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 ⓒphoto 연합
대법원 전원합의체. ⓒphoto 연합

딸을 위협한 남자에게 죽도를 휘두른 아버지가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 받으면서 법원이 ‘정당방위로 인정하는 조건’에 또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월 29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는 특수상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49)씨에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는 지난 2018년 9월 공동주택 건물 세입자 이모(39)씨가 자신의 딸을 향해 욕설을 하며 팔을 붙잡은 장면을 보고 죽도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의 어머니 송모(65)씨도 자신의 아들을 감싸려다 죽도에 맞았고, 이 과정에서 이씨는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에서 배심원단은 김씨의 행동이 형법상 '면책적 과잉방위'에 해당한다고 만장일치로 평결했다. 이는 '야간 등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공포·당황으로 인한 행위'인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해 처벌하지 않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하지만 법원의 이번 판결은 지난 2014년 벌어진 이른바 ‘도둑뇌사 사건’과 대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지난 2014년 3월 강원도에서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도둑을 빨래건조대와 벨트로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일 군입대 신체검사를 받은 최모씨는 친구들과 술을 마신 후 새벽 3시경 집에 돌아왔고, 거실에서 서랍장을 뒤지던 김모씨를 발견했다. 최씨는 김씨를 주먹으로 때려 넘어뜨렸고, 도망치려는 김씨의 등을 빨래건조대와 허리에 차고 있던 벨트로 때렸다. 김씨는 의식을 잃었고, 같은 해 12월 치료를 받던 중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정당방위의 법적 성립 요건을 두고 논란이 됐다. 최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법상 집단·흉기등 상해 혐의로 기소됐고, 2016년 대법원 판결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2심은 “김씨가 최씨 또는 가족의 생명이나 신체를 중대하게 위협하였다는 정황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면서 “그저 도망을 막으려 했다면 가정집에 흔히 있는 전선, 테이프, 넥타이, 운동화 끈, 허리띠 등으로 잠시 묶었다면 방위 목적이 실현됐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최씨 측의 상고를 기각했고, 최씨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받았다.

한편 2015년 12월에는 1990년 이후 25년 만에 살인에 대해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휴가를 나온 군인 장모씨는 술에 취한 상태로 노원구 공릉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두달 뒤 결혼이 예정이었던 예비신부 박모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박씨의 비명을 듣고 뛰쳐 나온 남자친구 양씨가 장씨와 몸싸움을 벌였고, 양씨는 장씨가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아 목과 등을 찔러 숨지게 했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수사를 맡았던 노원경찰서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도 2년의 장고 끝에 남자친구 양씨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비슷해 보이는 앞선 3가지 사건에 대해 다른 판단이 나온 이유는 정당방위의 성립에 관한 법률적 요건 때문이다. 형법 제21조에서는 정당방위에 관해 3가지 경우에 처벌이 면제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①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 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양씨의 경우, 당시 경찰이 ①항에 명시된 ‘본인과 타인의 법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서 자신의 딸을 위협한 남성에게 죽도를 휘두른 김씨가 '야간 등 불안스러운 상태에서 공포·당황으로 인한 행위'로 인정받은 것은 ③항 때문이다. 반면 집에 든 도둑을 숨지게 한 최씨의 경우, 당시 법원은 절도범이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고 저항없이 도망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폭행했다고 판단했다. ①항에서 정하고 있는 ‘법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가 없었고, 이를 막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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