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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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지자체와 정부가 코로나19 대응책으로 ‘재난기본소득’ ‘긴급재난지원금’ 등의 논의를 시작하게 된 데에는 민간 싱크탱크인 LAB2050(랩2050) 윤형중 정책팀장의 제안이 있었다. 그는 긴급재난지원금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한 달 전인 지난 2월 26일 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에 ‘재난기본소득을 검토해보자’라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비롯해 각종 정책 제안 게시판과 커뮤니티, 소셜미디어에 공유됐고 어느 순간 여러 지방자치단체장과 정치권 인사들 입에도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각 지자체에선 일정 기준에 따라 적게는 5만원, 많게는 40만원가량의 현금 지원 사업을 시작했고, 정부도 지난 3월 30일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결정했다. 소득 하위 70%에게 100만원(4인가구 기준)을 지급한다는 조치였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선 지급 대상 확대 여부와 적절성 등을 두고 논의가 한창이다. 윤 팀장의 제안이 1개월여 만에 정치권 안팎에서 가장 큰 의제로 번진 셈이다. 지난 3월 31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나 정부·지자체가 추진하는 현금 지원사업과 이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우려 등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선별지급에는 높은 행정비용 소요

윤 팀장이 소속한 LAB2050은 ‘다음 세대 정책실험실’이란 콘셉트로 사회정책 실효성 등을 연구·실험하는 민간 싱크탱크다. 그는 주요 일간지·방송사에서 10여년간 기자로 일하다 2018년 말 여기에 동참하면서 기본소득제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평소 정책, IT기술 등에도 관심이 많아 ‘공약파기’ ‘이제는 빅데이터 시대’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윤 팀장은 “정책이란 증거와 근거를 통해 실행돼야 더 큰 효과를 나타내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작은 단위에서부터 정책을 시행해 시장 반응 등을 살피고 정책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LAB2050의 활동 방향이었고 그 취지가 마음에 들어 함께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기본소득 재정모형’을 제시하는 등 기본소득 논의에 가장 앞장서왔다. 지난 2월 재난기본소득을 소재로 칼럼을 쓰게 된 것도 그의 이런 연구활동에서 비롯됐다. 칼럼은 “일상적인 접촉을 최소화해 생기는 딜레마를 기본소득 지급으로 타개해보자”는 내용이었다.

“칼럼을 쓸 때만 해도 이렇게 파장이 클지 예상하지 못했고 점점 논의가 확대되면서 한편으론 우려도 했다. 지금의 재난 사태에선 소상공인 등을 위한 여타의 대책 논의도 필요한데 재난기본소득이 이 논의들을 모두 빨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새로운 형태의 복지를 실험하고 재정지출에 대한 정부의 경직성을 덜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큰 것 같다.”

그는 재난기본소득 논의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아진 데에는 기본소득이 지닌 ‘현금성’ 때문이라 분석했다. 지금껏 시민들은 복지를 ‘서비스’로만 누려왔기에 현금성 복지는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리얼미터가 지난 3월 31일 성인남녀 8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58.3%가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는 37.0%, 모름·무응답은 4.7%에 그쳤다.

그렇다면 정부의 이번 조치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윤 팀장은 정부의 취지는 좋으나 그 방법을 달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지급 대상을 소득 하위 70%로 한정한 건 결국 선별복지다. 선별복지는 지급 기준을 논의하고 실제 현금을 지급하는 데까지 상당한 행정비용을 필요로 한다. 일례로 복지 지원을 위해 서류를 받아 심의하는 데만 수일이 걸리고 여기서 누락되는 경우도 상당수이지 않나. 이 때문에 지급 대상을 전 국민으로 넓힌 보편 복지를 꾀했어야 했다. 동시에 ‘선별환수’, 즉 고소득층엔 더 많은 세금을 거두는 식의 세금 체계 개편이 이뤄졌어야 했다. 필요 재원을 충당하고 복잡한 국내의 세금 체계, 비과세 감면제도를 함께 개선할 수 있는 조치다.”

실제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결정 이후 소득 하위 70%를 산정하기 위한 기준을 세우는 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어야만 했다. 정책 발표 닷새째가 돼서야 그 기준을 건강보험료로 정할 수 있었다. 윤 팀장은 “그렇다고 기준이 합당한 것도 아니다. 건보료는 재작년 기준으로 부과되기 때문에 코로나19 피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소상공인들은 올 초 소득 감소분을 직접 증빙해야 한다. 결국 또 상당한 시간, 노력이 소비되는 것이다. 지급에서 배제할 고액 자산가 기준은 아직 정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치권에선 총선을 앞두고 지급 대상을 아예 전 국민으로 넓히자는 보편 지급 방안이 제기되지만, 여야 모두 선별환수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윤 팀장은 “이런 논의 없는 보편 지원과 복지는 자칫 포퓰리즘에 그칠 수밖에 없다. 표심 때문에 결국 세부 부과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다 주고 고소득층엔 더 많은 세금 거둬야

윤 팀장은 그가 주장하는 보편지급·선별환수의 방식이 최근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여러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간 “지급 범위를 소득 하위 50%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중산층의 경우 소득이 늘어난다 해도 소비량은 늘지 않을 거란 우려에서다. 윤 팀장은 “보편지급만 시행하거나 현 정부안대로만 하면 홍 부총리가 지적한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별 과세를 동시에 꾀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향후엔 중산층 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하는 식이니 큰 틀에선 선별지급의 형태로 소득 하위 계층에만 현금을 지급하는 구조를 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한때 이런 현금성 지급 사업을 두고 일시적인 단기 정책이란 비판이 나오기도 했는데 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적 논거를 댔다. “사실 정부는 일반 가구 외에도 기업에 현금을 지급할 수도 있고 혹은 SOC 등에 직접 투자, 지출할 수도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승수효과(경제적 변화의 파급효과)로만 따지면 SOC 투자가 가장 큰 효과를 거둔다. SOC 공사가 시작되면 공사대금이 곧바로 건설업체에 지급되고 이 금액은 다시 공사 기자재 구입과 인건비로 쓰이기 때문이다. 인건비는 개인 소비에 따라 다시 시장에 풀리며 경제 선순환이 나타난다. 야권의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근데 재난 상황에 SOC 건설이 무슨 의미가 있고 다른 대안은 뭐가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승수효과로만 정책을 결정할 순 없다. 경기 부흥과 재난 대응을 함께 꾀해야 한다.”

윤 팀장은 사실 정부나 지자체의 재난기본소득 정책은 진정한 의미의 기본소득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기본소득의 요건인 무조건성(심사 부재), 보편성(모두에게 지급), 정기성(정기적으로 지급), 개별성(가구 아닌 개인에게 지급), 현금성(현금으로 지급)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아쉬운 점도 많지만 이런 정책은 시도만으로도 긍정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기본소득은 분배 체계가 지속해서 변화하고 불공정·불평등이 심화하는 지금 같은 시대에 한 번쯤 실험, 논의돼야 할 의제다. 그런 측면에서 적정 수준으로 이뤄지는 현금 지급 사업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또 복지정책은 직접 수혜를 받은 개인들에 의해 관심받고 발전할 수 있다. 정책 개선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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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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