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공장 가동이 중단돼 문을 닫아놓은 기아차 광주 공장. ⓒphoto 뉴시스
지난 2월 10일 공장 가동이 중단돼 문을 닫아놓은 기아차 광주 공장. ⓒphoto 뉴시스

중국발(發) ‘코로나19’의 충격파가 한국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자동차를 시작으로 전기·전자, 석유·화학, 2차전지, 철강 등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주력 산업들은 물론 무역과 서비스업, 항공·운송에 이르기까지 코로나19발 폭풍에 휩쓸려 있다. 삼성과 현대차, LG, SK 등 중국 사업의 비중이 매우 큰 주요 기업들의 충격도 상당하다. 중국 투자를 키워온 주요 기업들 대부분이 영업 등 판매망 마비로 인한 손실이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영업손실보다 당장 우리 산업계 전반에 더 큰 충격을 가하고 있는 것이 있다. 현대차, LG, SK 등 주요 기업들이 원자재는 물론 부품과 부자재까지 중국산 의존도를 키워온 전략이 역풍을 맞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부품과 부자재 공급이 중단되거나 축소되면서 주요 기업들의 국내 생산시설이 가동 중단 혹은 생산량 축소 상태에 빠지고 있다. 주요 기업들의 공장이 멈추면서 이들의 하청기업들 역시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생산량을 줄이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산 부품 부족에 공장 멈춘 현대·기아차

이런 상황이 가뜩이나 암울한 한국 경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당장 자동차 기업들이 심각한 사태를 맞았다. 중국 현지 생산 비중이 높고, 중국 현지 협력사와 중국계 기업들로부터의 부품·부자재 공급 의존도가 큰 현대차와 기아차의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물론 쌍용차와 르노삼성 등 다른 완성차 기업들 상황 역시 심각하다.

현대차그룹의 중국 현지 공장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던 중국 정부의 지침에 따라 1월 춘제(春節·설)부터 이미 가동을 멈췄다. 중국 중앙과 지방 정부 모두 춘제가 끝났음에도 기업들의 출근금지 기간을 지난 2월 9일로 더 연장했었다. 하지만 2월 9일이 한참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현지 공장은 100% 정상 가동되지 않고 있다.

기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2월 18일 현재 베이징과 창저우 등 현대차 중국 현지 공장과 옌청 기아차 현지 공장에 출근하는 근로자는 50% 남짓이다. 심지어 현대·기아차 현지 한국인 직원조차 필수 인력 외에 여전히 재택근무 중일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공장 문은 열었지만 부품 공급이 제대로 안 되는 사실도 확인됐다. 현대차그룹 관계자조차 기자에게 “문은 열었지만 100% 정상 가동이 안 되는 상태”라며 “현지 공장들의 정상 가동 시점 전망이 지금은 힘들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상용차 중국 생산기지 쓰촨 공장은 지금까지 공장 문조차 못 열고 있는 게 확인됐다.

문제는 이런 현대차와 기아차의 중국 현지 공장 상황이 울산과 화성, 광주 등 전체 한국 공장들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상황과 차이가 있다면 근로자들의 출근 문제가 아닌, 차량 조립에 필요한 부품 및 부자재가 바닥나 자동차 생산을 할 수 없는 상태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부품과 부자재의 중국 공급망이 문제를 일으키며 한국 공장 전체가 가동 중단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2월 4일 울산 5공장의 가동 중단 이후, 7일부터는 현대차 한국 공장 대부분이 가동을 중단했다. 쥐어짜듯 부품을 조달해 2월 11일 울산 2공장부터 한국 공장들이 조금씩 생산을 재개하는 듯했지만, 2월 18일부터 다시 가동 중단 상태에 빠져든 공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지난 2월 10일부터 광명 소하리와 화성, 광주 공장 등 기아차 핵심 생산시설인 한국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부품을 긁어모아 일부 공장의 몇몇 생산라인을 가동하긴 했지만 여전히 정상 가동과 생산이 쉽지 않다. 소하리 공장이 이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공장을 멈췄던 2월 10일만 해도 기아차의 계획은 부족한 부품을 며칠간 확보해 14일부터 소하리 공장을 재가동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획했던 시점에 공장 재가동이 힘들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소하리 공장 가동 중단은 19일까지 연장했다가, 다시 23일까지 가동 중단을 재연장한 상태다.

이밖에 인도 마힌드라 계열 쌍용차는 지난 2월 4일부터 12일까지, 프랑스 르노 계열 르노삼성차는 2월 11일부터 14일까지 조립 부품 부족으로 공장을 닫기로 했었다. 부품과 부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커지며 세계 자동차 생산량 7위 한국에서 자동차 생산이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현대차 울산 공장 생산라인. ⓒphoto 뉴시스
현대차 울산 공장 생산라인. ⓒphoto 뉴시스

원가절감 뒤 찾아온 위기

그동안 현대차와 기아차 등 완성차 기업들은 원가절감을 이유로 중국 현지 협력사들이 만든 저가 중국산 부품을 한국 공장에서 다수 사용해왔다. 국내 생산 부품보다 중국산 부품의 가격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결국 자동차 기업들이 낮은 가격의 부품 및 부자재만을 납품받으며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부품을 생산하던 협력사들까지 생산기지를 중국으로 대거 이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을 떠나지 않은 협력업체도 납품 가격을 맞추기 위해 중국 현지 기업들과 합작한 부품사를 만들고 사실상 이곳을 통해 부품 전체를 생산하는, 저가 중국산 공급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중국산 부품 생산과 공급망 의존도가 이렇게 높아지며, 중국 부품 공장과 시장에서 발생하는 충격이 한국 기업과 국내 공장에 그대로 전이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중 현대·기아차의 한국 공장을 멈춰 세운 ‘와이어링 하니스’라는 부품이 이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동차 배선뭉치인 와이어링 하니스는 단순하고 간단한 부품이다. 그런데 원가절감 등을 이유로 현대·기아차 등 완성차 기업들은 한국 공장에서 조립하는 자동차 차량에 중국산 와이어링 하니스를 대거 사용하고 있다.

