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명분으로 문재인 청와대가 도입한 국민청원 제도가 국론분열의 씨앗이 되고 있다. 청원 게시판은 생산적 토론과 논쟁이 활성화되는 공론의 장이 아니라 낙인찍기와 세 대결이 벌어지는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질되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청원과 그에 맞서 대통령을 응원하자는 청원이 치열한 숫자 싸움을 벌인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런데 이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매우 심각한 문제점이 노출돼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국민청원은 30일간 추천 수 20만개를 받으면 정부가 답하는 시스템이어서 숫자 확보가 관건인데, 얼마든지 조작 가능하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청원은 네이버,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의 아이디(ID)가 있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 드루킹 사건 직후인 2018년 4월, 중앙일보가 보안 전문가와 함께 실험해 본 결과, 가상의 ID로 10개의 청원을 붙이는 데 쉽게 성공하였다. (중앙일보 2018년 4월 23일자 ‘가짜 ID 얼마든지 만들어… 청와대 국민청원도 조작 가능’)

온라인에 공개된 제3국 가상 휴대전화 번호 5개로 포털사이트 ID 5개를 만들었고, 이를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10개로 불렸다. 참고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한 개인이 복수의 ID를 만드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구글 브라우저 크롬의 ‘시크릿모드’를 사용하면 인터넷 접속 기록이 남지 않기 때문에 청와대 홈페이지의 ‘중복 ID로 더 이상 클릭할 수 없다’는 제한을 쉽게 피할 수 있었다. 매크로 같은 자동 반복 프로그램을 쓰지 않고도 한 개 PC에서 한 명이 복수의 ID로 청원 동의를 여러 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매크로 제작업체 관계자는 “포털사이트는 반복 프로그램에 걸리지 않게 중간에 다른 콘텐츠를 집어넣어 이를 방해하지만, 청와대 게시판은 구조가 단순해 조작이 더욱 쉽다”고 말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3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중국의 조직적 여론조작 및 국권침탈행위를 엄중하게 수사하십시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2월 25일까지 폭주하던 청와대의 중국발 트래픽(33%로 한국에 이어 2위)이 일부 네티즌들이 문재인 응원 등으로 가장해 놓고 클릭하면 반중(反中) 사이트로 연결되는 ‘낚시 링크’를 걸자 0.53% 수준으로 급락했다는 것이다. 친문 댓글 활동을 왕성하게 했다는 ‘어느 조선족의 고백’이 계기가 되어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에 중국인 댓글 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확산된 것이다. 청원은 “과거 광우병, 사드 전자파 때부터 우한폐렴으로 나라 안팎이 분열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이 발생되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사회적 갈등의 뒷배경에 중국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그와 관련된 자들이 밝혀져도 아무런 처벌 없이 도주하고 있다는 점은 나라다운 나라 대한민국에선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였다.

같은 날 ‘국민청원 작성 및 동의에 대한민국 국민 인증 절차를 필수화해주십시오’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많은 언론에서 청원 동의 수를 인용하여 사안별 여론의 방향성과 크기를 가늠할 정도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우리 사회에서 시민의 펜이라는 무거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외국인이 참여하는 것은 국민주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취지였다.

시스템상 외국인이 아무런 제재 없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만일 중국인들의 댓글 공작이 사실이라면, 단순한 여론조작을 넘어 심각한 주권침해 행위라 아니할 수 없다. 네티즌들은 이번 사건을 ‘차이나 게이트’라 부르며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 정부의 인터넷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듯이 중국의 미디어는 인민일보, 환구시보, CCTV,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 일색이다. 그래서 인터넷이 비판 여론이 생성, 확산되는 통로가 되고 있는데, 중국공산당은 이를 철저히 통제하려 하고 있다. 시진핑은 집권 이후 “뉴미디어 여론을 장악해야 한다” “여론전에서 승리하려면 강력한 인터넷 부대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에 비판적인 파워블로거들을 체포하는 등 인터넷을 옥죄고 있다. 그는 국가주석,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 주석의 3대 포스트 외에 중앙인터넷영도소조 조장도 맡고 있다.

홍콩의 유력지인 ‘명보(明報)’는 2015년 4월 7일 “중국공산당 산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2월 전국 각 지부에 청년인터넷문명지원자 모집 관련 공문을 내려보냈다”며 “이들은 인터넷 댓글 활동을 통해 사회주의 핵심 가치관을 전파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삭제하는 일을 맡는다”고 보도했다. 공청단은 공문에서 “지원자 모집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모집 목표 인원은 대학생 400만명을 포함해 총 1050만여명”이라고 밝혔다. 댓글 부대 모집은 ‘신화통신’ 부사장 출신으로 베이징시 선전부장을 지낸 루웨이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주임 겸 중앙인터넷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주도하고 있는데, “인터넷 지원자 모집 활동은 시진핑 주석의 중요 지시에 따른 활동”이라며 “젊은이들이 앞장서 당에 충성하고 인터넷 주권을 지키는 방패가 돼야 한다. 결코 침묵하는 다수가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중국 인권운동가인 후자(胡家)는 “관영 매체를 불신하는 중국 인민들은 인터넷에서 진실을 찾으려 하지만, 정부는 인터넷에 우마오당(五毛黨)이라는 거대 수군을 투입해 물타기를 하고 있다”며 “공청단이 조직한 이들은 인터넷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삭제하고 비판 글 작성자를 당국에 밀고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우마오당은 2006년 안후이성 선전부가 댓글 한 개당 5마오(92원)를 주고 임시직을 고용한 데서 나온 말로, 어용 댓글 알바를 일컫는다. 그런데 중국 청년들에게 우마오당 참여는 단순 알바를 넘어 출세의 지름길인 공산당 입당을 수월하게 해주는 보증수표이기도 하다.

중국의 인터넷 여론조작은 국내로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24일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는 왕리창(王立强·27)이라는 중국인 청년이 호주 보안정보기구(ASIO)에 찾아와 자신이 펼친 여론조작 등을 자백하며 망명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왕리창은 중국인 유학생을 홍콩 대학에 잠입시켜 민주화운동의 정보를 탐문 조사하고 인터넷 반중여론 조성을 방해한 공작, 2018년 11월 대만 지방선거 당시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 후보의 당선을 막기 위한 중국 정보기관의 사이버 공격 등에 대해서도 폭로하였다.

한국은 중국의 이러한 공작으로부터 안전한가.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중국에 한없이 약한 이유가 이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 한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신지호 평론가·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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