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7일 마스크를 쓴 노인이 중국 상하이의 한 병원 앞을 걸어가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지난 1월 27일 마스크를 쓴 노인이 중국 상하이의 한 병원 앞을 걸어가고 있다. ⓒphoto AP·뉴시스

중국 상하이 푸둥(浦東)의 한 로펌 변호사 장(張)모씨는 후베이성(湖北省) 우한(武漢) 출신이다. 대표변호사로 있는 남동생과 함께 남매가 상하이로 건너와 로펌을 차리고 고군분투하길 수년째다. 물불을 가리지 않고 각종 사건을 수임한 결과 마천루가 즐비한 푸둥에 사무실도 크게 늘렸고, 남매가 상하이에 번듯한 아파트도 장만했다. 아이들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남편 편에 딸려 유학도 보냈다. 매년 춘절이면 산더미 같은 선물 보따리를 싸들고 우한에 있는 고향집과 친지들을 찾던 그는 이번에는 귀향을 포기했다. 우한발 폐렴이 창궐하며 중국 당국이 춘절 연휴 하루 전인 지난 1월 23일 오전 10시를 기해 우한으로 가는 길을 모조리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한에 고립된 가족과 친지들도 걱정이지만 그는 요즘 앞으로의 미래가 더 걱정이다. 콧대 높은 상하이 현지에서 후베이 사람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더 매서워졌기 때문이다. 상하이에서 후베이 사람들을 부르는 별명은 ‘머리가 아홉 개 달린 새’라는 뜻의 ‘구두조(九頭鳥)’다. 한 개의 먹이를 두고 아홉 개의 머리가 피 터질 때까지 싸우는 우한 사람들의 거친 생활력을 형상화한 말이다. 최근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후베이 사람들에 대한 질시(疾視)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태다. 후베이 사람답게 평소에도 각종 기괴한 맛의 군것질을 즐기는 그는 “요즘은 눈치가 보여 삼간다”고 했다.

우한발(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로 상하이 사수에 비상이 걸렸다. 인구 2400만명의 상하이는 중국 최대 경제도시이자 우한에서 가장 가까운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다. 상하이는 우한과 항공, 철도, 고속도로는 물론 장강(長江) 물길을 이용한 배편으로도 이어진다.

강경 조치에 ‘상하이 봉쇄’ 소문 돌아

상하이의 양대 공항인 푸둥공항과 훙차오공항에서 우한의 톈허(天河)공항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50분, 상하이 최대 기차역인 훙차오역에서 우한의 양대 기차역인 우한역과 한커우(漢口)역까지는 고속철로 4시간, 고속도로를 이용해서는 9~10시간이 걸린다. 한국의 96배 국토면적을 자랑하는 중국에서는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다.

앞서 지난 1월 26일부터는 상하이 푸둥공항과 훙차오공항으로 들어오는 모든 항공편을 대상으로도 1 대 1 체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당초 1월 22일 상하이로 들어오는 우한발 항공편, 1월 24일 후베이발 항공편을 대상으로 점점 늘려오던 체온검사를 전 항공편으로 확대한 것이다. 한국처럼 탑승자가 줄지어 열감지기를 통과하는 방식이 아니다. 도착한 비행기에서 승객이 내리기 전에 흰 방호복을 입은 위생검사원이 비행기에 탑승해 승객을 대상으로 체온검사를 실시해 발열자를 걸러내는 방식이다.

