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진에 있는 김책제철소의 모습. ⓒphoto flickrs
북한 청진에 있는 김책제철소의 모습. ⓒphoto flickrs

김책(1903~1951)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시절 동지이자 광복 이후 북한군을 창설하는 데 공헌했고 초대 공업상과 부수상 등 요직을 역임한 북한 정권의 일등공신이다. 김일성의 오른팔 역할을 했던 김책은 6·25전쟁 때는 전선사령관으로서 남침을 주도했다. 당시 김책은 서울을 3일 만에 함락시켰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퍼레이드에 직접 참여했다. 이후 김책은 파죽지세로 북한군을 낙동강까지 진출시켰지만 국군의 완강한 저항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밀리면서 후퇴해야만 했다. 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으로 진격하자 김책은 자청해서 평양에 남아 싸우다가 결국 숨졌다.

북한의 자랑 김책제철소도 가동 중단

이후 김일성은 그의 죽음을 기려 함경북도 성진시를 김책시로 개칭했고 북한 최고의 공과대학을 김책공과대학이라고 불렀다. 특히 김일성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함경북도 청진제강소의 이름을 김책제철소로 바꾸도록 했다. 김책제철소는 연간 선철 240만t, 강철 200만t, 압연강재 140만t 등 총 600만t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부지면적은 430만㎡로 1만여명의 노동자들이 근무하는 김책제철소는 북한 정권이 중공업 분야에서 가장 자랑하는 상징적인 공장이다. 북한 언론 매체들은 2018년 9월 김책제철소가 코크스 등 외국산 재료가 필요 없는 ‘주체철’ 생산 공정을 확립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이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중국 등과의 국경을 봉쇄하면서 경제 상황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현재 김책제철소와 무산광산 등 철 생산과 관련된 공장과 광산들이 연료와 전기 부족으로 대부분 가동을 멈추었다. 북한 소식통들은 “가구나 생필품을 생산하는 수십 명 규모의 지방 공장들은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김책제철소와 무산광산 등 ‘중앙기업소’는 국가의 지원 없이는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북한 정권이 국경을 폐쇄하면서 기름 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중앙기업소들이 문을 닫고 있다”면서 “중앙기업소들의 가동 중단으로 지방 공장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통들은 “김책제철소는 무산광산으로부터 철광석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무산광산은 유엔 안보리와 미국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사실상 폐업 상태라고 한다. 소식통들은 “무산광산의 경우 한 달에 사흘 정도 가동하는 수준”이라면서 “대북 제재로 중국 등에 수출도 중단됐다”고 밝혔다. 실제로 중국 철강 기업들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로 무산광산과의 거래를 중단했다. 또 코로나19 때문에 철광석을 밀수출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무산광산 채굴설비와 마광설비는 모두 전기로 움직이는데, 겨울철 들어 전력 사정이 급속히 악화되면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전력생산은 겨울철 갈수기에는 40% 아래로 떨어진다.

김충걸 금속공업상은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기고한 글(2월 12일자)에서 “지금 나라의 경제 형편은 매우 어렵다. 특히 금속공업은 시원한 실적을 내지 못했다”면서 “주체철 생산공정을 과학적으로 완비하는 데 총력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용범 금속공업성 국장도 “겨울철 전력을 원만히 공급하지 못해 금속공장과 광산들이 생산에 큰 지장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무산광산의 모습. ⓒphoto flickrs
북한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무산광산의 모습. ⓒphoto flickrs

코로나19로 ‘정면돌파전’ 사실상 실패

이런 상황을 볼 때 김정은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전대미문의 혹독한 도전과 난관’을 언급한 것은 중앙기업소들이 완전히 가동 중단된 것과 같은 경제난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당시 김정은은 ‘정면돌파전’을 선언하고 ‘고난’과 ‘난관’을 수십 차례 언급하면서 주민들에게 ‘자력갱생’에 적극 나설 것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정면돌파전은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9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국경을 봉쇄하고 중국과의 무역을 중단함으로써 북한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은 그동안 임가공 원자재, 장비 등 기계류와 식료품 등 소비재 등을 중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섬유 제품, 광물성 생산품 등을 중국에 수출해왔지만 이마저도 중단됐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북한이 그동안 중국과의 밀수 등 불법적인 수단을 통한 외화벌이도 중단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으로 밀수출하는 품목들 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것이 석탄이다. 유엔 안보리의 제재 조치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지금까지 중국에 석탄을 밀수출함으로써 상당한 재미를 봐왔다. 미국의 북한경제전문가인 윌리엄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의 석탄 밀수출 규모가 상당하다”면서 “북한의 지난해 수출액이 2억달러 정도인데 석탄 밀수출로 3억7000만달러나 벌어들였다”고 추정했다. 북한에는 평안남도의 순천탄광, 개천탄광 등 640여개의 크고 작은 탄광에서 10만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북한이 코로나19 사태로 석탄 밀수출을 하지 못하면 이들 탄광들은 문을 닫아야 하고 노동자들도 생계수단을 잃을 수밖에 없다.

