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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단독 조봉암 구명운동 미국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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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08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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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단독 조봉암 구명운동 미국도 나섰다

▲ 1959년 7월 31일 더글러스 딜런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주한 미대사관에 보낸 외교전문. photo 나탈리아 마트베예바
러시아 연방 국가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구(舊)소련 외교문건에 기록된 북한 김일성 주석의 발언에 따르면, 김일성은 시종일관 조봉암 처형과 진보당 와해의 원인을 미국에서 찾고 있다. 김일성은 “미국인들은 새로운 대선후보자(조봉암)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느꼈다”라며 “나중에 우리는 그들(미국)이 조봉암과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알았다고 알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관계가 드러난 이유에 대해서는 “조봉암 옆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지만, 미국 간첩도 있었다”라며 “조봉암의 서기는 간첩이었고 조봉암은 그 사실을 몰랐다”라고 소련 측에 밝히고 있다.
   
   하지만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국민대 선임연구원의 동료인 나탈리아 마트베예바(영국 동양아프리카연구학원(SOAS) 박사과정·북한경제사 전공)씨가 최근 미국 국무부에서 입수한 1989년 미국의 기밀해제 문건에 따르면, 미국 측은 조봉암 처형을 앞두고 이승만 정부 측에 외교적 압박을 가함과 동시에, 조봉암 교수형 집행 당일(1959년 7월 31일)까지도 구명 노력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미 국무부 부(副)장관이었던 더글러스 딜런(후일 미 재무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2쪽 분량의 해당 문건은 조봉암이 처형된 당일인 1959년 7월 31일, 주한 미대사관 앞으로 보낸 전문이다.<사진>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월터 다울링 대사 앞으로 보낸 전문은 “급작스럽고 매우 의심스러운 조봉암 처형 결정과 관련해 가급적 빨리 리(이승만) 대통령을 만나는 기회를 잡아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또한 전문은 이승만 대통령을 만날 경우, 미국 측과 법무장관이었던 홍(홍진기) 간에 있었던 대화가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확인하고, 대통령에게 특별사면권 행사 여부를 직설적으로 물어보라고 주문하고 있다. 또한 “조봉암을 처형할 경우, 한국을 UN에 가입시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명확하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라는 외교적 압박도 서슴지 않는다.
   
   전문은 “조봉암이 한국에서 상당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반대파들이 처형을 정치적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나름의 설득 논리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살인(Political Assassination)’과 같은 강경한 표현도 엿보인다. “공산주의자이건 아니건, 소위 ‘정치적 살인’은 한국에서 정치적 자유가 부족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에 나타난 미 측의 우려다. 또한 미 측은 “공산주의와 싸우는 방법에는 효과적인 방법과 비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 조(봉암)를 순교자(Martyr)로 만드는 것은 비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일성의 추측과 달리, 미국은 시종일관 이승만 대통령을 상대로 외교적 압박을 가하고 있었던 셈이다. 반면 전문이 발신된 날짜를 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사형집행 날짜를 미 측에도 통보하지 않을 정도로 속전속결로 처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 측은 전문에서 “향후 수일간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지 못할 경우, 당신(주한 미대사) 재량껏 수일 내에 잠정적으로 외무장관(조정환)이나 법무장관(홍진기)을 만나봐야 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문을 받은 당일인 1959년 7월 31일 오전, 조봉암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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