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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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와 주한미군사령부는 지난 4월 1일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4000명에 대한 무급휴직을 결정했다. 당시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은 “직원 개개인의 업무성과 등을 반영한 조치가 아니다. 사전에 편성된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하는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정(SMA)의 부재로 초래된 일이다. 우리가 희망했던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방위비분담금협정은 한국 정부가 미군의 한국 주둔 비용(인건비, 군사건설·연합방위 증강사업비, 군수지원비 등) 일부를 분담하도록 규정한 협정이다. 한국과 미국은 1991년부터 1~5년 단위로 10차례에 걸쳐 이를 체결, 갱신해왔고 지난해 말 양국은 11차 협정을 체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분담금 500% 증액 등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답보 상태에 빠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정부가 4월 중순 제시한 ‘13% 인상안’까지 거부하면서, 미국의 무급휴직 조치는 사실상 협상 압박 카드로 해석되고 있다.

졸지에 이번 협상에 볼모가 된 것은 한국인 직원들이다. 전체 직원의 80%가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는 ‘주한미군 한국인노조’의 손지오 사무국장은 “결국 미국이 우리의 임금을 볼모로 방위비분담금협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것”이라며 “동맹 정신은 없고 오로지 돈의 논리만 앞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4월 10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국노총 사무실에서 손지오 사무국장을 만나 최근 미국의 조치와 방위비분담금협정 개선안 등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주한미군, 사실상 기능 마비

노조 측에 따르면 현재 전국 주한미군 기지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는 1만2500여명이다. 이들은 주한미군의 군사 기능 보조 업무 외에도 기지 유지에 필요한 모든 제반 업무를 도맡고 있다. 손 사무국장은 “주한미군 기지는 하나의 사회와도 같다.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편의점, 소방서, 영화관, 은행, 병원, 호텔 등 미군과 그의 가족들이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시설이 가동되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여기서 의료, 복지, 통신, 전기 등 이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모든 기능을 책임지고 있다. 단순히 전투·훈련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필수 직군 등으로 분류돼 방위비분담금에서 임금을 지급받는 직원은 8500여명이다. 나머지는 식당, 매점 등을 운영하며 수익을 직접 챙기는 자영업자 혹은 한국 국방부와 계약을 맺고 투입된 업체 소속 직원 등이다. 미국은 이번 조치를 통해 이들 8500여명 중 4000명에 대한 무급휴직을 강행한 것이다. 이런 무급휴직 가능성은 지난 협정 때도 종종 거론됐지만 실제 무급휴직 통보가 내려진 건 주한미군 주둔 역사상 올해가 처음이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한국인 노동자를 내보내면 우리 생계는 둘째 치고 주한미군 자체가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기존 기지 제반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이 대거 빠져나갔다. 남은 인력으로 이를 대신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남은 직원들의 3분의 1가량만이 근무에 임하고 있다. 오산 공군기지 같은 경우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서 한때 기지 자체가 폐쇄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일할 직원이 대거 사라지면서 주한미군이 사실상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마비된 상황이다. 안보의 구멍이 생긴 셈이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를 우려해 올 초 “한국 안보를 위해 무급으로라도 일하겠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이들이 3월 말 주한미군사령부로부터 받아든 ‘무급휴직 최종 결정 통지서’는 비급여·비업무 상태에 있을 것을 명시했다. 이후 사무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징계 사유가 됐다.

이에 한국 정부는 미국에 ‘한국인 근로자들의 월급을 한국 정부에서 먼저 부담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MOU) 체결을 제안했지만 미국 협상단은 이조차도 거부했다. 손 사무국장은 “한국 정부의 제안은 향후 방위비분담금을 통해 지급될 인건비를 먼저 손에 쥐여줄 테니 나머지는 협상을 통해 순차적으로 이어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것도 거부했다. 주한미군 본연의 기능을 저해하면서까지 자신들이 목표한 분담금을 타내려는 조치로 읽힐 수밖에 없다. 당시 함께 일했던 미군 동료들도 자국 조치에 공감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총선 이후 특별법 제정 시급

이에 주한미군 한국인노조는 단체행동을 계획했으나 실제 행동으론 옮기지 못했다고 한다. 주한미군지위협정(소파·SOFA) 노무조항은 한국인 노동자의 노동3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단체행동을 강행할 경우 노조 설립은 취소되고 참가자는 해고 대상에 오른다. 손 사무국장은 “엄밀히 따지면 현재 미국의 조치는 ‘무급휴직’이 아니라 ‘강제휴업’이다. 휴직은 직원이 직접 신청하는 건데 이건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여기에 저항할 수단은 없더라. 그대로 두고 볼 뿐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무급휴직 대상에 든 한국인 노동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협정 타결이 사실상 무기한이다 보니 언제까지고 기다릴 순 없다. 하지만 여기 직원들 대부분이 40~50대이고 군에서만 일하던 사람들이어서 국방부에 취직하지 않는 한 경력을 살려 다른 일자리로 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손 사무국장은 한국인 노동자들의 처우 안정과 원활한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위해선 제도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방위비분담금은 ‘총액형’으로 정해지고 있다. 전체 총액과 사용 기간만 정하고 그 사용은 미군이 알아서 하는 식이다. 지난 10차 협정의 주요 내용은 ‘총액 1조389억원, 적용기간 1년’이 전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미국의 분담금 인상만 쉽게 만든다. 분담금의 사용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소요 항목별로 구체적인 총액을 결정하는 ‘소요형’으로 바꿔야 한다. 항목별로 금액을 따지면 미국 측에서 인상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인건비 등의 고정비용부터 먼저 처리하자는 등 항목별 협상 제안도 가능해진다.”

그는 궁극적으론 고용 주체를 미국 정부에서 한국 정부로 바꾸는 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본의 경우 일본 정부가 직접 자국 노동자를 고용해 이를 주일미군 측에 파견하는 간접고용 형태를 취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형태를 취해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인건비 압박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직접고용 구조에서도 임금과 근로조건만큼은 양국 간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독일의 방식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지금으로선 이 모든 걸 관철하기 어렵다. 고용안전지원금 지급 등을 내용으로 담은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 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당장 11차 협상에서 인건비가 볼모가 되는 것부터 막아야 한다. 이를 수단 삼을 여지만 없애도 협상은 속도를 낼 수 있다. 무급휴직 압박 카드는 매 협정 때마다 미국이 들고나왔기에 이번 같은 사태는 향후 또 벌어질 수 있다.”

그는 결국 총선 이후 국회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4월 9일 총선을 앞두고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하긴 했다. 미래통합당도 진정한 의미의 보수당이라면 5월 국회에서 관심을 기울일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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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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