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부지 개발이 10여년째 지연되고 있는 서울 노원구 광운대역(옛 성북역). ⓒphoto 이동훈
철도부지 개발이 10여년째 지연되고 있는 서울 노원구 광운대역(옛 성북역). ⓒphoto 이동훈

지난 11월 25일 철도노조가 파업을 풀었다. 전면 총파업에 착수한 지 5일 만이다. 코레일 노사는 공공기관 임금인상 가이드라인인 1.8%에 맞춰 임금인상에 합의하는 선에서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철도노조가 파업 착수 당시 요구한 인력충원, 코레일과 자회사인 SR(수서발 고속철)과의 통합 등은 여전히 불씨로 살아있다. KTX 운영사인 코레일과 SRT 운영사인 SR의 통합은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측과 철도노조가 합의한 부분이라 문재인 정부 내내 언제든 불씨로 되살아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가 요구한 4조2교대 근무 등 인력충원 역시 코레일의 막대한 부채로 인해 사실상 어렵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코레일의 지난해 기준 부채는 15조원, 부채비율은 236%에 달한다. 코레일은 지난해 339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면서 1049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2017년에도 4699억원의 영업적자와 8555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인력을 줄여 군살을 빼도 모자랄 판에, 추가 인력채용은 힘에 부칠 수밖에 없다.

만성적자 탈피를 위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하다. SR의 재통합 등만 지속적으로 요구할 뿐, 수십조원의 부채를 한 방에 털어낼 수 있는 알짜 철도 부지 개발에는 소극적이다. 제대로 개발하면 코레일의 재무제표를 단번에 적자에서 흑자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알짜 철도부지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중에는 부지 소유주인 코레일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도 개발에 적극적인 곳이 많다. 하지만 코레일의 미흡한 부동산 개발역량으로 인해 중앙정부 및 지자체와 손발이 맞지 않아 방치되는 곳들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나대지로 방치된 용산 철도정비창

가장 대표적인 곳은 서울 용산역 옛 철도정비창 부지다. 과거 용산 철도차량사업소가 있던 44만㎡에 달하는 코레일 소유 부지다. 코레일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용산국제업무지구(드림허브) 계획을 추진하면서,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에 국내 최고층인 620m 높이의 초고층빌딩인 가칭 ‘트리플원’ 1개 동을 비롯해 빌딩 23개 동을 지으려고 계획했었다. 이를 위해 약 3000억원을 투입해 기존의 철도시설은 싹 걷어내 대전 대덕과 충북 제천으로 나눠서 이전시킨 상태다.

하지만 코레일과 삼성물산, 롯데관광개발이 주축이 된 개발시행사인 ‘드림허브’가 2013년 부도로 좌초되면서 알짜배기 땅은 지금껏 나대지로 방치돼 있다. 상전벽해한 용산역 주변과도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과거 집창촌과 포장마차들이 즐비했던 용산역 광장 앞에는 공원이 새로 조성되고, 주변에 최고 40층에 달하는 래미안 용산 더센트럴 등 주상복합들이 들어섰다. 용산역과 연결돼 있는 용산관광버스터미널 역시 객실만 1730개를 갖춘 호텔 컴플렉스인 ‘서울드래곤시티’로 탈바꿈한 상태다.

정작 옛 용산철도정비창 일대는 수풀로 뒤덮인 나대지로 방치돼 있다. 드림허브 측과 사업 무산에 대한 책임과 땅 소유권을 둘러싼 지루한 소송전을 벌이던 코레일은 지난해 토지소유권을 가까스로 회복한 상태다. 하지만 지난해 박원순 서울시장이 밝힌 ‘여의도·용산 통합개발 구상(마스터플랜)’이 ‘집값 상승 촉발’ 등을 이유로 상위 기관인 국토교통부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문재인 정부 내에 용산국제업무지구 재시동을 거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도 지지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은 서울역 북부의 철도 유휴부지 약 5만㎡를 업무 및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코레일 측은 이미 십수년 전부터 유휴부지로 방치된 이곳을 개발하려 했으나 각종 조건이 맞지 않아서 개발이 미뤄져왔다. 지난 7월 한화종합화학 컨소시엄을 사업자로 선정하고 개발하려 했으나, 최고가를 써내고도 우선협상대상자에서 탈락한 메리츠종금 측이 소송을 내면서 또다시 차일피일 지연된 바 있다.

