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에 참석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photo 뉴시스
지난해 10월 유치원 공공성 강화 당정협의에 참석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오른쪽).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26일 추첨이 끝난 2020년도 유치원 일반모집에서 일부 지역의 국공립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대규모 미달 사태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2020학년도 유치원 모집은 지난 11월 12일 국가유공자, 장애인,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한 우선모집 추첨과 지난 11월 26일 일반모집 추첨을 끝으로 일단 마무리됐다. 올해 유치원 모집은 온라인 유치원 지원시스템인 ‘처음학교로’가 사실상 처음으로 전국 국공립유치원뿐만 아니라 사립유치원에까지 확대 적용돼 유치원 취학아동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의 많은 주목을 끌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처음학교로’에 참여한 유치원은 국공립(4893개원)과 사립(3651개원)을 모두 포함해 8544개원으로 전체 유치원의 99.6%에 달했다. 지난해 국정감사 때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소위 ‘비리 유치원’ 명단공개로 촉발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 소속 사립유치원의 휴폐원 및 집단 개원 연기 사태 후 거세진 교육부의 유무형 압박에 사립유치원의 99.1%가 ‘처음학교로’ 시스템에 참여한 것이 주효했다. ‘처음학교로’ 시스템이 첫 도입된 2017년의 경우 사립유치원의 참여율은 2.7%, 지난해의 경우 59.4%에 불과했다.

‘처음학교로’ 전국 확대 실시 원년인 올해는 11월 19일 일반모집 원서 접수 직후 유치원별 모집인원이 실제와 달라 이를 바로잡는 등 일부 미숙한 점이 드러났으나 큰 탈 없이 끝났다는 평가다. 모집 결과 한유총 사태를 거치면서 도매금으로 ‘비리 유치원’으로 매도당한 사립유치원들이 기대 이상 선방한 반면, 국공립유치원 가운데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경우 대거 모집미달 사태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 이는 ‘처음학교로’에 모집인원과 접수인원을 전수 공개한 일부 지자체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인천·대전·세종 접수인원 공개

‘처음학교로’에 참여한 유치원 중 인천광역시, 대전광역시, 세종특별자치시 등 3개 지자체에 속한 유치원은 ‘처음학교로’에 지원한 접수인원을 공개했다. 인천과 대전은 단설과 병설을 포함한 국공립유치원에 한해, 세종시는 국공립과 사립 유치원을 막론하고 모든 유치원에 대해 모집인원과 함께 접수인원을 공개했다. 해당 지역의 접수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국공립 단설유치원은 큰 인기를 끈 것으로 확인됐지만, 국공립유치원의 주축인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대거 모집정원에 미달하는 사태를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처음학교로’에서는 국공립과 사립을 막론하고 1~3지망에 거쳐 모두 3개 유치원을 지원할 수 있다. 접수인원은 1~3지망을 모두 아우른 수치다. 모집인원에 겨우 턱걸이 한 병설유치원도 태반이라 향후 등록과정에서 추가 미달 사태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인천광역시청이 있는 인천 남동구의 경우 관내 25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중 15곳이 모집인원에 미달하거나 일부 연령대가 모집인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남동구의 병설유치원 가운데 모집인원을 모두 충족한 곳은 10곳에 불과했다. 인천 계양구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계양구의 경우 관내 14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모집인원을 모두 충족시킨 곳은 절반인 7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7개 병설유치원은 일부 연령대에서 모집인원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일부 미달’ 사태를 보였다.

이는 취학연령 아동이 부족한 군(郡) 지역에서는 더 심했는데, 인천 강화군의 경우 관내 14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모집인원을 모두 충족한 곳은 2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12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모두 미달이었다. 이 중 접수인원이 0명인 곳도 4곳이나 됐다. 인천 옹진군도 관내 8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모두 미달을 기록했다.

유치원 취학연령 아동을 자녀로 둔 젊은 부부들이 많은 신도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라신도시와 검단신도시가 속해 인천 자치구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인천 서구의 경우 관내 38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미달 또는 일부 미달한 곳이 16곳에 달했다. 그나마 가장 선방한 곳은 송도신도시가 속한 인천시 연수구로, 관내 15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13개 병설유치원이 모집인원을 충족시켰고, 2개 병설유치원은 미달 또는 일부 미달 상황을 보였다.

국공립유치원에 한해 접수인원을 공개한 대전광역시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대전 자치구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은 대전 서구 관내 23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절반 가까운 10곳이 모집인원에 미달 또는 일부 미달하는 상황을 보였다.

