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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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북한 경제 전문가인 김병연 교수(경제학)를 만났다. 김 교수는 코로나19가 본격 유행할 때부터 ‘북한 체제의 가장 큰 위협은 코로나19가 부패를 타고 전파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해 주목을 받았었다.

최근 북한의 도발 움직임도 북한의 경제난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 북한 경제의 정확한 실상과 내부 움직임을 김 교수한테 물어봤다. 김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소련 경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북한 경제, 구(舊)사회주의 경제,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의 체제 전환 등을 연구하고 있다.

“관료와 주민 사이의 뇌물이 방역에 구멍 내”

- 코로나19 사태가 북한의 부패와 합쳐질 때 체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는데 왜 그런가. “코로나19 상황이 어려워지면 북한에 중대한 리스크다. 감염자가 조금만 생겨도 통제가 어렵다. 진단과 치료가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역봉쇄, 이동제한, 격리 등이 거의 유일한 방역 수단인데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정부의 통제를 잘 따라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 관료들과 주민 사이의 뇌물이 이 방역에 구멍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경제공동체 관계다. 돈주와 주민들이 돈을 벌어서 관료들에게 뇌물을 주고 관료들은 이들의 뒷배가 되는 구조다. 즉 뇌물받은 관료들이 그 대가로 주민들의 밀수와 시장 활동을 봐주기 시작하면 정부의 통제가 무너져 방역에 구멍이 뚫린다. 이것이 코로나19와 부패가 결합하는 상황이다. 그 결과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면 체제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 북한에 만연한 부패가 코로나19 확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인가. “코로나19가 잡히기 어려운 이유가 부패를 타고 퍼지기 때문이다. 코로나19도 무증상 감염이 문제인 것처럼 부패도 은밀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문제다. 그만큼 감시가 힘들다는 뜻이다. 관료와 시장세력이 부패로 상생하는 구조에서는 발각될 가능성이 낮으니 김정은이 엄격한 방역 지침을 내리더라도 그대로 실행되기 어려운 것이다.”

-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김정은의 통제력이 흔들릴까. “김정은이 관료를 장악하려면 정치적·경제적 충성을 이끌어내야 한다. 정치적으로야 당연히 김정은에게 충성을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하여 적당한 월급을 줘서 경제적인 생존을 보장해 주어야 김정은에게 충성할 것이다. 그런데 관료들은 한 달 월급이 장마당 환율로 1달러가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월급만으로 살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북한 관료들이 먹고살려면 김정은이 아닌 시장세력의 눈치를 봐야 한다. 이것이 부패로 연결된다. 예전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부패가 심했다. 무리한 규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부패가 확산하면 사회주의 체제 유지에 부담이 된다. 먼저 독재자의 관료 장악력이 약화될 수 있다. 또 경제성장을 가로막으며 사회주의 모럴(도덕)을 갉아먹는다. 이 모두가 독재자의 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50% 강도의 제재가 효과 발휘하는 중”

사실 북한이 지금 고통받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핵 개발에서 비롯된 대북 제재 때문이다. 2016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나온 유엔 안보리 2270호 결의안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의 돈줄을 막고 있다. 대북 제재는 북한의 중요한 돈줄인 광물 수출을 막고, 북한 근로자를 통한 외화 수입도 막고 있다.

대북 제재는 북한의 ‘핵·경제 병진’을 ‘핵·경제 상충(trade-off)’으로 바꾸자는 전략이다. 핵 개발의 기회비용을 높여 비핵화를 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군사적 대안과 달리 평화적 방법이다. 만약 이 시도가 실패한다면 북한은 실제 핵 보유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 2016년부터 본격화한 대북 제재의 효과를 어떻게 분석하나. “대북 제재는 북한에 무역과 외화수입 충격을 가져왔다. 제재로 인해 북한의 수출은 90% 이상 줄었다. 외화수입도 급감했다. 또 산업 충격과 시장 충격도 발생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제재 효과를 0% 혹은 100%라고 생각하는데, 효과가 100%인 제재는 현실적으로 없다. 현재는 50% 정도 강도의 제재가 들어가고 있다고 판단된다. 제재의 총효과는 ‘강도×기간’이기 때문에 이 정도의 제재도 계속 실행되면 북한 경제에는 큰 충격이고 정권엔 큰 부담이다. 사실 가장 좋은 제재는 ‘사자같이 맹렬하게 들어가서 제비처럼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야 목적도 달성하면서 북한 주민에게 주는 고통도 줄일 수 있다.

