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앤쇼핑 경찰 수사 기사를 가장 처음 보도했던 주간조선 2582호 표지 이미지.
홈앤쇼핑 경찰 수사 기사를 가장 처음 보도했던 주간조선 2582호 표지 이미지.

지난 12월 2일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의미 있는 중재합의안 하나가 나왔다. 11월 12일 주간조선 측에서 이의 제기한 모 신문의 ‘[단독] 경찰, ‘자금유용의혹’, 홈앤쇼핑 잇단 압수수색’ 기사의 단독 표기에 대해 [단독]이라는 용어를 빼는 것으로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주간조선은 이 신문 보도 전에 커버스토리를 통해 거의 같은 내용을 단독 보도했었다. 단독 보도를 둘러싼 이 분쟁 자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언론중재위원회의 합의는 최근 언론 환경 변화와 관련해 매우 의미 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언론들이 난립하면서 점점 극심해지고 있는 ‘단독’이라는 명칭으로 포장된 속보 경쟁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를 알려준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관행적으로 용인되어왔던 기사 표절의 폐해가 법·제도적 대책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을 새삼 인식시켜준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언론중재위원회가 이번 분쟁 건을 의미 있게 다루고 부족해 보이지만 당사자 간에 합의안을 도출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단독’ 포장 기사들이 난립하는가?

여기서 궁금한 것은 왜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사들이 창궐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최근 인터넷 매체들은 물론이고 전통적인 신문, 방송들까지도 ‘단독’이라는 용어를 붙여 독자나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려 하는 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깊이 있게 취재한 의미 있는 기사도 아닌데 그냥 다른 언론사들보다 먼저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단독’이라고 지칭한 기사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특종’이 아니라 ‘속보’, 아니 ‘가장 먼저 보도했다’라는 의미로 ‘단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일종의 관심을 끌기 위한 ‘섬네일(thumbnail)’ 같은 것 아닌가 싶다. 때문에 새롭고 의미 있는 보도를 기대했던 독자나 시청자들은 경우에 따라서 속았다는 느낌마저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먼저 보도한 기사’를 단독 기사라고 하는 비정상적 관행이 만들어진 근본 원인은 인터넷 매체들이 난립하면서 기사 내용보다 속보성으로 승부를 보려는 경쟁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이용자들의 관심을 끌어 늘어난 트래픽 수로 경제적 이익을 높이려는 상업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성 언론들마저 온라인화하면서 이러한 ‘먼저 보도하기’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제된 고품질 뉴스로 승부해야 하는 기성 언론사들의 뉴스 품질까지 추락하는 이른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최근 인터넷 언론의 가장 큰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어뷰징(abusing)’이다. 어뷰징은 이미 보도된 뉴스들을 조합해 유사한 제목을 붙여 만드는 일종의 ‘사이비 뉴스’들이다. 인터넷 포털의 연관검색 기능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것으로 전체 뉴스와 언론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악성 보도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어뷰징은 대부분 책상에 앉아 인터넷을 뒤져서 만드는 이른바 ‘손가락으로 쓰는 기사’들이다. 발로 뛰어 작성한 선행 기사들을 조합해서 만들기 때문에 기사들 간의 차이를 아예 없애버리고 제대로 된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는 다른 언론들의 소명의식까지 위축시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미 우리 언론계에 만연해 있는 뉴스 표절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뉴스 표절에 대한 제도적 규제장치들이 없다는 것도 또 하나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언론계에 뉴스 표절행위가 만연되어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수없이 지적되어왔다. 옛 신문윤리위원회가 심의했던 사안 중에 절반 이상이 뉴스 표절과 관련된 것이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스트레이트 신문기사는 법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어왔다. 아이디어와 표현방식이 모두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이른바 ‘합체의 원칙(Merger Doctrine)’에 근거해 정형화된 뉴스기사는 독창성을 인정할 수 없고 누구나 공개적으로 복제 활용할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이 때문에 뉴스 표절은 윤리적 비판의 대상은 되지만 법적으로는 거의 문제 삼지 않아왔다. 실제 언론계에서도 서로 묵인해주는 일종의 관행으로 받아들여져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바로잡은 단독 보도 문제 역시 같은 맥락에서 큰 도덕적 부담 없이 행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한 언론에 따르면’ 같은 정체불명의 인용 방식으로 기사를 베끼는 ‘유령기사’들까지 난무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러한 문제들이 더 이상 방치할 단계를 넘어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점적 유통 보장하는 미국의 ‘핫뉴스 독트린’

이 같은 언론 환경 변화를 감안하면 이번 언론중재위원회의 단독 보도 관련 중재 결과는 나름 의미가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런 제재 없이 당사자 합의로 ‘단독’이라는 용어만 삭제했다는 것은, 향후에도 얼마든지 이와 유사한 행위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협상력이 약한 군소 언론사들의 경우에는 이러한 뉴스 표절에 대해 속수무책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모든 언론들이 인터넷으로 수렴되는 상황에서 언론중재위원회처럼 당사자 간 중재를 통한 문제해결은 근본적인 문제해결 방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뉴스 표절이나 무단 인용 같은 행위들은 관련 언론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구성원과 관련된 문제라 할 수 있다.

결국 법·제도적 방안들이 모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엇보다 뉴스 역시 창작물에 의한 저작권으로 인정하는 것이 심각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특허와 같은 지적재산권이 아이디어의 독창성을 기본으로 인정된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인터넷 언론이 급성장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스트레이트 뉴스들은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하고, 재산권으로 접근하고 있는 현행 저작권 틀에서 벗어나 인격권 차원으로 전환할 필요도 있다. 처음 보도된 기사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 일정 기간 독점적 유통을 보장하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의 ‘핫뉴스 독트린(Hot News Doctrine)’ 같은 제도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 언론중재위원회의 합의는 하나의 이정표(milestone)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언론행위와 관련해서는 언론인들의 윤리적·자율적 판단이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해결할 수준은 넘어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법적 강제력이나 효력이 없는 단순한 중재권한만 가진 언론중재위원회의 위상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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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 선문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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