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1월 23일 서해 창린도에서 김정은의 지시로 해안포 사격을 실시했다. 지난 11월 28일 적막감이 흐르는 연평도 앞바다. ⓒphoto 뉴시스
북한은 지난 11월 23일 서해 창린도에서 김정은의 지시로 해안포 사격을 실시했다. 지난 11월 28일 적막감이 흐르는 연평도 앞바다. ⓒphoto 뉴시스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섬들에 대한 요새화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서해 5도 안보와 연평도 주민들의 안전에 필수적이라고 평가받는 연평도 신항 건설이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은 2015년 갈도와 아리도에 이어 2017년 5월에는 강화도 인근 최남단 섬 ‘함박도’에 군 시설을 짓기 시작하며 최근까지도 서해 요새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연평도 포격 도발 9주기였던 지난 11월 23일에는 김정은이 황해도 남단의 ‘창린도’를 방문해 해안포 사격을 직접 지시했다. 창린도는 백령도에서 35㎞, 연평도에서 45㎞ 떨어져 있다. 우리 군은 북한이 11월 25일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의 창린도 방문을 스스로 공개한 뒤에야 창린도 포 사격 사실을 밝혀 논란을 빚었다.

북한의 창린도 포격이 있기 이틀 전인 지난 11월 21일, 연평도 주민 415명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연평도 신항 조기 건설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역시 연평도 포격 도발 9주기를 맞아 진행한 일이었다. 이 탄원서에서 연평도 주민들은 “육지와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은 물때를 맞추지 못하면 접안이 불가능하고, 불법조업 중국 어선 단속 등을 위한 해경 중형 경비정조차 접안하지 못한다”며 연평도 항만의 열악함을 토로했다. 국무총리는 ‘서해 5도 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연평도 주민들은 탄원서에서 “군사적 긴장 상태에서도 고향 섬을 떠나지 않고 거주하고 있는 섬 주민과 군인 가족들의 희망은 외면하고 경비함정조차 접안하지 못하는 국가관리 어항이라면 이는 주민들의 이동권이나 정주권, 어업권뿐만 아니라 해양주권마저 포기하는 행위”라며 “우리가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자괴감을 가지지 않게 살펴달라”고 호소했다.

예타 면제 세 번째 보류

현재 연평도 항만은 주민들의 주장대로 1000t 이하의 여객선만 물때에 맞춰 겨우 정박할 수 있다. 2010년 10월 연평도 포격 당시 2000여명의 주민들이 인천 등지로 대피했는데, 대형 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탓에 상당수 주민들이 어선을 이용해 거처를 옮겨야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NLL을 제멋대로 넘나들며 불법조업 기승을 부리는 중국 어선들을 단속하기 위한 해경 경비정들을 위해서도 연평도 신항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해군, 해경 경비정들은 연평도까지 2시간 이상의 이동이 필요한 인천항에 정박하고 있다. 이런 여건 탓에 지난 여름 태풍 ‘링링’이 서해에 들이닥치자 연평도 인근 해역의 해군과 해경 함정들은 40㎞ 떨어진 덕적도로 옮겨야 했다.

연평도 포격 이후 당시 이명박 정부는 연평도에 5000t급 선박이 접안 가능한 항만을 건설하는 계획 등을 담아 백령도, 독도 등 9개 섬과 함께 연평도를 ‘국가관리 연안항’으로 지정하는 작업을 추진해 2012년 8월 완료했다. 이후 2016년 9월 박근혜 정부는 제3차 전국 항만기본계획에 대한 수정계획을 고시했고, 2017년 5월 연평도 신항 건설은 예비타당성(예타)조사 대상 사업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2018년 3월 기재부는 해군 지원시설이 다수 포함되므로 해수부가 방사청과 사업비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며 예타조사 대상에서 철회했다. 이에 해수부는 전체 사업비 약 3171억원 중 68.7%인 2177억원, 방사청은 31.3%인 994억원을 분담하겠다고 정했다. 이후 해수부는 2018년 7월 재차 예타조사 면제를 신청했으나, 기재부는 해군 시설과 관련한 방사청의 사업비 분담 30%가 적다며 면제가 곤란하다고 통보했다.

