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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590호] 20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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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인도네시아판 공수처 KPK가 부른 갈등

▲ 2015년 1월 23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KPK 사무실 앞에서 KPK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경찰의 보복 수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AP
지난해 12월 30일 범여권이 만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향후 공수처와 검찰이 힘 겨루기 갈등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날 통과된 공수처법에 따르면 앞으로 검찰과 경찰은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를 착수할 때 공수처에 사전보고를 해야 하고, 해당 수사를 할지 말지 여부는 공수처가 판단한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12월 27일 이러한 ‘공수처 사전보고’ 조항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공수처와 관련한 정치권 및 법조계 안팎에서 쏟아지는 비판의 골자는 공수처가 결국 ‘옥상옥(屋上屋)’ 기관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관이 생겼을 경우 기관 간 주도권 싸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은 이미 해외 사례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심지어 권력기관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든 또 다른 기관에 대한 감시기관까지 생기는 웃지 못할 일도 발생했다.
   
   공수처와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기구 중 하나는 인도네시아 부패근절위원회(KPK)다. KPK는 1967년부터 1998년까지 31년간 통치해온 수하르토 대통령이 실각한 이후인 2003년 대통령 직속 독립기관으로 설립됐다. 수하르토 대통령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독재자로 꼽힌다. 그는 150억~300억달러(약 14조2000억~28조4000억원)가량의 국가 재산을 빼돌린 의혹을 받은 부패한 지도자였다. 이후 대통령에 취임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은 만연한 부정부패 뿌리 뽑기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받들어 KPK를 신설했다.
   
   KPK는 5명의 위원을 두고 있는데 이 중 1명이 위원장을 맡고 나머지 4명은 부위원장으로 각각 1개의 부서를 맡고 있다. 이 위원들의 임기는 4년으로 직원 수는 약 700명에 이른다. 60~70명 이내로 구성될 한국의 공수처에 비하면 인력은 10배 이상 많지만, 자체적으로 검사와 수사관을 보유하지 못하고 검찰과 경찰에서 파견된 인력만 수사를 맡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KPK의 파견검사는 공무원 관련 부패사건에 대한 1차 수사 및 기소를 담당한다. 기존 검찰에서 파견된 검사들이 주된 수사 인력으로 기소권을 가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검찰 측과의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KPK의 주된 수사대상이었던 경찰의 부패범죄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때마다 두 기관은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이를 일컬어 ‘도마뱀(KPK) 대 악어(경찰) 사례’라고 하는데, 경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기구인 KPK와의 갈등이었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KPK와 경찰 간 힘 겨루기
   
   대표적인 갈등 사례는 2009년 부도 위험에 처한 은행을 구제금융으로 지원하는 것과 관련해 KPK가 경찰국장 수사 계획을 발표하자 경찰이 KPK 위원장을 살인교사 혐의로 체포한 것이다. 부도 위험에 처한 센트리은행이 국가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때 고위공직자가 연루되어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막대한 금액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이 출발점이었다. 이 ‘센트리금융 사건’을 수사하려 했던 당시 KPK 위원장 안타사리는 어느 사업가에 대한 살인교사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두 기관의 충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2년에는 KPK가 교통경찰국장이 운전면허 시험장비 설치 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수사에 착수했다. KPK는 해당 경찰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 위해 경찰청에 들이닥쳤지만 경찰관들이 KPK 직원들을 에워싸고 물리적인 충돌을 벌이는 사태를 낳았다. 뒤이어 경찰은 KPK의 수사팀장의 과거를 파헤친 ‘표적 수사’를 벌였고 KPK 사무실로 들이닥쳐 수사팀장을 강제연행하려 시도했다. 뒤이어 KPK에 파견된 경찰관들을 복귀시키기까지 했고 KPK는 업무마비에 가까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 2015년에는 KPK가 경찰청장 후보자를 비리 수사대상으로 지목하자 경찰은 이에 대한 보복성으로 KPK 부위원장을 비롯해 KPK 인사들을 수사했다. 경찰과 KPK의 대립이 극심해지자 결국 대통령이 KPK 위원들을 교체했고, 이후 경찰청장에 대한 수사는 종결됐다.
   
   KPK의 권력이 비대해지고, 수사기관 사이에 힘 겨루기가 계속되면서 인도네시아 국회에서는 KPK조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나왔다. 이 개정안에는 KPK를 감독할 수 있는 감독위원회를 신설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개정안의 의도는 KPK가 합법적인 방법으로 조사를 하는지 여부를 따져보자는 것이지만, 결국 권력기관을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감시기관을 만든다는 점에서 비효율적이란 비판이 나올 수 있다. 애초부터 경찰과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감시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었으면 굳이 중간에 또 다른 감시기관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해 9월 5일 KPK 집행처가 수사, 도청, 압수 등의 수사 행동을 개시할 때 KPK 감독위원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법안이 통과됐다. 인도네시아 의원들은 KPK 개정법안에 ‘KPK를 감독하는 감독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각종 도청은 감독위원회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라는 내용을 담았다. 이 개정법안 통과에 인도네시아 대학생들과 시민들은 ‘KPK는 죽었다(RIP KPK)’는 피켓을 들고 거리 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 지난해 12월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개의를 선언하고 있다. photo 연합

