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 시내에 내걸린 새해 예산 국비 확보 경축 현수막. ⓒphoto 이동훈
전북 군산 시내에 내걸린 새해 예산 국비 확보 경축 현수막. ⓒphoto 이동훈

지난 12월 16일 찾아간 전북 군산 시내 곳곳에는 더불어민주당 군산지역위원회가 걸어둔 현수막이 있었다. 그중 단연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군산시청과 시의회가 있는 군산시 조촌동에 내걸린 ‘2020년 군산시 국가예산 전년대비 320억 증가, 1조536억원 국회 최종 확정’이란 현수막이었다. 지방 소도시인 군산시의 인구는 27만명. 1인당으로 환산하면 약 390만원가량의 국가예산이 군산에 떨어진 셈이다.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부산과 문 대통령의 친구가 시장으로 있는 울산이 각각 사상 최대 규모인 7조755억원과 3조2175억원의 내년 예산을 확보했다고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자화자찬을 벌인 적이 있다. 광역시에 해당하는 부산과 울산의 인구는 각각 347만명과 114만명. 수조원의 예산도 1인당으로 환산하면 부산은 203만원, 울산은 282만원 정도에 그친다.

1인당으로 따지면 인구 27만명에 그치는 군산의 1인당 예산 확보는 390만원으로, 제2도시 부산(203만원)의 무려 2배 가까운 예산을 따내간 셈이다. 초수퍼 예산으로 편성된 2020 예산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었다.

잇따른 대기업 철수로 망해가던 군산이 돈벼락을 맞았다. 초(超)수퍼 예산이라고 불리는 512조원 규모의 2020년 예산이 확정되면서 예산을 대거 배정받았다. 실제 군산 시내 곳곳에는 ‘상권 르네상스 사업선정 구도심 일원에 80억’ ‘해상풍력 산업지원센터 구축 20억’ ‘군산 예술콘텐츠활성화 특화사업 10억’ ‘중고차 수출 복합단지조성 10억’ 등 곳곳에 ‘억’ 자가 붙은 현수막들이 주렁주렁 내걸려 있었다. ‘억’ 자가 들어가지 않으면 남 보기 부끄러워서 현수막조차 못 내걸 정도였다.

국립 군산대 화장실에 9억

군산에 있는 국립 군산대학교에는 소위 ‘노후화장실 개보수’를 명목으로 9억원의 국가예산이 책정됐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의안을 확인한 결과, 군산대 화장실 예산은 원래 국립대 지원 심의 대상 항목에도 없었다. 하지만 막판에 ‘혜성’처럼 끼어들어 국비를 따내간 소위 ‘쪽지 예산’이었다. 대학교 화장실이 어느 정도 노후했길래 화장실 개보수에 무려 9억원이나 되는 국비가 필요할까. 지난 12월 16일 군산시 미룡동의 군산대 대학본부 1층에 있는 남자화장실을 찾아갔다.

남자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변 후 레이저 감지로 자동으로 물을 내려주는 소변기 3개가 눈에 들어왔다. 대변기에도 용변 보는 사람이 앉으면 자동으로 감응하는 센서가 달린 비데가 장착돼 있었다. 화장실 한쪽에는 겨울철 화장실 온도를 따듯하게 유지해 편안하게 대소변을 볼 수 있게 하는 난방기까지 달려 있었고, 개수대 뒤편에는 핸드 드라이어가 설치돼 있었다. 노후화장실이라고 해서 소위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는 화(和)변기가 설치돼 있고 대소변 악취에 찌든 화장실을 생각했는데, 적잖이 실망이었다.

