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브리핑룸 현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월 25일 충북 청주 질병관리본부 브리핑룸 현장.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2월 25일 오후 2시 충북 청주 오송읍 질병관리본부(질본) 브리핑룸. 이날 언제나처럼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노란 점퍼를 입고 나타나 코로나19 감염증 상황을 브리핑했다.

갈수록 초췌해지는 정 본부장의 얼굴은 언론을 통해 화제가 되고 있다. 2월 24일 정례 브리핑에는 양쪽 귀가 모두 드러나는 짧은 머리를 하고 나타났는데, “이제 머리 감을 시간도 아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1시간도 못 주무신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1시간은 더 잔다”고 답변할 정도다.

정 본부장의 발언이 무겁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국내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그는 1965년생으로 서울대 의대에서 학사와 석사(보건학), 박사 학위(예방의학)를 받은 의사다. 질본 전신인 국립보건원 연구관 특채로 공직에 들어와 보건복지부 응급의료과장, 질본 만성질환과장·질병예방센터장·긴급상황센터장 등을 지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에도 질본 질병예방센터장으로 일했다.

병이 생기면 환자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질병 퇴치를 다수결 혹은 민주주의로 할 수는 없다. 의료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 2015년 5월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38명이 사망한 메르스 사태의 가장 중요한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실언이 많았다. 당연하게 여겨진 것이 그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국민연금 전문가라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 비전문가가 제대로 사태를 파악하는 것은 무리였다. 이러한 이유에서 질병관리본부장을 차관급으로 격상하는 등 나름의 대비를 해왔다.

하지만 메르스 사태 이후 5년이 지난 지금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 2월 26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코로나19 국내 확산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을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라고 말하는 등 사태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당시와 비슷하다. 박 장관을 향해 전문성보다는 정무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쏟아졌다. 과연 메르스 사태 이후 달라진 것은 무엇인지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메르스 이후 격상된 차관급 질병관리본부장은 과연 어떠한 권한이 있을까.

정은경 본부장의 권한은 과연 무엇?

정은경 본부장은 현 사태를 책임지는 의료 전문가 집단의 수장이다. 매일 브리핑을 하니, 그가 방역을 지휘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2월 25일 브리핑이 끝나고 기자들의 질문 시간이 돌아왔는데 이런 문답이 오갔다.

(2월) 4일 라디오 인터뷰나, 19일 브리핑 때 ‘방역하는 입장에서 누구라도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것이 좋은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여전히 유효한가. 중국발 입국 금지 확대 문제에 대해서 중수본에 이러한 의견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언제부터인가.(기자)

“중국의 입국 금지에 대해서는 저희가 중국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초기에 주요 감염 지역인 후베이성에 대한 입국 차단 부분들이 그 당시에는 중요한 조치로 생각한다. 하지만 입국 제한이 제한적일 수 있는 이유는 내국인들의 입국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런 점들이 고려되었다.”(정 본부장)

정 본부장이 기자가 왜 질문을 했는지 모를 리 없다. 정부에 입국 금지를 건의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을 것이다. 완곡하게 이야기했지만 질본이 ‘중국 전역에 대한 입국 제한’을 정부에 요청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2월 2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대변인 격인 복지부 차관 역시 언론 브리핑에서 “질본 판단을 근거로 다른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서 정부의 최종적 방침이 결정된다”며 질본이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

중국과의 국경을 아예 폐쇄해 버린 몽골, 애초부터 중국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미국 등은 큰 어려움 없이 코로나19 감염 위험을 방어하고 있다. 사후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중국 입국 제한 조치가 옳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질본의 건의가 받아들여졌다면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데 의료 전문가들은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업무는 보고?

그렇다면 정 본부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무엇인가. 사실상 보고다. 2월 25일 기자 브리핑 질문을 보면 이러한 현실을 알 수 있다.

심각 단계가 되었는데 국무총리에게 보고는 하루에 몇 번 드리나. 어떤 방법으로.

“심각 단계에 대한 보고는 매일 총리실 주도로 중대본이 만들어져서 매일 영상회의를 주재한다(영상회의에서 보고한다). 총리 주재로 (혹은)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고), 복지부 행안부도 진행하고, 계속 일주일 내내 아침 정례회의를 통해 대부분 보고를 드리고 별도로 정례적인 보고는 없다.”

이렇듯 오전에 총리 등에게 보고하고, 오후에는 방송 브리핑을 준비하는 것이 정은경 본부장의 중요 업무다. 사실 방송 브리핑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들의 질문이 생중계로 방송을 타고 있다. 작은 통계 오류라도 나오면 엄청난 후폭풍이 발생한다. 더욱이 브리핑 초기에는 상당히 지엽적인 숫자나 동선을 묻는 경우가 많았고 일일이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큰 틀에서 방역대책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질본 본부장은 현상 파악에 집중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방역 방안을 제시하고 명령할 여유가 없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럴 권한도 없다.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위치라고 보는 것이 옳다.