   염정공서나 탐오조사국은 공수처와 달라
   
   물론 여당이 공수처를 만들면서 벤치마킹했던 곳은 인도네시아의 KPK가 아니다. 오히려 여당이 벤치마킹한 해외 반부패수사기관으로는 홍콩의 염정공서(ICAC·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나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Corruption Practices Investigation Bureau) 등이 꼽힌다. 두 기관은 지난해 4월 26일 백혜련 의원을 비롯한 12명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에 적시되어 있다. ‘백혜련안’에는 ‘고위공직자의 직무 관련 부정부패를 엄정하게 수사하기 위한 독립된 수사기구의 신설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음… 실제 이런 취지와 기조로 설치된 홍콩의 염정공서,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은 공직자 비위 근절과 함께 국가적 반부패 풍토 조성에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이라고 적혔다.
   
   1973년 홍콩 주룽반도의 부경찰국장이던 피터 가드버(Peter Fitzroy Godber)가 뇌물죄로 수사받던 중 영국으로 도주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많은 홍콩 시민들이 분노하자, 이를 계기로 1974년 2월 염정공서조례(The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Ordinance)에 근거하여 부패방지기구인 염정공서가 출범하게 되었다. 염정공서의 수장은 홍콩 행정장관의 추천을 받아 중화인민공화국 의회에서 임명한다. 염정공서의 집행처가 수사를 담당하고, 수사한 사건은 율정사(법무부)로 보내져 율정사 소속 검사가 기소하도록 하고 있다. 재정도 홍콩 행정부의 소관이 아니며 행정수반만이 직접 독립 예산을 조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염정공서의 수사는 독립적인 수사권에 따라 진행되고, 필요할 때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염정공서는 발족 36년이 된 지난 2010년까지 모두 7만건의 공직자 부패를 수사하는 업적을 남겼지만 대부분 마약범죄 수사 경찰의 비리, 성접대를 받은 경찰 체포, 재벌 아들의 부정행위 적발 등에 그쳤다. 우리의 공수처안이 목표로 하는 국정 최고책임자들의 일탈행위를 대상으로 하는 공수처, 3부 요인들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는 공수처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염정공서(ICAC)가 발족되기 이전 홍콩 사회는 홍콩 시민들의 말처럼 “불을 끄기 위해 소방서에 연락해도 뒷돈을 요구하고, 경찰들은 마치 매일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부패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던” 사회였다. 그러다가 1973년에 발생한 경찰 고위책임자의 420만홍콩달러(약 5억원) 횡령과 해외도주 사건이 계기가 되어 염정공서가 발족됐다. 이에 대해 박승준 전 조선일보 베이징·홍콩 특파원은 “행정수반인 역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이 보통 국민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규모의 돈을 횡령하거나 남용해온 선례를 남긴 우리 사회와 염정공서를 발족시킨 홍콩 사회는 그 배경부터가 다르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의 염정공서도 결국 정권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2015년 부임했던 레베카 리(Rebecca Li) 집행처장의 교체를 둘러싼 논란이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염정공서에는 2015년 7월 수사 전반을 도맡는 집행처장으로 레베카 리가 부임한다. 레베카 리는 염정공서 역사상 첫 여성 집행처장으로, FBI에 파견된 경력을 소유한 유능한 수사관 출신이었다. 하지만 취임한 지 1년 만에 돌연 교체된다. 해임 통보는 한밤중에 진행됐다. 레베카 리의 교체 발표 직후인 2016년 7월 12일에는 염정공서의 고위 수사관 데일 고(Dale Ko) 역시 전격적으로 교체된다. 여기에 레베카 리의 후임자로 집행처장을 맡은 리키 아우(Ricky Yau) 역시 2016년 7월 30일 사퇴를 발표했다가 3시간 만에 이를 철회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인사난을 겪었다.
   
   이러한 의문스러운 사퇴 배경에 염정공서 수사관들이 친중파로 분류되는 홍콩의 행정장관 사이 륭(CY Leung)의 비리혐의를 수사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레베카 리가 사이 륭에 의해 사실상 강제로 해고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결과적으로 레베카 리의 해임 이후 염정공서 수사관들 역시 연달아 사임하는 등 극심한 내홍을 겪었고, 조직의 독립성에 흠집이 가게 됐다.
   
   싱가포르의 탐오조사국(CPIB) 역시 총리 직속기구로, 조사국장은 총리의 제명(提命)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수사에 대한 지시와 보고는 총리에게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에서도 탐오조사국 부국장의 공금유용 사건이 발생한 바 있고, 정부를 비판한 싱가포르 국립대 법대 교수를 제자로부터 성상납을 받은 혐의로 수사하였으나 무죄가 선고된 사례도 있다. 즉 탐오조사국 역시 여느 권력기관에서 발생하는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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