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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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성 난치병으로 불리는 공황장애 해결의 실마리가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쓰인 책에서 풀릴까. 공황장애는 이경규, 정형돈, 김구라, 강다니엘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호소해 ‘연예인병’으로 널리 알려진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주로 과도한 스트레스와 무대공포증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후한 때 장중경(張仲景·150~219)이란 사람이 쓴 ‘상한론(傷寒論)’이란 책에 공황장애를 비롯 조현병(정신분열증), 조울증(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의 증상과 이에 대한 치료법이 대거 수록된 것으로 최근 연구 결과 밝혀졌다.

경기도 부천 노영범한의원의 노영범(62) 원장은 5년 전인 2015년, 김경일 상명대 중국어문학과 교수와 함께 서기 200년경 후한 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상한론’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바 있다. 노영범 원장은 지난 1월 이를 실제 임상에 적용한 ‘임상 상한론’이란 후속작을 펴냈다. 노영범 원장은 ‘한국인의 명의(名醫) 50인’ 등에 선정된 한의사로 대한상한금궤의학회 회장으로 있고, 김경일 교수는 국내 최고 갑골문 전문가로 대만 중국문화대에서 유학한 후 한국인 최초로 갑골학 박사학위를 받은 고문학자다.

현역 한의사로는 독특하게 정신질환 및 난치성질환 치료에 몰두하고 있는 노영범 원장은 상한론에 언급된 치료법을 공황장애, 조현병(정신분열증), 조울증(분노조절장애), 우울증 등을 호소하며 찾아온 환자들에게 실제 적용했다. 그 결과 수년째 각종 정신질환을 호소하던 사람들의 증상이 치료되는 효과를 봤다고 했다. 지난 1월 28일 부천의 한의원에서 만난 노영범 원장은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90% 이상이 양의(洋醫)를 찾아가고 한의원을 찾는 사람은 1%도 안될 것”이라며 “상한론을 통해 병의 원인을 추적하여 정신병도 근원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공황장애는 상한론에서 ‘기상충(氣上衝)’이란 표현으로 언급된다. 노 원장은 “공황장애의 3대 증상은 호흡곤란(질식감), 광장공포증, 예기불안(미리 앞서 불안을 느끼는 증세) 3가지인데 ‘상한론’에 등장하는 ‘상한약토(傷寒若吐) 약하후(若下後) 심하역만(心下逆滿) 기상충흉(氣上衝胸)’이란 증상과 유사하다”고 했다. 이 글귀를 풀이하면, “상한(傷寒)해서 때로 토하려 하고 때로 설사하려고 한 뒤 가슴 아래가 가득함이 돌발적으로 이어진다면 기운이 위로 솟아 심장에 부딪히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에는 ‘복령계지백출감초탕(茯苓桂支白朮甘艸湯)’이란 치료법까지 제시돼 있다. 한약재인 복령과 계지 등을 배합해 만든 탕이다.

상한론에 증상과 치료법까지 제시

노영범 원장은 ‘상한론’에 나오는 치료법에 따라 공황장애 환자를 직접 치료한 사례도 들려줬다. 한 40대 후반 여성의 경우 3년 전쯤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각종 병원을 전전하다가 별반 차도가 없어 노 원장을 찾아온 경우였다. 공무원으로 일하던 이 40대 여성은 프로젝트 업무과다, 동료들과의 갈등 등으로 10년 전쯤 가슴이 답답해 질식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취미로 하던 시나리오 작가 연수와 다이어트 헬스를 병행하다가 갑자기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빠져 헬스장에서 쓰러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노 원장이 이 여성과 마주 앉아 상담을 해보니 사업 실패로 인해 폭력적으로 변한 부친으로부터 폭행당한 유년 시절의 경험이 있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들겨 맞으면서 공포와 질식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경우였다. 이 여성은 3남매 중 맏이로 “모든 것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증도 갖고 있었다. 이에 노 원장은 ‘상한론’ 67조에서 언급하는 ‘기상충(공황장애)’ 증상에 해당하는 치료법에 따라 ‘복령계지백출감초탕(영계출감탕)’을 처방했다. 그 결과 이 여성은 약 복용 약 6개월 만에 증세가 호전돼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노 원장에 따르면, ‘상한론’에는 배꼽 밑에서 돼지가 뛰어오르는 듯한 증상을 뜻하는 ‘분돈(奔豚)’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는 ‘수술 후유증’ 등과 유사하다고 했다. 또 열이 차고 머리가 타는 듯한 증상을 뜻하는 ‘번조(煩燥)’란 표현은 분노조절장애(조울증) 증상 등과 거의 흡사하다고 설명했다. “상한론에는 조현병, 조울증, 강박장애, 틱장애, 투렛증후군 등 각종 현대성 질병과 흡사한 증상 및 치료법이 적혀 있다”는 것이 노 원장의 설명이다.

노 원장은 “약 15년 전부터 ‘상한론’에 몰두하게 된 것은 기존 한의학 이론으로는 질병을 치료하는 데 만족할 만한 치료율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반면 ‘상한론’은 한의학계에서 “이런 책이 있다” 정도로 소개됐을 뿐 고문(古文) 해석의 난해함, 원본 소실로 인한 위서(僞書) 논란 등으로 널리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는 “그동안 ‘상한론’은 한의학계에서 ‘전설 속의 책’으로 터부시됐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갑골문의 대가인 김경일 교수에게 삼고초려하면서 도움을 청해 ‘상한론’의 ‘죽간본(竹簡本)’에 쓰인 한 글자 한 글자를 공들여 분석했다. 그 결과 실제 임상에 적용한 후속작 ‘임상 상한론’까지 낼 수 있었다. ‘상한론’이 비록 후한(25~220년) 때 저작이지만 “치료법은 그보다 더 앞선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년) 때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라고 그는 추정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김경일 교수가 ‘상한론에는 후한보다 시기적으로 더 앞서는 춘추전국시대(주나라) 때 등장하는 글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며 “춘추전국시대 때 내려오던 것을 후한 때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노영범 원장은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앨런 프랜시스)이란 책을 소개하며 정신질환이 의심되면 무턱대고 정신과부터 찾는 의료소비자의 행태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이 책은 ‘정신병 과잉진단’의 폐해를 경고하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정상인임에도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로 오진받은 한 30대 후반 여성의 사례를 소개하며 “정상인도 정신과에서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면 공황장애 등으로 오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이 여성의 경우 20대 때 대학교 캠프에 갔다가 돌아오는 전철에서 훌러덩 옷을 벗어서 조현병 환자로 오진돼 약 15년간 약 처방을 받으며 각종 부작용을 호소해왔다. 하지만 노 원장이 판단한 결과 이 여성은 조현병이 아니라 단순 수면장애와 무기력증으로 인한 ‘소음병’에 불과했다. 그는 “이 여성은 약 3개월간 약을 복용하고 잠을 제대로 잘 수 있게 되면서 해결됐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같은 전염병 치료에는 양방이 강할지 몰라도 정신병 치료에는 한의학이 오히려 더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노영범 원장은 “단순히 체크리스트로 정신병 유무를 판단하고 증상을 개선해주는 항정신성 약을 먹는 것만으로는 병을 해결할 수 없다”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스트레스는 똑같은데 진단의 폭을 지나치게 넓게 본 체크리스트 자체의 폐단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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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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