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대구시당 후보자들이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지난 3월 11일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비롯한 정의당 대구시당 후보자들이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긴말할 필요도 없다. 코스피 지수만 봐도 우리는 이미 10년 전으로 되돌아왔다. 원·달러 환율은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외국인들은 연일 셀(sell) 코리아를 외치고 있다. 실제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난 1월 20일부터 3월 18일까지 외국인의 코스피 누적 순매도액은 13조774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의 기업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한국 경제, 기업에도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여서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그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전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야 가능

중장기적인 거시경제정책, 소위 한국판 뉴딜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현재 쏟아지고 있는 정부와 지자체 정책의 대부분은 선심성·단기적 정책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것이 재난기본소득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지난 3월 8일 “코로나19를 타개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모든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 100만원을 일시적으로 지원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제안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난 3월 18일 국민 1인당 100만원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정부와 정치권에 거듭 요청한다면서 재난소득에 대한 끝장토론도 공개 제안한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시의회는 지난 3월 13일 긴급 추경예산안을 증액, 의결했고 그에 따라 ‘긴급생활안정 전주형 재난기본소득 지원금’ 263억5000만원을 취약계층 5만여명에게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3월 19일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라며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공론화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미비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재난안전법, 감염병 예방법을 법적 근거로 제시하기도 하지만, 막상 법을 찬찬히 살펴보면 재난기본소득 지급의 근거가 될 만한 규정은 없다.

재난안전법에서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역에 대해 행정상·재정상·금융상·의료상 특별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거나(제61조), 재난으로 피해를 입은 시설의 복구와 피해주민의 생계 안정을 위해 일정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제66조)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염병 예방법에서도 정부의 각종 조치(격리소 설치, 의료기관 폐쇄, 출입금지, 이동제한 등)로 인하여 손실을 입은 자에 대해 일정한 범위에서 그 손실을 보상하도록 하고 있을 뿐(제70조), 마찬가지로 전 국민에게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조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즉 현행 법령에서는 특별재난지역 내의 주민 또는 재난으로 인하여 구체적으로 피해를 본 주민, 의료기관 등에 대한 지원이나 손실 보상은 하도록 하고 있으나, 전 국민에게 일정한 금액을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는 두고 있지 않다. 지자체 차원에서 조례 제정 등을 통해 일부 금액을 지원할 수는 있겠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재난기본소득이라는 명목으로 전 국민에게 돈을 지급하려면, 전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거나 국회에서의 입법 과정을 통해 재난기본소득 지원에 대한 법적 근거부터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세출에 있어서는 법률주의가 적용되지 않으므로 법적 근거가 없어도 문제가 아니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 없이, 법적 근거도 마련하지 않고 예산부터 올린다면 정부의 성급한 결정에 따라 수십조원의 예산이 낭비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악몽 증폭될 것

재난기본소득을 제안한 측의 핵심 주장은 내수가 침체되고 경제가 어려우니, 전 국민에게 일시적 100만원을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이러한 금전적 지원을 통해 내수를 진작하고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것이다. 말은 기본소득이지만, 일회성으로 지급되니 사실 기본소득이라 부르기도 애매하다. 돈을 준다니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그 돈이 결국은 내 주머니(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 인구 수가 약 5178만명에 육박하니, 전 국민에게 100만원을 주려면 어림잡아도 약 51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우리나라 전체 예산(513조원)의 10%, 올해 국방비 예산(50조 1527억원)에 상응하는 금액이다. 국난 극복을 위해 많은 예산을 신속하게 투입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필요한 곳에 적정히 투입하는 것이다.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측의 주장은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진작되고, 소비가 진작되면 경제도 발전하고, 세수도 확보된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어딘가 본 적 있는 익숙한 이야기다. 이미 실패로 끝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소득을 생산의 결과물로 본다면, 소득이 증가하기 위해서는 생산이 늘어나야 한다. 생산의 중요성, 증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소득주도성장론은 허구에 가깝다. 빵집에서 빵은 계속 10개 그대로 만드는데, 사람들의 소득 수준만 높아진다고 생각해보자. 빵값만 올라갈 뿐 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빵 숫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생산성이 높아져 만드는 빵의 숫자가 늘어나지 않는 이상, 우리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은 없다. 인플레이션, 즉 물가 상승만 야기된다.

물론 소득이 증가하면 일시적으로는 내수진작, 경기부양에 효과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인건비만 증가한다면 결국은 기업의 이익이 감소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져 수출이 감소하거나 생산공장의 해외이전 등이 발생한다. 이로 인하여 일자리의 감소까지 이어지는 등 전반적인 경제 침체라는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기재부 반대에도 여당이 추진하는 이유는?

재난기본소득 지급 제안에 심지어 기획재정부도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정말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예산을 투입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전 국민에게 일률적으로 100만원을 주자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 재난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재원이 결국 다시 국민의 세금으로 보충되어야 하니 조삼모사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세금으로 보충할지 여부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나 세금이 아니면 어디서 수십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결국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에 가깝다.

재난 상황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하기보다는 SOC 투자 및 예산 조기집행, 실제 구체적인 피해를 본 지역 주민에 대한 지원, 기업의 연쇄적 도산 방지를 위한 금융 지원 등을 전방위적으로 신속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정부에서는 관련 경제 전문가들의 조언을 깊이 있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지난 3년간 해왔던 실책을 재난 상황에서도 왜 그대로 반복하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결국은 당장 눈앞에 와 있는 총선을 위한 정책, 총선을 위한 경기부양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포퓰리즘을 뒤로하고 국가의 발전, 경제 성장을 위한 진정성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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