지난 1월 27일부터는 상하이로 들어오는 징후(京沪·베이징~상하이) 고속도로 등 9개 고속도로 톨게이트 부근이 모조리 아수라장이 됐다. 모든 톨게이트 통과차량을 대상으로 탑승자 체온검사를 실시하면서다. 당초 상하이 시내와 이어지는 144개 고속도로 출입구와 60여개 지방도에서 실시하던 체온검사를 고속도로를 아예 틀어막고 하는 것이다. 차량 탑승자 전원을 대상으로 온도계를 들이대 첫 검사에 ‘37.3도’ 이상이 나오는 사람들은 일단 재검 후 격리 등 추가 조치를 취한다고 했다. 한국의 37.5도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위생검사원들의 주요 타깃은 후베이성을 뜻하는 ‘악(鄂)’ 자로 시작하는 번호판 차량들이다. ‘악’ 자 번호판 차량 운전자는 신분증과 차량등록증, 면허증을 제시하고, 연락처·출발지와 목적지 등을 적어내야 하는 까다로운 절차도 추가됐다. 사실상 후베이 사람들은 상하이에 들어오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 춘절 연휴 기간에 취해진 이례적인 초강경 조치에 상하이에서는 “조만간 상하이를 봉쇄한다”는 소문도 급속히 퍼졌다. 이에 상하이시정부 측이 지난 1월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교통관리시책에 대한 오해”라고 진화하고 나서기도 했다.

상하이 거주 후베이 출신만 40만명

중국 당국이 사실상 상하이 사수전에 돌입한 까닭은 상하이가 명실상부한 중국 경제의 허브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국제노선을 갖춘 푸둥공항을 비롯해, 중국 최대 수출입항이자 세계 최대 컨테이너항만인 양산항(洋山港)이 상하이에 있다. 일례로 지난 1월 23일부터 봉쇄된 우한 톈허공항의 경우, 2019년 기준 여객처리량은 2700만명으로 중국 내 14위 공항에 불과하다. 상하이의 양대 관문인 푸둥공항과 훙차오공항의 지난해 기준 여객처리량은 각각 7600만명(2위), 4500만명(8위)으로 합쳐서 1억2000만명이 훌쩍 넘는다.

양산항을 비롯한 상하이항의 2018년 기준 컨테이너 물동량은 4200만TEU로 2위 싱가포르(3660만TEU)나 6위 부산(2167만TEU)을 월등히 앞선다. 또한 상하이에는 중국의 양대 증시인 상하이증시를 비롯해, 글로벌 기업 중국본부도 대거 자리 잡고 있다. 상하이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덮이면,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우한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뒤덮이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다.

상하이는 비슷한 경제력과 위상을 지닌 홍콩에 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극도로 취약한 환경을 갖고 있다. 홍콩 역시 상하이와 유사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특별행정구(SAR)로서 국경에 준해 출입경이나 검역, 세관검사 등을 자체 실시할 수 있는 재량권이 있다. 홍콩특별행정구는 지난 1월 30일부로 중국과 이어지는 고속철과 선박 운항을 중단시켰다. 반면 상하이는 직할시지만, 중국의 행정구역 가운데 하나에 불과해 출입경이나 검역이 홍콩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2400만명이 상주하는 상하이 전체 인구 중 (무호적) 외지인은 920만명에 달하는데, 이 중 후베이 출신자들만 대략 40만명에 달한다. 베이징에 거주하는 후베이 출신 외지인 33만명보다 월등히 많다. 이 밖에 상하이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어 왕래가 잦은 저장성에는 89만명, 장쑤성에는 40만명의 후베이 출신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상하이를 정점으로 한 장강삼각주(상하이·장쑤·저장)의 후베이 출신들만 169만명으로 후베이 출신자가 가장 많이 진출한 광둥성(233만명)에 버금가는 숫자다.

후베이와 왕래가 잦을 수밖에 없는 상하이의 후베이 사람들이 우한 등 후베이성에 있는 고향을 찾았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상하이로 속속 되돌아올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 후 상하이에서 나온 첫 번째 사망자가 된 88세의 한 남성 노인은 두문불출하다가 지난 1월 21일 신종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았고 감염 4일 만인 1월 25일 사망했는데, 우한에서 찾아온 친척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춘절 앞두고 우한 봉쇄 불가피

춘절 연휴를 하루 앞두고 중국 정부가 인구 1100만명에 달하는 우한 등 후베이성 13개 도시를 통째로 봉쇄한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평가다. 대개 중국 근로자들은 법정공휴일인 춘절 일주일 연휴에다가 일주일 뒤인 2월 8일(음력 1월 15일) ‘원소절(元宵節·정월대보름)’까지 연차를 붙여 이어서 쉬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 정부는 이 기간을 ‘춘절대수송’을 뜻하는 ‘춘윈(春運)’ 기간으로 별도 지정해 교통을 관리하는데, 올해 ‘춘윈’ 기간은 1월 10일부터 2월 18일까지 40일간 지정된 상태다.