대전 서구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대전 유성구의 경우 관내 31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17곳이 지원자가 모집인원에 미달 또는 일부 미달했다. 심지어 대전 대덕구의 경우 관내 12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모두 미달 또는 일부 미달하는 상황을 보였다.

이 같은 현상은 교육부가 있는 세종특별자치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종시의 경우 관내 19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가운데 모집인원에 미달한 곳이 17곳에 달했다. 모집인원을 충족시킨 곳은 반곡초와 대동초 병설유치원 2곳에 불과했다.

세종시의 경우 중앙정부 관청들이 밀집한 행정중심복합도시(행복도시)와 외곽의 구시가로 나뉘어 있는데,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대부분 조치원읍, 연기면 등 구시가에 위치해 있다. 반면 행복도시 안에 있는 국공립 단설유치원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원율을 보였다.

긴 방학과 짧은 돌봄시간 등 문제 수두룩

올해 ‘처음학교로’에 지원인원과 접수인원을 공개한 인천·대전·세종 등지에서 확인된 광범위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외면 현상은 접수인원을 공개하지 않은 다른 지자체 소속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역시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한 달 가까운 긴 방학기간, 방학 중 도시락 준비 부담, 짧은 돌봄시간, 통합버스 부족, 혼합연령 학급 편성, 초등학교 위주로 운영되는 시설, 선생님의 과중한 행정업무 부담, 국공립유치원 특유의 관료적인 분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경기도의 한 국공립 단설유치원에 지원한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통학버스를 운영하다가 만에 하나 교통사고가 났을 때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학교에 돌아올까 염려해 통학버스를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광주광역시의 한 병설유치원은 ‘초등학교 증축 관련 공사로 이동식 교실에서 생활해야 합니다’는 메시지를 붉은 글자로 ‘처음학교로’에 내걸기도 했다. 일부 병설유치원은 ‘방학 중 석면공사가 예정돼 있다’는 안내를 하기도 했다. 사실상 지원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이 같은 문제점은 교육부도 오래전부터 인식하고 있는 부분이다. 유치원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밝힌 ‘국공립 유치원 확충 및 서비스 개선 계획’에서도 이에 대한 개선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등지의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와 장애인, 탈북자 등 경제적으로 곤란한 저소득층 가정의 자녀들이 우선모집을 통해 많이 입학한다는 이유로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꺼리는 현상도 팽배하다. 실제 강남 3구 유명 사립유치원의 입학설명회에는 비싼 학비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몰렸다. 지난 10월 서울시 교육청이 선정한 39곳의 ‘행복안심 유치원’에 선정된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 사립유치원 입학설명회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학부모들이 붐볐다. 서울 송파구에 거주하는 한 학부모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보내면 재원 시간이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보다 짧아서 하원 후에 또 학원을 보내야 한다”며 “차라리 사립유치원이나 놀이학교, 영어유치원(영유아 대상 영어학원)을 보내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단설보다 손쉬운 병설유치원 개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외면 현상에 국공립유치원 확충에 나선 교육부에도 비상이 걸렸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국공립유치원을 늘리는 가장 손쉬운 길이다. 국공립 단설유치원은 부지 확보 등의 문제로 인해 택지개발을 통해 새로 조성하는 신도시가 아니면 건립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2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새로 공급되는 수도권 대규모 신규택지에는 국공립유치원을 100% 공급하기로 관계 기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국공립 단설유치원은 부지를 확보해도 건물 신축에만 적어도 2~3년이 걸린다. 서울 시내에서는 국공립 단설유치원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송파구의 경우 국공립 단설유치원 3곳은 모두 위례신도시에 위치해 있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남아도는 교사를 활용해 병설유치원을 개설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교육부로서도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늘리면 상대적으로 국공립유치원 확보 숫자를 단기간에 늘릴 수 있어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경쟁력 강화 없이는 학부모 외면 현상을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 단설과 병설유치원 신설은 지난 대선 때 안철수 당시 국민의당 후보가 언급했다가 급격한 지지율 변화를 초래했을 만큼 취학아동을 둔 학부모들에게 민감한 이슈다.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사립유치원들을 ‘처음학교로’에 참여시키면서 사립유치원의 요구로 전국 단위 경쟁률을 추출하지 않고 있다”며 “향후에도 공개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당초 낮은 지원율이 드러날 것을 염려한 사립유치원의 요구로 지원 현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오히려 국공립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열악한 경쟁력만 드러나버린 셈이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국공립이 강점을 가진 부분도 있고 사립이 강점을 가진 부분도 있는 만큼 국공립과 사립이 함께 발전해나가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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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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