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기업데이터 본사.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기업데이터 본사. ⓒ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성폭력 인사팀장, 해고 앙심 회사 비리 폭로

금융감독원 무혐의

노조, 가해자 주장 되풀이 회사 압박

성폭력 피해자는 2차 피해 시달려

정부가 사장과 감사의 임면권(任免權)을 사실상 쥐고 있는 ‘한국기업데이터’의 인사팀장이 여직원을 상대로 성폭력 사건을 일으켜 해고당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런데 자신을 해고한 회사 측에 앙심을 품은 인사팀장이 회사 간부들의 비위 의혹을 폭로하겠다고 나섰고, 인사팀장과 가깝게 지내던 같은 대학 출신 노조위원장과 한국노총 금융노조까지 이 싸움에 가세하면서 사태가 점차 확전되고 있다. 특히 노조위원장이 전 인사팀장을 비호하는 모양새로 사건이 흘러가면서 성폭력 피해자는 노조의 보호는커녕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인 이 회사 감사는 노조위원장 ‘전용 간식’까지 제공하며 노조에 우호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국기업데이터와 관련한 각종 의혹들은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인사와 인사수석실 등에도 진정서 형태로 들어갔으나 청와대에서는 해당 기업이 민간기업이란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파면 후 성폭력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까지 받고 있는 전 인사팀장은 오히려 여러 기관에 사장의 비위 혐의 등을 제보하고 피켓시위를 하는 등 공익제보자 행세를 하고 있다. 그가 제보한 대표이사의 비위 행위 등은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직 인사팀장은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회사가 자신을 징계한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회사에서 해고된 이후 회사 바로 앞 건물에 개인사무실까지 얻었는데, 이 사무실에 노조원들이 자주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업데이터(대표 송병선)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신용조회 평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신용조사 및 평가 업체다. 외부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약 240조원(2020년 기술금융 잔액 기준)에 달하는 기업대출을 평가하는 회사다. 2004년 신용보증기금 및 기술보증기금 등 국책기관과 시중은행들이 출자해 공기업으로 출범한 뒤 2012년 민영화됐다. 현재는 사기업이지만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국정감사 과정에서 함께 감사를 받는다. 대표는 통상 기획재정부 간부 출신이 맡고, 감사는 여당 인사들 몫이다. 현 송병선 대표이사 역시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예산처(현 기획재정부)에서 주로 경력을 쌓은 관료 출신으로 2018년 2월 취임했다. 최충민 감사는 더불어민주당 1사무부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보좌관을 역임한 바 있다.

사건은 지난해 2월 말 시작됐다. 당시 인사팀장이었던 A씨는 직원 B씨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한다. 사건 다음 날 B씨는 곧장 경찰에 A씨를 신고하고 고소했다. 사건 직후인 2019년 3월부터 A씨는 건강상의 이유로 병가를 내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회사는 해당 사건에 대한 사내 조사를 사건 발생 3개월이 지난 지난해 5월이 되어서야 시작했다. 심지어 사건 내막을 아는 회사 직원들에게 ‘사건을 외부로 유출하지 않겠다’는 확약서까지 받았다. 이 때문에 성폭력 사건은 1년6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회사는 내부적으로 감사실 중심의 조사와 인사위원회 의결을 거쳐 같은 해 7월 10일 A씨를 징계해직 조치했다. 경찰은 이 성폭력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같은 해 10월 검찰이 기소해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A씨는 사내 조사 과정에서 “해당 행위(B씨와의 신체접촉 등)가 있었던 것은 맞지만, 합의에 의한 것이었지 강제로 한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B씨는 “합의가 아니라 강제로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사측은 합의 여부에 상관없이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한 사실만으로도 징계 사유가 된다고 판단해 A씨를 해고했다.

