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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87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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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2020키워드 미·중 디커플링]美 최고 싱크탱크 CFR, 글로벌리즘 종언 선언

photo 뉴시스
지난 11월 26일 미국 상무부가 주목할 만한 발표를 했다. ‘해외 제품 조달에 관한 규제안’. 이에 따르면 앞으로 외국의 신기술이 미국의 안전보장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경우 상무장관의 재량만으로도 외국 기술 수입금지 조치를 할 수 있게 된다. 당연히 이 규제가 직접 겨냥하는 것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5G 관련 기술이다. 규제안의 범위가 ‘안전보장’이란 말로 나타나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까지가 안전보장인지에 대한 각론은 없다. 간단히 말해 장관 말 한마디로 외국 기술 수입이 전면 중단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규제안의 법제화를 위해서는 미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겠지만 2019년 연말 미국 분위기를 보면 통과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해외 제품 조달 규제안의 핵심은 결국 중국 기술과 제품에 있다. 그동안 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상대하던 중국에 대한 무역 제재도 이 규제안이 법제화될 경우 장관의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게 된다.
   
   연말을 맞아 미국의 워싱턴DC에서는 올해의 사건, 인물, 명언 등이 쏟아지고 있다. 연말에 워싱턴 주요 인사들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용어 중 하나가 ‘디커플링(Decoupling)’이다. 사전적 의미로 ‘분리’ ‘철회’ ‘미가입’ 등으로 풀이될 수 있는데 간단히 말해 ‘갈라서는 것’이다. 갈라서는 당사자는 다름 아닌 미국과 중국이다. 서로 등을 진 상태에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영역만을 보호 발전시켜나가자는 식이다. 따라서 ‘미·중 디커플링’이란 말은 미국은 미국 방식대로, 중국은 중국 방식대로 살아가자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이나 중국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제사회 내 개별국가에도 적용할 수 있다.
   
   
   글로벌리즘을 대체할 새로운 이념
   
   미·중 디커플링은 내년의 세계 질서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단어가 될 듯하다. 익히 아는 대로 미국은 자유시장, 민주주의, 법과 인권에 기초한 열린 나라다. 반면 중국은 계획경제, 일당독재, 언론통제에 기초한 닫힌 나라다. 열린 나라는 열린 나라와 더불어, 닫힌 나라는 닫힌 나라와 함께 친구가 되자는 것이 미·중 디커플링의 속살이다. 따라서 미·중 디커플링이 심화될수록 ‘협치’ ‘조화’ ‘공동번영’ 등의 가치는 퇴색하고 ‘내 편 아니면 네 편’ 식의 양자택일 세계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미·중 디커플링은 1992년 클린턴 대통령 등장과 함께 달아오른 글로벌 정책의 전면수정, 아니 글로벌 정책과는 정반대로 나아가는 노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해온 ‘아메리카 퍼스트’와 연계된 노선이지만 국제사회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측면에서 기존의 글로벌리즘(국제주의· Globalism)에 반하는 새로운 ‘이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현상으로서의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Globalization)은 존속하겠지만 세계를 풍미한 상식이자 이념으로서의 글로벌리즘은 더 이상 없다. 글로벌리즘이 사라진 세상의 새로운 대안이 바로 미·중 디커플링이다.
   
   신문·방송의 뉴스를 매일 자세히 들여다보는 한국인이라도 최근의 미·중관계를 보면 다소 헷갈릴 듯하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무역규제가 트럼프 말 한마디로 ‘풀었다, 조였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의 결말과 관련해 ‘트럼프 특유의 뻥일 뿐, 미국도 손해를 입을 테니까 결국은 중국에 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트럼프의 대중 압박이 결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허세에 불과하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2018년의 ‘낡은 사고’에 불과하다. 트럼프가 끌고 가는 미·중 디커플링 노선은 지금 당장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아예 판세를 바꿔 ‘나는 나, 너는 너’의 세계관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네 고집대로 한다면 아예 상대를 안 하겠다는 의미다. 1950년대 조지 케넌이 만든 봉쇄정책의 21세기 최신판이라 봐도 된다.
   
