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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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로 일하고 있는 문모(28)씨는 최근 주변 지인들로부터 “FX○○의 지점을 차려 운영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마침 문씨의 중학교 후배들이 이 사업으로 돈을 벌어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닌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때였다. 문씨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사업에 동참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언젠가는 분명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았고, 사행성이 짙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람보르기니를 탄다는 친구들도 과거 불법 온라인 도박 영업을 하다 전과가 생긴 이들이었다.

최근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상에 ‘FX마진거래’를 이용한 새로운 재테크 기법을 홍보하는 업체들의 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FX○○’ ‘FX△△’ ‘FX◇◇’ 등 주로 앞에 FX가 붙은 수십 개 업체들이 유튜브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고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광고에서는 FX마진거래로 “40분 만에 50만원을 벌었다” “이틀 만에 270만원을 벌었다”는 식의 홍보가 이뤄지고 있다. 당장 포털사이트에 ‘FX○○’를 검색해도 홍보성 기사가 수백 건 올라온다. 가입 절차와 거래 방법이 간단해 20대와 주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FX마진거래(Foreign Exchange Margin Trading)란 실시간으로 변하는 외환 환율에 따라 매수와 매도를 반복해 그 차익을 얻는 거래를 뜻한다. 일반적인 FX마진거래는 주식과 마찬가지로 국내 증권사 계좌를 개설해 거래할 수 있다. 이때 약 1만달러(1200만원)의 증거금을 예치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FX○○’ 등의 거래 방법은 별도의 증권계좌를 개설할 필요도, 증거금을 넣을 필요도 없다. 이 업체들은 이것을 ‘FX렌트’ 방식의 투자라고 부른다. 개인이 증거금과 증권계좌를 마련할 필요가 없게끔 빌려준다는 것이다. 일반 사용자는 업체 사이트에 방문해 간단한 절차로 회원가입을 하면 바로 거래를 시작할 수 있다. 이때 ‘추천받은 지점’을 입력하게끔 되어 있다. 이 지점들은 ‘청담점’ ‘양재점’ ‘에르메스점’ 등 이름도 다양하다. ‘지점’이라고 하지만 오프라인 시설이 마련된 것은 아니고 온라인상에 가상으로 차려진 것이다. 앞선 사례에서 문씨가 사업 제안을 받은 ‘지점’이 바로 이런 온라인상의 지점이다. 지점을 입력하고 사이트에 가입하면 2만원이 충전된다. 이 2만원으로 바로 거래를 시작할 수 있는데, 최소 5회 이상 거래를 해야 개인 계좌로 입금할 수 있다. 환율 차이가 나타나는 실시간 그래프(차트)를 보면서 ‘매도’할 것인지 ‘매수’할 것인지 결정하고 금액을 건다. 한 번에 ‘베팅’할 수 있는 금액은 5000원부터 100만원까지다.

FX렌트 방식의 거래가 이뤄지는 화면. 빨간색과 파란색 막대를 보며 ‘매수’할지 ‘매도’할지 결정한다. 기자가 이틀 동안 거래에 직접 참여한 결과, 총 20번의 거래에서 7번 실패했다. 5만원까지 땄던 돈은 금방 3300원이 됐다. ⓒphoto 거래 화면 캡처
FX렌트 방식의 거래가 이뤄지는 화면. 빨간색과 파란색 막대를 보며 ‘매수’할지 ‘매도’할지 결정한다. 기자가 이틀 동안 거래에 직접 참여한 결과, 총 20번의 거래에서 7번 실패했다. 5만원까지 땄던 돈은 금방 3300원이 됐다. ⓒphoto 거래 화면 캡처

환율 차 비교 그래프 보면서 베팅

기자는 한 FX마진거래 사이트에 가입해 거래에 참여해봤다. 가입을 하면 충전해주는 2만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거래는 1분, 2분, 5분 단위 중 하나를 선택해 매수 또는 매도를 할 수 있다. 그래프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막대가 나타난다. 파란색은 매도, 빨간색은 매수를 뜻하는데, 한마디로 1분, 2분, 5분 뒤에 이 차이가 벌어질지 좁혀질지를 예상해 돈을 거는 방식이다. 업체에서는 이 차트를 정밀히 분석하면 승률을 높일 수 있다고 홍보했지만, 사실상 홀짝게임과 유사했다. 파란색 그래프(매도)가 연속으로 뜨면 ‘다음엔 빨간색(매수)이겠지’ 하고 베팅하는 식이었다. 홀짝게임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거래가 어떻게 돈을 벌어준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첫날은 7번 중 6번의 수익이 ‘실현’돼 20여분 만에 2만5000원을 벌었다. 이후 며칠간 거래를 하지 않자 가입할 때 입력했던 지점에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남성은 “4만5000원까지 버셨던데 왜 이용을 안 하는지”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회원님들이 돈을 많이 가져가셔야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라면서 “회원님들이 돈을 잃으면 우리가 이득 보는 것이 없다. 회원님들이 돈을 아주 많이 가져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운영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 남성은 “오프라인 매장을 열 수는 있지만 따로 차려놓지는 않는다”면서 “솔직하게 말하면 이게 게임 형식이지 않나. 오프라인 매장을 열면 사행성이 더 조장될 수 있다고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시장이 문을 닫는 주말에는 저희도 문을 닫는다. 토요일 새벽 5시에 마감하고 월요일 아침 9시에 다시 연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접속해 거래한 결과는 13번 중 6번의 ‘실격’이었다. 한때 5만8000원까지 올랐던 수익은 3300원까지 떨어졌다.

