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주간조선 로고

상단주메뉴

  • [포커스]  법 감정과 양형기준 사이… 판사들은 왜 ‘낮은’ 형량을 선고할까
  • kakao 플러스친구facebooktwiteryoutube
  • 검색
  1. 사회/르포
[2608호] 2020.05.18
관련 연재물

[포커스]법 감정과 양형기준 사이… 판사들은 왜 ‘낮은’ 형량을 선고할까

▲ (왼쪽부터) 집단성폭행·불법촬영 혐의로 구속된 방송인 정준영. photo 남강호 조선일보 기자 / 집단성폭행 혐의로 구속된 방송인 최종훈. photo 뉴시스 /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photo 오종찬 조선일보 기자 /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강훈.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특정 브라우저를 이용해야 접근할 수 있는 숨겨진 인터넷 ‘다크웹’에 개설됐던 ‘웰컴 투 비디오’는 아동 성착취물만을 다루는 사이트로 2015년 개설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했다. 이 사이트 운영자는 충남에 거주하던 20대 한국인 남성 손정우였다. 사이트 운영 기간 동안 아동 성착취물 22만건을 유통해 415비트코인(약 44억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한국 법원이 내린 형벌은 징역 1년6월이 ‘고작’이었다. 당초 2018년에 구속되어 2020년 4월 27일 출소할 예정이었지만 뜻밖에 미국 법무부가 발목을 잡았다. 1년6개월 만에 석방될 예정이던 그에 대해 미국 워싱턴DC 연방 대배심원이 아동 성착취물 배포와 광고, 자금세탁 등 9건의 혐의로 기소했고 미 법무부는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손정우를 미국으로 송환해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청한 것이다. 손정우는 다시 구속되었고 그가 받은 처벌 수위와 미국으로부터의 송환 요청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분노한 지점은 손정우가 받은 형량에 대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는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소지하기만 해도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에 처하고, 판매나 배포할 경우에는 5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에 비하면 1년6개월이라는 형기는 매우 짧아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미 법무부에 제동 걸린 ‘솜방망이’ 처벌
   
   비슷한 논란은 늘 있었다.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한 성착취 동영상 제작과 유포 사건, 이른바 ‘n번방 사건’과 관련해 n번방 운영자였던 닉네임 ‘켈리’는 징역 1년만을 선고받았다. 집단성폭행에 가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던 방송인 정준영과 최종훈은 2심에서 각각 1심에 비해 감형된 징역 5년과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다. 최종훈의 경우 1심에서 선고받은 징역 5년에 비해 절반이나 감형되어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시민들의 인식을 굳히는 역할을 했다.
   
   사실 성범죄에만 이런 여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음주운전에 대한 국민들의 여론도 강경하다. ‘음주운전은 살인죄를 저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자리 잡았고 이런 인식은 법 제정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쳐 2018년 11월 이른바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음주운전 처벌강화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에는 전제돼 있는 인식이 있다. 현재 선고되는 형량이 국민의 ‘법감정’에 못 미친다는 것이다. ‘법감정’보다 훨씬 적은 형량을 선고하면서, 그나마도 여러 이유를 대 감형하기 일쑤라는 게 법원에 대한 불신 섞인 목소리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 매년 실시하는 사회통합실태조사에서 법원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3.2%에 이를 정도인 이유도 아마 이런 양형 문제에 대한 불만 때문일 것이다. 왜 ‘법감정’과 법원의 실제 선고 형량 사이에는 괴리가 발생하는 것일까.
   
   
   경험적으로 설정되는 양형기준의 문제
   
   우선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많은 법학자들이 지적하듯이 각종 범죄에 대한 ‘법정형’ 자체는 결코 낮은 편이 아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7조1항만 봐도 그렇다. 이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으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게 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법정형대로 양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형위원회가 설정한 아동·청소년 강간의 양형기준 기본영역은 징역 5~8년이다. 가중영역으로 봐도 6~9년형이 선고된다.
   
   이 괴리를 살펴보려면 우선 법정형과 양형기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아야 한다.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을 따라 우리나라의 양형 문제에 대해 이해해 보자.
   
   법정형을 정하는 것은 입법자, 즉 국회의 역할이다. 국회에서 만들어진 여러 ‘특별법’은 사건이 발생하고 여론이 형성될 때마다 제정·개정되어 법정형을 고쳐왔다. 2018년에 개정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과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한 예다. 둘을 묶어 ‘윤창호법’이라고 불리는 이 개정안 중 특가법 개정안은 음주운전에 대한 형량을 강화했다. 이에 따르면 사망사고를 낸 음주운전에 대한 법정형은 기존의 ‘현행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서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으로 높아졌다.
   
   “입법자는 특별법을 만들고 개정해 법정형 하한이나 상한을 올림으로써 국민의 의사를 반영합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형량 선고 단계에서, 형사법관이 선고하는 양형이 법정형과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이유는 양형기준에 있습니다.”
   
   양형기준을 정하는 것은 양형위원회의 역할이다. 양형위원회는 2007년 처음 설치된 이후 13년 동안 개별 범죄마다 양형기준을 설정해 왔다. 그전에는 법관에 따라 양형의 편차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양형 편차를 줄이기 위해 양형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를 두고 오랜 논의가 있었습니다. 지금 실시하는 방식은 일단 한 범죄에 대해 가장 낮은 형에서 가장 높은 형까지 줄을 지어 놓고 극단 값을 뺀 가운데 70%를 양형기준으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존 판례들의 평균값을 양형기준으로 삼게 된 것입니다.”
   
