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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르포
[2610호] 2020.06.01

단독 ‘나눔의집’ 초대원장 성폭행 사건도… 진상위 열고도 유야무야

▲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나눔의집 건물. photo 연합
위안부 피해 할머니 지원시설인 ‘나눔의집’을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1990년대 후반 나눔의집 운영 초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초대원장이 함께 일하던 여자 간사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도 있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사건은 최근 제기되는 나눔의집 후원금 유용 및 할머니들에 대한 인권침해 의혹 등과는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사건 발생 배경엔 공통된 내용이 엿보인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당시의 진상조사 보고서를 살펴보면 나눔의집이 과거에도 지금처럼 내부 비리에 대한 자정 작업이 구조적으로 어려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나눔의집 운영 자체가 ‘고압적’ 분위기에서 이뤄졌으며, 내부 문제에 대해선 자성의 목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보고서의 주된 내용이다.
   
   당시 진상조사를 주도했던 시민사회단체도 조사만 했을 뿐 본질적인 사태 해결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근 나눔의집 전 사무국장 등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한 나눔의집 직원들은 “내부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받은 압박은 ‘너희가 이러면 할머님들만 피해를 본다’였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는데,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진보진영 인사들 진상조사 참여
   
   나눔의집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스님 등의 후원으로 1992년 개원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거주·요양 시설이다. 운영은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이 도맡고 있으며 이사진의 3분의 2 이상은 조계종 승려들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나눔의집 원장직은 줄곧 조계종 소속 스님이 도맡아왔다. 초대원장으로는 혜진 스님이 추대됐는데, 그는 나눔의집 자원봉사자, 상근 직원 등을 뽑으며 초기 운영의 기틀을 세우는 데 힘썼지만 그 과정에서 나눔의집 간사로 일했던 두 명의 여성과 성관계를 맺으며 성폭력 논란을 일으켰다. 혜진 스님은 결국 2001년 원장직을 사임했고, 승적 포기를 선언했다. 주간조선이 확인한 2001년 2월 17일 혜진 스님이 발표한 양심고백 전문에 따르면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일을 해온 제가 이런 용납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데 대해 함께 이 문제를 풀어왔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 활동가들, 봉사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믿음을 저버린 데 대해 심한 자괴감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참여연대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여성의전화, 한국YMCA연합 등 8개 시민사회단체는 2001년 2월 ‘혜진 스님(배○○)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고 이후 한 달여간 가해자와 피해자,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사실 규명 조사를 벌였다. 여기엔 조희연 서울시교육청 교육감(당시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당시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정강자 참여연대 공동대표(당시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등 다수의 진보진영 인사들도 참여했다. 이들은 조사 이후 2001년 4월 3일 사건 경위는 물론, 나눔의집 원장과 직원과의 관계 등 조직 내부 분위기까지 상세히 적어 하나의 보고서로 정리했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혜진 스님은 함께 일하던 A씨 등에게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요구했고 점차 높은 수위의 행위를 강요했다고 한다. A씨는 1996년 나눔의집 간사로 채용돼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숙식하며 근무했던 직원이다. 혜진 스님의 만행은 A씨가 나눔의집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나고 나서부터 이뤄졌다. 혜진 스님은 밤마다 A씨의 방으로 건너가 뜸과 오일 등을 활용해 안마를 해달라고 요구했고, 급기야는 옷을 벗으라고까지 강요했다. 피해 여성은 A씨 말고도 한 명이 더 있었으며 혜진 스님의 이런 행위로 굴욕감과 불쾌감을 느낀 여성도 다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적절 행위를 나눔의집 여타 직원들도 눈치채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눔의집 권위적·고압적 분위기는 그대로
   
   하지만 이에 대한 문제 제기는 쉽지 않았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과다. ‘혜진 스님의 업무행태’ ‘스님과 신도의 관계’ 등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직원들이 원장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업무 스타일에 대하여 반대를 하거나 비판을 하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혜진 스님의 지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나눔의 집에서 일을 할 수 없었으며 사실상 해고를 당하였으며…’ ‘보통의 직장인이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느끼는 중압감보다 종교적인 지도자로서의 스님에게서 느끼는 권위에 한층 눌려 있었으며…’.
   
   보고서엔 당시 나눔의집 원장이 직원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으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도 상당한 마찰을 빚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런 분위기가 내부 자정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관련 대목은 이렇게 기술돼 있다.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 직원인 간사들에 대하여는 의견의 충돌이 있을 때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를 취했으며 그곳의 할머니들과의 사이에도 상당한 마찰이 있었고 할머니들에게 “명령을 안 따르려면 양로원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말을 하였다.’
   
   ‘할머니나 자원봉사자들과 대립이 있을 때는 “감히 스님에게”라는 등의 말을 하며 권위적으로 사람들을 대하였다.’
   
   ‘나눔의집 간사, 할머니들, 자원봉사자들과 의견의 충돌이 있을 때 자신이 스님인 것을 내세우며 권위적으로 일을 처리하였으며….’
   
   보고서는 이런 식으로 나눔의집이 안고 있던 구조적 문제까지 적시했지만, 나눔의집 측에선 그 이후 별다른 행정적 조치나 변화를 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혜진 스님과 잘 알고 지냈던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혜진 스님이 나에게 갑자기 울면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더라”라며 “결국 그만두고 나서 이후 나눔의집에 여성 스님들이 몇 분 오는 것으로 마무리됐던 걸로 안다”라고 밝혔다. 조계종 관계자는 “소문은 들어 알고 있지만 그때 어떻게 마무리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라고 말했다.
   
   더군다나 진상조사위원회는 보고서에 ‘혜진 스님의 신체적 접촉은 성폭력의 한 유형이라는 결론에 달하였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일반 형사법정으로 가지 않고서도 시민사회의 자정적 처리의 대표적 사례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되었다’라고 정리했다. 결국 이에 대한 법적 조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위안부 피해 지원 단체 안팎에선 결국 당시 폐단 등을 유야무야 넘기는 태도가 지금의 각종 의혹들을 키운 것 아니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당시 시민운동의 권력화, 관료화, 초법화 등을 경계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자는 논쟁 등이 다수 있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변화가 없고 오히려 자기네들이 심판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부끄러운 줄 모른다. 지금의 사태도 모두 같은 연장선에 있다”라고 지적했다.
   
   당시 위원회는 보고서 말미에 ‘시민·사회운동가들의 사회적 활동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내밀한 개인적 세계 속에 보여지는 모습이 불일치하는 인간의 이중성’을 언급하며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부에서 도덕성, 진실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구와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노력은 기울이지 않은 채 진정성 논란만 일으키고 있는 것이 일부 시민사회운동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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