와이어링 하니스로 대표되는 저가 중국산 수입 부품처럼 완성차 기업들이 중국산 부품 사용 규모를 키우며 중국 기업들도 한국 자동차 부품 시장으로 밀려들었다. 결국 한국의 부품 협력사들까지 이런 저가 시장 환경 적응과, 또 납품가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와이어링 하니스 등의 생산시설을 중국으로 대거 이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와이어링 하니스의 한국 생산은 사실상 중단됐다는 게 취재 중 접한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문제가 된 와이어링 하니스의 중국산 수입 규모는 연간 1억7000만달러(수입액 기준) 정도다. 약 2000억원 규모에 불과한 부품이지만 완성차 기업들이 필요량 전부를 중국에서 수입해 쓰고 있다. 단순부품이라도 중국 현지의 생산과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면 한국에서 공장이 멈추거나 생산량을 줄여야 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는 이유다.

와이어링 하니스뿐 아니라 현대·기아차 등 우리 완성차 기업들의 저가 중국산 부품 의존도는 확대되고 있다. 우리 완성차 시장의 중국산 자동차 부품 수입액을 통해 그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산 조향 관련 부품이 연간 약 1억7000만달러, 안전장치 부품 약 1억6000만달러, 차체 부품 1억3000만달러, 엔진 부품 약 1억2000만달러, 트랜스미션 부품 1억1000만달러, 브레이크 관련 부품 약 1억달러, 기타 중국산 부품이 약 2억8000만달러쯤 수입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입액 자체보다, 저가의 단순 부품일수록 자동차 기업들이 생산에 필요한 대부분을 중국산으로 쓰는 게 문제”라며 “이런 부품은 한국의 기존 부품 협력사들조차 가격 등의 문제로 생산시설 대부분을 중국으로 옮겨, 중국의 생산과 공급망에 문제라도 생기면 한국 자동차 공장 가동이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옆나라 일본 등 다른 나라 자동차 기업들처럼 부품 생산과 공급망을 다원화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익명으로 취재에 응한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 등 주력 완성차 기업들은 생산·판매 등을 사실상 중국 시장에만 집중하는 상황”이라며 “부품 생산과 공급망을 생산공장이 있는 중국과 한국에서 지리적으로 먼 곳까지 넓혔을 때 물류비와 투자비를 고려한 가격경쟁력이 의문”이라고 했다.

중국산 부품 공급 중단에 가동을 중단했던 울산 현대차 2공장 근로자들이 지난 2월 11일 일부 가동을 재개한 공장에서 퇴근하는 모습. ⓒphoto 뉴시스
중국산 부품 공급 중단에 가동을 중단했던 울산 현대차 2공장 근로자들이 지난 2월 11일 일부 가동을 재개한 공장에서 퇴근하는 모습. ⓒphoto 뉴시스

소재·화학·전자 부품 등 중국산 급증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난 부품과 부자재의 중국 의존도 리스크는 자동차 기업과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기·전자, 석유·화학, 2차전지, 철강업계 주요 기업들도 똑같은 이유로 속을 끓이고 있다. 현대차그룹 등 자동차 기업들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 적고 업계 전체가 일시에 멈춰 서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뿐 이들 역시 부품 및 부자재 재고 축소와 공급 부족으로 생산량을 줄이거나 공장 가동률을 낮추는 사례가 수두룩한 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은 결국 우리 산업계 전반에 중국 부품 및 부자재 의존도 리스크가 커졌다는 뜻이다. 한국 산업계의 중국산 부품 및 부자재 의존도는 수출입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2019년 기준, 주요 36개국에서 들어온 소재부품 수입 총량은 142억6800만달러다. 이 중 중국이 1위로 41억4200만달러, 즉 소재부품 전체의 29.03%가 중국으로부터 수입됐다. 2위인 일본으로부터는 22억7100만달러어치(15.91%)가 수입됐고, 3위 미국으로부터는 16억3300만달러어치(11.44%)가 들어왔다. 일본·미국과 비교하면 중국산 소재부품 의존도를 쉽게 알 수 있다.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의 중국 의존도 역시 심각하다. 주요 36개 국가에서 수입한 2019년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 규모는 총 24억8200만달러다. 이 중 중국에서 전체의 23.16%가 수입돼 1위를 기록했다. 전자 부품과 전기장비 부품의 중국 수입비중도 전체 수입액의 각각 32.27%와 21.4%나 된다. 이밖의 다른 산업계 부품과 부자재의 중국산 수입의존도도 상당하다.

저가의 중국산 부품과 부자재가 생산원가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중국산 부품과 부자재 비중을 갑자기 낮추는 건 수익 추구가 목표인 기업들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 더 큰 비용을 들이더라도 공급망 자체가 훼손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중국과 함께 또 다른 안정적 부품 공급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조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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