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을 보좌하고 있는 김여정. ⓒphoto 뉴시스
김정은을 보좌하고 있는 김여정. ⓒphoto 뉴시스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날, 김정은이 김일성의 시체보관소(이른바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행사에 불참한 이후 김정은의 신변이상설이 제기되었다. 한국 정부의 ‘특이동향이 없다’는 거듭된 해명에도 이제는 중태설과 사망설이 기정사실화하는 모양새이다.

반문명적 철권강압 통치에 신음하는 북한 동포들에게 자유와 인권을 보장해주고 한반도의 평화와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해서도 폭압통치자 김정은의 사망설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그러나 북한 체제의 폐쇄적 속성, 특히 극소수의 측근만 알 수 있는 최고통치자 안위(安危) 문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신변이상설에 대한 보도 출처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현 상황에서는 ‘과학 정보’와 ‘인간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국내 정보기관의 판단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향후 도래할 김정은 유고(有故) 상황을 상정한 북한 급변 사태에 대응한 대비역량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할 것이다. 북한 급변 상황에서 최우선 관심사 중 하나는 김정은의 후계 권력 구도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 중반경 당 내부에서 정립해놓은 이른바 후계자론에 기반하여 김정일의 후계 절차를 안정적으로 마무리한 바 있다. 당시 ‘부자 세습’이라는 내외의 비판에 직면한 북한은 1990년대 초반경 기존의 후계자론을 체계화하여 ‘주체의 수령관’과 ‘수령후계자론’으로 정식화하고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정당화하였다.

이후 북한은 김정일의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전대미문의 3대 세습(김일성→김정일→김정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질 것에 대비하여 2000년대 중반경 ①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를 통해 ‘수령후계자론’를 당 내부에 비공개로 전파하고 ②통일전선부 산하 대남·대외 전용 출판매체인 ‘평양출판사’를 통해 ‘주체의 수령관’과 ‘수령후계자론’을 파일 형식으로 제작하여 은밀하게 국내 주사파 운동권에도 전파한 바 있다.

평양출판사에서 나온 수령후계자론은 수령영도계승의 필연성, 수령후계자에 대한 견해, 후계자의 지위, 후계자의 역할, 후계자 문제의 해결원칙, 후계자 문제에 대한 주체적 이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보면 북한 김씨 집단의 후계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수령후계자의 옹립 원칙으로 △인물 본위 △새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수령 재임 시 선정이라는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주목할 점은 수령 재임 시에 후계자를 선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 수령의 영도체제에서 동요나 혼란을 막고 수령의 위업을 확고히 계승, 완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후계자가 지녀야 할 자질로는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뛰어난 사상이론적 예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을 들고 있다. 또한 후계자의 역할로 수령의 혁명사상을 옹호 고수하고 계승 발전시킬 것, 혁명전통을 계승 발전시킬 것, 노동계급당을 강화 발전시킬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셋째, 북한이 수령후계자의 자질과 덕목, 후계 원칙 등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 후계자의 자질을 평가하고 지목할 사람은 살아있는 수령인 김정은뿐이라는 사실이다.

넷째, 수령의 후계는 혈통(血統) 승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조선혁명의 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하는 ‘위대한 주체위업의 계승 문제’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권력승계는 백두혈통이라는 부자(父子) 세습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이른바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代)를 이어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후계자의 덕목을 갖춘 자는 김정은의 자식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36세에 불과한 김정은의 자식은 3명 모두 10세 미만으로 권력을 승계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것이 북한 정권의 고민이다.

백두혈통 김여정이 대안이 되려면?

이 상황에서 김여정(김정은의 친여동생·1988년생)이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김여정이 백두혈통이라 하더라도 32세에 불과하고 여성이라는 점에서 과연 저항 없이 권력을 승계할지는 의문이며, 승계하더라도 북한 주민의 충성을 이끌어내 제대로 권력을 유지할지도 의문이다.

김여정이 후계자라면 이른바 당의 영도 절차를 밟아, 최소한 당 정치국원, 당 부위원장, 북한군 대장(군사 칭호 부여), 당 중앙군사위원, 국무위원회 위원 등의 직책이 부여되어야 후계 반열에 설 수 있는데, 당 제1부부장, 당 정치국 후보위원 정도의 직책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김여정에 대한 우상화작업도 전무하다.

