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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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참사 특별법 제정으로 지난해 말 설립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12월 2일 “공정위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처리가 부실했다”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유해성분을 포함한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회사들이 ‘안전성분을 사용했다’거나 ‘건강에 유익하다’며 제품을 광고한 행위는 표시광고법 위반으로 공정위 제재 대상인데, 당시 공정위는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는 의견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공정위의 이런 조치에 문제가 있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고, 특조위가 여기에 의견서를 보탠 것이다.

특조위 “공정위의 사건 처리 부실”

특조위의 이런 결정엔 유선주 전 공정거래위원회 심판관리관(국장)의 역할이 컸다. 유 전 국장은 1998년 사법고시 합격 후 창원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근무하다 2014년 공정위 심판관리관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심판관리관은 공정위에 상정된 안건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지원·보좌하는 자리다. 그는 임기 동안 공정위 내부 조사국 등이 작성한 조사보고서, 위원회 의결 등에 대해 적지 않은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 조사, 처분이 적절치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해서는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유 전 국장은 부하 직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 파면조치를 받았지만 그는 “사실상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온 나를 몰아낸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현재 그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포함한 공정위의 각종 부실조사 의혹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장이었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물론 전·현직 공정위 임원들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범인은닉도피 등의 혐의로 고소한 상황이다. 지난 12월 9일과 10일 이틀간 대전역 인근에서 유 전 국장을 만나 그가 경험한 공정위에 대해 들었다.

“김상조도 ‘원보이스’ ‘조직 보호’ 강조”

유 전 국장이 부장판사로의 승진 계획을 버리고, 공정위 심판관리관직을 도맡은 건 좀 더 새롭고 활기찬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2016년 공정위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처리는 그 기대를 일축시키고 그를 내부고발자로 변모시켰다.

“공정위는 2012년 SK케미칼, 애경산업 등의 허위과장 광고에 대해 ‘인체무해 광고가 없고 유해성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근데 2016년 피해자 측에서 광고 증거들을 모아 공정위 서울사무소에 제출하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때 나도 이 사건을 처음으로 인지했는데, 사안이 작지 않았다. 이를 보고서로 정리해 조사국 관계자부터 위원장까지 직원 모두에게 전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지금 와서 위법 결정을 내리면 지난 조사가 잘못됐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돼서다. 관련 기업에 또 면죄부를 준 것이다.”

그는 문 정부 집권 후 새 공정위원장으로 취임한 김상조 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재벌저격수로 불리며 기업들에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터라 가습기살균제 문제를 다르게 처리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유 전 국장은 2017년 7월 관련 보고서를 김 정책실장에게 직접 보고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원보이스로 가자’고 하더라.‘이들 기업이 표시광고법을 위반했다고 번복하면 공정위가 검찰 조사를 받을 수도 있다.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라고 하더라.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만큼 공정위 폐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건을 그렇게 묻고 청와대로 향했다.”

유 전 국장에 따르면, 당시 공정위 출신 SK 측 인사의 가습기살균제 사건 청탁도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2016년 공정위의 표시광고법 위반 관련 심의절차 종료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올 6월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고소장에 이를 적시했다.

임기 동안 그가 목격한 공정위의 부적절 안건 처분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라고 한다. 유한킴벌리의 정부 입찰담합에 대해 ‘리니언시’(담합행위를 한 기업이 자진신고 시 처벌을 경감·면제하는 제도)를 적용한 것도 석연치 않은 부분 중 하나로 본다. 유한킴벌리는 2014년 김앤장법률사무소를 통해 지난 10여년간의 담합행위를 자진신고했는데, 이에 대한 공정위 조사는 처분시효가 얼마 안 남은 2016년 말에나 이뤄졌다.

“당시 공정위는 관련 자료 제출만 요구했다. 현장조사는 그로부터 1년 후에야 이뤄졌다. 관련 증거들은 사라졌고 법적 공소시효는 지나 형사처벌은 불가해졌다. 결국 2018년 2월 유한킴벌리는 리니언시 적용으로 과징금까지 면제받았다. 사실상 봐주기 조사였다.”

당시 제출된 자진신고서, 담합에 가담한 대리점 측 진술서 등엔 유한킴벌리의 강요행위가 있었다고 한다. 강요가 있으면 리니언시 적용이 불가한데 공정위는 이를 그대로 적용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공정위가 처리하는 사건 중 90% 이상은 기업 담합 사건이다. 유 전 국장은 “공정위의 이런 식의 업무처리로 이들 사건 중 납득하기 어려운 조사, 처분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조사 착수, 처분 기한 등 관련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건은 신고받자마자 조사에 들어가지만, 어떤 건은 1년이 지나도록 건들지 않는다. 심지어는 제3자의 신고로 시작된 담합 혐의 조사가 자진신고 건으로 바뀌어 리니언시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현장조사를 나가 기업으로부터 자진신고를 받아오는 거다”라고 말했다.

“공정위, 제 목소리 낼 수 없다”

유 전 국장은 공정위와 대기업, 대형로펌 관계자들 간 잦은 면담, 공정위 직원의 대기업 재취업 관행 등이 사건 처분 공정성을 저해하며 이런 의혹을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결국 이들 간 친밀 관계가 공정위 조사 객관성, 투명성을 떨어뜨리고 가습기살균제 사건 부실조사 의혹까지 만든 것이다. 지금 공정위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유 전 국장이 2014년 공정위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대형로펌들로부터 불공정거래 사건 처분 등과 관련한 청탁 연락이 적지 않게 왔다고 한다.

이태규 바른미래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공정위 직원들이 주요 기업, 법무법인과 접촉한 횟수는 3000여회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사건 이외의 건으로 접촉한 횟수는 740여회에 이른다. 가장 빈번히 접촉한 기업집단, 법무법인은 SK(112회)와 김앤장법률사무소(802회)였다.

공정위의 안건 처분은 사실상 법원의 1심 판결과 같은 효력을 발휘한다. 때문에 유 전 국장은 2015년 이른바 ‘회의록 지침’ 작성으로 공정위를 법원만큼 투명한 조직으로 개선하기 위해 힘썼다. 전체회의 시 녹음 의무화, 합의 내용 등 외부유출 규정, 상임위원 표결 근거 제시 등을 구체화한 것 등이다. 하지만 실제 지침으로 반영된 것은 극히 일부다.

최근 공정위는 직제 변경으로 유 전 국장 후임을 뽑는 심판관리관 공모절차를 외부전문가만 지원할 수 있는 ‘경력개방형’에서 내부직원도 지원 가능한 ‘일반개방형’으로 바꿨다. 그동안 공정위는 판사 출신 외부인사를 데려오고자 노력했는데, 이와는 상반된 조치다.

“직제를 바꾸는 건 행정안전부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근데 이렇게 한 건 사실상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외부인사를 배제하겠다는 거다. 공정위의 최우선 목표인 소비자 후생을 높이고, 끊이지 않는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선 외부 감사, 견제가 필요하다. 현재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사이에선 공정위를 해체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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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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