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어린이 교통안전 법안인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12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1회 국회(정기회) 제12차 본회의에서 어린이 교통안전 법안인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식이법’ 통과를 바라보며 우리 사회에서 정치란 과연 무엇인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깊은 생각이 든다.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정치라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여론을 호도하며 표를 얻는 것만이 정치의 유일한 목표인 것 같아 매우 씁쓸하다. “야당이 선거법, 공수처법 저지를 위해 ‘민식이법’을 볼모로 잡았다”는 여당의 공세 속에 지난 12월 10일 마침내 ‘민식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많은 분들이 국민 안전, 어린이 보호를 위해 우리 사회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 뚜껑을 열어보니 국민들에 대한 강한 철퇴가 기다리고 있었다. 법이 통과된 지 불과 하루 만에 ‘민식이법’의 개정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일주일 만에 약 4만5000명이 여기에 동의했다.

‘정쟁의 도구’된 민식이법

어린이 보호, 교통안전 강화에 반대할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나 안전하고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싶은 마음은 같다. 하지만 ‘민식이법’과 같이 어린이 보호, 교통안전 강화의 방법으로 운전자에 대해 매우 무거운 책임을 부과하고 엄한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의문이 든다.

이번 ‘민식이법’은 포퓰리즘에 기반한 졸속 법안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예능다큐, 정부 주도의 TV토론회 등으로 급격히 형성된 여론에 맞서 제대로 된 반대, 수정 의견은 나오기 어려웠다. 특히 ‘야당이 민식이법을 볼모로 잡았다’는 여당의 강한 압박 속에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민식이법은 지난 12월 1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개정안 2가지를 의미한다. 이중 어린이 보호구역(이하 ‘스쿨존’)에 무인 교통단속용 장비, 횡단보도 신호기 등 어린이 안전을 위한 시설, 장비를 우선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견이나 논란은 거의 없다. 문제는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어린이를 사상케 하면 가중처벌을 받도록 하는 특가법 개정안이다.

여러 곳에서 복잡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특가법 개정안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운전자가 스쿨존 내에서 어린이(13세 미만)를 사망케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상해를 입히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는 내용이다.

12대 중과실 있는 경우에만 가중처벌?

운전자에게 12대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만 가중처벌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번에 통과된 민식이법은 12대 중과실과 크게 관련이 없다.

원칙적으로 교통사고로 인해 사람이 다치면 가해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는다. 그런데 교통사고의 경우 워낙 흔하게 발생할 수 있고, 피해자와의 합의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에서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자가 처벌불원서를 내면 원칙적으로 가해자는 면책된다. 특히 현행법에 따르면 가해자가 치료비와 손해를 전액 보상하는 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 교통사고를 일으킨 가해자를 처벌하지 아니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 또는 소위 12대 중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면책이 되지 않는다. 12대 중과실이란 신호위반, 중앙선 침범, 과속, 앞지르기 규정 위반, 철길건널목 통과방법 위반, 횡단보도 보행자보호의무 위반, 무면허 운전, 음주운전, 보도 침범, 승객추락방지의무 위반(버스 등), 화물고정조치 위반(트럭 등) 그리고 스쿨존 안전운전의무 위반을 말한다. 즉 스쿨존 내에서 안전운전의무 위반을 하는 것 자체가 12대 중과실 중 하나에 해당한다.

이번 특가법 개정안은 스쿨존 내에서 안전운전의무 위반을 한 자에 대해 가중처벌을 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특별한 추가적 요건 없이 가중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어, 스쿨존 내에서 안전운전의무 위반을 하면 곧바로 가중처벌된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추가적으로 중앙선 침범, 신호위반 등 다른 중과실이 있어야 가중처벌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행법은 과실범을 처벌하는 것이지 과실이 전혀 없는 자까지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KTX 전용철로, 자동차 전용도로에 사람이 갑자기 뛰어들었을 경우 통상 운전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고 처벌되지 않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통상 제한속도가 시속 30㎞ 이하로 설정되어 있는 스쿨존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할 경우 운전자의 잘못은 적을지언정, 과실이 완전히 없다고 판단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특히 관련법상 스쿨존에서 시속 30㎞ 이하로 달리다 사고가 났다고 하더라도, 운전자 잘못이 있으면 처벌될 수 있다. 심지어 어린이가 아무리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운전자가 조금이라도 주의를 게을리했다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민식이법’에 따라 운전자가 스쿨존 내에서 어린이(13세 미만)를 사망케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지는 강간범, 상해치사범, 강도보다 무겁게 처벌되는 셈이다. 음주운전 사망사고와 유사하게 취급되는 것인데, 과속이나 신호위반 없이 과실로 발생한 스쿨존 내 사망사고가 이 정도로 죄질이 나쁜 범죄에 해당하는 것인지 의문이 있다.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도 ‘민식이법’에 대한 반대표를 던지며 이와 같은 소신 발언을 이어간 바 있다.

사고 예방 위한 인프라 구축 먼저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을 강하게 처벌할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실제 우리 형법도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과실범을 예외적으로 처벌하고 있다. 법정형도 고의범에 비해 현저히 가볍다. 특히 향후 학부모, 교사, 택배기사, 통학차량 운전자 등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데, 한순간의 실수를 이렇게 강하게 처벌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는 사회적 논의와 함께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항공, 선박 등과는 달리 도로교통사고의 경우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일반 국민 누구나 가해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운전자에 대한 벌칙조항을 늘리거나 강화하는 것보다는 중앙분리대, 육교, 횡단보도 등 설치를 통해 교통사고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결국 어린이 보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고, 관련 예산을 배정하여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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