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차 허위매물 딜러들의 영업 방식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기사 본문과 관계없음) ⓒphoto 연합
중고차 허위매물 딜러들의 영업 방식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기사 본문과 관계없음) ⓒphoto 연합

“대한민국에선 돈이 전부야 알지? 변호사 사면 돼. 돈 벌었으니까.”

“경찰에 신고해봐. 병X. 어차피 결과 뻔히 나와.”

어느 철없는 재벌 2세가 한 말이 아니다. ‘중고차 딜러’가 환불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한 말이다. 지난 5월 15일 유튜브에는 중고차 허위매물 수법에 당한 고객 양모(32)씨가 환불을 요구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양씨가 이들을 찾아가 환불을 요구하자 차를 판매한 중고차 딜러 A씨는 “정당하게 판매했고 환불은 절대 해줄 수 없다”며 거부했다.

지난 5월 7일 양씨는 한 중고차 판매 사이트에서 240만원에 올라온 티볼리 중고차를 보고 해당 업체에 연락했다. 양씨는 인천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업체 측 딜러 A씨와 B씨를 만났고, 딜러들은 지금 바로 계약하면 170만원까지 깎아주겠다고 했다. 양씨는 170만원에 차를 구매하는 계약서를 일단 작성했다.

170만원짜리 사러 갔다 1810만원짜리 구매

이때부터 딜러들의 말이 바뀌기 시작했다. 딜러들은 차에 ‘승계금’이 남아 있다며 이를 고객이 부담해야 한다고 나왔다. 딜러들은 차에 2100만원의 채권이 남아 있으니 이를 양씨가 승계해야 한다고 했다. 딜러는 양씨에게 “법원 경매차량이어서 승계금이 남아 있으니 이를 고객이 내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가 “왜 갑자기 말이 바뀌느냐”고 하자 이들은 “아까 다 설명했는데 못 들었냐”고 했다. 양씨가 차를 살 수 없다고 하자 딜러들은 “이미 이전 처리가 됐는데 왜 말을 바꾸느냐”며 과격한 분위기를 조성해 양씨를 압박했다. 또 ‘이전비용이 발생했으니 다른 차량을 구매하는 걸로 하자’며 양씨에게 계속해서 다른 차를 구매할 것을 강요했다. 중고차 구매 경험이 처음이었던 양씨는 결국 티볼리 대신 주행거리 8만3000㎞의 2017년식 아반떼AD를 1810만원에 사야 했다. 양씨는 48개월 동안 46만원씩 부담하는 전액 할부 계약을 맺었고, 별도로 30만원의 현금을 수수료 명목으로 딜러들에게 줬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 차량등록과에 제출된 서류에는 1030만원으로 신고됐다. 중고차 허위매물 딜러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고객과 계약한 금액보다 낮은 액수를 적어 신고하는 경우가 많다.

딜러들이 휴대폰 대화 녹음도 지워

양씨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거래를 중단하고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이들이 이미 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 해코지할까 두려웠다”면서 “거래를 하는 6~7시간 내내 딜러들이 옆에 붙어서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고 했다. 딜러들은 양씨에게 “보험을 들기 위해 필요하니 휴대폰을 달라”고 한 후 휴대폰에 남아 있던 자신들과의 통화내역과 녹음파일들까지 삭제했다. 양씨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거래하는 내내 음성녹음을 해놨지만 딜러들이 ‘증거’를 지운 것이다.

거래 직후 양씨는 전형적인 중고차 허위매물 거래 수법에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다음 날인 5월 8일 양씨는 유튜브에서 ‘허위매물 딜러’들을 저격하는 것으로 유명한 또 다른 중고차 딜러 C씨를 찾아갔다. C씨는 양씨에게 사기꾼 딜러들과 계약서를 작성한 중고 아반떼의 명의이전을 막기 위해 양씨의 주소부터 바꿀 것을 조언했다. 인천에 살던 양씨는 그날 바로 서울에 있는 누나 집으로 주소를 바꿨다. 하지만 주소를 바꾼 지 3일 만에 중고차 업체는 양씨의 바뀐 주소를 알아내 강제로 명의를 이전했다.