사실 김여정의 힘은 혈족과 후광에 의한 것이었지 절대통치자 김정은이 사라진 상황에서 김여정의 존재는 미약할 뿐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인물이 백두혈통의 어른인 김경희와 김정은의 서기실장인 김창선이다. 이들이 체제보위 핵심세력들이라고 할 수 있다.

김경희(74·1946년생)는 절대통치자 김일성의 딸로 김정일의 여동생이다. 김일성, 김정일 다음가는 명실상부한 실세였고 정치적 영향력도 대단했다. 그러나 2013년 남편 장성택이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된 이후 독살설이 나돌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였으나, 지난 1월 25일 김정은과 함께 설맞이 기념공연행사에 7년 만에 등장함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했다. 김정은이 사라진 상황에서 백두혈통의 어른으로 후계구도를 정리할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원로들을 장악할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치적 기반이 약한 김여정의 후계 승계는 김경희의 지원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또 다른 핵심세력인 김창선(76·1944년생)은 서기실장이다. 북한 핵심부서인 당 조직지도부나 군의 총정치국 등 모든 당·정·군 부서들의 보고가 통합되는 곳이 김정은의 서기실(비서실)이다. 김창선은 당 중앙위원회 부장 직책으로 서기실장을 맡고 있는데 김일성 때부터 대를 이어 김씨집단을 보좌해왔다. 김정은의 명을 받아 당·정·군의 전 부서에 지침을 하달하고 이행사항을 확인하는 조직장악력을 가지고 있어, 김경희의 지도하에 김여정의 권력 승계를 지휘할 인물이다. 김창선이 3대에 걸친 혁명적 의리를 지속한다면 김여정의 권력 승계는 일단 순조로울 것이다.

체제보위 핵심기관들도 주시해야 한다. 북한 김씨집단을 보위하는 핵심부서들인 서기실(비서실), 호위사령부(경호실), 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북한군의 총정치국, 보위사령부, 국가보위성, 인민보안성 등의 변함없는 충성이 중요하다.

2000년대 중반 평양출판사에서 파일 형식으로 펴낸 ‘수령후계자론’.
2000년대 중반 평양출판사에서 파일 형식으로 펴낸 ‘수령후계자론’.

‘곁가지’ 김평일은 잠재력 있나

권력 기반과 주민 충성이 취약한 김여정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66·1954년생)이다. 김정일 통치하에서 40년 동안 핀란드 대사, 폴란드 대사, 체코 대사를 전전하던 김평일이 지난해 말 소환되어 북한에 돌아왔다.

현재 북한 내에서 그의 정치영향력은 제로 상태이나, 중국이 권력 불안정성을 이유로 김여정의 승계를 반대한다면 백두혈통의 ‘곁가지’이지만 중국의 지원하에 김평일이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다. 중국은 북한에 안정적인 친중 정권을 구축하기 위해 북한 체제 보장을 빌미로 당과 군의 핵심인사를 설득하여 김평일 카드를 내세울 수 있다. 중국의 지원이 없다면 김평일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다.

국내외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은 이후 최룡해 등 당·정·군의 집단지도체제를 전망하나, 이른바 김씨집단의 조선혁명전통과 주체사상이 건재한 상태에서는 수령유일 영도체제 특성상 집단지도체제는 불가능하다. 최룡해(70·1950년생)는 당 부위원장, 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직책상으로만 보면 김정은 다음가는 2인자로 보이나 실은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백두혈통 후계체제의 안정을 위해 잠시 최룡해를 임시대행으로 내세워 체제 안정을 기할 가능성도 있으나 본질적 의미의 집단지도체제는 불가능하다.

일부에서는 군부의 단일지도체제를 상정하나, 김정일 통치 시 ‘군의 분권화’ 방침에 의거하여 총정치국(정치사상 지도), 총참모부(군령권), 인민무력성(군 행정권), 보위사령부(군 사찰), 후방총국(군수 지원) 등으로 분리해놓아 군부 인사 어느 누구도 군권을 장악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후계구도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은의 유고 상황이 도래한다면,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은 지속되어 이른바 권력투쟁 등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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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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