   김한균 연구위원의 설명처럼 양형기준은 ‘경험적’으로 설정돼 왔다. 그런데 이 경험을 만들어낸 법관의 인식이 국민의 ‘법감정’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다.
   
   “법은 체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살인이 가장 중한 범죄라면 수준별로 서열을 매겨 낮은 범죄에 대한 형벌은 그보다 높은 범죄의 형벌을 초과해 선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죄와 강간죄에 대한 형량의 차이는 여기서 나옵니다. 살인은 목숨을 앗아가 완전히 회복 불가능한 범죄이지만, 강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온 것이지요.”
   
   김태명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얼마 전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성폭력 피해자 최말자씨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최씨는 1964년 자신에게 성폭행을 시도하던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자른 혐의로 도리어 처벌을 받았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때와 다르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과 심각성에 대해 자각하게 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일입니다. 국민은 성범죄가 피해자에게 말할 수 없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아직 법정에서는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설정된 양형기준은 그간 법정에서 있었던 ‘보수적’인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양형위원회 측에서는 때때로 국민의 여론을 반영해 양형기준을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근 일련의 성착취 동영상 제작과 유포 사건으로 불거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여론은 실제로 양형위원회(위원장 김영란)를 움직였다.
   
   양형위원회는 지난 4월 20일 전체회의를 열고 아청법 제11조의 양형기준에 대해 논의했다. 11조를 구성하는 아동·청소년에 대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정하는 것이 회의의 주제였다. 11조1항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한 사람은 징역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을 받을 수 있지만, 양형기준이 없어 선고 형량이 법관의 재량에만 맡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 결과 기본영역으로 징역 4~8년을 제시하는 것을 다수 의견으로 검토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마저도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감경영역, 즉 정상참작이 가능한 요소들을 감안해서 선고할 수 있는 형량은 징역 2년6월~6년으로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양형기준을 단지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흔히 ‘작량감경’이라고 불리는 법관의 재량에 따른 정상참작은 양형기준 안에서 최소한의 양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근거가 된다. 박형관 가천대 법과대학 교수는 지금 양형기준이 단지 법관의 ‘참고용’으로만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박 교수는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로 재직하던 당시 1기 양형위원회의 전문위원으로 현재의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데 역할을 했다.
   
   “양형기준의 폭은 매우 넓습니다. 그러다 보니 법관의 재량이 많이 개입하게 됩니다. 보통 양형기준에 맞춰 양형을 정할 때는 범죄유형이나 형량을 결정하는 인자들을 고려하는데 이게 복잡하고 일관성이 떨어집니다. 여기에서도 판사의 재량이 많이 개입되지요. 여기에 판사들의 온정주의적인 태도까지 더해지면 ‘약한 형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양형정보시스템 구축
   
   그래서 종종 형량을 선고할 때 판사의 재량이 개입될 여지를 줄이자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연방의 양형기준이 그렇다. 미 연방에서는 각종 양형인자, 즉 범죄의 개별 항목을 일일이 점수화해서 범죄의 등급을 정하고 개인의 범죄경력을 고려해 마치 바둑판에서 정해진 지점을 찾아가듯 형량을 정한다. 양형기준은 권고될 뿐이지만 이탈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박형관 교수는 한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어느 한 방식의 양형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장시간의 논의와 섬세한 조정이 필요합니다. 이미 설정돼 있는 양형기준을 전반적으로 고치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신 현실적인 방안은 따로 있다. 김한균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의 참여’를 강조한다.
   
   “우선은 개별적인 양형기준을 설정할 때 국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적정한 형량’인가를 고민해 봅시다. 종종 형법학자들이나 법원 일각에서는 국민의 법감정을 ‘감정’의 영역으로만 치부하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양형이라는 것은 결국 판단의 영역이고, 규범적인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사회에서 중시하는 가치에 어긋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국민의 참여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비전문가라고 무시할 것이 아닙니다.”
   
   나아가 박형관 교수는 ‘양형정보시스템’의 도입을 주장한다. 양형정보시스템이란 간단히 말해 양형 선고에 대한 모든 것을 공개하는 시스템이다.
   
   “지금의 양형기준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무척 어렵습니다. 기본영역, 감경영역, 가중영역이라는 말도 쉽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선고했는지 명확히 밝히는 법관은 거의 없지요. 양형정보시스템은 양형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양형정보를 만들어내고 이용자들이 검색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는 결국 ‘법감정’과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다. 국민은 법관의 판결문을 요약한 언론보도를 보면서 ‘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인지’ 분개한다. 그 과정을 일일이 밝히면 최소한 양형기준에 대해 이해할 뿐 아니라 가중처벌되고 감형되는 사유에 대해서도 합리적이었는지 따져볼 수 있는 것이다. 양형기준을 높인다고 해서 법관이 선고하는 형량이 높아지지 않는 현실에서, 양형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그 이유를 밝혀내자는 것이 시스템 구축의 이유 중 하나다.
   
   “이렇게 되면 법관의 재량 역시 통제될 것입니다. 법관이 임의로 가중하고 감경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숨겨져 있던 양형 이유, 전관예우라든가 재판부나 지역별 편차 같은 것도 다 공개됨으로써 보다 합리적인 양형 판단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양형정보시스템이 활성화한다면 축적된 자료는 추후에 더 객관적인 양형기준을 마련하는 데도 쓰일 수 있다는 게 박 교수의 말이다.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이유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결로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것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부터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