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등 회원들이 작년 9월 2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요금수납노동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등 회원들이 작년 9월 2일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요금수납노동자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부당해고를 당했는데 권리구제를 해주기는커녕 명예훼손죄 성립이라니 황당할 수 있다. 해고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부당해고라 말하는 것도 안 된다니. 한국의 노동법이나 형사법이 이렇게도 냉정하고 매서운 것이었나 생각할 수 있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오히려 약자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그 해고가 정당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그 정당성이 노동위원회나 법원에서 인정되었다면 어떨까? 근로자의 잘못이나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정당하게 해고를 하고서도, 부당해고를 한 나쁜 사업주, 갑질 사업주로 몰린다고 생각해 보자. 단순하게 불만을 토로하는 차원을 넘어 피켓 시위를 하거나 현수막 설치를 한다면 사업주 입장에서는 매우 힘들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 정도에 이르렀다면 근로자의 권리구제도 중요하지만, 사업주의 명예도 반드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법원도 이와 같은 판단에서 ‘부당해고 규탄한다’ ‘부당해고는 갑의 횡포다’ 등의 내용이 기재된 현수막과 피켓을 게시한 자에 대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대법원 2019. 4. 25. 선고 2019도1162 판결)

사안은 이렇다. A씨는 B주식회사의 택시기사로 근무하다 2014년경 징계해고 되었다. 구체적 사유는 ‘교통사고 처리 회피 및 불이행’이었다. A씨는 이러한 해고에 불복하여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그런데 노동위원회에서 A씨의 구제신청은 기각되었다. 이에 A씨는 법원에 해고무효확인의 소를 제기했으나, 이 또한 2016년 결국 기각되었고 확정판결까지 되었다. 그 이후 A씨는 2017년 4~5월 사이 구청과 B주식회사 앞에서 B주식회사 대표의 부당해고 등을 규탄한다는 현수막과 피켓을 게시했다. A씨는 ‘부당해고 자행하는 B회사 규탄한다’는 현수막, 피켓 옆에 ‘택시 노동자들이여 빼앗긴 우리 권리 찾기에 같이합시다’라고 기재된 피켓도 함께 게시했다. 이러한 A씨의 행위에 대해 법원은 형법 제307조 제2항의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피켓의 ‘부당해고’를 허위사실로 본 이유

이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A씨가 ‘부당해고’라 표현한 것을 법원이 허위사실이라고 본 점이다. 자신의 해고가 부당해고가 아니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피켓, 현수막에 부당해고라 표현하였으므로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당하다’ ‘부당하다’는 특정한 사실에 대한 의견 내지 평가이므로, 허위사실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있다’ ‘없다’와 같은 사실 존부의 문제와는 다르지 않느냐는 것이다. ‘갑(甲)은 사람이다’ ‘이 글은 갑이 쓴 글이 아니야’와 같은 문제는 사실판단의 문제인 반면, ‘갑은 좋은 사람이다’ ‘갑은 정의로운 사람이야’ ‘갑의 이번 글은 형편없었어’와 같은 문제는 사실판단이 아닌 주관적 가치판단의 문제이다.

어떠한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적시했다고 해서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처럼 ‘정당하다, 부당하다’도 누군가의 시점, 생각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므로 무엇인가를 부당하다고 했다고 하여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기는 쉽지 않다.

부당해고도 그 사전적 의미만 따져본다면 이치에 맞지 않는 해고인데, 그 이치를 누가 따지느냐에 따라 정당해질 수도, 부당해질 수도 있다. 과연 절대 변치 않는 객관적 의미의 ‘부당해고’를 누군가 정할 수 있을까? 법원이나 노동위원회가 보기에는 해고가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근로자가 보기에는 여전히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부당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법원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부당해고’의 사전적 의미를 떠나, ‘부당해고’는 통상적으로 근로기준법, 단체협약, 사내규정 등에 정한 해고 사유와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해고라는 의미로 사용되므로, 해고가 이에 해당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증명하고 판별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에 법원에서 정당한 것이라 인정되었고, 판결이 확정되었다면 그 해고는 ‘정당한 해고’에 해당하고 객관적으로 ‘부당해고’라 볼 수 없다고 보았다. 즉 법원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면 더 이상 그 누구도 정당하다, 부당하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에 따라 법원은 A씨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기각 판정을 받았고, 서울북부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 등의 소를 제기했지만 기각되어 최종 확정판결이 이루어졌으므로, 자신의 해고를 ‘부당해고’라 표현하는 것은 허위사실을 적시한 것이라 보았다. 특히 ‘택시 노동자들이여 빼앗긴 우리 권리 찾기에 같이합시다’라고 기재된 피켓을 게시한 이상, 단순한 의견 내지 논평을 넘어 자신의 해고를 마치 법적으로도 부당한 해고처럼 알린 것이므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부당과 정당을 누가 판단하나?

근로자가 잘못을 하여 정당하게 해고를 했음에도 갑질 사업주로 몰리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러한 점에서 위 법원의 판결은 긍정적으로 수긍할 수 있다. 권리구제 수단을 다 활용하였고, 법원 노동위원회 등에서 해고가 정당하다고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빼앗긴 권리를 찾자며 사업주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를 했다면 이는 엄단되어야 하는 게 맞다.

그래도 의문점이 남는다. 만약 법원이 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에서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노동위, 법원에서도 인정한 부당해고, 이를 행한 회사 규탄한다”고 표현했다면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함에 있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부당해고를 규탄한다”를 적시한 것만으로 과연 이를 허위사실이라 볼 수 있을 것인지, 비록 법적으로는 정당한 해고이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해고를 당한 억울함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인지 여운이 남는다. 무리하게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를 적용하기보다는 가급적 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하려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필자가 위 판결에 대해 부당한 판결이라고 한다면 그 또한 허위사실 적시가 될 것인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절대적인 정의가 존재하는 것인지, 사법부와 사법질서를 존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사법부의 판단이 오로지 절대적이라 볼 수 있는 것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재욱 변호사ㆍ법무법인 주원 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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