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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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후 장기간 교착상태에 빠졌던 미·북 관계가 연말을 앞두고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동안 자제했던 ‘로켓맨’이란 표현을 지난 12월 3일 꺼낸 데 이어, 북한 외무성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려 있다”고 미국을 압박하고 나섰다.

박정천 북한인민군 총참모장도 지난 12월 5일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아니다”란 담화를 내놨고, 같은 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도 ‘늙다리의 망령’이란 표현을 다시 꺼내들었다. 오히려 북한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란 핀잔을 들어온 문재인 정부는 미국으로부터는 ‘주한미군’ 철수 압박, 북측으로부터는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요구를 받는 등 난감한 상황이다.

지난 12월 6일 만난 구해우(55) 전 국가정보원 북한담당기획관(1급, 북한법 박사)은 “올 연말 소집 예고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중전회)를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구 전 기획관은 “북한이 연말 7기 5중전회를 예고하면서 ‘조선 혁명’이란 표현을 썼다”며 “조선 혁명은 곧 ‘남조선 혁명’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그간 선전선동을 하면서 ‘조선 혁명’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지만 당 문서나 중요회의 의제(어젠다)로 ‘조선 혁명’이란 표현을 쓴 것은 1990년대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이 조선 혁명이란 표현을 쓰면서 남한에 대한 예측 불가능한 무력사용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즉 미국에 대해 직접적인 무력도발을 하기보다 북한에 대해 구걸을 하다시피 저자세로 일관 중인 문재인 정부를 향해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주사파 리더 출신 국정원 고위간부

최근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이란 책을 펴낸 구해우 전 국정원 기획관은 나름 특이한 이력을 가진 대북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현재 미래전략연구원이란 민간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그는 전남 화순 출생으로 고려대 법대 재학 시절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돼 주사파 3대 조직 중 하나인 ‘자민통(자주민주통일)’을 결성한 뒤 도피와 수감 생활을 반복했다.

이후 ‘햇볕정책’을 추진하던 김대중 정부에서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을 한 직후에는 SK텔레콤 대북담당 상무로 특별 채용돼 북한을 직접 방문해 이동통신사업 관련 실무협상을 벌인 적도 있다. 구 전 기획관은 “북한을 직접 방문한 것은 3차례, 중국 등지에서 북측 인사와 협상을 벌인 것은 20차례 정도 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부터는 국정원 1차장(북한 및 해외담당) 아래 북한담당기획관(1급)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남재준 전 원장에 의해 특별 발탁된 경우다.

하지만 2013년 말 장성택 숙청 때 김정은 위원장의 국정장악력에 대한 견해가 남 전 원장과 엇갈리면서 이듬해 1월 사직서를 냈다. 국정원 북한담당기획관으로 발탁된 지 약 8개월여 만이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남 전 원장은 장성택 숙청으로 북한의 체제가 와해될 것이라 판단했고, 그는 친중파 숙청으로 김정은의 장악력이 강해질 것이라고 봤다. 결국 장성택 숙청 이후 김정은은 6년째 백마를 타고 백두산을 오르내리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반면 남재준 전 원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구속수감돼 현재 영어의 몸으로 형을 살고 있다.

구 전 기획관은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2016~2018년 분석과 2018년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거의 결론난 사항”이라고 했다. 2016년은 북한이 4차 핵실험(1월 6일)에 이어, 5차 핵실험(9월 9일)까지 한 해에만 2차례 핵실험을 단행한 해다. 미국의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권 때로, 당시 미국이 군사적 옵션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당시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60기가량의 핵무기 때문이었다.

이를 매년 20기씩 추가로 늘린다고 계산했을 때 2019년 말 현재 북한이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는 줄잡아 100기가 넘는다. 개전 초 북한의 핵무기를 100% 제거하지 못하면 반격받을 가능성 때문에 북한에 대한 폭격 등 군사행동을 단행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미국은 북한의 6차 핵실험(2017년 10월) 이후 ‘군사행동은 이미 시기가 지났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반대로 북한의 남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 사용 가능성은 더 높아진 상태다. ‘절대 반지’로 불리는 핵무기를 이미 보유한 상태라서 무력침공을 받은 남한이 재래식 무기만을 들고 반격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구 전 기획관은 “북한의 대남전략은 2016년 5월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 이후부터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단언했다. 북한에서 당 대회는 지난 36년간 열리지 않다가 2016년 36년 만에 처음 열렸다. 1980년부터 2016년까지 북한이 대체로 수세적 상태에서 한두 번씩 공격적 이벤트를 벌이던 것에서, 2016년부터는 핵무장이 완성됐다는 전제하에 대남전략이 공격적인 태도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시기적으로는 김정일 집권 때와 그 아들인 김정은 집권 때로 크게 나뉜다.

그는 이를 ‘파키스탄 모델’에서 ‘신(新)베트남 모델’로의 변화로 얘기했다. 베트남 모델은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개혁개방에 나선 것을 뜻하는데, 베트남 모델 앞에 ‘신(新)’ 자를 붙인 것은 핵무기의 유무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북한은 2016년부터 북한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위해 ‘친미비중(親美非中)’, 심지어 경기도 평택의 주한미군 주둔까지 용인할 수 있다는 태도라고 봤다. 2년 후인 2018년 6월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만나 사상 최초 미·북 정상회담을 벌인 것이 단적인 예다.

근간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
근간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대북정책은 갈팡질팡 난파선”

구 전 기획관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북한이 남한을 전면적으로 조기 타격한 뒤, 핵무기를 지렛대로 삼아 항복을 받아낸다는 가능성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북한은 미국과 협상에 나서려 할 것”이라며 “남한의 보수나 진보나 북한을 너무 나이브(naive)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주사파 리더 출신인 그는 “북한 지도부의 특성은 ‘스탈린주의’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입각해 군사적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안 먹으면 어리석게 본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과정에서 남한이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은 사실상 전무하다. 구 전 기획관은 “문재인 정부는 얼치기 친북친중 좌파정권”이라며 “북한 입장에서도 말로는 자기 편을 드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별로 도와주는 것도 없는 문재인 정부 대신 훨씬 강화된 종북정권을 세우는 구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구해우 전 기획관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갈팡질팡하면서 난파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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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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