수색차량기지 개발도 속도를 못 내기는 마찬가지다. 수색차량기지는 일반철도 정비창으로 쓰는 수색역 일대 22만㎡를 주거 및 상업시설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현재 이 지역은 차량기지로 인해 남쪽의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권역과 북쪽의 수색역 권역이 사실상 단절돼 있는데, 선로 위를 데크로 덮어서 두 지역을 연결하고 상부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수색 역세권 개발구상이 처음 등장한 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이철 코레일 사장 때다. 당시 이철 사장은 수색 역세권 개발구상에 대해 “철도공사 경영정상화에 새로운 성장엔진”이라고 평했었다.

하지만 이곳도 지난 십수년간 진척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코레일 측은 사업을 1, 2단계로 나눠 DMC역을 우선 개발하기로 하고 2017년 롯데쇼핑과 사업계약 체결 후 ‘롯데DMC개발’이란 개발회사를 세웠다. DMC역은 경의중앙선을 비롯해 6호선, 공항철도 등 3개 노선이 지나는 트리플 환승역인데, 현재는 환승거리가 지나치게 길어 불편하다. 하지만 DMC역 개발구상도 세부개발계획과 인허가 절차로 인해 빨라도 오는 2022년에나 착공될 예정이다. 본공사라고 할 수 있는 차량기지 개발은 오는 2025년께나 첫 삽을 뜰 예정이다.

수색역·광운대역 역세권 개발

수색 역세권과 함께 개발이 추진된 광운대역(옛 성북역) 역세권 개발도 아직 첫 삽을 못 뜨고 있다. 코레일은 시멘트 사일로와 물류창고로 쓰는 광운대역 일대 15만㎡ 부지를 2007년부터 주거시설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2007년 당시 코레일은 광운대역 일대를 “홍콩 커우룽역처럼 개발할 것”이란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광운대역은 2013년 간판만 ‘성북역’에서 ‘광운대역’으로 바꿔 달았을 뿐 옛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 중이다. 2017년 현대산업개발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마냥 개발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부산 범천동에 있는 차량기지 역시 마찬가지다. 부산 중심가인 서면 인근에는 일반철도를 정비하는 범천 철도차량정비단을 비롯해 고속철 정비창 등 철도시설이 102만㎡ 부지에 걸쳐 들어서 있다. 이 철도시설은 부산 도심 재개발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돼왔다. 이 중 현실적으로 이전 가능한 범천 차량기지(21만㎡)를 부산 강서구 송정동 부산신항역 일대로 이전하고, 업무 및 상업시설로 재개발하자는 계획이 2007년부터 추진돼왔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로 진척이 없다. 지난 10월에야 기재부 예비타당성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상태다.

이 외에도 철도부지 재개발 주장이 나오는 곳은 경기도 광명 노온사동으로 이전을 추진 중인 코레일 소유의 구로차량기지(25만㎡), 경기도 용인의 분당차량기지(27만㎡) 등 적지 않다. 재개발 가능한 철도부지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셈이다. 모두 도심 알짜배기 부지에 위치한 곳들로 제대로만 개발하면 코레일의 재무제표를 개선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들이다.

하지만 코레일의 미흡한 부동산 개발사업역량에 모두 발목이 잡혀 있는 실정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용산 철도정비창은 처음 삼성물산에서 주도하다가 코레일이 끼어들면서 일을 그르친 경우”라며 “역세권 개발 관련 법은 잘 돼 있는데, 해당 지자체와 협의과정에서 무리하게 기부채납 등을 요구하면서 진척이 안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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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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