   중국이 미국을 필요로 한다면 조건과 상황을 봐가며 응하겠지만, 중국이 미국에 다가오려면 미국식 스탠더드에 맞춰야만 한다는 것이 트럼프식 미·중 디커플링의 개념이다. 중국만이 아닌, 중국식 세계관을 당연시하는 나라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과연 트럼프가 중국과 완전히 갈라설 수 있을까라고 의심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사회가 트럼프가 혼자 밀어붙이는 이런 결정을 언제까지 참을 수 있을까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은 트럼프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니다. 국내외 환경 변화에 따라 미국 내부에서 아주 구체화되고 있는 노선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데 따른 의문일 뿐이다. 미·중 디커플링를 둘러싼 최근의 세 가지 차원의 환경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미국 국내 여론의 트럼프 동조화다. 원래 미·중 디커플링은 미국 내 나이든 보수층의 좁은 세계관 정도로 치부됐다. 글로벌리즘의 산물이지만 미·중 두 나라는 서로의 번영과 발전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라는 세계관이 워싱턴의 주류로 통했다. 트럼프 등장과 함께 기류가 점차 변해갔지만 그래도 아예 ‘미·중 이혼’으로 가자는 식의 발상이 대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지난 9월 18일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가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바뀌게 된다. 미국 외교정책의 산실 격인 외교협회(CFR)가 주인공이다. 미·중 디커플링이 더 이상 비주류나 ‘맛이 간 보수 꼰대’의 생각이 아닌 워싱턴 주류의 생각이자 대세라고 공언한 보고서다. 이 보고서의 제목은 ‘기술혁신과 안전보장: 우위성의 유지(The Innovation and National Security: Keeping Our Edge)’였는데 구체적으로 4가지 정책 제언이 이뤄졌다. ‘1. 연구와 개발을 위한 연방기금 회복(Restoring Federal Funding for Research and Development) 2. 과학 기술팀을 교육하고 확장할 것(Attracting and Educating a Science and Technology Workforce) 3. 군사산업 영역으로의 기술접목을 적극 지지(Supporting Technology Adoption in the Defense Sector) 4. 기술동맹과 관련된 에코시스템 확장과 표준화(Bolstering and Scaling Technology Alliances and Ecosystems)’.
   
   
▲ 디커플링과 관련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국제결제네트워크와 미국 결제시스템에서의 추방이다. 달러와 위안화 문양으로 장식된 홍콩의 한 환전거래소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photo 뉴시스

   군사동맹에서 기술동맹으로
   
   복잡한 용어로 포장돼 있지만 CFR의 보고서는 한마디로 중국의 기술적 우위에 대한 위협과 불안을 배경으로 한다. 무역 전반이 아니라 미·중 테크놀러지 전쟁에 임하는 출사표라 볼 수도 있다. 간단히 말해 5G, 인공지능(AI), 데이터(DATA), 로봇, 바이오산업, 에너지축약산업 분야에서 일취월장하는 중국에 맞서기 위한 국가전략을 담은 제언서다. 정부와 민간기업, 싱크탱크 모두에 고하는 보고서다. 전체적으로는 다른 싱크탱크들에서 발표된 내용들과 비슷하지만,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이전과 ‘확연히’ 구분된다. 첫째 ‘제언 4’의 기술동맹과 에코시스템 문제다. 군사동맹만이 아니라 기술동맹을 통해 동맹국끼리만 기술을 교환하고 부품을 주고받는 에코시스템을 구축·확장해야만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특이점이다. 유럽·일본과 함께 중국을 왕따시키는 에코시스템을 만들자는 제언이다. 완곡하게 표현했을 뿐 달리 표현하자면 이것이 바로 미·중 디커플링인 셈이다. 20세기에 소비에트에 맞선 군사동맹이 있었다면, 21세기에는 중국에 맞선 기술동맹이 워싱턴 최고 싱크탱크의 아이디어다.
   