또 시간이 오래 지나게 되면 일반적으로 제재 효과가 줄어든다. 예를 들어 밀수가 국가 단위에서 행해질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도 제재를 하지만, 땅굴을 파서 밀수를 한다. 또 제재가 오래가면 경제적 생존 본능이 우회수단을 많이 만들어 제재의 둑을 무너뜨린다. 그뿐 아니라 제재를 하는 나라의 경제적 비용도 커진다. 지금 더 큰 문제는 북·중 밀착에 따라 제재의 뒷문이 많이 열린 것이다. 2017년 하반기 정도의 추세가 계속됐어야 했는데 2018년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미·중 갈등으로 인해 그렇지 못하게 됐다. 하지만 제재가 절반가량의 효과는 내고 있기 때문에 아직 기회는 있다. 미·중 갈등과 미국의 정책 의지가 변수지만 현재 구도에서도 최소한 수년간은 제재가 북한 핵 개발과 보유의 기회비용을 계속 높여갈 수 있다.”

- 코로나19로 북한과 외부와의 통로가 막히면 제재의 효과가 커지지 않을까. “코로나19는 북한으로서는 새로운 충격이다. 코로나19가 닥쳐서 제재와 결합하면 결과적으로 경제 충격이 극대화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사자같이 맹렬히 북한 비핵화를 압박할 수 있게 된다.”

고난의 행군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이유

- 코로나19가 내년까지 이어지면 북한이 버틸 수 있을까. “완전한 무역봉쇄를 해야 할 수준이면 버티기 어렵다. 올해 말까지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한다면, 북한 성장률은 -5%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제재로 인해 지난 3년 동안 북한 경제 규모가 10% 정도 줄었다. 그러면 올해까지 4년 동안 경제 규모가 15% 이상 줄어드는 셈이다. 한국 외환위기 2배 이상의 충격이 오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 고난의 행군기에는 경제 규모가 30% 정도 줄었다. 그때의 절반 정도 충격이니까 이번에도 버텨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화로 북한 주민들의 의식과 행동이 많이 바뀌었다. 또 생활이 좋아졌다가 나빠지면 더욱 고통스러운 법이다. 고난의 행군 때는 그 원인을 잘 몰랐지만 지금은 왜 경제가 어려운지, 왜 제재를 당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럼 김정은이 굉장한 위협을 느낄 것이다. 만약 내년에도 성장률이 -5% 이하면 외부 지원 없이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대규모의 외부 지원이 가능할지는 북한 비핵화 진전에 달려 있다.”

- 최근 북한의 대남 도발이 이러한 경제적인 이유와 관련이 있다고 보나. “거의 100%라고 생각한다. 제재와 코로나19 사태의 결합으로 북한 주민의 불만이 비등해 있다. 이로 인한 압력을 외부로 분출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또 대남 도발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연말까지 가게 되면 큰 위기다. 외부에서 북한 경제가 매우 어렵다고 판단하면 협상에 승기를 잡았다고 믿고 더욱 세게 북한 비핵화를 압박할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은 ‘정면돌파’ 운운하면서 경제가 괜찮은 것처럼 보이려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이 모든 것이 명백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시간과의 싸움에서 빨리 승부를 걸어야 한다. 북한은 시간이 없다.”

“중국 80만t 식량 지원 소식에는 의구심”

최근 중국이 80만t에 이르는 식량을 북한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지원이 대북 제재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작년 6월 우리 정부의 5만t 식량은 거부했다.

- 최근에 중국 식량 80만t 지원 소식이 있었는데 정확한 물량이라고 보나. “중국의 80만t 식량 지원은 작년에도 보도됐었다. 작년 6월 시진핑이 방북하면서 식량 지원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지원은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그 규모에는 의구심이 든다. 먼저 모든 중국의 대북 지원은 세관 통계에 들어가는 것이 원칙이다. 돈을 안 받고 지원하더라도, 설령 공적 지원이라고 하더라도 통계에 잡혀야 한다. 중국의 대북 수출 통계를 보면 시진핑 방북 직후인 2019년 7~9월 곡물 수입 물량이 그 이전 달에 비해 2배 증가한다. 그렇지만 2019년 전체 곡물 수출 물량도 40만t에 불과하다. 물론 중국 정부가 통계를 의도적으로 숨길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80만t이라는 대규모의 지원을 받았다면 북한 내 쌀과 옥수수의 시장가격이 매우 큰 폭으로 떨어졌어야 했다. 2019년 8월에 쌀 1㎏의 가격이 4500원 정도로 하락했지만 그 이전의 저점인 2019년 초 4000원대 초반보다는 오히려 높았다. 따라서 중국이 식량 지원은 했지만 그처럼 대규모 지원을 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올해 다시 80만t을 지원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이런 시각으로 보고 있다.”

-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어떤 상태라고 보나. “북·중 관계를 봐도 대규모 식량 지원은 의구심이 든다. 현재 북·중 관계는 ‘친한 척하고 서로 이익을 주고받지만 의심이 많은 관계’로 정리할 수 있다. 한국의 농촌진흥청 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1년에 식량을 450만t가량 생산한다. 또 한 해 20만~30만t의 식량을 수입한다. 여기에 밀수까지 포함하면 북한 주민이 문제없이 먹고살 수 있는 규모인 550만t에 비해 50만t 이내가 부족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에 80만t의 식량을 한꺼번에 줄 필요가 있을까. 중국은 북한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이 목적이므로, 생명줄이 작동 안 할 만큼 줄 유인은 없다. 그러면 북한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가 없게 된다.”

