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울산 현대중공업 전경.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간신히 먹고사는 거야.”

지난 4월 28일 울산 남구 신정동에서 함바집을 운영하는 60대 여주인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다행히 근처에 공사 인부들이 있어, 운영은 돼. 요즈음 같은 어려운 시기에 천만다행이야.” 그는 “직원 내보내고 아침 5시에 혼자 출근해 식당 준비를 한다”며 “30년 식당 경영하면서 요즘같이 어려울 때는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여주인은 기자에게 “요즈음 쌀값이 별로 안 드는데 왜 그런지 아느냐”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답변이 재미있었는데, “노가다로 불리는 건설 인부들도 이제는 고기, 야채를 찾지 밥은 별로 안 먹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여주인은 “이렇게라도 먹고살게 해주는 손님들이 고마워 반찬에 돈 아끼지 않고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게 해준다”며 “코로나19로 지금은 어렵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고도 했다. 오랜 기간 여러 고초를 겪으며 살아와서 그런지 삶을 낙관하고 있었다.

울산광역시는 코로나19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듯했다. 대한민국 제조업의 중심지가 서서히 생존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울산 BSI 기준치 2009년 2분기 이후 최저

울산 역시 눈앞에 던져진 숫자로 나타난 현실은 참혹하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울산 제조 업계가 체감하는 현실은 울산상공회의소가 지역 제조업체 15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0년도 2분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드러난다.

조사 결과 전분기보다 6포인트 하락한 66을 기록했다. BSI는 기준치(100)를 초과하면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는 업체가 많다는 것을, 100 미만은 그 반대를 의미한다. 66이라는 숫자는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남아 있던 2009년 2분기(BSI 50)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한·중 사드갈등,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의 영향을 받던 시기에도 BSI가 70 이하로 내려간 적은 없었다.

우울한 전망은 울산 일자리에 실질적 타격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고용유지지원금이 확대되면서 휴업·휴직을 실시하는 울산 지역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울산 지역 중소기업들의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건수는 1500여건이다. 300여건에 불과하던 3월 초에 비해 불과 2달여 만에 1200건 이상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00건에도 미치지 못하던 것에 비하면 15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난에도 감원 대신 유급 휴업·휴직 조치를 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주에게 정부가 휴업·휴직수당의 일부를 지원하는 제도다. 지원 대상은 근로자 500명 이하 제조업, 200명 이하 도소매업, 100명 이하 중소기업 등이며 유급 휴직 직원의 비중이 전체 직원 중 20% 이상이어야 한다. 원래 고용유지지원금 지급 수준은 중소기업 등 우선지원 대상에 대해서는 휴업·휴직수당의 67%였으나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2월부터 한시적으로 75%로 인상한 데 이어 4월부터 90%로 올렸다.

울산은 ‘직장인 연봉 1위’ 도시로 잘 알려진 곳이다.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SK에너지, 에쓰오일 등 고액연봉으로 유명한 중화학 대기업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이 울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일단 고용이 많을 때는 6만명이 넘어 직원들 가족까지 합치면 30만명 가까이 되는 사람의 생계가 달린 일터다. 울산 인구가 120만명 정도 되니까 4분의 1이 현대중공업과 관련이 있다.

2018년까지 14년 동안 현대중공업에 다녔던 A씨는 과거의 영광을 이렇게 기억한다. “노래방에 가면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작업복 갈아입지 않고 놀러 다니곤 했는데 좋은 시절이었다.”

2018년 명퇴신청을 받기에 손을 들었다는 그는 “그때 나오길 잘한 것 같다”며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계속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중공업 위기의 상징적 사건은 하청업체 사장들의 잇따른 자살이다. 그는 “10년 전과 똑같은 단가를 주는데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다”며 “아는 분도 자살을 택해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코로나19로 들이닥친 수주절벽을 일단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구조조정이 해법처럼 보일 수 있다. 이미 회사를 나온 A씨는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막상 구조조정하면 제발 나가줬으면 좋겠는 사람은 끝까지 나가지 않고, 젊고 쓸 만한 30~40대만 손을 든다. 실제 명퇴금 받고 중국으로 팀장급으로 이직한 경우도 있다.” 그는 “이제 저임금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으니, 기술 중심 산업으로 갈아타야 한다”고 했다.

울산 대표 상권인 성남동 젊음의 거리.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울산 대표 상권인 성남동 젊음의 거리.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울산시가 꺼내든 혁신산업 리스트들

울산은 1970년대부터 ‘산업수도’로 일컬어지며 국가 경제를 견인하던 곳이다. 국가 산업단지 2곳이 이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석유화학, 석유정제, 조선기자재 등 울산 주력산업의 발전으로 광역도로망, 철도망, 항만 등 인프라도 크게 발달했다. 이곳에 터 잡은 자동차, 조선, 화학 등 3대 주력업종은 그간 한국을 먹여살린 핵심 업종이었다.