   둘째는 군사 영역으로의 기술 접목 부분이다. 언뜻 들으면 애플·구글의 기술을 군사 영역에 접목해 활용하자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른 부분도 감안해야 한다. 애플·구글의 기술이 군사 분야에 응용될 경우 관련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도 전면 금지된다. 군사기술을 중국에 알려주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5년 뒤 애플이 인터넷 위성 AI를 이용해 전방 1000m와 1100m 사이에 누가 있는지를 알아낼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애플 단말기 하나만으로도 그 범위 안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파악할 경우 군사적으로 살상 제거도 가능해진다. 국방부가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 활용할 경우 중국으로의 진출은 아예 원천봉쇄될 수밖에 없다. 나쁘게 말하면 기술 쇄국이지만 좋게 보면 기술 보호라 할 수 있다. 이미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 미국산 IT제품의 중국 수출도 전면중단될 수 있다. 미·중 디커플링이 구체화될 경우 사고 파는 거래 자체가 급정지될 수밖에 없다.
   
   미·중 디커플링을 공언한 CFR 보고서는 발표 즉시 화제가 됐다. 트럼프식 아메리카 퍼스트가 미국 최고 권위의 싱크탱크에서 재확인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CFR 권위와 더불어, 보고서를 만든 정책 제언자들의 면면도 워싱턴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보고서 참가자들의 대부분이 민간산업 관계자로 구글 알파벳, 애플, 페이스북, 브레어 캐피털(Breyer Capital), 그레이록 앤드 맥킨지(Greylock and McKinsey)와 같은 IT 금융 투자 회사들이었다. 정부 간섭과 비즈니스 영역의 제한을 싫어하는 집단들이 거꾸로 미·중 디커플링을 역설한 셈이다. 신자유주의 경제 사상을 기반으로 한 CFR에서 간행된 보고서란 점도 특별하지만 민간기업이 트럼프 정책에 동조했다는 점에서 워싱턴 기류의 급변화가 피부로 와닿는다. 1년 전과 달리 CFR 보고서를 통해 ‘미·중 디커플링=워싱턴 대세’로 자리 잡았다는 의미다.
   
   미·중 디커플링에 관한 ‘급격한’ 환경 변화의 두 번째 요인은 미국 정치무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크게 볼 때 두 가지인데 먼저 의회다. 트럼프 등장 이후 의회와 백악관은 사사건건 대립 중이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의회의 트럼프 공격은 연말 핫뉴스로 부상한 상태다. 탄핵으로 가기까지 멀고 먼 여정이 남아 있지만 하원의 경우 아군인 공화당 의원조차도 트럼프에 반대하는 판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중국 문제는 의회의 트럼프 지지가 절대적이다. 특히 무역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화·민주 모두 입장이 비슷하다. 미·중 디커플링에 대한 직접적인 찬성은 아니더라도, 트럼프의 대중 경제정책을 근본적으로 비판하는 정치인은 거의 제로 상태다. 클린턴·오바마 당시와 같은 대중 친선 분위기는 더 이상 없다. 최근 홍콩인권법안 의회 결의안에서 보듯, 무역이 아닌 정치 분야의 경우 트럼프보다 한층 더 강경하다. 의회의 튼튼한 지지와 지원이야말로 ‘미·중 디커플링=미국 정치의 대세’가 된 이유다. 트럼프 입장에서 보면 의회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카드 중 하나가 미·중 디커플링 이슈다.
   
