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백령·대청·소청도 어민들이 어장 재조정 등을 요구하며 서해 해상에서 어선을 끌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연합
지난해 4월 백령·대청·소청도 어민들이 어장 재조정 등을 요구하며 서해 해상에서 어선을 끌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photo 연합

“‘북한에 인접한 서해5도에 태어나거나 사는 게 죄라면 죄지’ 하고 하루하루 버티며 살았다. 우리 자식들에게는 나중에 섬에 살지 말아라! 뭍으로 나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떳떳하게 살아라! 그렇게 빌며 거친 풍랑을 헤치며 바다에 나갔다.”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어선안전조업법’이 서해5도 주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어선안전조업법은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맞닿은 접경해역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어장에 대한 통제를 관할 군부대장이 하고, 이 통제를 따르지 않았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서해5도 주민들의 어업권과 직결되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이런 법이 통과될 때까지 정부가 자신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며 집단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서해5도 주민들은 지난 2월 26일 반발 입장문을 냈다. 서해5도어업인연합회, 서해5도평화운동본부, 백령도선주협회, 백령민간해양구조대 등 15개 서해5도 지역 시민단체는 단체로 입장문을 내고 “엄혹한 군사정권에서도 모법을 만들어 조업 통제를 군에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거나 심지어 형사처벌까지 명문화한 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법에 규정한 형사처벌 조항을 없앨 것 △시행령 제정 시 어민 의견을 반영 △조업 통제를 해경으로 일원화 △24시간 야간조업 허용과 어장의 확장 △해수부는 서해5도 민관협의체를 개최할 것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또 “‘평화가 경제다’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 법에 동조하거나 방관한 여당 의원과 정부 관료에게 규탄을 표한다”며 “결국 우리의 바다는 ‘안보’와 ‘평화’를 명분으로 정쟁이나 상징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바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해5도 조업 군 통제, 어기면 형사처벌’

서해5도 주민들은 앞에서는 서해를 ‘평화의 바다’라고 하면서 정작 강력한 통제 규정을 만들고 위반하면 형사처벌까지 하는 법을 만든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서해5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중국 어선들은 수시로 NLL 이남을 넘어서 불법조업을 하는데, 군이 통제하는 조업구역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건 과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 지역 어민들이 군이 어업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이유는 과거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박태원 서해평화수역운동본부 대표는 “박정희 시대에도 하지 않았던 군의 억압적 통제를 평화를 외치는 정권하에서 받아야 한다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했다. 서해5도 주민들은 입장문에서 “과거 1950~1960년대 해병대 하사가 아버지뻘도 넘는 노인 어부를 출·입항 지시를 엄수하지 않는다고 무거운 노를 메고 산봉우리 초소까지 선착순 벌을 주는 행위, 해군 고속정은 어민들이 조금이라도 조업구역을 이탈하면 불순분자 취급은 물론 군홧발로 조인트 까기 등 참으로 많은 설움과 비인권적인 통제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 어선안전조업법은 2016년 6월 당시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해양사고 중 어선이 일으키는 사고 비율이 높고 인명피해도 어선원들이 절반이 넘는 상황을 고려하고, 특히 서해5도 해역의 남북한 대치 상황으로 인해 사고 위험이 상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선 사고 예방과 사고 발생 시 신속한 대응을 위해 이 법안이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당시 발의된 원안에는 ‘서해 북방한계선과 잇닿아 있는 접경해역에 대해 관할 군부대장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불응할 시 정선(停船)·회항명령·승선조사 등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처벌 명목의 규정으로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4월 2일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형사처벌 조항의 정당성을 묻는 질의가 오가기도 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손금주 의원이 “어민들의 위반행위에 대해서 형사처벌까지 하는 건 과한 것 아니냐”고 김양수 해양수산부 차관에게 묻자 김 차관은 “서해는 피랍될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르게 월선하는 경우도 있어서 중대한 행위로 보고 있다”고 답했다. 김 차관은 또 “분쟁 가능성도 상당히 있기 때문에 벌칙으로 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해5도 주민들 중 일부는 “9·19군사합의에서 서해 평화수역을 설정할 때는 언제고 분쟁 가능성 운운하는 건 모순적 행태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조현근 서해5도 평화수역운동본부 정책위원장은 “서해를 ‘평화의 바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런 법안을 만드는 건 정부가 ‘양두구육’임을 자인하는 꼴”이라고 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45년 만에 연평도 등대를 재점등한 데 이어 지난 1월 31일에는 1974년 이후 가동이 중단된 백령도 등대도 새로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설계를 마치고 내년 3월경 공사를 시작해 연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연평도와 백령도 등대는 과거 대남 간첩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가동이 중단됐었다. 그러다가 현 정권 들어 ‘서해평화수역’을 강조하기 위해 연달아 재점등되고 있다.

하지만 서해5도 주민들은 ‘등대’에 대해서도 볼멘소리를 냈다. ‘정작 야간에는 조업도 못하게 하면서 등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일출 전 30분, 일몰 후 30분’ 동안 조업시간을 연장해줬는데, 이 기준은 군사적으로 지평선 감시가 가능한 시간대에 허용해준 것에 불과할 뿐 실질적인 야간조업을 허용해준 것이 아니라는 게 서해5도 주민들의 입장이다. 게다가 등대 운영은 정작 거꾸로 일몰 후 30분부터 일출 전 30분까지 운용되므로 야간조업을 할 수도 없는 시간에 등대가 켜져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서해 해역에 정해진 어로한계선은 NLL과 남쪽으로 상당 거리 떨어져 있다.<그림 참조> 서해 어민들이 NLL보다 한참 아래로 떨어진 곳에 조업구역을 정할 수밖에 없는 건 우리 군이 정하고 있는 NLL과 북한이 주장하는 ‘북측 주장 북방한계선’이 다른 원인도 있다. 이 때문에 서해5도 주민들은 다른 해역에서 조업을 하는 어민들에 비해 지극히 한정된 조업구역만 허용받아왔다.

서해 해역의 경계 구분을 나타낸 지도. 현재 서해5도의 어장 면적은 A·B·C·D 어장을 비롯해 총 1859㎢ 규모다. 서해5도 어민들은 북이 주장하는 경계선 남쪽의 일부 해역을 추가로 허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서해 해역의 경계 구분을 나타낸 지도. 현재 서해5도의 어장 면적은 A·B·C·D 어장을 비롯해 총 1859㎢ 규모다. 서해5도 어민들은 북이 주장하는 경계선 남쪽의 일부 해역을 추가로 허가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해수부 “과한 형사처벌은 사실과 달라”

서해5도 주민들의 불만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서해 주민들이야 본인들의 어업권이 걸린 문제이니 반발하는 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다른 해역과 비교해 과한 형사처벌이라는 건 사실과 다르다”면서 “특정해역이나 조업자제해역을 넘어가 해군 해경의 통제를 받지 않는 건 어느 해역의 어민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서해5도 어민들은 NLL의 특성상 한정된 조업구역만 허용된 서해에 다른 해역과 똑같은 기준을 들이대는 건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