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온 산불진화용 헬기 ⓒphoto KAI
수리온 산불진화용 헬기 ⓒphoto KAI

지난해 10월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ADEX 2019’ 전시회에서 기존 수리온 헬기와는 다른 수리온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국산 기동헬기 수리온의 해외시장 공략을 위한 수출기본형(KUH-1E) 시제기였다. 당시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수리온 수출기본형은 최첨단 항공전자 시스템을 대거 탑재한 게 특징이다. 조종사의 조작 편의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임무수행 중 발생하는 피로도를 줄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조종석 대부분을 차지했던 복잡한 제어기기들이 4개의 다기능 시현기에 터치스크린 기능으로 통합된 것도 기존 수리온과 다른 점이었다. 기존에 하나만 탑재됐던 GPS, 레이더 고도계 등 항법장치와 통신장비가 이중으로 적용돼 조종 안전성과 운용 신뢰도도 높였다. 기동헬기와 공격헬기를 별도로 도입하기 어려운 개발도상국의 재정 여건을 감안해 무장도 갖출 수 있도록 했다. 헬기 동체 외부에 로켓탄, 대전차미사일, 기관포 포드(pod) 등을 장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본격적인 공격헬기보다 공격력 및 방어력은 떨어지지만 병력·장비 수송과 지상공격을 겸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수리온 수출기본형 시제기 개발에는 2015년부터 4년간 500억여원의 개발비가 투입됐다.

수리온 수출기본형 시제기는 성능 및 비행 안전성에 대한 공신력을 확보하기 위해 군용항공기 특별감항인증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제기 설계·제작 및 각종 시험평가를 마무리하고 방위사업청 지원하에 감항성 심사를 완료해 군용항공기 특별감항인증 획득을 앞두고 있다. 수리온 제조업체인 KAI(한국항공우주산업) 관계자는 “다양한 각 국가별 요구사항을 충족할 수 있도록 경무장, 모래먼지필터 적용, 연료탱크 경량화 등 추가 개발 계획을 수립해 진행 중”이라며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권 국가에 대해 적극적인 수출 마케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 대상 국가별로 ‘맞춤형’ 수리온을 개발해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KAI가 아직 해외 주문이 없는데도 독자적으로 돈을 들여 수출기본형을 개발한 것은 우리 군과 관용헬기 등 내수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리온은 주력인 육군 기동헬기뿐 아니라 의무후송 전용 헬기, 해병대 상륙 기동헬기 등 군용 파생형 헬기, 경찰 헬기, 소방 헬기, 산림 헬기, 해양경찰 헬기 등 관용헬기 개발을 통해 노후한 외국산 헬기를 대체하고 있다. 경찰청은 정부기관 중 처음으로 2013년 수리온(참수리)을 선택해 각종 작전에 투입하고 있다. 대테러 임무수행 등의 용도로 2017년까지 총 8대를 계약했다. 경찰청용 ‘참수리’ 헬기는 육군 수리온을 토대로 불필요한 군용 임무장비를 없애고, 일부 군용 항법장비를 민수용 장비로 변경했다. 전자광학 적외선카메라, 탐조등, 항공영상 무선전송장치, 확성기 등 다양한 경찰 임무장비도 장착했다.

2018년에는 산림청의 산불진화용 헬기, 지난해에는 제주소방의 응급구조 헬기도 실전배치됐다. 제주소방안전본부에 인도된 수리온 기반 제주소방 헬기 ‘한라매’는 수색·구조 등의 임무 수행이 가능하도록 각종 첨단장비를 비롯, 화재진압을 위한 배면 물탱크가 장착됐다. 지난해 말엔 해양경찰 헬기 2대가 납품돼 수리온은 경찰, 해경, 소방, 산림 등 주요 정부기관용 헬기 플랫폼을 모두 갖추게 됐다.

하지만 국산 헬기 운용 확대를 위해선 정부기관 우선구매 등 적극적인 지원 방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의 지원하에 군수 및 민수용 성능이 입증된 국산 헬기를 바탕으로 해외 수출의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리온 의무후송용 헬기 ⓒphoto KAI
수리온 의무후송용 헬기 ⓒphoto KAI

수리온 수출기본형 시제기. 무기장착이 가능하다. ⓒphoto KAI
수리온 수출기본형 시제기. 무기장착이 가능하다. ⓒphoto KAI

국산 사용 의무화 등 제도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미국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자국 산업 보호 및 제조업 육성, 일자리 창출 등을 위해 ‘자국산 의무사용(Buy National)’ 제도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은 정부조달법에 미국산 의무사용을 규정하고 있다. 정부 조달에서 미 대기업은 6%, 중소기업은 12%의 가격 특혜를 부여하고 있다. 브라질은 2011년 신산업 정책 ‘그레이트 브라질 플랜(Greater Brazil Plan)’을 통해 국내 산업 육성 및 보호를 천명했다. 중국은 정부조달법상 자국산 우선구매를 규정하고 있고, 이에 대한 시행 및 관리감독 강화를 위해 2009년 ‘바이 차이나(Buy China)’ 지침을 발표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정부 조달 및 정부 관련 기관, 지자체 등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사업에서 국산 사용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국산품이 외국산 물품에 비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산 물품은 FTA 등에 따라 관세가 면제되지만 국산 물품은 부가세가 적용돼 역차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항공산업의 경우도 정부가 업체를 믿고 끝까지 밀어주는 터키와 일본 사례가 우리의 모델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터키는 항공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육성한다는 목표 아래 군 헬기 도입 사업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해 기술이전을 요구했다. 육군 공격헬기 도입 사업에서 이탈리아 T-129 공격헬기를 선정하면서 기술이전 및 수출권한을 따냈다. 육군 기동헬기 도입 사업에선 해외 참여업체에 5t급 민수헬기 개발제안 제출을 요구했다. 전폭적인 기술협력을 제안한 미 시콜스키사가 선정돼 미 UH-60 헬기의 현지 국산화 생산과 병행해 터키 방산업체 주도로 T-625 민수 헬기를 공동 개발 중이다.

일본은 국산 OH-1 정찰헬기가 우수한 성능에도 불구하고 해외 수출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자 UH-X 기동헬기 사업에 착수하면서 해외 협력업체에 민군 겸용, 공동수출 조건을 요구했다. 미국 벨사는 이 같은 조건을 받아들여 UH-X 사업을 수주했고, 앞으로 이 헬기에 대해 세계 수출시장 공동 마케팅을 할 계획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ADEX 2019’ 전시회에서 개최된 ‘국산 헬기 운용확대 공감대 형성을 위한 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국산품 우선구매 정책 문제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당시 안현호 KAI 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항공우주산업은 구조적으로 정부와 함께하지 않으면 성장이 어렵다”며 “1970년대 국산품 애용 정책으로 급격한 경제 도약을 이뤄냈듯 항공우주산업의 후발주자로서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는 국산품 우선 구매정책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함대영 중원대 교수는 ‘국내 헬기산업의 신성장동력화 및 저변확대 방안’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은 자국 제품 우선조달 정책을 통해 산업발전을 견인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자국 제품 우선구매제도 관련 법규 구체화, 강제력 명시, 이행 감독 등이 긴요하다”고 밝혔다.

유용원 조선일보 논설위원·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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