   의회와 더불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의 중국 관련 경제정책도 트럼프를 닮아가고 있다. 클린턴·오바마의 대중 경제정책의 전면 수정은 물론 트럼프보다 더 강력한 정책에 주목하는 후보자도 있다. 현재 민주당 대통령 후보 중 지지도 2위를 달리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트럼프의 대중 강경정책을 한수 아래로 내려다보게 만드는 인물이다. 워런이 제시한 대중 경제공약을 보면 미·중 디커플링을 한층 더 강화시킬 요소로 잔뜩 채워져 있다. 환경·인권·노동 관련 아메리카 스탠더드를 만들어 미국과 무역을 원하는 나라에 전부 적용시키자는 것이 주된 골자다. 중국은 물론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닮아가는 민주당 후보들의 대중 정책
   
   미국에서 워런의 이미지는 환경론자로 통한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다시 들어가 그 조항을 근거로 각 나라와 교섭해 무역정책에 연계시키겠다는 생각이다. 트럼프처럼 국가별 1 대 1 교섭이다. 지역 글로벌 차원의 교섭이 아니다. 교섭 과정은 전부 오픈한다는 방침이다. 미국조차도 맞추기 어려운 스탠더드이지만, 중국에 전부 적용해 무역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입장이다. ‘미국도 스스로 지킬 테니 중국도 지켜라’는 식이다. 지구 최대의 환경파괴국인 중국으로서는 불가능한 협상이다. 워런은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주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인권에 기초한 경제정책은 트럼프가 완전히 무시하는 부분이다. 워런은 트럼프는 물론 클린턴·오바마보다 인권 문제를 한층 더 강화하겠다고 공언한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대부분은 워런이 대통령이 될 경우 트럼프보다 더 강력한 대중 경제제재에 나설 것이라 전망한다. 워런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트럼프와 협상하는 것이 한층 더 나을 것이란 충고도 들린다. 결국 트럼프의 미·중 디커플링을 대세로 만드는 배경이라 볼 수 있다.
   
   미·중 디커플링 대세론이 등장한 세 번째 배경으로 세계무역기구(WTO)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 12월 10일 보도된 ‘WTO 사법기능 종언’ 뉴스를 보자. 한국에서 ‘美 몽니에 WTO 출범 24년 만에 첫 개점 휴업’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기사를 보면, WTO 무역분쟁 해결 절차의 최종심판 역할을 하는 상소기구 위원이 부족해 사법기능이 불가능해졌다는 내용을 담았다. WTO 최고 상소기구의 판사 격인 상소위원 3명 중 2명의 임기가 12월 11일 0시를 기해 끝났지만 후임이 없어 사법기능이 중단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상소기구 최종 심판은 최하 3명의 위원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상소위원의 재임명에는 미국을 비롯한 WTO 이사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미국이 재임명 자체를 거부하면서 WTO 사법기능이 중단된 것이다. 국가 간 무역분쟁이 발생해도 적법 여부를 판단할 최종 심판관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 미국 외교정책의 산실 격인 워싱턴 외교협회(CFR) 건물. 지난 9월 미·중 디커플링 노선을 뒷받침하는 보고서를 발간해 주목을 받았다. photo 위키피디아

   WTO 체제의 와해가 의미하는 것
   
   미·중 디커플링 관점에서 볼 때 WTO 사법기능 중단은 ‘트럼프식 세계관’을 정당화시켜주는 최적의 환경이라 볼 수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건 트럼프가 국가안전보장을 명분으로 타국에 대해 무역제재를 가하더라도 국제무역 관행에 근거한 제재 자체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미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나라나 단체는 없다. 잘 알려진 대로 트럼프는 원래 WTO 자체를 아예 무시하고 탈퇴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법기능이 사라진 WTO는 ‘이빨 빠진 사자’와 같다. 탈퇴 없이도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된다. 5G나 IT 제품만이 아닌 알루미늄, 자동차 그 어떤 것도 자유자재로 규제할 수 있다. 물론 요란하게 떠들던 미국을 상대로 한 중국의 불공정 무역 제소건도 이미 물 건너 갔다. 국제 무역 환경이란 차원에서 볼 때 감히 아메리카 퍼스트에 맞서 싸울 국제심판은 더 이상 없다.
   
