법성은 경찰이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A씨도 ‘외부에선 시스템 접속 자체가 불가하며,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경찰에 넘긴 적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전산정보센터 관계자와 전·현직 집행관들의 설명은 다르다. 그들은 “외부에서의 시스템 접속은 가능하며 집행관, 사무원은 업무 특성상 자택 등에서 줄곧 로그인한다”고 말했다. 집행관사무소 내부 직원들이 업무편의상 만들었다는 자료 목록엔 ‘범죄일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사법권 침해 여지가 크다고 평가한다.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영장청구 시 압수와 수색을 분리하고 수사기관이 들여다볼 수 있는 대상, 범위를 더 명확히 적시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 사회일수록 이것이 더 필요하다. 과거 관행처럼 압수와 수색을 포괄하면, 자칫 기본권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 이번 건이 그런 경우”라고 말했다. 국제법률전문가협회 소속 이종식 동국대 교수는 “자칫 경찰이 사법권을 침해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범죄 수사, 혐의 판단 주체를 나눈 이유가 무색해지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반론보도]서울지방경찰청 "위법하게 증거수집 한 바 없다"

본지는 지난 12월 2일자 기사에서 '서울지방경찰청이 서울북부지방법원 집행관과 사무원들의 횡령 혐의를 수사하며 대법원 집행관 통합시스템(이하 시스템)에 접속해 무단으로 자료를 조회했고, 압수수색 당시 영장 범위를 넘어 시스템 속 자료를 압수했다'는 취지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능범죄수사대는 "고발인에게 아이디 및 패스워드를 건네받거나 시스템에 직접 접속하여 자료를 수집한 사실이 없으며, 집행관 사무소 압수수색 시 사무소에 보관하고 있던 문서만 압수하였을 뿐, 시스템에서 출력한 자료를 압수하거나 반출한 바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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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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