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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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의 경험이 오히려 독(毒)이 됐다고 본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이런 분석은 현재 학계 다수의 정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정부나 의료계에서는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그나마 질병에 대한 조직적 대응 체계를 잘 갖추게 됐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은 김익환(64) 고려대 생물방어연구소장이다. 고려대 생명공학부 교수인 그는 2015년 고려대 생물방어연구소 설립 때부터 소장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백신과 바이러스 치료제 전문가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월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메르스 때는 쭉 환자가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통제가 됐고, 최종 186명에서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끝났습니다. 코로나19도 1번부터 27번까지는 환자가 매일 증가했지만 2월 10일을 전후해서 환자가 늘지 않았어요. 이때 대형 집회부터 막았어야 했는데 정부가 메르스 때처럼 진정이 될 줄 알고 성급히 경기 부양을 생각한 나머지 패착을 뒀습니다.”

메르스 때 경험에 의거, 확진자가 늘지 않자 사태를 안일하게 봤다는 이야기다. 실제 지난 2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남대문시장에 가서 내수 진작을 외쳤다. 당시에는 마스크도 쓰지 않았었다. 김 교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는 선제대응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선제대응이란 이런 겁니다. 위기경보 단계가 ‘경계’에 있을 때 자만하기보다 오히려 ‘심각’ 단계인 것처럼 행동해야 하는 거죠. 감염 확산세가 2~3일 주춤해지니까 정부가 욕심을 낸 겁니다.”

지금 와서 보면 코로나19 사태 대처법이 비교적 명확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분명해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김 교수에게 “당시로선 대통령 입장에서 경제와 내수 활성화가 중요하지 않았겠느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전쟁을 할 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없다”며 “바이러스와 전쟁을 하면서 경제를 살린다는 건 말이 안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적 유행성 감염병과 싸울 땐 전쟁이라는 인식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 와서 보면 경제는 오히려 더 최악으로 치달았고, 세계적으로도 우리 국민들이 망신을 당하는 더 큰 화를 불러왔습니다. 바이러스와 싸울 때는 전쟁이라는 심각성을 갖고 올인(All-in)해야 합니다.”

“코로나19 자연소멸은 어렵다”

현재 코로나19는 세계적 대유행 단계로 들어섰다. 미국, 프랑스 등 여러 선진국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란, 이탈리아 등에서는 확진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김 교수는 “이 정도 세계적 대유행 단계에서는 백신과 치료제 개발밖에 방법이 없다”며 “자연소멸은 사실상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여파가 최소 상반기까지는 갈 것으로 전망했다.

김 교수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부만이 아니라 기업, 연구소, 대학까지 공동으로 집중 연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다국적 기업들과 함께 백신을 개발하는 회의를 주관했다. 현재 정부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산하기관들이 관련 연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코로나19가 해결되더라도 이런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는 또 옵니다. 대략 5년 주기로 발생 간격이 짧아지고 있어요. 반드시 선제적으로 미리 대비를 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바이러스 대유행이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이 바이러스들이 ‘인수공통’으로 감염되는 특징을 가졌다는 점을 들었다. 사람에게서 모두 박멸돼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야생동물에게 감염된 상태로 잠잠해져 있다가 동물과 접촉한 사람에게 다시 감염된다는 설명이다. 이번 코로나19를 포함해 서아프리카에서 악명을 떨친 에볼라,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2009년 신종플루, 2015년 메르스는 모두 인수공통 감염 바이러스라는 특징이 있다. 김 교수는 “특히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는 백신도 없지만 사람에게 관련 면역 체계가 없기 때문에 치사율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은 일반적으로 치사율과 전염성 사이에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는 치사율이 1% 내외인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보통 환자들의 상태가 심각하지 않다”며 “환자 본인들도 자유롭게 다니고 싶어 하고 특히 코로나19는 증상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상태로 환자들이 여기저기 다닐 수가 있어 훨씬 전파가 빠른 특성이 있다”고 했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는 군인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전 국민이 전사가 되어 바이러스와 싸워야 합니다. 전사들에게는 충분한 전략물자가 공급돼야 하지요.”

김 교수는 특히 마스크와 소독제를 ‘전략물자’로 표현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정부와 기업, 연구소들이 반복 사용이 가능한 마스크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터만 갈아 끼면 재사용이 가능하거나, 에탄올로 소독해 재사용할 수 있는 면마스크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염성이 매우 강한 바이러스는 5000만 국민 중에 1000만명을 감염시킬 수 있습니다. 매일 1000만명이 한 달만 써도 3억개가 필요한데, 정부나 기업 입장에서도 이렇게 많은 마스크를 계속 보관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에 한국은 북한이라는 안보의 특수 상황까지 겹쳐 있다. 북한은 핵무기 외에도 두창, 탄저 등 수십 종류의 질병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를 생물무기로 보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치사율이 1% 미만인 코로나19에도 국가가 이렇게 허둥대는데 치사율이 30%를 넘는 생물테러가 발생하면 어찌 되겠느냐”며 “끔찍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의 높은 전염성 때문에 이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의 실험실에서 유출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최초 코로나19가 발생한 중국 우한에 질병예방통제센터 실험실과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추측에 대해 김 교수는 “자연계에는 인수공통으로 감염되는 베타 코로나바이러스가 많이 있고, 코로나바이러스는 특히 변이가 잘 일어날 수 있다”며 “생물무기를 만드는 사람들은 미리 자신들을 방어할 백신을 만든다는 걸 생각해 보면 코로나19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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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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