장강 이남의 우창(武昌)과 이북의 한커우(漢口), 한양(漢陽)을 합쳐 만든 우한(武漢)은 ‘중국의 배꼽’이라고 불리는 교통요지다. 중국의 주요 간선망인 ‘8종(縱)8횡(橫)’의 간선철도 가운데, ‘징강(京港)고속철’(베이징~우한~광저우~선전~홍콩)이 남북축을 형성하고, 상하이에서 난징, 우한을 거쳐 충칭, 청두까지 연결되는 ‘후한용(沪漢蓉)고속철’(상하이~우한~충칭~청두)이 동서축을 연결한다. 1선 도시(베이징·상하이·광저우·선전) 4곳 모두가 우한과 연결돼 있다.

상하이시 당국도 신종 코로나의 전파력이 2003년 중국에서만 284명의 사망자를 낸 ‘사스(SARS·중중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스 사태 때 상하이시 전염병 임상치료조장을 맡았던 상하이 푸단대(復旦大) 부속 화산(華山)의원의 웡신화(翁心華) 교수는 “사스 사태 때 6개월간 상하이에서 8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신종 코로나의 경우 지난 1월 20일 상하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후 일주일 만에 53명의 확진자가 나왔다”며 “신종 코로나의 전파력이 사스에 비해 훨씬 강하다”는 의견을 현지 언론에 밝혔다.

상하이시 당국은 신종 코로나가 상하이를 덮치기 전 우한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태세다. 우한 현지에 투입된 의료진도 상하이 출신이 주력이다. 지난 1월 22일 상하이 주둔 인민해방군 의무병 150명이 우한 현지로 투입된 데 이어, 우한 봉쇄 직후인 지난 1월 24일 자정에는 푸단대 부속 화산의원을 비롯 상하이교통대 부속 루이진(瑞金)의원과 신화(新華)의원, 런지(仁濟)의원 등 52개 대형병원 의료진 136명이 차출돼 동방항공 전세기 편으로 우한에 투입됐다. 이어 1월 27일에는 50명의 간호인력, 1월 28일에는 추가로 148명의 의료진이 우한으로 급파됐다.

중국 당국은 2003년 사스가 광둥성에서 창궐했을 때, 수도 베이징이 뚫리는 바람에 집권기반이 흔들릴 정도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중국의 각 성시 가운데 베이징에서만 가장 많은 147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다만 당시와 지금이 다른 점은 과거 사스 사태 때 베이징을 비롯 네이멍구(25명), 산시(20명), 톈진(12명), 허베이(10명) 등 중국 북방에서 대거 사망자가 나온 반면, 이번 신종 코로나의 경우 남방을 중심으로 번지고 사망자(170명) 대부분은 거의 후베이성(162명) 한 곳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사스 때 베이징 뚫려서 곤욕 치러

현재 중국 위생당국은 실시간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수치를 뽑아내는데 신종 코로나 감염으로 확진된 사람은 모두 7739명에 달한다. 이 중 우한(2261명)을 포함한 후베이성에서만 4586명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우한 129명을 비롯해 후베이성에서만 162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하지만 후베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사망자는 후베이와 접경한 허난 2명을 비롯, 베이징, 상하이, 쓰촨, 헤이룽장, 허베이, 하이난 등 각 1명씩으로 아직 8명에 그친다.(1월 30일 12시 기준) 인구 1100만 도시를 봉쇄한 실험으로 나름 선방하는 셈이다.

