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4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학교에서 온라인 개학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4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중학교에서 온라인 개학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개학이 연기되면서 외국처럼 9월 학기에 학년을 시작하자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몇 년 전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논의되었다가 가라앉았었는데,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다시 불거졌다. 개학이 조금씩 늦어지자 이참에 아예 9월로 연기하자고 정치인, 학자, 교육계 등에서 산발적으로 의견을 내놓았다. 대통령의 불가 선언으로 잦아드는 듯하다가 총선 이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이 다시 불씨를 살렸다.

이러한 논란과 관계없이 교육법상 3월 1일에 학년을 시작해야만 하는 각급 학교는 이미 2020학년을 시작했다. 고3과 중3이 4월 9일 온라인 개학한 것을 시작으로 그 다음 주에 고 1·2, 중 1·2, 초등학교 4·5·6학년이 개학을 했다. 초등학교 1·2·3학년은 마지막으로 4월 20일에 온라인 개학을 했다. 대학도 대부분 3월에 개학은 했지만,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많은 대학이 1학기 내내 교실 수업 없이 원격으로만 강의하기로 했다. 올해 대학교 신입생들은 아직 동료도 선배도 교수도 만나지 못했다. 안됐다는 생각뿐이다.

9월 학기제에 대한 언급은 소셜미디어에서 먼저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의 확산과 관련해 정부의 위기경보를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한 지난 2월 23일, 페이스북 세계의 인플루언서 중 한 명인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이한상 교수가 가을 학기 시작으로 학제를 개편하자고 글을 올렸다. 이 교수는 “정부가 추경예산을 편성하고 전국 각급 학교의 1학기 등록금을 지원해주는 것을 전제로 봄 학기를 휴교하자. 그리고 외국처럼 가을에 신학기를 시작하자. 대학입시는 내년 봄에 치르고 내년 9월에 입학하자”라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였다.

구암고 이기정 교사는 구체적인 고민을 언급했다. 9월 학기제를 도입하면 초등학교 입학 나이가 영구히 늦어진다는 우려였다. 원래 9월 학기제 도입의 주요한 취지 중 하나가 초등학교 입학 나이를 6세로 낮추는 데 있었다. 그런데 만약 9월 학기제가 도입되면 만 6세가 아니라 대부분 만 7세 후반에 입학을 하게 된다. 현행 법령상 2020학년 초등학교 3월 입학자는 2013년 1월 1일에서 12월 31일 출생자이다. 2009년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기존의 ‘그해 3월 1일~다음해 2월 마지막 날’인 공식이 바뀐 것이다. 올해 9월 학기제를 도입하면서 원래의 조기 입학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2013년생과 2014년생을 동시에 입학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서양 농번기 아동 노동이 기원

학교 바깥에서 9월에 학기를 시작하자는 논거는 대개 두 가지로 좁혀진다. 하나는 선진국이 9월에 하니까 우리도 9월에 학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인적·학문적 교류가 많으니까 학기를 맞추면 아무래도 귀국하거나 유학 갈 때의 불편이 사라질 터이다. 또 하나는 현재의 봄 학기 시작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9월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처럼 바꾸자는 논거가 선진국과 일본인데, 서구의 선진국은 왜 9월에 학기를 시작하고 일본은 왜 봄에 시작하는지 그 연유에 대해서는 말들이 없다.

학년 시작이 9월인 것은 농업이 산업의 기본이던 시절 북반구 기준 농번기가 끝난 후에 학교가 시작된 게 그 기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현재 9월에 학기를 시작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호주뿐이다. 호주는 남반구 국가여서 1월 말이나 2월 초에 학기를 시작한다. 일본은 4월, 우리는 3월 시작이다.

영국이 1880년 의무교육을 시작할 때에도 어린이들은 농업 현장과 공장에서 일했다. 1802년부터 공장법이 마련되어 아동의 과도한 공장 노동은 금지했지만 전통적인 농업에서는 예외였다. 어린이들은 들과 밭, 그리고 목초지에서 생계를 위해서 일을 했다. 가을이나 되어서야 아이들의 일이 줄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출석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농번기가 끝난 후 학교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1852년 매사추세츠주에서 최초로 의무교육법을 시행하려고 할 때 도시와 농촌의 사정이 달랐다. 이미 도시 아이들은 1년에 251~260일, 거의 아홉 달을 학교에서 보냈다. 이와 반대로 농촌의 아이들은 180일 정도에 불과했다. 봄·여름·가을이 농번기였기 때문에 추수가 끝나는 9월이나 10월이 되어서야 학교 개학이 가능했다. 또 농한기를 중심으로 수업일수를 180일로 정해 도·농 간 격차를 맞추게 된 것이다. 서양의 농경시대 전통이 우리나라 교육법에도 영향을 미쳐 우리의 초·중고등학교 법정 수업일수도 현재 ‘190일 이상’이다. 과거 220일에서 축소되었다. OECD 평균도 180일 내외로 유사하다. 호주가 200일 정도로 긴 편이다.

일본은 벚꽃이 피고 봄이 시작하는 4월에 학기를 시작한다. 이를 상징하는 게 도쿄대학교의 합격 통지서이다. 과거에 합격자에게 보낸 전보에는 ‘벚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축하메시지를 적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가 남아 있던 건국 초기에는 우리나라도 4월에 개학했다. 그러다가 4·19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에서 이를 3월로 앞당겼다. 1961년 4월 15일 국무회의에서 각급 학교의 학년 시작일을 3월 1일로 하기로 교육법 개정안을 의결한 후, 1962년(단기 4295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현 3월 학기가 박정희 정부에서 시행했기 때문에 개정해야 한다는 논거를 대는 사람이 있지만 결의는 민주당 정부가, 시작은 박정희 정부가 했다. 민주당 정부의 3월 학기 개정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4월에 학기를 시작하면 매 학기 중간에 방학이 있어서 학습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지금처럼 학기 사이에 방학을 하는 게 아니라 학기 중에 방학하니 방학 전후로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다는 이유였다. 다른 하나는 3월이 가장 공부하기 좋은 달이라는 것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시작되는 3월에 수업 대신 입학시험과 졸업행사를 하는 것이 불합리하게 보였던 것이다. 3월 학기는 1959년부터 시작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의무교육 실시 이후 이루어진 개정이다. 학생의 교육을 중시하는 논거가 나름 분명했던 것이다.

2020년에 벌어진 9월 학기제 논의가 70년 전의 그것보다 못한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다. 교육이라는 다음 세대의 미래를 논하자면서 그 논거는 북반구 선진국의 농경사회 전통을 따라가자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4·19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정부가 국무회의로 바꿔놓은 개학일을 일제의 잔재 또는 권위주의 정부의 결정이라고 비하하는 게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코로나19 사태로 올 9월 학기 개강이 힘들 수 있는 서구의 선진국에 내년 1월 개학을 제안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른바 ‘K방역’이 세계의 관심과 존경을 받고 있는 이때, 농업시대의 전통을 끊고 1월생부터 바로 1월에 입학시키는 미래선언을 대한민국이 주도하면 멋지지 않을까. 최빈국의 고단한 살림이었지만 3월 개학으로 하루라도 더 빨리 학교 문을 열었던 앞 세대의 결정이 멋져 보인다. 극일로 과거를 극복하고 학습으로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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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권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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