   한국이 ‘특히’ 주목할 부분은 미·중 디커플링에 대한 일본의 입장이다. 비록 ‘부분적’ 차원이기는 하지만 일본은 트럼프의 디커플링에 반대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유럽 선진국 대부분은 미·중 디커플링을 우려의 눈으로 바라본다. WTO는 일본의 디커플링에 대한 입장을 변화시킨 요인 중 하나다.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WTO 개혁을 부르짖어온 핵심국이다. 중국이 WTO 최고의 수혜국이고 미국에 불리한 국제 무역 관행이 WTO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고 비난한다. 종래의 일본은 트럼프의 그같은 적의(敵意)에 찬 주장에 맞장구치지는 않았다. 전환점은 올해 4월 12일 최종 결정된 ‘한국 정부의 일본 후쿠시마(福島) 8개 현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WTO 최종 심판이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당시 WTO 상소기구는 한국의 손을 들어줬다. 곧바로 한국 정부는 WTO 무대를 통한 대일 경제외교의 승리라 환호했다. 더불어 반일 분위기도 점증했다. 관련 공무원들은 애국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사실 당시의 결정은 상소위원 중 한 명인 중국 측 판단에 힘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던 인도를 끌어들여 2 대 1로 한국 입장을 지지했다. 상소위원국이던 미국은 일본 측 입장에 동의했다.
   
   당초 한국은 1심에 해당하는 분쟁해결기구(DSB)에서 일본에 패했다. 그러나 최종심인 2심 상소기구에서 중국의 결정에 힘입어 판결을 뒤집었다. 일본은 물론 한국 정부조차 예상치 못했던 결과다. 절치부심 일본은 한국에 패한 뒤 WTO에 대한 기존의 정책을 바꾸게 된다. 곧바로 트럼프가 주창한 WTO개혁에 ‘적극’ 동참한다. 트럼프의 생각에 반대하지 않는 수준에서 탈피해, 한국에 패한 뒤 ‘WTO개혁’으로 방향을 튼다. 당시 유럽 순방 중이던 아베 총리는 ‘수산물 수출규제 적법 결정=WTO개혁의 필요성’이라 역설한다. WTO개혁이란 말이 중국을 겨냥한 ‘비수’라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적어도 WTO에서 보면, 아베는 트럼프의 100% 아바타다. 트럼프가 아베를 최고의 친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중 디커플링이 과연 미국에 유리하고 중국에는 불리한 것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우위에 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5G 기술대국에 오른 중국에 유리한 싸움이 아니냐는 생각이다. 서로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층 더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는 쪽은 미국보다는 중국이다. 2019년 12월 미·중 경제 현황을 보자. 미국은 초호황, 중국은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간단히 말해 중국은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이 없어도 인도·베트남·남미를 통해 잘 살아갈 수 있다. 중국은 하루 10억달러 이상 대미 무역흑자를 얻어야만 자체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 나라다. 미국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다른 나라에서 자원과 상품 정보를 수입한다. 미국은 다르다. 벌어들이는 나라가 아니라 달러를 퍼주는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 달러를 원하는 나라는 중국 외에도 넘치고 넘친다. 실체가 의심스럽지만 설사 중국이 자랑하는 5G, AI, 로봇의 기술적 우위가 있다 해도, 아프리카·남미·동남아를 시장만으로 삼아서는 살아가기 어렵다. 중국은 미국, 나아가 미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유럽 각국과 일본을 필요로 한다. 미국의 대중 농산물 수출이 완전히 막힌다 해도 대통령령에 따른 농업보조금 100억달러면 해결될 문제다. 물론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수입원이다.
   