북한 국영 조선중앙TV가 코로나19 증상과 예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조선중앙TV
북한 국영 조선중앙TV가 코로나19 증상과 예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photo 조선중앙TV

밀수범 총살 등 강력 국경 봉쇄

북한의 또 다른 밀수출 주요 품목인 수산물도 마찬가지다. 중국 단둥의 조선족 상인들은 “춘제(음력설) 이전까지 북한에서 수산물이 밀수로 대량 들어왔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북한으로부터 수산물 반입이 전면 중단됐다”고 밝혔다. 북한이 밀수출하는 수산물은 대부분 옌볜 등 중국 동북3성 도시들에서 팔려왔는데, 국경 봉쇄로 아예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북한 국가보안성(경찰)은 지난 2월 초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밀수범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경고하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소식통들은 “만약 포고령을 어기고 중국에 불법적으로 드나들거나 밀거래(밀수)를 계속하는 자는 국가반역죄로 처벌할 것이며 총살형에 처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소식통들은 “보안성의 포고령에 따라 개인 밀수는 물론 국가기관의 밀무역까지 모두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일본의 북한 전문 매체인 아시아프레스는 소식통들을 인용해 북한 정권이 지난 2월 11일 중국과 밀수를 하던 주민 7명을 체포해 이 중 3명을 총살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북한 정권의 가장 중요한 외화벌이인 관광은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북한 정권은 오는 4월 12일로 예정됐던 평양 국제마라톤대회도 취소했다. ‘고려투어’와 ‘영 파이어니어 투어’ 등 중국의 북한 전문여행사들은 지난 2월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파트너들로부터 4월 평양 마라톤대회가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북한 당국의 취소 결정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국경 폐쇄 조치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북한 정권은 1981년부터 김일성의 생일(태양절·4월 15일)을 기념해 개최돼왔던 평양 국제마라톤대회에 외화벌이를 위해 2014년부터 일반 외국인들의 참가를 허용해왔다. 이에 따라 지난해 대회에는 서방 각국의 참가자가 1000여명에 달했다.

연말이면 외환보유고 바닥 가능성

북한 정권은 평양 국제마라톤대회와 연계한 관광 상품도 출시했었다. 북한 정권은 2018년 20만명, 2019년 3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들(중국인이 90%)을 유치하면서 상당한 외화를 벌어들였다. 북한 여행 상품 중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김일성 생일에 맞춘 투어였다. 열흘 일정에 1495유로(192만원) 정도로 비싼 편이지만, 평양에서 열리는 다양한 퍼레이드와 공연을 직접 관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인기 있는 관광 상품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코로나19로 모두 취소됐다.