양씨와 C씨는 이후 허위매물 딜러 A씨를 따로 불러내 만난 자리에서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출동한 파출소 지구대는 양씨에게 ‘증거가 부족해 신고를 해도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 지구대 경찰은 양씨에게 “내가 시민이라면 50만~100만원이라도 수고비로 주고 합의하겠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결국 양씨는 포렌식 업체에 딜러들이 삭제한 통화내역과 녹음파일 복구를 의뢰해야 했다. 양씨는 “경찰에서 증거가 부족해 안 될 것 같다고 하니, 내가 직접 증거를 모아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며 최대한 빨리 경찰에 사건 접수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양씨와 중고차 딜러 C씨가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허위매물 딜러들이 실제로 거주하지도 않는 양씨의 주소를 등록한 지 3일 만에 어떻게 알아냈는지 여부다. 이전 3일 만에 주소지를 알아내는 것은 전산 시스템을 조회하거나 주민등록초본을 발급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공무원이 특정인의 개인정보를 조회할 땐 사유를 입력해야 하고 조회한 기록이 남는다.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조회한 경우 감사를 통해 적발되기도 한다. 하지만 관리가 허술해 최근 ‘n번방 사건’에서도 주민센터에서 복무하던 사회복무요원이 무단으로 개인정보를 열람해 이를 유출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미도카tv’에 올라온 영상 캡처. 딜러 A씨는 고객에게 조롱 섞인 폭언을 하며 ‘환불해줄 수 없다’고 했다. ⓒphoto 유튜브 미도카tv
유튜브 채널 ‘미도카tv’에 올라온 영상 캡처. 딜러 A씨는 고객에게 조롱 섞인 폭언을 하며 ‘환불해줄 수 없다’고 했다. ⓒphoto 유튜브 미도카tv

미등록딜러와 전과자 판치는 시장

또 다른 가능성은 허위매물 딜러가 소속된 상사에서 운영하는 캐피털(할부업체)을 통해 알아내는 방법이다. 캐피털 업체와 중고차 고객은 형식상 채권자와 채무자 관계가 되는데, 채무자가 주소를 바꿔 채무 이행이 안 될 경우 채권자는 ‘정부민원24’를 통해 채무자의 주소지 조회를 요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채권자가 정부 측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들을 구비하고, 정부가 승인을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3일 만에 이뤄지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고객의 신분증 사본을 이용해 주민등록초본을 무단으로 발급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양씨가 처음 티볼리 차량을 구매하기 위해 계약서를 작성할 때 딜러들은 양씨의 신분증을 가져가 복사해뒀다. 주민등록초본은 타인의 신분증 사본과 그 사람으로부터 초본 발급을 위임받았다는 위임장만 작성하면 주민센터 등에서 발급받을 수 있다. 이 위임장은 타인의 도장을 무단으로 만들어 허위로 작성해도 당사자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다만 위임장을 제출해 타인의 초본을 발급한 경우 누가 언제 어디서 했는지 내역이 행정 전산망에 기록된다. 이는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하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양씨는 현재 서울·인천·부천시에 등본과 초본 열람 및 조회 내역 자료를 달라고 정보공개청구를 해놓은 상태다.

허위매물 딜러들이 강제로 명의를 이전하고 환불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양씨를 돕던 중고차 딜러 C씨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A씨와 B씨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을 공개했다. 또 양씨가 작성한 계약서상에 등록된 상사의 상호명과 대표 이름도 공개했다.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중고차 딜러들이 허위매물 딜러들을 ‘저격’하는 유튜브 콘텐츠는 많았지만 이들의 얼굴과 신상을 그대로 공개한 경우는 처음이어서 화제가 됐다.