- 북한의 식량 사정은 어떤가. “현 시점에서는 평양 배급난이 언급될 정도로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판단된다. 내 추정에 따르면 평양 주민은 식량의 40%가량을 배급받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무역봉쇄 때문에 밀수를 포함한 식량 수입이 막혀 어려움이 크다. 만약 무역봉쇄를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면 그때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공급도 문제지만 수요도 문제다. 주민 소득이 크게 감소해서 쌀을 구입하기 힘들게 되면 옥수수나 감자로 대체하는 주민도 꽤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시적 문제와 식량 생산 구조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고난의 행군기에 비해 70만t가량 증산”

- 고난의 행군 때보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는 주장이 사실인가. “고난의 행군 때 식량 생산이 350만t 정도였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2018년 북한이 417만t의 곡물을 생산했다. 그런데 이 통계는 과소추정치로 판단된다. 중요한 이유가 경사지에서의 식량 생산이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경사지 경작을 없애라’고 지시한 것이 작용해서 그렇게 됐다. 장군님 지시라고, 실제는 생산되고 있으나 없는 것처럼 0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로 인해 식량 생산이 20만t 정도 과소추정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공식통계는 농촌진흥청 통계다. 농진청은 2018년 북한 식량 생산을 455만t으로 추정했고 2019년에는 9만t 증가한 464만t으로 추정했다. 즉 과소추정된 것으로 보이는 FAO 통계를 이용해도 고난의 행군기에 비해 북한은 70만t가량 식량을 증산하고 있고, 농진청 통계에 따르면 100만t 이상 더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에 고난의 행군기와 같은 대기근이 올 가능성은 낮다. 거기다 시장의 발달로 지역 간 식량 배분이 고난의 행군기에 비해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김 교수의 전공은 체제전환이다.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가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자다. 많은 학자가 북한의 장마당 경제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시장경제의 씨앗으로 보기 때문이다.

- 장마당이 북한 체제전환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 “체제전환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제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국유에서 사유로 바뀌는 것이다. 다음으로 중앙계획(계획경제)이 시장으로 대체돼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북한은 흥미롭게도 정부 주도의 제도 변화는 크게 없는 반면 밑으로부터 일어난 시장이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금 북한의 중앙계획은 상당히 축소되고 많은 경제활동이 시장에서 조정되고 있다. 일부 기업도 시장거래를 하고 있다. 북한 정부가 원했다기보다 시장이 커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이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밑으로부터의 시장화가 변화 만드는 중”

- 시장을 그냥 묵인하고 있다는 말인가. “경제를 돌리기 위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그만 기업은 돈주 등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사유화되고 있다. 기업에 주인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구소련, 유럽, 중국 모두 위에서부터 체제를 전환시켰다. 밑에서부터 시작된 변화가 체제, 제도까지 바꿔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된 경우는 없다. 따라서 밑으로부터의 시장화가 체제전환으로 이어진다면, 사회주의 역사상 처음이 되는 셈이다. 장마당이 북한의 체제 변화를 이끌지는 아직 단언할 수 없다.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러나 중세가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을 보면 그 가능성은 있다.”

- 김정은이 장마당을 묵인하는 이유가 뭔가. “아마 2009년 화폐개혁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한다. 화폐개혁은 북한에 큰 체제 위기였다. 그 당시 화폐개혁으로 인한 불만 때문에 탈북하여 남한에 온 분을 만났는데, 화폐개혁에 분노를 표출하면서 김정일이 있으면 죽이고 싶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열심히 돈을 벌어 충성자금으로 바쳤는데 자기가 가진 돈을 화폐개혁이라며 빼앗아갔다는 것이다. 일정 액수 이상의 돈을 교환해 주지 않은 것이다. 1990년대 이후 북한 체제 붕괴 리스크가 가장 컸을 때가 고난의 행군기였고 다음이 화폐개혁 때였다. 김정은 입장에서는 시장을 축소하면 그 자체로서 권력은 강화되겠지만, 주민들이 먹고살 것이 없어지면 오히려 권력 유지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시장을 묵인하고 부분적으로 활용하면서 경제를 운영한다고 볼 수 있다.”

- 북한 체제전환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시장경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보나.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나라는 쿠바와 북한이 유일하다. 계속 가는 것은 낭비다. 체제전환 없이 사회주의로 계속 가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결국 시장경제로 제도가 변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 핵문제 해결이 지상과제다. 그래서 대북 제재로 핵을 내려놓도록 압박하고 있다. 결국 도달해야 할 목표에 대해 김 교수는 이렇게 정리했다. “당면한 과제 중 제일 중요한 것이 비핵화다. 그러나 비핵화만 된다고 북한이 잘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대규모 해외투자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해야 가능하다. 우리는 어떻게 이 둘을 잘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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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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