대학본부 맞은편 황룡문화관에 있는 군산대 박물관 화장실, 대학본부 옆의 제1학생회관 화장실, 대학본부 뒤 인문대학 화장실도 모두 확인했으나 이 중 노후화장실이라고 할 만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간혹 악취가 나는 곳이 있었으나, 이는 다분히 사용하는 사람의 불량한 매너와 제대로 청소가 되지 않아 생긴 문제였다. 군산대 시설과의 한 관계자는 “대학본부 화장실은 리모델링이 끝난 경우로, 단과대 건물에는 아직 화변기가 남아 있는 곳이 많다”며 “이번에 책정된 예산은 화변기 교체에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군산대 화장실 9억원’ 정도는 군산에서 벌어지는 다른 사업에 비하면 ‘껌값’이다. 군산 시내 곳곳은 요즘 공사판이다. KTX, SRT 고속철 환승역이 있는 전북 익산역에서 군산역으로 향하는 장항선 철로 옆 논밭 위로는 복선전철 공사가 한창이다. 익산에서 군산을 오가는 장항선 무궁화호 열차에는 타는 사람이 거의 전무해 텅텅 비어가다시피 했는데, 무슨 공사일까 궁금해졌다.

새만금방조제 신시배수갑문 남쪽에 조성 중인 새만금신항. ⓒphoto 이동훈
새만금방조제 신시배수갑문 남쪽에 조성 중인 새만금신항. ⓒphoto 이동훈

텅 빈 국가산단으로 산업철도 공사

군산역에서 내려 철로공사가 끝나는 곳을 따라가 봤다. 신설되는 철로가 향하는 곳은 과거 한국GM(옛 대우자동차) 군산공장과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자리한 군산국가산업단지 앞. 공사 중인 철로는 지금은 텅 비어버린 옛 한국GM 군산공장 동문 앞을 고가로 통과해 군산항 쪽으로 크게 커브를 틀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철로가 군산자유무역지역이 있는 군산항(외항) 6부두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신설 중인 산업철도의 이름도 ‘군장(군산·장항) 국가산단 인입철도’.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총사업비만 6220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인데, 내년에도 이 공사에 320억원이 들어갈 예정이다. 이 철도와 이어지는 장항선 익산~대야(군산시 대야면) 이설에 360억원이 추가로 들어가니 사실상 680억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군산 최대 기업이었던 한국GM과 현대중공업이 모두 군산에서 철수하면서 철도로 실어나를 만한 중장비 수요는 대폭 줄어든 상태인데도 이런 철도가 신설되고 있다.

차가 없는 출고장과 배가 없는 도크를 연결하는 산업철도 신설에 뒤늦게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있으니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국토교통부와 산하 새만금개발청 등 관계기관을 통해 확인하니, 향후 이 철도는 군산항 인근에서 새로 가지를 뻗어 향후 신설되는 새만금신항 인근까지 연결된다고 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확장 이전이 결정된 군산공항. ⓒphoto 이동훈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확장 이전이 결정된 군산공항. ⓒphoto 이동훈

새만금방조제 바깥에는 또 신항만

군산항에서 차를 타고 찾아간 군산시 옥도면의 새만금방조제 신시배수갑문 일대. 신시배수갑문은 농업용지를 조성한답시고 멀쩡한 바다를 메워 ‘단군 이래 최대 삽질’이라고 불리는 새만금방조제 최서단에 있는 갑문이다. 만경강과 동진강에서 모여든 강물을 서해로 토해내는 신시배수갑문 남쪽의 방조제 바깥 바다에서는 또다시 막대한 토사를 퍼부어 바다를 메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새만금에 새로 조성되는 ‘새만금신항만’ 공사였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새만금신항만 공사에 책정된 당초 내년 정부예산은 388억원이었는데, 국회에서 69억원이 증액돼 458억원으로 확정됐다. 무엇에 쓸지 몰라 태양광 패널과 해상풍력 발전기로 채운다는 방조제 안쪽도 아직 매립하기 전인데 방조제 바깥을 메워 잡화부두 2개 선석을 조성한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새만금신항만이 들어서는 신시배수갑문 인근까지는 군산국가산단에서 가지를 뻗은 산업철도와 새만금과 전주를 연결하는 ‘새만금~전주 고속도로’도 연결될 예정이다. 전북도청 소재지인 전주와 군산 간에는 고속도로 못지않은 선형을 자랑하는 ‘전주~군산 자동차 전용도로’가 이미 놓여 있다. 새만금~전주 고속도로의 경우 올해 예산심사에서 당초 1985억원이 심사에 올랐으나, 여기서 200억원이 증액된 2185억원으로 확정됐다.

