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1 복합형 소총 시험 사격 모습. ⓒphoto 조선일보
K-11 복합형 소총 시험 사격 모습. ⓒphoto 조선일보

지난 12월 4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124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는 최근 열린 회의 중 가장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한때 세계 최초의 복합형 소총으로 관심을 끌었던 K-11에 대한 사업중단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감사원 감사 결과와 사업 추진 과정에서 식별된 품질과 장병 안전 문제, 국회 시정요구 등을 고려해 사업을 중단하는 것으로 심의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K-11은 2010년 군에 양산물량 일부가 보급된 지 9년 만에 사업이 중단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지금까지 개발 및 양산에는 약 10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청은 당초 초도물량(249정)과 2차 양산물량 등을 합쳐 4178정을 양산키로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었다.

K-11 복합형 소총은 여느 소총처럼 5.56㎜ 총탄 외에 20㎜ 지능형 공중폭발탄까지 발사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5.56㎜ 자동소총과 20㎜ 유탄발사기를 하나로 묶은 무기라고 할 수 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를 이용해 적과의 거리를 측정한 뒤 20㎜ 공중폭발탄을 발사하면 ‘몇 m 날아가 터져야 한다’는 정보가 공중폭발탄 속의 칩에 자동으로 입력된다.

정보를 받은 공중폭발탄은 발사된 뒤 적을 향해 날아가면서 전기식 뇌관을 움직이며 회전을 시작한다. 회전 숫자로 거리를 확인, 목표물 상공에 도달하면 공중폭발탄 내부의 센서가 작동해 적의 머리 위에서 터지는 것이다. 시가전에서 벽 뒤에 숨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야전 지휘관과 보병들의 오랜 꿈을 실현해준 무기로 관심을 끌었다. 특히 미국도 개발을 추진하다 포기했던 최첨단 소총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산에 들어가 실전배치까지 시작했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큰 기대를 모았던 K-11은 양산된 뒤에도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2010년 6월 처음으로 249정이 생산된 뒤 야전운용 시험 중 결함이 계속 발견돼 ‘불량’ 논란을 빚었다.

2012년 10월엔 육군본부 주관으로 K-11 복합형 소총 사업 야전운용성 확인 사격 중 총기 안에 있던 20㎜탄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로 A일병이 팔과 손등에 파편에 의한 열상 및 찰과상을 입고 입원하기도 했다. 이미 생산됐던 K-11 246정을 전량 리콜해 문제점을 개선토록 한 뒤 양산을 재개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사통장치 균열 등의 결함이 계속 드러나면서 2014년 11월까지 914정만 군에 납품됐다.

2018년 3월에는 사통장치 균열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변경 입증시험 중 총기 몸통이 파손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한 자릿수에 불과한 명중률도 도마에 올랐다. 2018년에는 2019년도 관련 예산으로 34억2500만원이 편성됐다가 연구개발비 33억6900만원이 국회에서 삭감되면서 사실상 사업이 중단됐다.

국회 국방위는 지난 3월 K-11 전력화 전 과정에 대해 감사원 감사청구를 했다. 감사에 나선 감사원은 지난 9월 “방위사업청장, 육군참모총장, 국방과학연구소장 등에게 앞으로 작전운용 성능 등에 못 미치는 무기를 개발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요구한다”며 “특히 방사청장에게 K-11 소총의 명중률 저조, 사격통제장치 균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근본대책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이 같은 감사 결과 등을 토대로 방사청이 사업중단을 결정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시간과 돈이 허비됐다는 점에서 K-11 사업중단의 책임소재도 논란거리다. 그동안 설계와 개발을 맡았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사업관리 책임을 맡은 방사청, 양산을 맡았던 업체 간에 책임 공방이 있어왔다. 방사청은 각종 문제 발생에 따른 납기지연에 대해 업체에 일종의 벌금인 지체상금을 부과했다. 업체들은 이에 대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현재까지 법원은 업체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 8월 업체 지체상금 30억4000만원 전액에 대해 지체상금 부과가 부당하다고 선고했다. K-11의 설계 결함으로 납품이 지연된 것이므로 업체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어 대법원은 지난 11월 방사청의 지체상금 상고 기각 판결을 선고하며 원심을 확정했다. K-11 문제의 핵심이었던 사통장치에 대해 감사원도 군(ADD)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감사 결과 레이저 거리측정기, 유효사거리 명중률, 전지폭발 위험성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ADD의 개발 잘못으로, 사통장치 균열 원인도 연구개발 시 ADD의 내구성 개발기준 설정 미흡 등 사통장치 설계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ADD가 47차례에 달하는 설계 변경을 한 것도 ADD에 불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K-11 사업으로 축적된 기술 활용해야

방사청은 이에 대해 사업중단에 대한 책임소재는 앞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법원 판결은 사업중단에 대한 책임소재가 아니라 이미 납품된 914정의 지체상금에 대한 것”이라며 “앞으로 ADD, 업체 등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 책임소재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 일각에선 ADD나 방사청이 업체에 일부 책임을 미루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책임소재 문제와 함께 K-11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 활용 등 교훈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K-11과 비슷한 소총을 우리보다 먼저 개발했다가 포기했던 미군 사례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군은 K-11과 비슷한 XM-29를 개발했지만 1정당 3만달러를 상회하는 높은 가격, 10㎏이 넘는 무게 등 때문에 실전배치를 포기했다. 대신 XM-29의 20㎜ 공중폭발탄 발사기만 떼내 25㎜로 화력을 강화한 XM-25를 개발, 아프가니스탄전 등 실전에 시험 투입했다. 하지만 6.36㎏에 달하는 무게와 1정당 2만5000~3만달러에 달하는 가격, 뇌관 폭발 사고 등으로 2018년 7월 개발이 중단됐다. 하지만 미군은 차세대 소총 개발에, XM-29 및 XM-25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첨단 사통장치 기술 등을 활용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ADD가 2015~2017년 종전 K-11의 문제점을 보완한 개량형 K-11을 개발했는데, 감사원 감사에서는 이미 도입된 초도양산형 모델만을 대상으로 시험이 이뤄졌다고 한다. 정홍용 전 국방과학연구소장은 “개량형 K-11을 갖고 평가하고 발전시켰어야 하는데 사업을 무조건 중단시키면 K-2 ‘흑표’ 전차 파워팩·장거리 레이더 사업처럼 그동안 투자한 돈은 매몰비용으로 날아가는 것”이라며 “미래 역량 활용도 막아버린다면 방산비리보다 더 나쁜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K-11에 대해 인도, UAE,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구매에 관심을 보여왔기 때문에 방산수출 증대를 위해서도 K-11 기술을 사장시켜서는 안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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