   겉으로는 트럼프를 누를 듯하지만, 미·중 디커플링이 고착화될 경우 나타날 최악의 상황에 대한 불안이 중국 지도부에 표류하고 있다. 홍콩 민주화운동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때도 중국 인민해방군이 ‘곧바로’ 무력진압에 나서지 못한 결정적 이유도 거기에 있다. 미국과 서방의 전면적인 경제제재 보복이 이어질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얻은 교훈이다. 최근 외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가 3-5-2 계획을 각 부처에 하달했다고 한다. 공공기관 컴퓨터 국산화 비율을 2020년 30%, 2021년 50%, 2022년 20%씩 늘려 3년 내로 100% 중국산으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외국산 배척이기도 하지만, 미·중 디커플링 고착화에 대한 대비책이라 볼 수 있다.
   
   
   달러체제 축출 시나리오
   
   디커플링과 관련해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기축통화 문제다. 즉 국제결제네트워크(SWIFT)와 미국 결제시스템(CHIPS)에서의 중국 추방이다. 간단히 말해 달러를 통한 국제결제시스템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디커플링 정책이다. 달러 없는 중국은 자국 통화인 위안(元)에 기댈 수밖에 없다. 국제 경제에서 중국 위안의 영향력은 5% 미만이다. 그것도 아프리카·동남아·남미와 같은 저개발국에서나 통할 뿐이다. 지난 10월 26일 세계 최대 암호화폐 비트코인(Bitcoin·BTC) 가격이 하루 만에 30% 정도 급상승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록체인 기술을 적극 수용하겠다는 발언이 나온 직후의 현상이다. 시진핑까지 나서 암호화폐 진흥책에 나서는 것은 SWIFT와 CHIPS에서의 축출에 앞선 준비라 볼 수 있다. 달러가 막힐 경우 암호화폐를 통해서라도 자금조달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문제는 달러 유입이 아니라 달러 유출이다. 시진핑 의도와 달리 비트코인을 구입한 뒤 외국에서 달러로 바꿔 해외로 빼돌리는 외환 유출이 한층 더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만약을 가정한 얘기지만, 한국에는 금융위기는 있어도 경제위기는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유는 중국의 금융 지원 덕분일 것이다. 위기 시 달러는 모자라더라도 중국의 위안이 한반도로 밀려들 것이다. 현 정권의 면면을 보면 중국이 금융 지원을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덥석 응할 듯하다. 경제위기는 다소 진정되겠지만, 위안 중심의 중국 경제권에 완전히 편입된다는 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달러 경제권에서 멀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카드는 무한하다. 중국은 콩·감자·돼지고기와 같은 농산물과 미국 소비자의 불필요한 지출 정도를 무기로 갖고 있는 데 불과하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 개방정책 이후 미국의 대중정책은 우호적이고 상호이익에 기초해왔다. 과거의 적이었던 독일·일본이 그러했듯이, 중국도 경제 발전을 통해 개방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WTO 체제에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이 보증하는 파트너로서 국제 경제의 팔과 다리 역할을 하게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시진핑 등장 후 상황은 급변했다. 남중국 해양에서의 팽창 전략에서부터 아프리카·남미 독재국에 대한 ‘검은 거래’가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단순히 미국의 경쟁자 수준이 아니라 미국을 아래로 보면서 중국식 독재 체제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 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일례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중국산 감시카메라 시스템은 이미 전 세계 58개국으로 확장 보급돼 있다. 대부분 독재정권들이다. 현지 자원을 독점한다는 조건하의 무상 제공이다.
   
   미·중 디커플링은 트럼프 시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자유 공정에 기초한 체제로 바뀌지 않는 한 더 악화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클린턴·오바마의 유산인 글로벌리즘은 어제의 역사다.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선이 확실히 그어진 디커플링이 지금 당장의 역사다. 글을 마치는 순간, 일본 정부의 중국산 드론 수입 전면금지 소식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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