초유의 우한 봉쇄 조치로 공포가 과도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신종 코로나에 감염돼 사망한 타지 사람 대부분은 폐렴에 취약한 고령의 노인들이었다. 상하이 사망자의 경우 88세 남성 노인이었고, 허베이와 쓰촨, 하이난의 경우 각각 80세 남성과 여성, 허난성의 경우 79세 남성, 헤이룽장성의 경우 73세 여성이었다. 2019년 기준 중국의 평균 기대수명은 77세다. 다만 봉쇄된 후베이성에서 나온 사망자 가운데는 전체 사망자 중 가장 젊은 36세 남성도 있어서 나이가 젊다고 무턱대고 방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중국 당국 역시 당초 1월 30일까지 예정돼 있던 춘절 연휴를 오는 2월 2일까지 3일간 늘리는 등 장기전 태세에 돌입하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는 춘절 연휴 기간 중인 지난 1월 27일, 봉쇄된 우한을 뚫고 들어가 마스크를 낀 채 813개 병상을 갖춘 격리치료시설 긴급건설 현장과 현지 시장 등을 시찰하며 생필품 등 물자공급 상황을 점검했다. 상하이시 역시 모든 사업체는 오는 2월 9일까지, 유치원과 각급 학교는 오는 2월 17일까지 각각 휴업과 휴교 명령을 내렸다. 반면 우한에서는 “우한 봉쇄로 양식과 생필품이 떨어져 다시 야생동물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상하이의 한국 교민

한·중 항공편 중 상하이가 최다… 교민 3만2000명, 비상대책위원회 결성

상하이를 사수하는 것은 한국에도 사활적 이해가 걸려 있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대략 3만2000명이다. 우한총영사관을 통해 전세기 귀국의사를 밝힌 한국 교민(720명)의 44배에 달한다. 여기에 상하이 거주 조선족 동포(약 4만4000명)와 보따리상 등으로 한국을 수시로 오가는 현지인들까지 합산하면, 상하이가 무너질 경우 한국으로 신종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천~우한 간에는 대한항공과 남방항공이 각각 주 4회 취항하는데도 불구하고,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각 항공편마다 나왔다. 지난 1월 29일에는 인천~웨이하이(산둥성) 아시아나항공 편에서 승객 중 한 명이 발열로 의심돼 중국 현지에서 격리조사를 받은 뒤 음성판정을 받고 풀려난 일도 있었다.

인천~상하이(푸둥) 노선에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이스타항공 등 국적항공사만 주 56회 취항한다. 여기다 김포~상하이(주 14회)까지 포함하면 가장 많은 한·중 간 비행기가 오가는 곳도 상하이다. 이는 해당 구간에 취항하는 중국 국적항공사는 제외한 수치다. 국내 두 번째 확진자(55세 한국 남성)의 경우도, 우한에 살다가 상하이 훙차오공항을 통해 상하이항공(FM823편)으로 서울 김포공항으로 들어온 경우였다.

상하이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뚫리면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지방도시도 사정권에 들어간다. 부산~상하이(푸둥), 제주~상하이(푸둥) 간에는 우리 국적항공사만 각각 주 12회, 주 9회를 운항 중이다. 중국 국적항공사까지 포함하면 훨씬 늘어난다. 대구와 무안에는 우리 국적항공사 대신 상하이를 모항으로 하는 동방항공만 각각 주 7회, 주 2회를 취항하고 있다. 푸둥공항이 있는 푸둥신구에서만 상하이 확진자(101명) 중 가장 많은 13명의 확진자가 나왔는데, 비행시간 2시간 거리에 불과한 한국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닌 셈이다.(1월 30일 12시 기준)

상하이 한인타운과 가까운 훙차오공항이 있는 창닝구에서도 확진자가 5명 나왔다. 현지 교민 가운데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도 이제 배제할 수 없다. 이에 상하이 한국상회(한국인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해 사태 진전 상황을 교민들에게 전파하고, 상하이총영사관을 통해 국내로부터 마스크 5만장을 긴급공수받아 교민들에게 배포할 계획이다.

박상민 상하이 한국상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상하이시에서 하루 300만장씩 마스크를 찍어내는데 턱없이 부족해 새벽부터 약국 앞에 줄서서 마스크를 사고 있다”며 “상하이시 공상국과 공안국(경찰) 권고로 한인 사업장들도 2월 9일까지 영업을 못 하는 등 상하이 교민사회가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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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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