이 업체들은 카카오톡 단체 채팅을 통해 이른바 ‘무료 리딩방’도 운영하고 있다. 자칭 ‘트레이더’라는 사람들이 회원들에게 예상되는 결과를 알려준다. ‘수(매수)에 거세요’ ‘도(매도)에 거세요’ 하는 식이다. 리딩방에는 수십~수백 명의 회원이 실시간으로 거래내역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영업 방식이 철저하게 ‘합법’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 업체는 회사 홈페이지에 “2019년 올해의 우수브랜드 대상 1위를 수상했다”고 홍보하기도 했다. 이 업체들이 ‘합법’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현재 법으로는 이들을 불법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FX○○ 등의 사이트들이 인기를 끌자 금융감독원에 FX렌트 방식의 거래가 합법인지 불법인지 묻는 민원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접수되는 민원만으로 합법인지 불법인지 판단할 법적 권한이 우리에게는 없다”면서 “민원인들에게는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로 문의해 보라고 전하고 있다”고 했다. 2015년 대법원은 렌트 방식의 FX마진거래는 금융상품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금융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금감원이 개입해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FX◦◦’ 업체 관련 기사가 수백 건이 검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hoto 포털 화면 캡처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에 ‘FX◦◦’ 업체 관련 기사가 수백 건이 검색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hoto 포털 화면 캡처

실제 외환거래 연동 여부 명확지 않아

사감위 역시 최근 들어 FX렌트 방식의 영업에 관한 신고가 많아졌다고 한다. 이를 사행성 불법 도박 또는 신종 금융상품으로 봐야 하는지 내부에서 논의가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판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사감위 관계자는 “최근 국민들이 FX렌트 사이트를 이용했다가 손실을 봤다며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면서 “이 사이트들에서 하는 거래가 실제 외환거래와 연동이 되는지도 명확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 외환거래와 별개로 ‘FX**’ 등의 사이트 내부에서만 돌아가는 거래가 아닌지 의심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의심을 받는 것이 우려됐는지 관련 업체에서는 “우리는 A금융투자사의 HTS를 제공받아 사용하고 있다”고 공공연히 홍보해왔다. HTS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국내 대형 금융사인 A금융투자사의 이름을 앞세워 사람들의 신뢰를 사려 한 것으로 보인다. A금융투자사의 관계자는 “FX○○ 등의 업체와 우리 회사는 전혀 관련성이 없다”면서 “그 업체들이 우리 회사 이름을 끼워 넣어 홍보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후 준법지원실을 통해 경고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해당 업체에서도 더 이상 우리 회사 이름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점조직 같은 형태로 운영되다 보니 여전히 여기저기서 우리 회사 이름이 등장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거래 방식에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전문가는 “FX마진거래는 증권사를 통해서 증권사가 중개해줘야 가능한 거래”라면서 “관련 업체들이 투자 중개업에 관한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업체인지 의심된다”고 했다. 정식 등록된 중개업체가 아닌 경우 투자자 보호와 관련된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금융전문가는 “FX마진거래는 그 자체로 위험성이 높은 투자 기법이어서 증권사들이 아무에게나 계좌를 개설해주지도 않는다”면서 “증거금도 충분히 납입해야 하고, 외환거래와 관련한 교육을 받았는지 상세히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뒤에야 계좌를 개설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파생상품 투자에 대해 전문성이 없으면 큰 손실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전문가는 “업체에서 하는 영업방식을 보면 불법적인 요소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대규모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최소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의 금액이 투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한 업체의 본사 법인등기부등본에 등재된 사내이사와 감사는 각각 1990년생, 1995년생이었다. 또 다른 유명 업체의 사내이사 역시 1994년생이었다. 이들이 외환시장과 환율에 대해 전문적인 경력이나 지식을 갖췄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FX렌트 사업의 위법성은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 2018년 경찰은 FX마진거래로 위장한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개설한 혐의로, 공개적으로 영업해온 이들을 검거한 바 있다. 또 2019년 10월에는 FX렌트 사업을 총괄하던 국제에프엑스렌트 회장 B씨가 도박개장죄 등으로 구속돼 현재 1심 재판 중이다. 당시 검찰은 B씨가 FX렌트 사업 등을 통해 수천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추정했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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