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에서 ‘원인불명’의 바이러스성 폐렴이 퍼지고 있다는 불길한 소식이 처음 전해진 것은 새해맞이에 들떠 있던 지난 1월 3일이었다. 정부가 즉시 입국자 검역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1월 19일 우한에서 온 중국인 여행객이 확진환자로 밝혀졌고, 곧 이어서 내국인 5명도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을 무사히 통과한 내국인들은 감염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수백 명의 주민들과 접촉한 후에야 증상이 나타났다. 여섯 번째 확진자(56세 한국 남성)는 국내 첫 2차 감염자로 확인됐다. 국내 사망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언제까지 요행만 기대할 수는 없다. 방역 체계를 획기적으로 강화해야만 한다. 물론 방역은 전문성을 갖춘 질병관리본부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청와대·총리실·보건복지부와 정치권의 어설픈 훈수는 불필요한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절박한 중국의 감염 실태

세계보건기구(WHO)가 잠정적으로 ‘2019-nCoV’라고 이름 붙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중국 위생당국에 따르면, 최초 발생지인 우한을 비롯한 중국 전역에서 7739명이 (누적) 확진 판정을 받았고 170명이 사망했다.(1월 30일 12시 기준) 서울의 14배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1100만명이 거주하는 거대도시인 우한을 비롯한 13개 도시가 폐쇄되어 버렸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을 앞두고 3000만명이 속절없이 발이 묶였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15개국에서도 8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1월 30일 12시 기준) 다행히 중국에서 감염된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WHO가 아직은 국제적 비상사태(PHEIC·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포할 상황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과 독일에서 감염이 발생했다는 소식도 있고,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잠복기에도 감염이 발생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한 폐렴이 세계적인 판데믹(대유행)으로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우한에서 폐렴을 동반한 괴질이 처음 확인된 것은 지난 12월 1일이었다. 고열과 함께 기침·호흡곤란 등의 전형적인 독감 증세가 급격하게 폐렴으로 악화되는 괴질이었다. 중국의 방역당국이 사태의 심각성을 처음 깨달은 것은 지난해 12월 31일이었다. 40여명의 폐렴 환자들이 인플루엔자A바이러스에 의한 단순한 독감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중국 정부가 ‘원인불명’이었던 우한 폐렴이 새로운 변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에 의한 새로운 호흡기증후군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변종 코로나바이러스는 낯선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774명의 목숨을 앗아간 2003년의 사스(SARS)와 우리나라에서 38명을 희생시킨 2015년의 메르스(MERS)도 변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사스는 사향고향이를 거쳐 사람에게 전파되었고, 메르스는 낙타를 통해 사람에게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는 당초 우한 폐렴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감염이 우한에 한정되어 있었고, 확산속도도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월 20일을 기점으로 사태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루 사이에 감염자 수가 갑자기 232명으로 늘어나더니 수직상승하기 시작했다. 감염 지역도 우한을 벗어나 베이징·상하이·광둥·저장 등 중국 전역으로 확대됐다.

다급해진 중국 정부가 1월 23일부터 우한을 봉쇄하고 베이징 자금성, 상하이 디즈니랜드, 시안 병마용갱 등 주요 관광지의 출입을 금지하는 등의 극약처방을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이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중국이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과연 중국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통제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의심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박쥐가 만들어낸 변종 바이러스

2019-nCoV는 일반 감기를 일으키는 평범한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變種)이다. 뾰족한 돌기로 뒤덮인 광환(光環·corona) 모양의 껍질 속에 3만473개의 염기로 구성된 RNA가 들어 있다. 염기서열이 사스바이러스와 79.5%나 닮았고, 야생박쥐에 기생하는 코로나바이러스와 96%나 일치한다. 박쥐에 기생하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다른 바이러스와의 상동재조합을 통해 새로운 변종이 된 후에 뱀·새·밍크 등을 통해 인간에게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야생동물을 거래하는 우한 화난(華南)수산물도매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발원지로 의심하고 있다. 중국에는 독사(毒蛇)를 말린 백화사(白花蛇)를 약재로 쓰는 전통이 남아 있고,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야미(野味)’의 전통도 있다. 야생동물을 반드시 식용으로 먹을 때만 전파되는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의 전파는 야생동물과의 밀접한 접촉만으로도 가능하다.

중국의 야미 문화가 후진적·비위생적이라고 폄하할 이유는 없다. 우리 사회에도 무작정 ‘야생’과 ‘자연산’을 고집하는 ‘자연인’들이 넘쳐난다. 전국에서 뱀이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고, 봄철에 개구리 알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다. 불법 사냥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야생동물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중국의 전통을 비웃을 상황이 아니다.

환경파괴 때문에 인간과 야생동물의 접촉이 늘어났다는 지적은 어설픈 것이다. 오히려 인류 문명의 발달과 도시화로 자연과의 거리가 더욱 멀어져버린 것이 현실이다. 맹목적인 환경·생태주의가 바이러스의 인수(人獸)공통감염을 일으키는 훨씬 더 심각한 원인일 수 있다.

바이러스(virus)는 라틴어로 ‘독(毒)’이라는 뜻이다. 바이러스는 세균(박테리아)·곰팡이와 함께 고약한 감염성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다. 감기·독감·식중독도 바이러스 때문이고, 천연두(痘瘡)와 소아마비(폴리오)도 바이러스 때문이다. 개에게 물려서 발생하는 광견병도 바이러스 때문이다. 간염·풍진·유두종(乳頭腫)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있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있고,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키는 에볼라바이러스도 있다. 이호왕 교수가 한탄강에서 처음 확인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타바이러스도 치명적인 유행성출혈열을 일으킨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보다 10~100배나 더 작은 미물(微物)이다. 전자현미경을 동원해야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처음 관찰한 것은 1938년이었다. 바이러스의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단백질 껍질 속에 간단한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DNA나 RNA와 같은 핵산(核酸)이 들어 있는 것이 전부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영양분을 섭취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증식을 하지도 못한다는 점에서 무생물(無生物)에 더 가깝다.