A씨·노조 제기한 사측 비위는 모두 무혐의

사건은 A씨가 해고될 위기에 처하자 회사의 비위 의혹을 밝히겠다며 대표이사와 상임감사를 압박하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A씨는 대표이사를 상대로 ‘오히려 내가 피해자이고 B씨는 가해자다. 법원 판단 전에 징계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A씨는 또 자신을 징계할 경우 B씨에 대한 징계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언론을 포함한 외부기관의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입장을 대표이사에게 밝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들이 취하는 전형적 방법인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사측이 징계해직 처분을 내리자 A씨는 상임감사 최모(59)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인사팀장으로 재직하면서 알아낸 정규직 공개채용 과정에서의 부정 채용 의혹과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해 밝히고자 한다”며 “이 의혹들은 내가 확보하고 있는 실제 증빙자료를 통해 쉽게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인사팀장으로 재직 중 파악한 회사의 비위 사실들을 유관기관에 알리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A씨는 한국기업데이터의 대주주인 신용보증기금을 비롯해 금융감독원과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금융위원회에 송 대표의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해외출장비 유용’ 등의 의혹을 주장하는 내용을 투서했다. 이에 감독기관인 금감원은 지난해 7월 10일부터 24일까지 한국기업데이터에 4명의 조사관을 현장 투입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지만 해당 의혹들은 같은 해 12월 무혐의로 종결됐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한국기업데이터 노조가 개입하면서 다른 국면을 맞았다. 지난해 7월 A씨의 해고가 결정된 후 노조 일각에서 A씨가 주장했던 회사의 비위 의혹들을 그대로 되풀이하며 사측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금감원 조사가 이어지던 지난해 7월 전임 노조(당시 5대 노조) 조합원이던 김모 대리는 노조원들에게 “조합의 첫 번째 의무는 조합원 보호인데 최근 우리의 동료 2명이 연속으로 징계를 받고 회사를 떠나게 됐다. 조합원 총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다. 성폭력 사건을 일으켜 해고당한 A씨를 노조 측이 보호하려 하지 않았고, 관련 내용을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취지의 항의였다.

“위원장 전용 과자 사달라” 노조 끝장 갑질

상급 노총 까지 끌어들여

‘낙하산’ 감사는 노조 감싸기

노조, 성폭력 가해자 A와 동일한 주장

이에 당시 노조 집행부는 김모 대리가 조합원들에게 메일을 보낸 날 ‘김모 조합원 메일에 대한 입장’이라는 메일을 통해 “A씨의 경우 당사자의 심각한 행위로 회사에서 징계해직했고, 그에 대한 반발로 신보, 금융위, 감사원 등에 인사정보를 가지고 제보해 현재 금감원 감사가 진행 중이고 신보 감사에서도 자료 요청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노조 집행부는 또 “징계를 받아 해직된 직원이 자기의 업무(인사)와 관련한 내용으로 금융위와 각종 기관에 제보해 회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 상황을 조합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후 지난해 12월 10일 5대 노조위원장 윤 모씨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6대 노조위원장으로 우모씨가 취임했다. 앞서 노조 조합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던 김모 대리는 새로 취임한 노조 집행부의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새로 출범한 6대 노조 집행부가 가장 먼저 진행한 일은 A씨가 제기했던 회사의 비위 의혹을 사실상 그대로 사측에 따져 물은 것이었다. 6대 노조는 당선된 직후 대표이사를 만난 자리에서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해외출장비 유용’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이미 금감원에서 무혐의로 결론 난 것들이었다. 또한 신임 노조는 지난 1월 31일 전임(5대 노조) 윤모 노조위원장을 조합원에서 제명했다.

현 노조가 전직 노조위원장을 제명하면서 성폭력 사건은 전임 노조위원장과 현 노조위원장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윤 전 노조위원장은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측에 직접 징계사유서를 작성해 현 노조위원장에 대해 징계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전 위원장이 요청한 징계요구 사유는 ‘지부에서 발생한 채용팀장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노동조합이 가해자의 주장을 대변하며 2차 가해를 확산하고 있다는 것’과 ‘금융노조위원장과 상의 없이 금융노조위원장 명의로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전임 위원장을 고발하도록 계획을 세우고 시도한 점’ 등 8가지로 알려졌다.

한국노총 금융노조까지 끌어들여 판 키워

주간조선이 입수한 사유서에서 윤 전 노조위원장은 “현 한국기업데이터지부 집행부가 당선되자마자 했던 행보는 성폭력 가해자 A가 하려고 했던 일들과 정확히 일치하는 행보”라면서 “가해자 A는 성폭력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으면서 피해자 B를 보호하려고 했던 인물들을 견제하려 했다”고 썼다. 여기서 언급한 ‘B씨를 보호하려 했던 인물들’이란 송병선 대표이사를 포함해 해당 사건을 직접 조사한 전 감사부장, 그리고 윤 전 노조위원장 자신을 의미한다. A씨가 자신의 사건에 대한 조사와 징계처분 및 B씨 보호에 나섰던 이들을 공격하기 위해 제기한 의혹들을 현 노조 측이 그대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임 노조 집행부가 한국노총 산하의 금융노조를 끌어들이면서 사건이 회사 외부로도 확대된 것이다. 한국기업데이터 노조가 속해 있는 금융노조는 한국노총 내 최대 계파다. 노조는 지난 2월부터 전 인사팀장 해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금융노조의 힘을 더하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지난 2월 5일 노조의 김모 수석부위원장은 회사 측과 사전 협의 없이 회사 회계감사 중인 10층 감사장에 난입해 “대표이사의 채용비리와 비자금 조성, 해외출장비 유용 등의 혐의가 있다”며 “회계감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금융노조 명의로 언론에 알릴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지난 4월 1일 금융노조 박홍배 위원장은 현 노조위원장 우모씨의 요청으로 한국기업데이터를 방문해 우 위원장과 함께 송병선 대표이사를 만났다. 한국기업데이터지부는 이것을 계기로 금융노조가 자신들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는 식의 여론전을 회사 내에서 펼쳤다.