신시배수갑문 일대에서 확인해보니, 향후 신설될 ‘새만금~전주 고속도로’와 연결되는 소위 ‘새만금 동서 2축’은 거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바다 위에 한줄기 둔덕이 솟아 있는 ‘모세의 기적’과 같은 형태였다. 서해바다 한가운데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동서 2축’을 지나 산업철도와 고속도로가 연결된다고 하니 국내 ‘토건족’들의 배포도 중국 못지않아 보였다.

막대한 예산을 바닷물 속에 쏟아붓고 있는 새만금신항의 필요성은 기존 군산항을 찾아간 결과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같은 날 찾아간 군산항 외항에 자리한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 군산항 연안여객터미널 옆에 자리한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은 소위 ‘대중국 교역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면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개항한 국제여객터미널이다. 하지만 개항한 지 15년째를 맞는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이 개설 중인 항로는 군산~스다오(石島) 한 개 항로가 유일했다. 개항 초 개설됐던 군산~옌타이(烟台), 군산~칭다오(青島) 항로는 수요부족으로 인해 모두 폐쇄됐다. 산둥성 스다오항은 통관검역이 덜 엄격해 순수 관광객보다 보따리상이 애용하는 노선이다.

실제 파도를 형상화했다는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 1·2층 입국장과 출국장은 텅 빈 채 중국 보따리상들만 여장을 풀고 쉬고 있었다. 해수부 군산지방해양수산청에 따르면, 군산항 국제여객터미널도 오는 2021년까지 총사업비 121억원을 들여 증축하기로 했는데 이 중 내년 예산에는 설계비 4억원이 반영됐다. 군산지방해수청 항만건설과의 한 관계자는 “군산항은 지금처럼 쓰고, 새만금항은 새만금산업단지 화물을 처리할 예정”이라며 “군산항 여객터미널을 새만금으로 이전할 계획은 없다”고 했다.

군산공항도 새만금으로 확장 이전

군산시 옥서면에 있는 군산공항 인근에도 올해부터 돈벼락이 쏟아진다. 지난해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을 뜻하는 소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사업’의 하나로 선정된 새만금국제공항이 올해 신규 사업으로 확정돼 처음으로 40억원의 예산이 반영되면서다.

새만금국제공항은 군산시 옥서면에 있는 지금의 군산공항 서쪽의 공항 예정부지에 길이 2500m 활주로 한 본(本)과 국제여객터미널을 갖춘 새로운 국제공항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새만금 국제공항 신설에는 2020년 40억원을 시작으로 오는 2028년까지 총사업비 7912억원(잠정)이 투입될 예정이다.

그간 전북도는 전국 광역지자체 중 전북에만 국제공항이 없다며 과거 김제에 국제공항 신설을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수요부족으로 2005년 김제공항을 중단하고, 군산공항 확장 이전으로 방향을 틀었다. 결국 지난해 ‘새만금국제공항’을 예타면제 대상 사업으로 끼워넣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인구 182만명에 불과한 전북, 그중 인구 27만명에 불과한 군산에 국내선 공항에 비해 CIQ(세관·출입국·검역)에 따른 막대한 유지운영 비용이 들어가는 국제공항을 건립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다.

지난 12월 16일 찾아간 군산공항. 이날 군산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비행기는 군산과 제주 간을 오가는 6편에 불과했다. 취항하는 항공사는 대한항공과 군산을 지역기반으로 태어난 이스타항공 2개사가 전부였다. 호남을 기반으로 태어난 아시아나항공조차 수요부족으로 2001년 군산공항에서 철수한 이래 20년 가까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군산공항 이용객은 29만명에 불과했다.

