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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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가 내리던 지난 3월 10일, 흰색 우비를 입은 강창호 한수원 새울원자력본부 새울1발전소 노조위원장은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월성1호기 감사 결과를 공개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강 위원장은 1996년 한국전력에 입사해 당시 영광원자력본부(현 한빛원자력본부)에서 2012년까지 일했고, 이후 새울원자력본부로 옮겨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핵연료물질취급면허를 포함해 원전 관련 자격증만 10종을 보유한 기술자다. 그런 그가 왜 아침부터 비를 맞으면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을까.

강 위원장이 이날 1인 시위를 한 이유는 감사원이 아직까지 월성원전1호기 조기폐쇄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어서다. 2018년 6월 15일 한수원은 긴급 이사회를 열어 조기폐쇄를 의결했다. 이후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4일 월성1호기의 영구정지를 승인했다. 앞서 한수원은 월성1호기를 계속 운전하기 위해 7000억원을 들여 전면 보수까지 했었다.

“강제 순환근무는 탈원전 정책의 일환”

월성1호기의 계속운전 여부는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왔었다. 발전소 운영의 경제성을 검토할 때마다 경제적 효과가 들쭉날쭉하게 나온 데다 정부·여당이 급작스럽게 영구정지를 시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회의 감사 의뢰로 감사원 감사가 시작됐다. 보통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면 3개월 내 결과를 발표하거나 부득이한 경우 2개월 연장된 기한 내에 감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이에 따르면 발표 기한은 2월 29일인데, 아직까지 발표가 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지난 2월 18일 정세균 총리가 감사원장과 만난 뒤 발표가 미뤄지고 총리실 담당자가 감사원 감사위원으로 영전했다”며 “발표가 왜 나지 않고 있는지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2월 27일 강 위원장은 한국수력원자력 새울1발전소 운영실 발전운영부 노심관리파트 과장직에서 직위해제됐다. 한수원 측은 직위해제 사유로 “지난 2월 6일 사장 해임 촉구 기자회견, 2월 8일 업무포털 사내 이메일로 다수의 직원들에게 협박성 이메일을 전송해 회사와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의 명예를 손상시켰다”는 점을 들었다. 이 중에서 핵심은 지난 2월 6일 강 위원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이다. 당시 강 위원장은 한수원의 ‘강제 인사이동’에 반발해 한수원 정재훈 사장을 해임할 것을 촉구했다. 쉽게 말해 강 위원장은 한수원 직원들을 대표해 “강제 인사이동 제도를 철회하라”고 공개석상에서 주장하다가 직위해제당한 것이다.

사실 한수원 직원들 사이에서 ‘강제 인사이동’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지 오래다. 한수원 정재훈 사장은 지난해부터 “10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 대해서는 강제로 순환하도록 한다”는 강제순환근무제를 도입, 시행했다. 이에 따르면 한 지역 본부에서 10년 동안 일한 직원은 반드시 다른 본부로 옮겨 근무해야 한다. 한수원은 강제순환제도를 도입한 이유에 대해 “인사제도의 부패로 한울원전 인력 공동화가 가속화되어 내부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강 위원장은 이에 대해 “원전의 전문성과 안전을 무시한 제도”라고 비판했다. 한국의 경우 원자로 노형(종류)이 7가지로 다양해 다른 노형에서 근무하다가 새 노형으로 옮겨오면 전문성과 위기대처능력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강 위원장의 주장이다. “원전 타입별로 도면과 기호가 다르고 용어도 다릅니다. 2010년 이후 한수원 사고 중 13%가 인적 실수였어요. 원전 안전은 1%의 리스크도 용납하면 안 됩니다. 기계는 고장이 나면 자동으로 정지하지만 사람이 실수하면 사고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한수원 사내 인사관리지침에도 순환근무는 ‘직무의 전문화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시행하도록 되어 있다. 원전의 경우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이라 신규 원전의 경우 입사 후 2년간의 교육을 수료해야 발전소 밸브 및 차단기를 조작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고, 10년 경력이 돼야 전문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는 게 강 위원장의 설명이다.

강 위원장은 이 같은 한수원의 강제순환근무 방침을 “탈원전 정책에 발 맞추기 위한 행보”라고 의심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의 여파로 2030년까지 11기의 원자로가 폐쇄되면 현재 1만2500명 안팎의 한수원 직원들 중 상당수가 자리를 잃게 되는데, 이 때문에 강제 순환보직을 시행하면서 인원을 줄이고 있다는 것이다. 강 위원장은 “탈원전 정책이 이대로 시행된다면 한수원은 2030년까지 직원을 8000명대 수준까지 줄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강 위원장은 사실 2014년 120억원 규모에 달하는 한수원 ‘원전 부품 비리 사건’을 공익제보한 내부고발자이기도 하다. 당시 핵연료를 담당했던 강 위원장은 핵연료 취급 관련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보고했지만 상부에서 묵살했다. “정상적인 보고 라인을 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강 위원장은 내부 감사에게 제보해 사건을 공론화시키고 비리를 바로잡았다. 강 위원장은 “이 정도 규모 안건은 이사회에 회부되는 안건”이라며 “덮어버리자는 의견과 달리 제보를 하자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차가워졌다”고 말했다. 내부고발 과정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한수원 노조에 가입한 강 위원장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탈원전 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 새울원전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3월 10일 강창호 위원장이 감사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3월 10일 강창호 위원장이 감사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탈원전 계속되면 직원 숫자도 줄일 것”

당시 한수원의 내부 비리가 밝혀지면서 2014년 무렵에는 많은 국민들이 원전을 우려 섞인 눈길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강 위원장에게 이 같은 비판을 어떻게 바라보냐고 묻자 “부분적인 비리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 때문에 모든 원전 종사 인력들이 비리 집단인 것처럼 매도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원전은 그 안전성에 대해 일반 국민들의 인식과 전문가들의 의견 간 괴리가 가장 큰 분야”라며 “온실가스·미세먼지를 감축해야 하는 시대에 원전만큼 효과적인 발전 수단은 없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현재 감사원에 담당자 접견 신청을 하면서 월성1호기 관련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정재훈 한수원 사장과 당시 기술전력처장을 지낸 한상길 새울원전본부장 등은 감사 결과가 나오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검찰 고발 등 여러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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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max@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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