그런 바이러스가 놀랍게도 스스로 진화하는 생명의 가장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다른 생물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박쥐의 코로나바이러스에서 사스, 메르스, 2019-nCoV와 같은 변종이 등장한 것이 그런 경우다. 그래서 현대 생명과학에서는 바이러스를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해당하는 기묘한 존재로 인식한다.

바이러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식물·박테리아·곰팡이 등 모든 생물의 세포에 기생(奇生)한다. 물론 숙주(宿主)의 입장에서는 더부살이를 요구하는 바이러스가 반가울 수 없다. 낯선 바이러스는 강력한 면역체계를 가동시켜 퇴치해버린다. 체온을 올려서 바이러스의 활성을 떨어뜨리고, 기침이나 콧물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것이 면역작용의 시작이다. 그런 과정에서 인체는 침입한 바이러스를 선별해 퇴치하는 항체(사이토카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해열제를 쓰면 감기의 치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자칫 면역체계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사이토카인 폭풍’이 발생해 오히려 인체에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공존

바이러스가 생물종을 가로질러 전파되기도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인류가 가축으로 기르기 시작한 소나 말에서 사람에게 전파되어 토착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조류(鳥類)에 기생하는 인플루엔자A바이러스도 겨울철마다 사람들을 괴롭힌다. 매년 30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발생시키는 독감(플루)이 바로 인플루엔자A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성 질병이다.

1918년에 시작된 스페인독감은 한반도를 비롯한 전 세계 거의 모든 지역에서 무려 5000만명을 희생시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바이러스의 존재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독감이 확산되는 경로도 파악하지 못했다. 한 세기 전에 일어났던 스페인독감에 대한 역사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독감을 하늘이 내린 천형(天刑)으로 여기고 끔찍한 상황을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초 한반도에서도 20만명이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했지만 자세한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스페인독감의 원흉이 H1N1형의 인플루엔자A바이러스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은 80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알래스카 동토 지역의 공동묘지에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던 어느 여인의 가슴속에 남아 있던 바이러스가 열쇠였다. 물론 첨단 생명과학기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2009년의 신종플루도 H1N1 인플루엔자A바이러스가 일으킨 반란이었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일은 쉽지 않다. 1796년 영국의 에드워드 제너가 발명한 백신이 고작이고 확실한 치료제도 드물다. 결국 우리 스스로의 면역력과 확산을 차단하는 노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감염원을 제거하고, 여행자를 관리하는 일이 매우 효과적이다. 근거 없는 괴담이나 공포에 허둥거릴 이유는 없다.

끈질긴 노력의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천연두는 15세기 콜럼버스와 함께 신대륙으로 전파되어 원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던 끔찍한 괴질이었다. 매년 10만명의 감염자를 발생시키던 천연두바이러스가 WHO의 퇴치 노력으로 1980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소아마비바이러스도 역시 2012년까지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바이러스가 생태계에서 악동(惡童)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바이러스는 서로 다른 생물종 사이에 유전자를 옮겨주어 생물종의 다양성을 확대시켜주기도 한다. 박테리오파지(살균 바이러스)처럼 인간에게 해로운 세균(박테리아)을 먹어치워주는 바이러스도 있다. 우리 코·기관지·잇몸·눈꺼풀·소화기 등을 덮고 있는 점액 속에 서식하는 박테리오파지는 인체의 면역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3년에 처음 밝혀진 흥미로운 사실이다.

냉정하고 전문적으로 대응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철저한 방역은 매우 중요하다. 무작정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괴질의 원인도 몰라서 허둥거렸던 1918년 스페인독감을 떠올릴 이유는 없다. 다행히 WHO가 잠정적으로 파악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재생산지수(R0)는 1.4~2.5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사스(4.0)의 절반 수준이고, 메르스(0.4~0.9)보다는 조금 강한 수준이다.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역당국이 요구하는 행동수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일이다. 비누와 물로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착한 기침 예절’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감염이 의심되면 즉시 방역당국(긴급전화 1339)에 신고하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언론·관료의 무분별한 간섭은 확실하게 거부해야 한다. 메르스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를 비서처럼 대동하고 어설픈 정책을 쏟아내던 복지정책 전공의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감염자의 개인정보를 선정적으로 폭로해버렸던 지자체장들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켜버렸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청와대가 갑작스럽게 던져놓은 ‘전수조사’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중국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비행기가 하루에 수백 편인 상황이다. 우한의 교민 철수도 중요하다. 그러나 철수시킨 교민들에 대한 대책도 쉽지 않다.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헌법에 보장된 거주·이동의 자유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하고, 수용시설 안에서의 감염도 막아야 한다. 대학 시절에 외웠다는 ‘코감기는 코로나’를 장난 삼아 흥얼거리는 정치인의 말에는 귀를 기울일 필요조차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제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긴 이름은 언론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더욱이 ‘새로운 종류’라는 뜻의 ‘신종(新種)’은 이미 2009년에 써먹었다. 언제까지나 ‘신종’을 반복적으로 우려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청와대가 질병의 이름까지 정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를 고려하면 우한 폐렴은 ‘우한호흡기증후군(WRS)’이라고 부르는 것이 훨씬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질병관리본부장이 정확하고 절제된 발언과 대책으로 괴담과 선동에 의한 혼란을 막아줘야 한다. 비상한 상황에서의 대책이 완벽할 수는 없다. 실수를 덮으려고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다.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곧바로 확실한 보완대책을 제시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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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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