현장의 의사들은 공무원과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는 하소연을 많이 한다. 실제 환자를 대하는 자신들과는 현장을 체감하는 강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사회복지학 박사 출신이다. 복지부 공무원 가운데 의사는 드물다. 의료 전문가의 주장을 비전문가가 묵살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월 26일부터 감염원의 차단을 위해 중국발 입국자들의 입국 금지 조치가 필요함을 무려 7차례나 경고했었다. 의협은 “무증상 감염자들 역시 바이러스 배출량이 많고 상당한 감염력을 지닌다는 것이 최근의 의학적 연구에서 밝혀졌다”며 “중국 등 위험지역의 문을 열어놓고 유증상자들을 검역에서 걸러내는 것으로는 해외 감염원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중국발 입국 금지를 전면적으로 즉각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질병관리본부장의 권한은 뭐가 남아 있을까. 의협 박종협 대변인은 전화 통화에서 “본부장은 복지부 장관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데, 장관은 전문가가 아니다”며 “공무원 조직을 설득하는 것이 쉬운 게 아니다”라고 했다. 또 “미국의 경우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의료 전문가가 컨트롤타워가 된다”며 “미국의 경우 국민생명권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타깝게도 큰 피해를 당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나름의 정치적 상황이 있었다. 한국은 시진핑 주석 방한 등의 정치적 문제, 일본은 올림픽 개최를 고려해야 했다. 이처럼 국민생명권 외의 다른 우선 순위와 고려가 있었던 국가들이 현재 코로나19 사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미국 CDC

실제 우리 질병관리본부에 해당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전문가적 입장에서 중요한 결정들을 한다. 예컨대 CDC는 지난 2월 24일(현지시각)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최고 등급인 3단계로 격상했다. 이날 CDC는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에 대한 여행경보를 3단계인 ‘경고(Warning)’로 올린 사실을 공지했고, ‘광범위한 지역사회 전파’를 이유로 들며 미국인들에게 “불필요한 한국 여행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의 코로나19 현 상황과 관련해 CDC는 “코로나19로 유발된 호흡기 질환 발생이 광범위하게 진행하는 중”이라며 “노인과 만성 질환자는 심각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CDC의 이런 결정과 경고는 우리의 외교부에 해당하는 국무부와 협의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백악관의 지침을 받는 것도 아니다. 국무부는 CDC와 별도로 자체적인 여행경보 조치를 내린다.

만일 우리의 질본이 미국처럼 독립적인 권한과 판단을 내린다면 의외로 사회적 갈등도 쉽게 풀릴지 모른다. 서울시의 경우 코로나19 사태 예방책으로 다중이 모이는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데, 만일 질본이 이러한 명령을 내릴 수 있고 주도하게 된다면 집회금지 명령을 따르지 않을 명분이 없어질 것이다. 의료 전문가의 지시는 그만큼 힘이 있다.

방역 문제는 의료 관점에서만 판단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메르스 사태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코로나19 사태도 감염병 재난 대응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동시에 고려된 측면이 크다. 소위 정무적 판단이 필요했다는 얘기다.

질본 독립은 외면한 채 장 지위만 격상

우선 외교부는 중국 등 국제사회와의 외교 문제가 있다. 지자체는 격리대상자를 관리해야 한다. 학교 휴무 문제는 교육부가 다뤄야 한다. 기재부·중기부는 국내 소비 위축에 의한 경제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각 부처는 각기 자신들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각각의 부서가 협조하면서 일을 하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 부서별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경우가 그렇다. 강력한 방역으로 경제가 나빠질 수도 있고, 중국과의 외교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다. 나아가 올해 상반기로 예상된 시진핑 중국 주석의 한국 방문이 무산될 수도 있다. 이렇게 각 부처가 입장을 달리할 때 질본은 힘이 없다. 의료 정책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참여했던 의사 A씨는 “사실 질본이 할 수 있는 것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설득하는 일인데, 보건복지부 장관 자체가 힘이 없다”며 “선진국처럼 보건부와 복지부로 나누자는 이야기까지 나온 배경이다”라고 설명했다. A씨는 “보건복지부에 의사가 드물다”며 “실제 치료 현장에 나가지 않는 공무원들을 만나보면 절박함이 없다”는 비판도 했다.

사실 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의료계는 현재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질병관리본부 조직을 독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위상 강화를 통해 감염병 사태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격상시키는 방안은 메르스 사태 이후 계속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질본의 독립 없이 본부장 지위만 차관급으로 올리는 것으로 정리됐다. 현재 공중보건 현장에서 급증하는 환자들을 치료 중인 의사 B씨는 “이상하게 한국은 전문가의 의견을 잘 따르지 않는다”며 “독립된 질병관리본부가 실질적인 권한을 갖고 의사가 정책 결정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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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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