당연히 울산 제조업의 위기가 한국 경제의 위기다. 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울산 지역 수출은 지난 1월 -4.7%, 2월 -4.4%, 3월 -2.7%로 평균 2.7% 감소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수출 역시 같은 기간 내 1.4% 줄었다.

비록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진작부터 울산 제조업은 중국 등 저임금 국가의 도전으로 경쟁력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컸다. ‘체질 개선’ 이야기가 계속 나온 배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차라리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점에는 의견이 어느 정도 모아졌다는 것이 기업 관계자들의 말이다. 울산시 역시 기술혁신을 주장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 4월 23일 울산테크노파크를 중심으로 산업 및 연구개발(R&D), 기업 육성 분야 기관들이 참여해 혁신산업 도출과 육성 방안, 신규사업 발굴 등의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미래 자동차와 친환경·스마트선박, 첨단화학 신소재, 친환경에너지, 게놈, 3D프린팅을 6대 지역혁신 성장산업으로 선정하고 보유 중인 산업역량을 활용해 주력산업 고도화, 신성장산업 집중육성 등 4차 산업기술 융복합을 통해 시장경쟁력을 높여나갈 계획이다. 기존의 중공업, 자동차, 화학을 부가가치를 높여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것이다.

우선 미래 자동차 혁신 분야는 수소차와 전기차 기술 격차 유지를 통한 친환경차 경쟁력 확보와 자동차-정보통신기술(ICT) 융합화를 통해 자율주행차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선박 경쟁력도 강화한다. 친환경·스마트선박 산업 혁신을 위해서 환경·선박 핵심 기자재 및 생산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첨단화학 신소재 산업 혁신은 고부가가치 핵심 소재 확보를 통해 지속가능한 소재 산업을 육성하고 바이오화학 산업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울산시는 내년에 총 1360억원(국비 893억원, 지방비 467억원) 규모의 재원을 활용해 지역혁신산업 육성 추진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원가절감’ 하지 않으면 죽는다”

이미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은 4차산업으로 전환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기술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 울산의 협력(하청)업체들도 적극적인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나섰다. 지난 4월 28일 남구 커피숍에서 만난 현대차 1차 협력업체 간부는 10분 단위로 시계를 보면서 기자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뛰지 않으면 죽는다는 비장함이 기자와의 대화 중간중간에 뿜어져 나왔다. 예를 들어 “‘원가절감’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구성원 모두가 뛰고 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어딜 가도 어렵다고 하니, 영업을 늘릴 생각은 하지도 못한다”며 “일단 나가는 돈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긍정적인 신호도 있다고 한다. 기자가 “부품업체로 유명한 ‘보쉬’처럼 대기업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설 수는 없었느냐”고 물었는데 “과거에는 현대차 등 원청 대기에 부품만 만들어야 했다”고 답했다. 이는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다만 이제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제 대기업을 찾아가면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회사에 물건을 납품한다’고 하면 오히려 좋아한다.” 과거 대기업이 해외에 진출할 때는 같이 해외에 진출해 공장을 꾸렸는데, 이제 그곳에서 납품할 다른 해외 기업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대기업 눈치만 보던 분위기에서, 우리도 홀로 서 보자는 분위기가 생긴 것은 긍정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코로나19로 수출이 무너지고 있는데, 상반기 안에는 안정되기를 바란다”는 절박한 심정을 이야기했다.

정부 역시 제조업 중심 도시의 어려움을 알고 기업들에 지원을 하고 있다. 저리로 대출을 하거나 만기를 연장하는 식이다. 울산 현장에서 만난 지역은행 지점장은 “지원은 신속해야 하지만 시장의 상황을 제대로 봐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지금 자영업자에게 3000만원씩 급하게 빌려주는데, 거의 다 빚으로 남을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한계 기업들이 은행에 돈을 빌리러 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이유가 “정부에서 갚지 않아도 되는 지원을 많이 하다 보니, (어려운 기업들이) 정부 지원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세금으로 지원을 하려면 정부 사업을 늘려서 할 일을 만들어 줘야지 그냥 돈만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지금도 사업 아이템이 있으니 공장 차리게 대출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살릴 수 없는 기업에 대출할 바에야,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자금 지원뿐 아니라 울산 시민들이 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울산시의회에 만난 김종섭 의원 역시 “시민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울산은 맞벌이가 많은데, 학교가 문을 닫아 일하러 갈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코로나19가 안정이 되고 있으니, 하루빨리 육아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위기의 순간 ‘노사상생’으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노사가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서, 울산의 공장이 어느 때보다도 생산성 높게 돌아가야 울산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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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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