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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07호]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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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아프리카 아이들은 모두 뼈만 앙상? ‘빈곤 포르노’의 함정

박은수(가명)씨의 두 딸은 장애를 앓고 있다. 6살 난 딸은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으로 걷지 못한다. 이제 3살이 된 둘째 딸은 미숙아망막증을 앓아 앞을 보지 못한다. 남편은 둘째 딸이 태어나고 나서 가출해 소식을 알 수 없다.
   
   “저는 온갖 병을 앓고 있어요. 몸에 하나 성한 곳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한 재단을 소개받았어요. 몇 가지 지원 방법을 설명해줬는데, 그중 하나가 성금을 받는 광고를 내자는 거였어요. 처음에는 솔깃했어요. 그런데 ‘샘플’을 하나 보고 마음이 변했습니다.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아이 얼굴을 다 드러내고 병원에서 치료받는 모습을 다 보이고,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얼마나 힘든지 알려야 한다고 하더군요. 곧바로 거절했어요. 저는 그렇게 불쌍한 사람이 아니에요. 도움이 필요하긴 하지만 초라하게 도움받고 싶지는 않았어요. 자존심이 다치는 기분이었습니다.”
   
   장애 아동과 저소득층 보호자가 나오는 TV 모금 광고를 보자. 박은수씨의 말처럼 울적하고 무기력한 분위기가 감돈다. 음악과 배경, 연출을 동원해 최대한 동정심을 이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열악하게 사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모습이 익숙할 지경이다. 한동안 거의 모든 TV ‘공익’ 프로그램은 이런 방식의 내러티브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안타깝고 열악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동정심을 자극하는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방식을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빈곤을 자극적으로 연출해 동정심만을 이끌어내는 빈곤 포르노는 지금도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있다.
   
   
   TV 공익 프로그램의 상투적 내러티브
   
   빈곤 포르노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최빈국(Least Developed Country) 아동을 위해 모금을 펼치는 광고 방송이다. 아프리카 르완다, 소말리아, 우간다 같은 국가의 아동들이 굶주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을 클로즈업해 초점 없는 눈, 거품이 인 입가를 어지럽게 보여준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병을 앓고 있는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부모가 눈물을 흘리는 모금 광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방영된다.
   
   이 빈곤 포르노 광고에서는 화면에 노출되는 아동과 보호자의 인권이 큰 문제가 된다. 특히 아동의 경우,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얼마만큼 활용될 것인지에 대한 자발적인 동의를 구하기가 어렵다. 설사 충분히 동의를 구했다고 하더라도 광고로 노출되고 난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 아동 보호 비영리단체 홍보담당자의 설명이다.
   
   “저희도 예전에는 광고에 아동을 직접 등장시키곤 했어요. 그런데 소식이 끊겼던 아동의 친아버지가 모금 광고를 보고 찾아와 돈을 갈취해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동의를 받았다고 해서 함부로 아동을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는 걸, 이론이 아니라 경험으로 깨닫게 됐죠.”
   
   나아가 논문 ‘국내 비영리 단체 후원모금 광고영상에 나타난 아동청소년의 특징과 낙인’을 쓴 김주아씨는 “빈곤 아동에 대한 이미지를 고정시킬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는데 이런 표현들은 빈곤 아동이 항상 위기 상황에 처해 있고 무기력하며 남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현실을 타개할 수 없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고통이 개인적인 문제로만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빈곤 포르노의 내러티브는 저소득층을 위한 모금 광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에는 알게 모르게 광범위한 범위에서 빈곤 포르노 내러티브가 쓰인다. 공영방송 채널에서 이주노동자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보자. 이주노동자 출신 국가에 찾아가 가족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고 있는지, 가족들을 위해 이주노동자가 어떤 노력을 다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런 방식 역시 빈곤 포르노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해당 저개발 국가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하고, 가족들에 대한 인권 보호 없이 이뤄지는 방송은 자극적이기만 하다.
   
   요즘은 반려동물에까지 빈곤 포르노 내러티브가 쓰인다는 지적도 많이 제기된다. 지난해 사단법인 반려동물협회는 “빈곤 포르노의 동물판을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후원금을 모으고 실적을 홍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연출까지 감행해가며 동물들의 ‘비참한 현실’을 강조하는 영상들을 많이 제작해왔다는 지적이었다. 억지로 만들어낸 비참한 현실에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도 있다. 반려동물 가족과 동물보호기관에 대한 선입견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빈곤 포르노의 문제는 ‘돈’으로 귀결된다. 반려동물협회에서도 동물판 빈곤 포르노를 “동물을 이용한 앵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는데 아동보호단체 관계자도 비슷한 맥락의 증언을 남겼다.
   
   “저희가 후원하는 한 가정에 신생 비영리단체 직원이 연락을 해서 ‘돈 안 필요하세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광고 찍으면 돈이 더 많이 들어온다’며 노골적인 말로 유혹했다고 하더군요. 그들이라고 빈곤 포르노의 문제점을 모르는 게 아닐 겁니다. 하지만 ‘돈’ 때문에 그런 문제점도 모른 척하는 거죠.”
   
   

   빈곤을 단순하게 바라보는 빈곤 포르노
   
   빈곤 포르노는 빈곤을 경제적인 문제로만 단정지어 버리기도 한다. 요즘은 경제적 빈곤만을 빈곤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다차원 빈곤’이라는 개념이 자주 쓰인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청년정책연구센터 센터장의 설명에 따르면 다차원 빈곤이란 빈곤을 다양한 관점에서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다차원 빈곤은 아동 빈곤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아동·청소년의 경우 대개 부모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가구 소득만으로는 빈곤을 판별하기 어렵다. 그러나 건강, 영양섭취, 주거환경 같은 다양한 차원을 살펴보면 부모의 가구 소득이 빈곤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원이 필요한 아동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다차원 빈곤의 개념에서 보면 빈곤 포르노는 빈곤을 매우 단순하게 접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빈곤 포르노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부분 복지제도는 빈곤 문제를 ‘저소득’ 문제로만 규정짓는다. 그러다 보니 소득에 대한 보전을 우선으로 지원할 때가 많다. 빈곤 포르노 역시 ‘돈’을 지원하고 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단층적인 해결법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 등장인물을 찾을 때에도 경제적으로, 눈에 띄게 ‘어려워 보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사각지대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장애를 가진 두 딸을 기르는 박은수씨는 사실 “돈이 필요한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돈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고, 절박할 때도 많아요. 하지만 제가 필요한 도움은 돈이 아니라 ‘손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지, 저 혼자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지 좀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궁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필요했어요. 모금 광고와 돈은, 그런 걸 전혀 해결해주지 못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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