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로 잠긴 옛 미군 기지 캠프게리오웬 정문 너머로 대형 철제 다리가 보인다. 이 기지 부지는 2007년 반환됐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photo 이성진 기자
자물쇠로 잠긴 옛 미군 기지 캠프게리오웬 정문 너머로 대형 철제 다리가 보인다. 이 기지 부지는 2007년 반환됐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photo 이성진 기자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선유리 일대 건물들은 일부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980~1990년대 지어진 낡은 모습이다. 수도권에선 보기 어려운 1층 높이의 다방이나 체육사 등의 점포들이 수십 년간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빛바랜 가게가 즐비한 이차선 길가를 지나다 보면 고철 같은 주황색 대형 철제 다리를 발견할 수 있다. 1950년대 미군 기지 캠프게리오웬이 들어서면서 정문 역할을 하던 다리다. 캠프게리오웬 부지가 한국 정부로 반환된 건 2007년. 이후 파주시는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했지만 현재까지 정문 역할을 하던 다리만 자물쇠로 굳게 잠가놨을 뿐 별다른 개발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무너져가는 철조망과 낡은 건물 더미 등이 미군부대가 떠난 빈자리를 채우고 있고 주변은 수풀, 갈대만 무성하다. 인근 부동산업체 사장은 “미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상권이 무너졌다. 개발한다는 말만 몇십 년간 이어질 뿐이다. 이곳이 다시 살아날지는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캠프게리오웬과 인접해 있는 캠프자이언트 부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같은 시기에 반환됐지만, 10년이 넘도록 활용되지 못한 채 공터로 방치돼 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출입금지 표지판과 철조망 등이 과거 미군 부지의 경계를 두르고 있을 뿐이다. 인근 버스정류소의 이름은 여전히 ‘자이언트부대’다.

이 두 곳 기지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위치한 파주시 조리읍 캠프하우즈 부지 역시 반환 후인 2009년 근린공원 등으로 개발하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개발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부지만 시민축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곳곳엔 철거되지 않은 미군 막사가 멀리서부터 눈길을 끈다.

파주시청 관계자는 “지역 개발을 위한 자유제안 공모를 진행했는데 참여 사업자가 적어 개발이 늦어졌다. 하우즈 부지의 경우 2009년 사업자로 선정된 A사가 사업시행 자격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나 시가 사업자지정을 취소하면서 공원 조성 사업이 미뤄졌다. 최근 종합병원 유치 등을 추진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개발 상황은 단지 캠프자이언트·게리오웬·하우즈만의 일이 아니다. 경기도청에 따르면, 파주시에 위치한 캠프그리브스·스텔톤·에드워드도 미군부대가 떠난 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돌려받아도 걱정”

정부는 지난 12월 11일 제200차 SOFA(한·미 주둔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에서 미군 기지 4곳, 즉 경기도 원주 캠프이글과 캠프롱, 인천 부평 캠프마켓, 동두천 캠프호비 쉐아사격장을 즉시 반환받기로 했다. 오염정화 책임, 기지 환경관리 강화방안, SOFA 관련 문서 개정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협의한다는 조건으로 이뤄진 반환 합의다. 기지 폐쇄 이후 10여년 만에 결정된 반환인 만큼 환영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지자체들 사이에선 이들 부지를 돌려받아도 걱정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한·미 간 오염정화 비용 부담 문제를 해결한다 해도 ‘부지 활용’이란 과제가 남는데, 자칫 파주에 위치한 캠프자이언트나 캠프게리오웬처럼 부지 활용을 위한 개발이 지지부진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주한미군 기지 반환은 한국과 미국이 2002년 한강 이북 기지를 통합하고 일부는 평택으로 옮긴다는 내용의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합의하면서 시작됐다. 국토 균형발전, 도시 인구증가에 대비해야 했던 한국과, 산재된 기지를 재조정해야 했던 미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시행된 조치다. 용산 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 내용의 ‘용산기지이전계획(YRP)’이 수립된 것도 이 무렵이다.

