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심미자 할머니 영정 사진. 장례식 영상 캡처
고 심미자 할머니 영정 사진. 장례식 영상 캡처

정의기억연대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정대협)에 비판 목소리를 내던 고 심미자 할머니의 장례식 영상이 발견됐다. 이 영상은 심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당시의 장례식장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자료다. 이 자료에 담긴 조문객 행렬을 보면 심 할머니를 향한 정부와 국내 위안부 피해 지원 시민사회단체의 시선이 어땠는지 엿볼 수 있다.

심 할머니는 2000년대 초반 위안부 피해 할머니 33인으로 구성된 세계평화무궁화회를 조직, 이 단체 회장역을 맡으며 정대협 활동에 반기를 들어왔다. 2004년엔 정대협과 대한불교 조계종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행위 및 시위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며 위안부 모금 관련 문제를 최초로 제기하기도 했다. 다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 할머니는 2008년에 별세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2007년 2월 27일 작고했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장례식 영상 CD엔 심 할머니의 작고 날짜가 명확히 기재돼 있다. 영상은 총 17분으로 심 할머니에 대한 간략한 약력과 함께 장례식장 조문 행렬, 화장터로 이동하는 모습 등을 담고 있다.

고 심미자 할머니 장례식 영상 캡처
고 심미자 할머니 장례식 영상 캡처

영상에 따르면, 당시 위안부 피해 지원에 앞장서왔던 정대협과 정부 인사는 단 한 명도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도 화환만 보냈을 뿐 장례식장엔 그 누구도 얼굴을 비치지 않았다. 당시 정대협 상임대표는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는데, 그를 포함한 정대협 관계자들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화환 조차 보내지 않았다.

당시 심 할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영상을 기록, 제작한 건 심 할머니와 함께 위안부 피해 지원 활동을 이어온 송치순씨(76)였다. 송씨는 “오히려 일본 정부 관료 3명이 찾아왔고 한국 정부 측 인사는 전무했다”며 “모두 말로만 돕는다 하고 자기네와 다른 목소리를 내던 심 할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거다.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장례식장엔 심 할머니의 양아들과 그의 가족, 무궁화회 부회장, 심 할머니의 활동을 지원했던 경기도 광주의 한 교회 신도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관계자들만이 자리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경기도 성남의 화장터까지 동행한 이들은 30여 명이 채 안됐다.

앞서의 송씨는 “당시 정신대 할머니들이 각 처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는데 다들 굶으며 연명하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심 할머니는 이에 마음 아파했고 할머니들끼리 살아갈 공간을 직접 마련하고자 했다. 나와 심 할머니, 무궁화회 부회장은 이를 위해 돈도 모으고 건물도 알아보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심 할머니 건강이 안 좋아졌고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고 했다.

고 심미자 할머니 장례식 영상 캡처
고 심미자 할머니 장례식 영상 캡처

지난 5월 29일 윤미향 의원은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입장을 표명하는 기자회견 자리에서 “가해국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도 못 받고 돌아가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영령에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라고 밝혔지만 정작 심 할머니의 죽음은 외면한 셈이다. 정의기억연대는 지난 2016년 정대협 시절 건립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위령비인 ‘대지의 눈’에 심 할머니 이름도 올리지 않았다.

고 심미자 할머니 장례식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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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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