참다 못한 회사 대표이사가 금융노조 위원장에게 직접 서한까지 보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보통 대표이사가 회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외부로 가져가는 경우는 없다. 사실상 정부에서 임명한 대표이사가 국내 최대 산별노조 위원장에게 아쉬움을 토로한 것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대표이사 서한은 정중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기업데이터 성폭력 사건에 대해 금융노조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다.

송 대표이사가 쓴 서한에는 ‘직장 내 성범죄 발생과 가해자 징계해고’ ‘가해자의 보복성 투서의 요지와 사실관계에 대하여’ ‘신임 노조위원장의 불투명한 언행과 피해자 보호의 어려움’ ‘피해자 보호를 위한 회사의 노력에 대한 귀 조합(한국노총 금융노조)의 협조 요청’ 등이 자세히 적혀 있다. 송 대표이사는 서한에서 “현 노동조합은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보호조치 등을 회사에 요구해야 마땅하며, 회사 내에서 성폭력 근절을 통해 여성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여야 함에도 가해자에게 동조하는 행동을 지속하고 있어 2차 가해를 행하는 게 아닌가 우려되고 있다”며 “이러한 현 노동조합의 불분명한 목적의 활동은 피해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송 대표이사는 “A씨의 범죄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피해자 B씨를 보호하고 있는 사람을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노동 권력을 이용하여 A씨의 보복을 대신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관료 출신 사장이 노조와 대놓고 각을 세운다는 것은 임기 연장 등과 관련해 더 이상 윗선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난 4월 14일 한국기업데이터 지부 노조원들과 한국노총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사장실 앞 복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4월 14일 한국기업데이터 지부 노조원들과 한국노총 금융노조 조합원들이 사장실 앞 복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청와대, 투서 받고도 무반응

우 위원장의 요청으로 한국기업데이터 사내 문제에 휘말리게 된 금융노조는 송 대표이사의 서한 이후 어느 정도 한국기업데이터 노조와 선을 긋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 위원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3명에 대해 징계를 내리지도 않았다. 지난 5월 28일 열렸던 한국노총 금융노조 산하 36개 지부 대표자회의에서 금융노조 집행부는 윤 전 위원장의 요청으로 시작된 우 위원장에 대한 조사 내용을 10분간 대의원들에게 읽어줬으나 최종적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징계를 유보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 사건을 비호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현재 한국기업데이터 노조는 오히려 회사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며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 예컨대 현 노조위원장은 취임 후 노사가 대립하는 와중에도 인사부에 ‘노조위원장 전용 과자’를 비치할 것을 요구했고, TV·공기청정기·소파 등을 새로 설치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회사 측이 이를 거절하자 더불어민주당 당직자 출신인 상임감사가 자신이 비용을 부담해 노조위원장 전용 과자를 사주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이 작성한 문서에 나오기도 한다. 준법 감시인의 역할을 해야 할 감사가 오히려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노조를 회유한다는 느낌을 줄 만한 이 같은 행동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회사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최 상임감사는 임기가 올해 3월까지였으나 아직까지 재직 중이다. 한국기업데이터 상임감사는 전통적으로 여당 인사가 낙하산 격으로 내려오는 것이 관례다. 하지만 청와대에서는 최 상임감사와 관련한 투서들을 여럿 받았음에도 한국기업데이터가 민간기업이란 이유로 최 상임감사에 대한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한국기업데이터 내부에서는 최 상임감사가 사실상 청와대로부터 임기를 1년 연장받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한국기업데이터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회사 측은 “이 사안은 전임 노조와 현 노조의 갈등 사안”이라며 한발 물러서고 있다. 이 사안에 대한 주간조선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확인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우 위원장 역시 주간조선의 여러 질문에 “A씨와의 결탁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을 뿐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 같은 한국기업데이터 노조 집행부의 행위와 관련해 한국노총 금융노조 측 역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우려되기 때문에 공식 논평을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주간조선의 질의에 “금융노조는 피해자로부터 동 사건과 관련해 언급해도 좋다는 직접적인 승인을 받은 바 없어 2차 가해의 우려로 인해 언론 취재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A씨의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열린 금융노조 징계위 사전조사위원장을 맡았던 박한진 금융노조 사무총장 역시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이 사건은 지부 간 사안이고 금융노조의 원칙은 외부로 어떤 내용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워낙 내용이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키워드

#커버스토리
배용진·곽승한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