이에 해수부와 방사청은 사업비 분담 규모를 다시 수정해 해수부는 1748억원(55.7%), 방사청은 1389억원(44.3%)을 각각 분담하기로 했다. 방사청이 사업비 분담을 높인 건 국방부 역시 연평도 신항 건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해군 관계자는 “연평도 항만은 현재 어선과 행정선이 정박하기도 벅차 해군 함정은 들어가지를 못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2018년 9·19 남북군사합의도 연평도 주민들 사이에서 예타조사 면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당시 남북군사합의는 ‘서해 해상에서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을 설정’ ‘평화수역과 시범적 공동어로구역에 출입하는 인원 및 선박에 대한 철저한 안전 보장’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데 “예타조사 면제 조건 중 하나인 남북교류협력 사업에 해당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일었다. 기재부는 예타조사 운용지침에서 ‘국가안보에 관계되거나 보안을 요하는 국방 관련 사업’ 또는 ‘남북교류협력에 관계’된 사업은 예타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이런 기대감을 꺾는 것이었다. 지난해 10월 해수부가 세 번째로 예타조사 면제를 신청했지만 기재부는 또 면제 보류를 통보했다.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에 위치한 창린도방어대를 시찰했다고 지난 11월 25일 보도했다. ⓒphoto 조선중앙TV
조선중앙TV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부전선에 위치한 창린도방어대를 시찰했다고 지난 11월 25일 보도했다. ⓒphoto 조선중앙TV

남북평화 이벤트에만 활용

연평도 주민들은 기재부의 결정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연평도 신항보다 덜 중요한 사업은 예타조사 면제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정작 안보적으로 중요한 사업은 예타조사 면제를 적용하지 않는 조치를 납득하지 못하겠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재부는 총사업비 24조1000억원에 달하는 도로철도공항 등 23개 사업을 예타조사 면제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 중 총사업비 4조7000억원으로 가장 규모가 큰 남부내륙철도 사업은 김경수 경남지사의 핵심 공약 중 하나여서 “정부가 김경수를 밀어주려고 예타조사를 면제했다”는 비판이 많았다. 연평도 주민들 사이에서 “기재부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역만 신경 쓰고 표 안 되는 연평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라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해 5도 평화수역본부 조현근 정책위원장은 “신항 건설이 한꺼번에 어렵다면 국방·해경 관련 보안부두라도 먼저 하면 되는데 이마저도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지난 포격 때도 주민들은 어선으로 대피했는데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이렇게 미루다가 결국 다음 정부로 넘기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해수부는 2020년 12월까지 연평도 신항 기본계획 변경을 검토한 후 2021년 9월 예타조사 면제를 다시 신청하겠다는 계획이다. 해수부의 계획대로 진행이 되더라도 공사 발주는 2024년 이후에나 가능한 상황이다. 2022년 착공하기로 했던 당초 사업 계획보다 2년 이상 늦춰지는 것이다.

연평도 주민들은 연평도가 정부의 남북 평화 ‘이벤트’에는 줄곧 활용되면서 정작 안전과 안보에 필수적인 사업은 해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토로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5월 군사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불빛’이라며 45년 만에 연평도 등대를 점등한 것이다. 당시 정부는 ‘일출~일몰’까지이던 연평도의 출어시간을 일출·일몰 전후로 각각 30분씩 늘리면서 야간 조업을 하는 어선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등대가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2016년 9월에도 해수부는 연평도 일대의 조업시간을 일출 전 30분, 일몰 후 1시간씩 연장했다. 일몰 후 1시간을 늘려줬던 당시에도 ‘등대가 필요하다’는 요청을 한 연평도 주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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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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