해당 상사 대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모터스 대표 김모씨는 통화에서 “한국에 있는 수만 명의 중고차 딜러를 사장이 다 책임져야 하느냐”며 “딜러들이 계약을 맺었다고 회사가 수익금을 챙기지는 않는다”고 했다. 소속된 딜러들에게 허위매물 수법으로 영업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김씨는 “딜러들을 어떻게 일일이 관리할 수 있느냐”고 했다. 거래에 개입한 딜러 중 B씨만 해당 상사의 매매사원증을 가지고 있었다. A씨는 특정 상사에 소속된 딜러가 아니다. 중고차 시장에는 A씨처럼 매매사원증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다른 딜러와 ‘협업’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하는 딜러가 많다.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다. 이처럼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자동차 중개 과정에만 참여해 수수료를 받는 딜러들을 ‘미등록딜러’라고도 한다. 김씨 회사에 소속된 직원은 10여명이라고 한다. 김씨는 회사에 소속된 딜러 B씨를 이 사건 직후 해임했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중고차 시장의 거래량은 2019년 기준 369만대다. 시장 규모는 약 30조원으로 추정된다. 중고차 매매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는 일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매물을 보고 갔다가 다른 매물을 내놓는 경우는 다반사다. 차를 사지 않을 경우 감금 및 협박을 당하는 일도 잦다. 경찰은 2~3년 주기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허위매물 수법으로 영업해온 이들을 검거하지만 그때뿐이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중고차 딜러들의 사기수법도 진화해 갔으며, 양씨의 사례처럼 개인 정보를 무단으로 빼내는 딜러들까지 등장했다. 이 사건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시민들이 민원을 접수하자 인천지방경찰청에서도 관련 내용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고차 관련 민원을 상대하는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우리 시(市)에만 4개의 매매단지에 4000여명의 딜러가 있고, 그중 80%는 전과자”라면서 “그들은 겁나는 것도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어서 행정처분이나 형사처벌에도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현재 중고차 딜러 매매사원증은 8시간 교육만 이수하면 받을 수 있다. 이마저도 2016년 중고차 딜러들의 자격 조건을 ‘까다롭게’ 하자며 도입된 제도다. 그 이전에는 아무 절차 없이도 중고차 딜러로 일할 수 있었다. 이 공무원은 “중고차 시장 때문에 우리 시의 이미지만 나빠지고 있다”면서 “하루에 허위매물 관련 민원만 100건 이상 들어온다. 민원인들이 ‘이 시에는 왜 사기꾼밖에 없냐’고 항의할 때는 자괴감마저 든다”고 했다. 이런 경우 행정기관에서 중고차 업체에 내릴 수 있는 행정처분은 사업정지 또는 과징금밖에 없다.

2016년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중고차 관련 불법행위는 허위·과장광고가 29.8%로 가장 많았고, 사기 17.1%, 대포차 유통 8.9%, 폭행·협박 7.6%, 감금·갈취 4.4% 순이었다. 중고차 매매단지가 밀집한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절반이 넘는 54.3%의 중고차 관련 범죄가 일어났다. 중고차 관련 범죄자들의 연령대는 20~30대가 68.9%로 다수였다. 양씨에게 중고차를 판 A씨와 B씨도 각각 27살, 24살에 불과했다. 범죄자들의 연령대는 이밖에 40대 19.9%, 50대 이상은 10.5%를 차지했다. 전과자의 비중도 75.4%로 높고, 조직폭력배가 직접 개입한 경우(0.3%, 7명)도 있었다.

2017년에는 중고차 허위매물 거래에 전직 경찰이 연루돼 구속된 사례도 있었다. 2017년 3월 전직 경찰관은 인천 지역 중고차 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1200만원의 현금과 그랜저 1대를 받고 이들의 도피를 돕고 수사 무마성 청탁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 경찰관은 중고차 업체 대표의 동생과 친구 사이였다.

곽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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