현재 반환대상 미군 기지는 총 80곳으로 이번 SOFA 합동위원회에서 결정된 4곳을 포함해 총 58곳이 지금까지 반환됐다. 경기도청이 국방부 자료를 토대로 자체적으로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국 반환대상 미군 기지 면적만 180㎢에 이른다. 이 중 173㎢ 면적의 기지가 경기도권에 위치한다. 2016년 기준으로는 반환된 전국 기지 면적 59㎢ 중 57㎢가 경기도권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국 측과 지속해서 협의 중인 사안이다 보니 국방부 차원에서 전체 현황을 확인해줄 순 없다”면서도 “많은 부지가 의정부, 동두천, 평택 등 경기도 쪽에 쏠려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들 기지 면적이 작지 않은 만큼, 미군 기지 공여지역과 그 주변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2006년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 특별법’을 제정해 2009년을 전후로 반환된 미군 기지에 대한 발전종합계획을 확정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주한미군 공여구역과 주변지역에 각종 공공시설, 산업단지 등을 개발하는 총 539개 사업에 21조3000억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었다. 이들 사업은 대부분 지자체가 주도한다.

하지만 계획 수립 이후 정부, 지자체가 거둔 사업 성과는 부산시 부산진구 캠프하야리아 부지 시민공원 조성과, 경기도 동두천 캠프캐슬 부지의 동양대학교 북서울 캠퍼스 조성 사업 단 두 가지뿐이다. 그 외 개발 사업은 파주시 기지 개발 사업과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반환된 기지를 관할해야 하는 지자체에서도 적지 않은 우려가 나온다. 인천시청 관계자는 “2009년 부평 미군부대 지구단위 계획을 수립해 각종 공공시설과 도로, 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반환이 늦어지면서 변경이 불가피해졌다. 주민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아직 어떤 사업을 진행할지 결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동두천시의 경우 반환받는 캠프호비 쉐아사격장 활용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면적이 약 2만3000㎡ 정도로 작은데다 인근에 LNG 복합화력발전소가 들어서 있는 등 주변 여건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원주시 미군 기지 개발도 제자리걸음이긴 마찬가지다. 원주시청은 캠프롱 부지에 문화체육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하에 공원조성 기본계획 설계 용역부터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 12월 11일 반환이 결정된 미군 기지 인천 캠프마켓, 동두천 캠프호비 쉐아사격장, 원주 캠프롱. ⓒphoto 연합
지난 12월 11일 반환이 결정된 미군 기지 인천 캠프마켓, 동두천 캠프호비 쉐아사격장, 원주 캠프롱. ⓒphoto 연합

민간 투자 유치 등 어려움

반환된 미군 기지 개발 사업이 지지부진한 주된 요인은 막대한 개발 비용 때문이다. 동두천시청 관계자는 “부지가 반환되면 일단 국방부 쪽으로 소유권이 넘어가는데, 지자체는 이를 매입해 개발해야 한다. 우리처럼 영세하고 자립도가 약한 지자체 입장에선 매입비용으로만 예산을 다 쓴다. 이후 추가개발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동두천시는 지난해까지 총 3곳의 미군 기지를 반환받은 상황이다. 2015년 캠프캐슬, 2007년 캠프님블, 2005년 훈련장 짐볼스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사업 착공과 준공은 최근에야 이뤄졌다. 캠프님블의 경우 2013년 도로공원 등 기반시설공사를 완료했고, 지난해 남은 부지에 군관사 설립을 시작했다. 짐볼스 훈련장은 2015년 일부 부지에 한해 드라마세트장 착공에 들어갔다.

2007년에 반환된 경기도 내 주요 미군 기지인 의정부 캠프라과디아·홀링워터·에세이욘·카일·시어스, 하남 캠프콜번, 화성 쿠니에어레인져 등도 아직 개발 공사가 진행 중이거나 개발방안 수립 용역이 진행 중이다. 사업을 완료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으며 사업자가 지정되지 못한 곳도 있다.

정부, 지자체는 재정 부담 등으로 민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민간 참여가 활발한 것도 아니다. 행안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미군 기지 공여구역 발전종합계획에 대한 민간 투자율은 13.1%에 그쳤다. 총 목표 유치액 32조7112억원 중 4억2884억원을 투자받는 데 그친 것이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지난 2017년 발전종합계획안을 2022년까지 5년간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김학렬 더리서치그룹 부동산조사연구소 소장은 “미군부대는 사실 혐오시설 중 하나다. 미군 철수는 개발자 입장에서 호재이지만 이것만으론 메리트가 없다. 접근성이 좋거나 주변 인프라와 함께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민자 유치가 저조한 이유는 대부분의 기지가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서다”라고 분석했다.