지금도 군산에서 호남권 거점 국제공항인 전남 무안공항까지는 서해안고속도로로 1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내년 예산에서는 무안공항을 경유하는 광주송정~목포 간 호남고속철 2단계 공사와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도 당초 예산안에서 각각 480억원, 10억원씩 증액된 900억원과 20억원이 책정됐다. 이렇게 되면 전북 익산이나 정읍 등지에서는 무안공항까지 거리가 1시간 이내로 줄며 군산공항보다 더 가까워진다.

하지만 국토부가 내놓은 신설 새만금국제공항의 예상이용객은 개항 첫해인 2029년(예정) 73만명, 2055년 84만명에 달한다. 2017년 한서대와 우주엔지니어링이 국토부의 의뢰로 새만금국제공항의 항공수요를 조사했을 때는 2029년 75만명, 2055년 132만명으로 예측한 바 있는데, 수요예측마저 들쑥날쑥한 셈이다.

4+1 협의체 원내대표급 회동. (왼쪽부터)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조배숙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photo 뉴시스
4+1 협의체 원내대표급 회동. (왼쪽부터)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조배숙 민주평화당 원내대표, 김관영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photo 뉴시스

‘4+1’ 호남 의원에게 포로가 된 예산

군산이 막대한 돈벼락을 맞게 된 데는 군산을 비롯해 군소 정당이 난립한 호남의 복잡한 정치지형도 한몫했다. 군산을 지역구로 하는 현역 의원은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는 김관영 의원(재선·전북 군산)이다. 바른미래당 당권파(손학규계)에 속한 김관영 의원은 소위 ‘4+1 협의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손학규계)·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를 통해 512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 초(超)수퍼 예산을 통과시킨 주역 중 하나다. 공교롭게도 여당인 민주당과 보조를 맞춰 512조원에 달하는 초수퍼 예산안을 통과시킨 4+1 협의체 가운데 바른미래당 당권파(손학규계·13석), 민주평화당(정동영계·5석), 대안신당(박지원 천정배계·8석) 모두 호남에 지역기반을 두고 있다.

‘4+1 협의체’ 실무대표로 참가한 김관영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전북 군산,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3선)은 전북 정읍고창이 지역구이다. 당적은 바른미래당에 두고 민주평화당 최고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주현 의원(초선·비례대표)과 정의당 원내대표로 있는 윤소하 의원(초선·비례대표)은 내년 총선에서 각각 전북 전주시을과 전남 목포 지역구 출마를 예고하고 있다.

또 여기에 바른미래당 당권파로 분류되는 주승용 국회부의장(4선)은 전남 여수시을, 민주평화당 대표 정동영 의원(4선)과 원내대표 조배숙 의원(4선)은 각각 전북 전주시병과 익산시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대안신당의 리더 격인 천정배 의원(6선)과 박지원 의원(4선)은 각각 광주 서구을과 전남 목포가 지역구다.

여당인 민주당이나 나라 곳간을 지키는 기획재정부 입장에서는 예산안 등 국회 현안 처리에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4+1 협의체’ 소속 호남 출신 군소 정당 ‘빅브라더’들의 체면을 살려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실제로 예산 폭탄을 맞은 군산의 현역 의원인 김관영 의원은 2020 예산안을 처리한 직후인 지난 12월 12일, 군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총선에 바른미래당으로 나설지 무소속으로 나설지 군산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할 생각”이라면서 탈당을 시사했다.

정치권에서는 김관영 의원이 내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뒤, 민주당으로 원대복귀하는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예산 퍼주기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에서 내년 총선 출마가 유력한 인사는 민주당 군산지역위원장을 지낸 신영대 전 청와대 행정관과 ‘흑석동 재개발 몰빵 투자’ 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다.

혼탁한 금강을 끼고 익산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군산 출신 소설가 채만식이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탁류(濁流)’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탁류’에 등장하는 일제 때 군산 미두장(米豆場)의 풍경이 지금과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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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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