북한 정권은 코로나19 사태로 공식적인 무역과 밀수 및 관광 등 3대 외화벌이가 중단됐기 때문에 극심한 외화 부족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한국은행의 보고서(2020년 1월 28일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북한의 거래용 외화는 10억~23억5000만달러, 가치저장용 외화는 20억1000만~42억8000만달러, 이를 모두 합한 외화는 30억1000만~66억3000만달러로 추정된다. 북한의 외환보유고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1억달러 내외의 감소세를, 2017년부터는 10억달러 이상의 감소세를 보여왔다. 때문에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더 이상 외환의 유입이 없을 경우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연말이면 바닥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이 올해 본격적인 외환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는 2003년 8개월간 지속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더욱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또 바이러스 유입 위험도 상당하다. 이 경우 북한 정권은 국경 폐쇄 조치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소식통들은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평양 주민 1300여명이 평양 중심지에서 4㎞ 떨어진 사동구역에 있는 4·25여관에 집단 격리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코로나19의 원천 봉쇄를 위해 지금까지 40여일간 중국 등과의 국경을 폐쇄하면서 북한 경제가 악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들어 휘발유와 쌀, 밀가루 등 식량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 북한의 물가를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데일리NK에 따르면 중국과 국경을 접한 자강도 지역을 기준으로 지난 1월 ㎏당 1만3000원 안팎에서 형성되던 휘발유 가격이 2월 들어 1만6500원까지 치솟았다. 북한의 휘발유 가격이 단기간 급등한 것은 2017년 하반기 원유 유입을 제한시킨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2375호와 2397호 이후 처음이다. 북한의 휘발유 가격은 대북 제재 초반이던 2017년 말 2만원 가까이 상승했으나 2018년 초부터는 1만원대 초반으로 떨어졌다. 휘발유 가격이 상승한 것은 밀수를 통해 들어오는 석유제품이 중단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 정권이 그동안 부족한 휘발유 등 석유 제품을 밀수를 통해 보충해왔다고 보고 있다.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지난 1월 ㎏당 4625원 하던 쌀값도 2월 들어 5670원으로 22%나 뛰었다. 특히 평양에선 쌀값이 6000원까지 올랐다.

이처럼 북한이 중국에서 휘발유, 디젤유, 식용유, 쌀, 밀가루, 설탕, 페인트, 유리, 신발, 학용품, 화장품, 담배, 술과 각종 원자재 등을 수입하지 못하면서 장마당에서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북한 정권이 국경 봉쇄 조치를 취한 이후 물가는 10~20%나 올랐고, 재고가 소진될 경우 앞으로 폭등할 가능성이 높다. 아시아프레스 오사카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앞으로 국경 봉쇄가 6개월간 계속되면 북한 경제는 패닉에 빠질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2017년부터 유엔 등의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물가까지 폭등하면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제사회에선 북한 정권의 국경 봉쇄 조치가 4월까지 이어진다면 북한 경제가 중대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브라운 교수는 “북한은 한 달 정도는 견딜 만하지만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봄이 되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면서 “3~4월에는 모내기가 시작되는데 주민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함께 모여 일하기를 꺼릴 뿐 아니라 중국에서 비료도 공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모내기조차 힘들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식통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중앙에서 모든 집체활동을 금지한다는 지시가 하달되자 농민들은 올해 농사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면서 “퇴비를 밭에 내는 분토작업부터 비료와 비닐박막 등 영농자재를 들여와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트로이 스탠가론 한미경제연구소(KEI) 선임국장은 “중국과의 국경이 봉쇄되면서 산소호흡기 역할을 하던 북한의 장마당도 크게 위축되고 있다”면서 “장마당에서 거래할 상품도 부족하지만 중국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 감염을 우려한 주민들이 활동을 꺼리고 있어 상거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라선시에 있는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북한 라선시에 있는 장마당에서 주민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photo 위키피디아

코로나19로 모내기도 꺼려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어오는 각종 제품들의 유통은 이미 끊긴 상태다. 북한의 유통 구조를 보면 중국 단둥에서 트럭이나 열차에 실린 물자는 1차로 평안남도 평성의 도매시장으로 운반된다. 이어 평양, 사리원, 개성, 남포, 해주, 안주의 종합시장과 장마당으로 옮겨진다. 함경북도 라선으로 들어온 중국 물자는 청진을 거쳐 함흥, 원산, 길주, 무산 등으로 팔려나간다. 하지만 국경 폐쇄로 중국에서 각종 제품들이 수입되지 않고 있어 북한의 유통망은 마비상태에 빠져 있다. 벤자민 카체프 실버스타인 미국 외교정책연구소 연구원은 “각 지방 간 교역이 중단될 경우 북한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도 북한 정권은 각종 관영매체들을 연일 동원해 주민들에게 자력갱생과 정면돌파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경제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앞장서야 할 김정은은 코로나19에 감염될 것을 우려해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다. 김정은은 올 들어 북한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부친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까지 단 5회의 공개 활동을 했을 뿐이다. 집권 이후 같은 기간에 평균 13.9회와 비교하면 급격히 줄어든 수치다. 아무튼 북한 경제가 4월쯤이면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자칫하면 김정은이 롤모델로 따라하고 있는 김일성의 생일 기념행사를 제대로 치르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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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국제문제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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