강원도청의 경우 미군 기지 발전종합계획 수립 당시 정부로부터 캠프페이지 부지 매입비를 지원받았지만, 주민의견 수렴 기간이 길어지면서 아직 착공에 들어가지 못했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2011년부터 시민토론회, 사업 공모제안 등을 진행하면서 부지활용 방안을 수립하는 데에만 상당 시간이 걸렸다. 올 12월 시민복합공원 조성 관련 용역을 실시하고 내년 상반기엔 공사가 실시될 예정이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경기도청은 반환된 미군 기지를 국가 주도로 개발해야 한다고 정부에 지속적으로 건의 중이기도 하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지자체가 일궈 나가기엔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민간 투자 유치가 잘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는 대안을 강구 중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지자체 입장에서 미군 기지 개발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주장에 대해 공감한다. 다만 국가 주도로 진행하기 위해선 상당한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올해 전국 반환 기지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관련 연구용역을 시작했다. 내년 이맘때쯤 결과가 나오면 대안을 강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는 국토와 자원을 보호하고 이에 대한 균형 있는 개발, 이용을 위해 필요 계획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 주한미군 기지 조기 반환만큼이나 그 활용도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본래 국가 소유였던 땅을 반환받은 것이다. 정부는 이번에 반환된 기지 4곳을 포함한 이들 부지가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적절히 활용될 수 있도록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환 미군 기지 개발 성공사례

오키나와 광역계획 수립… 필리핀 클락은 경제특구 지정

경기연구원은 반환받은 미군 기지 부지를 성공적으로 개발한 국내외 도시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에선 일본 오키나와와 필리핀 클락(Clark), 국내에선 부산이 성공 사례로 거론된다.

2015년 기준 오키나와 내 미군 기지는 총 33곳으로 그 면적만 2만317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전체 미군 기지 면적의 약 73.8%를 차지하는 것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와 상황이 비슷했던 셈이다.

일본은 2006년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SCC)에서 6개 시설에 대한 반환이 합의되자마자 오키나와 중남부지역에 대한 현 단위 광역계획을 수립했다. 부지별 계획이 아닌 광역적 관점에서 시민 100만명 도시 형성을 목표로 한 개발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계획안에는 자립경제 구축과 공공 교통네트워크 설립,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보전재생에 따른 풍부한 도시환경 형성 등이 포함됐다. 이런 도시 계획 수립으로 현재 오키나와는 경제거점인 나하 신도심을 만들었고, 차탄초 일대 ‘아메리칸 로드’로 불리는 유명 관광지를 탄생시켰다.

필리핀 클락의 경우 1990년대 미군 철수 이후 필리핀 정부가 기지전환개발법을 제정, 개발전담기관인 기지전환개발청을 설치하면서 개발이 시작됐다. 필리핀 정부는 이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했고 기지전환개발청은 각종 사업단지 인허가 간소화, 규제완화 실시로 외자 유치에 적극 나섰다. 민간엔 토지를 과감히 임대하면서 사업비 부담을 줄이는 정책도 펼쳤다.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고속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필리핀 클락엔 2011년 기준 6만4000명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겨났고, 미군 기지가 주변 공공시설 등과 함께 어우러지는 도시 풍경도 만들어냈다.

국내 부산 캠프하야리아 시민공원 조성은 시민이 주도적으로 이끈 사업이다. 부산시청은 미군 기지 개발에 대한 시민들 관심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부산시청 관계자는 “공원 조성의 첫 시작은 관이 아니라 민간이었다. 시민단체가 공원 조성을 위한 범시민 운동 등을 추진하면서 관련 논의가 시작됐고 관이 이후 여기에 참여하면서 민관 협력구조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1993년 평화적인 기지 반환을 위한 ‘부산연합연구 소위원회’가 결성된 것을 시작으로 30여개의 시민단체가 만들어지면서 개발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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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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